好學의 文學/[참회록]Augustine

제10 권 고백 (6~10)

好學 2009. 6. 19. 19:24

 

제10 권 고백 - 6.만물위에 계시는 하나님. 

주님이시여,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데 있어서 의심을 갖지 않으며
오히려 확신을 가지고 사랑합니다.
당신께서 말씀으로 나의 마음을 관통하셨기 때문에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천지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도 모든 방면에서 나에게 당신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하고
아무도 변명하지 못하도록 모든 사람에게 계속 말하고 있습니다.

한편 당신은 불쌍한 자를 더욱 가엾게 여기시고
불쌍한 자에게는 자비를 베푸실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저 하늘과 땅이 귀머거리에게 당신의 찬가를 들려주는 셈이 됩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고 했지만 대체 당신의 무엇을 사랑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육체의 아름다움도 아니고 감동된 시간의 취미도 아니며
눈으로 보기에 좋은 빛의 광채도 아니고, 갖가지 음악의 아름다운 멜로디도 아니며
꽃과 향유의 냄새도 아니고, 꿀도 아니며,
육체적인 포옹에 알맞는 몸뚱어리도 아닙니다.
내가 나의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이 모든 것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사랑할 때, 나는 일종의 빛, 소리,향기, 음식,
그리고 일종의 포옹 등 모든 것을 사랑합니다.
나의 하나님은 나의 내적인 인간의 빛이며 내적인 소리이며,
향기이며, 음식이며, 포옹입니다.
거기에는 어떠한 장소에서도 포착되지 않는 빛이 마음을 비추고
또한 어떠한 시간에도 빼앗기지 않는 소리가 울리고,
어떠한 바람에도 날아가지 않는 향기가 감돌고
아무리 먹어도 실증나지 않는 음식과,
부둥켜안고 비벼대도 실증나지 않는 포오이 있습니다.

그러면 대체 그것은 무엇일까요?
내가 땅에게 물어 보았더니 땅은 '그것은 내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땅에 있는 모든 것이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나는 바다와 심연과 그 속에서 꿈틀거리는 생물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우리는 당신의 하나님이 아니다.
우리들 위에 있는 것에게 물어 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온 우주의 공기가그 가운데 있는 모든 거주자들과 더불어 말하기를
'아나크시메네스(기원전 6세기 그리스 철학자.공기를 만물의 근원이라고 함)가
잘못 생각했어. 나는 하나님이 아니야.'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하늘의 해와 달, 그리고 별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는 그대가 찾고 있는 하나님이 아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내 육신의 문호를 에워싸고 있는 만물에게
'너희들이 하나님이 아니라면 제발 나의 하나님에 대해 말좀 해다오.' 라고 했더니
'그분이야말로 우리를 창조하신 분이다.' 라고 외쳤습니다.
나의 질문은 나의 관찰이었고 그들의 대답은 그들의 아름다움이었습니다.

다시 내가 나 자신을 향해 '너는 대체 누구냐?'라고 물었을때
나 자신은 '나는 사람이다'라고 대답했는데, 바로 그렇습니다.
나의 속에는 육체와 영혼이 있으며 하나는 안에, 하나는 밖에 있습니다.
내가 시선을 사환(使喚)삼아 보내면서 육신의 방법으로 땅에서 하늘까지
두루 찾아 헤매던 나의 하나님을 묻던 것은 영혼과 육체중에 어느 것이었습니까?

물론 안에 있는 영혼이 더 좋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물체인 모든 사자들과 하늘과 땅,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다 그분은 우리를 창조하셨다'고 대답한 것을
저 높은 어른이신 심판관이 보고했기 때문입니다.

