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敎育 1/원고[절기,헌신예배]

기독교 행복론(9): 결혼은 행복의 모체 (에베소 5:22-33)

好學 2012. 11. 26. 20:18

기독교 행복론(9): 결혼은 행복의 모체 (에베소 5:22-33)

 

 

“결혼은 천국도 아니고 지옥도 아니다. 결혼은 연옥이다.” (A. Lincoln). “Marriage is neither heaven nor hell; it is purgatory.”

 

1. 너의 행복이 나의 행복 (Your Happiness is My Happiness)

1) 아내의 행복 (Wife's happiness, 22-24절): 그리스도에게 하듯 복종하라 (Obey your husband)

2) 남편의 행복 (Husband's happiness, 25-29절): 희생의 사랑 (Sacrificial love) 성화의 사랑 (Sanctifying love) 제공의 사랑 (Supplying love)

3) 불신 남편도 존대 (Respect your unbelieving husband, 벧전 3:1-6)

4) 서로의 발전 (Mutual progress): 죄인(sinner)→ 성자(saint)

 

2. 결혼 생활 심오한 비밀 (Marriage is a Profound Mystery)

1) 인간은 축복의 통로 (Channels of blessings)

2) 제창이 아니라 합창 (Not unison, but chorus)

3) 하나님이 결혼 모델 (Divine marriage as the model of human marriage) 행복한 결혼을 위해 노력하라. (No perspiration, no progress).

 

기독교 행복론(9): 결혼은 행복의 모체 (에베소 5:22-33)

여러분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시고 계십니까?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아내와 결혼하겠다고 생각하십니까?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겠다고 생각하십니까? 혹시 지금의 아내나 남편이 ‘짱돌’ 들고 죽이려고 달려오는 악몽을 꾸실 때가 있습니까? 여러분이 얼마나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은 이런 질문에 대한 여러분의 대답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배우자와 결혼하겠다는 사람은 매우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지금의 배우자와 다시 결혼한다는 것을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는 사람은 매우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매우 행복한 결혼생활과 매우 불행한 결혼생활 사이에 스펙트럼을 그려 놓는다면 여러분