안 사람은 밖의 봉사를 통해서 이것을 아는 법입니다.
영혼적 자아인 내가 내 육신의 감각적 존재를 통해 그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우주를 향하여 내 하나님을 물었더니
그는 '내가 아니라 나를 창조하신 이가 그분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감각이 둔한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든지 전세계의 이 아름다움을 뚜렸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아름다움은 모든 사람에게 같은 말을 하지 않을까요?
작은 동물이나 큰 동물도 그 같은 아름다움을 보지만 그들은 물어 볼줄은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감각에는 심부름꾼은 있어도 주인은 없는데
말하자면 그것에 관해 판단하는 이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에 반해서 인간은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것을 창조물을 통해
감지할 수 있고 분명히 물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분이 창조하신 것에 대한 애착 때문에
거기에 빠져 복종하면 올바른 판단을 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이 피조물들도 판단할 줄 아는 사람에게만 대답을 합니다.
보기만 하는 자와 보면서 묻는 자에 따라서 이 사물들이 그 음성, 곧 형태를 바꾸어
이런 자에게는 이렇게 보이고 저런 자에게는 저렇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똑같은 모양으로 보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모든 사람에게 말하지만 외부에서 받아들인 목소리를
내부의 진리와 비교해 보는 자만이 그 목소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진리는 나에게 '하늘도 땅도 어떠한 물체도 너의 하나님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이미 사물의 본성이 이를 보는 사람들에게 말했던 것인데
체적(體積)의 부분은 전체보다 작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영혼이여, 네게 말해 두지만
나는 분명 네가 이런 것들보다 더 낫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너는 네 능력으로 네 육신의 체적을 통과하고 거기에 생명을 부여하지만
어떠한 물체든 다른 물체에다 생명을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너의 하나님은 너를 위해서 생명을 주시니, 그는 네 생명의 생명이시다.

제10 권 고백 - 7. 신체적 감각 

그렇다면 나의 하나님을 사랑할 때,
내가 사랑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내 영혼의 꼭대기에 계신 분은 누구입니까?
나는 나의 영혼을 통해서 그분께로 가까이 갈 것입니다.
나는 나의 능력을 넘어서 그 능력으로 인해
내가 육체에 결합되고 그 접합된 것을 생명으로 채울 것이나
이 능력으로는 나의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만일 발견할 수 있다면
이성이 없는 말이나 당나귀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의 육체를 살리는 능력도 우리의 능력과 똑같기 때문입니다.

나에게는 또 하나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것은 육체를, 생명뿐만 아니라 감각까지도 갖춘 것으로 만듭니다.
그것은 듣기 위한 눈, 보기 위한 귀가 아니라
보기 위한 눈, 듣기 위한 귀를 주고
다른 감각 기관에도 각기 그에 어울리는 소임을 주었습니다.
그뿐아니라 나는 그 감각 기관을 통해 온갖 일을 하는 것이며
그것은 하나의 영혼인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 능력마저도 초월해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말이나 당나귀도 이 능력을 지니고 있고
그것들 역시 육체를 통해서 느끼기 때문입니다.

제10 권 고백 - 8.기억력 

나는 나의 본성에 갖추어진 이러한 능력을 넘어서
단계적으로 나를 창조해 주신 분께로 올라갈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마침내 기억이라는 광대한 궁정에 들어갈 것입니다.
거기에는 감각에 의해 반입된 여러가지 사물에 대한 수 없는 영상의 보고가 있습니다.
또한 거기에는 감각에 의해서 접촉한 것을 사유에 의해 증감하고
또는 무슨 방법으로든지 바꿈으로써 얻어진 것이 모두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밖에도 망각속에 삼켜지고 매몰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것들도 역시 모두 거기에 숨겨져 있고 보관되어 있습니다.

내가 그 보고 속에 들어가서 무엇이고 내가 원하는 것을 내놓도록 한다면
어떤 것은 즉시로 발견됩니다.
그러나 어떤 것은 발견하는데 무척 시간이 걸려서
비밀스런 창고에서라도 끌어내는 것처럼 발견됩니다.
그런데 어떤 것은 떼를 지어 나타나서 다른 것을 찾고 있는 한 복판에 뛰어들어
'혹시 우리를 찾으려는 것이 아닌가?'하고 외치면서 기억 속에 떠오릅니다.
내가 마음속의 손을 흔들어 내 기억의 눈앞에서 그것을 쫓아 버리면
내가 원하던 것이 안개 속에서 어렴푸시 나타나 결국 뚜렸하게 보입니다.
그런데 어떤 것은 요구대로 순서적으로 떠올라 앞서 온 것은
뒤에 온 것에 자리를 양보하고 사라지는데
사라질 때도 내가 원하면 언제나 나타날 준비를 하고 사라집니다.
내가 기억을 더듬어 이야기할 때에는 언제나 이같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이 기억이라는 곳에는 모든 것이 저마다 제 통로로 들어와
각기 종류에 따라 보존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빛과 색채와 물체의 모습은 눈을 통해서 들어 오고
모든 종류의 소리는 귀를 통해서 들어 오며, 모든 냄새는 코를 통해서,
모든 맛은 입을 통해서 들어 오는 것입니다.
또 신체의 안에 있건 밖에 있건간에 단단한 것,부드러운 것,
차가운 것, 뜨거운 것, 매끈매끈한 것, 거친 것, 무거운 것, 기벼운 것 따위의
영상은 전신에 분포되어 있는 감각에 의해서 들어 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기억이라는 광대한 창고와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밀실에 간직되어
언제든 필요할 때면 꺼내 쓸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은 각기 저마다의 문호를 통해서 들어와 그곳에 보관된 것입니다.
그러나 사물 자체가 들어 오는 것이 아니고
오직 감각된 여러 사물의 심정이 거기 있어서
떠오르는 생각에 언제나 응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하고 있는데 불과합니다.

이들 심정이 어떠한 감각에 의해서 포착되고 내부에 보관된 것은 분명합니다만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는가 하는 것은 아무도 설명하지 못합니다.
어둡고 조용한 속에서도 나는 마음만 먹는다면 색갈을 기억할 수 있고
흰색과 검은색 그외에 마음대로 생각해낸 어떠한 색도 구별할 수 있습니다.
이때 비록 감추어진 상태로 보관되어 있어서 겨우 기억이나 하는 정도일 지라도
정신의 눈앞에 그려져 있는 것을 결코 중단시키거나 방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회상하고 싶을 때에는 언제나 그것이 기억에 떠오릅니다.
혀도 놀리지 않고 목청이 울리지 않아도 얼마든지 하고 싶은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비록 색갈의 영상이 나타나 있을 경우라도 귀를 통해서 들어와
보고에 쌓였던 다른 부분이 작동할 때 중간에 끼어들거나 방해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다른 감각에 의해서 들어와 쌓여 있는 다른 영상 까지도
마음대로 기억해 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백합향기와 오랑캐꽃 향기를 아무 낸새를 맡지 않고도
구별할 수가 있으며 포도즙보다는 꿀이 더 달다든가
매끈매끈한 것이 거친 것 보다 좋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구별할 수가 있습니다.

나는 그러한 일들을 내 마음속, 즉 기억의 거대한 방속에서 행합니다.
거기에는 하늘이나 땅, 그리고 바다도 그것들 속에서 감각할 수 있었던
모든 것과 더불어 단지 잊어버린 것을 제외하고 보관되어 있습니다.
나는 또 거기서 나 자신을 만나서 나의 행동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일어났으며
그 행동을 했을때 어떤 기분이었는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거기에는 내가 겪었던 것이든지 남이 겪었던 것이든지
내가 상기하는 모든 것이 있습니다.
동일한 것에서 나 자신이 새로 겪은 형상이나
남이 겪은 사물의 과거의 것과 결부시켜서 그것들로부터 미래의 행동,
그것이 어떻게 돨 것인지 무엇을 바랄 수 있을지를 생각하게 되는데 
이 모든 것은 다시 정신앞에 실재하는 것 처럼 보입니다.

나는 이러한 사물의 영상으로 가득찬 나의 마음이라는 거대한 밀실 속에
'이것을 하자, 저것을 하자.' '그러면 이러한 결과가 생기겠지.'
'제발 이러저러 했으면 좋겠는데.'
'주님이시여, 이일, 또 저일이 생기지 않게 해주십시오.'하는 따위의 말을 합니다.

내가 이같이 독백을 하는 동안에
기억의 보고에서 모든 것의 영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만약 영상이 없었다면 나는 그것 중에 무엇 하나 들추어 낼 수 없는 것입니다.

주님이시여, 기억력은 위대합니다. 실로 위대합니다.
그것은 광대무변한 속 마음입니다.
누가 그 속마음을 규명해 낼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이것은 내 영혼의 힘으로써 본성에 속하는 것인데
나는 그 나라는 것의 전체를 파악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정신은 어떻게 자기 자신을 파악할 수 없을까요?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정신이 얼떨떨해지며 매우 놀라게 됩니다.

흔히 사람들은 높은 산, 거센 파도, 넓은 강, 광막한 바다,
별 운행 따위를 보고 놀라지만 자기 자신의 일은 소홀히 합니다.
내가 이러한 일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아무것도 보지 않고 말한다는 것을 알고도 젼혀 놀라지 않습니다.
내가 보았던 산천과 넓은 바다와 별, 그리고 내가 말로만 들었던 대양을
마치 외계에서 보는 듯이 내 기억속에 뚜렷이 자리잡고 있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거기에 대하여 내가 아무 말도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그것들을 보았을 때 그것들을 내 안에 흡수해 버리지는 않았으며
다만 영상이 내 속에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나는 어떤 것이 육체의 어느 감각을 통해서
내게 어떤 인상을 주었는가를 기억합니다.

제10 권 고백 - 9.정신적인 것에 대한 기억 

내 기억의 깊이를 잴수 없을 정도의 큰 수용력은
이런 것들 만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엔 배워서 익힌, 아직 잊혀지지 않은 것의
모든 것이 저장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더 깊숙한 곳에 박혀 있는 듯하지만
장소라고 할 만한 곳은 못됩니다.
나는 그것들에 대해서는 영상이 아닌
바로 그것 자체를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문학이나 논리학 또는 수사학은 내가 아는 그대로
기억 속에 간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사물 그 자체는 밖에 남겨 두고
영상만을 보관하는 따위가 아닙니다.
에를 들어 소리는 한 번 울리고 난 다음에도
소리가 귀에 남아 있기 때문에
되새기기만 하면 울리지 않을 때도
그 소리를 기억해 낼 수가 있습니다.
향기도 이와 같습니다.
향기는 바람을 타고 사라지지만 후각을 자극시키기 때문에
제 영상을 기억에 남겨서 우리는 이것으로 돌이켜 볼 수가 있습니다.
이 밖에 음식의 경우도 그러해서 뱃속에 든 것이
맛이 있을리 없으나 기억으로 그맛을 되살릴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살이 닿았던 것이 멀리 떨어진 후에도
기억 속에서 상상되는 것입니다.

이 경우, 이런 것들의 물체 자체가
스스로 기억 속으로 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이들 영상만이 놀라운 속도로 포착되어
불가사의한 창고 같은 곳에 비축되었다가
되새길 즈음에 상기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제10 권 고백 - 10. 기억 속의 비감관적인 것 

나는 질문의 종류에는 '존재하는가?' '무엇인가?' '어떻게 되어 있는가?'
라는 세가지 것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 경우 이러한 말을 형성하고 있는 소리의 영상은 지니고 있으나
그 말소리는 공중을 울리면서 지나가 버려서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그 말소리로 표시되는 사물 자체는 내 육신이 감각으로는
파악하지도 못하고 내 정신 말고는 어디서도 본 일이 없지만
나는 그 영상이 아닌 물체 자체를 기억 속에 간직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물체 자체가 어디서부터 내게 들어 온 것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아무리 내 육체의 문을 샅샅이 살펴 보아도
그것이 어디서 들어 온 것인지 나는 알 수가 없습니다.

눈은 말하길 '빛깔이 있으면 내가 말해 주련만.' 합니다.
그러자 귀가 '소리가 났으면 벌써 우리가 가르쳐 주었지.' 하고
코는 '냄새나는 것이라면 나를 거쳐 갔을텐데.' 하고 말합니다.
또 미각은 '맛이 없는 것이라면 묻지도 마.'하고
촉각은'물체가 아니면 만져 볼 수가 없고
만져 보지 못했으면 뭐라고 말할 수도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것들이 어떻게 해서 내 기억 속에 들어 왔는지
나로서는 알수가 없습니다.
내가 그것을 알았을 때 남의 정신에 의탁하지 않고
내 정신에게 재인식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진실이라고 인정하여 그것을 나의 정신에 맡겼습니다.
마치 내가 그것을 원할 때 다시 끌어내기 위해서인 것처럼
그곳에 보관해 두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내가 알기 전에 정신 속에 있었으나 기억 속에는 없었습니다.

그러면 어디에 있었을까요?
그것들을 배웠을 때 '그렇다 정말이다.'라고 내가 인정한 것은 어째서일까요?
그러나 것들은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라도 숨어있듯
기억의 깊숙한 곳에 숨어 있기 때문에
남이 그것을 불러내지 않았더라면 나로써는 결코
그것을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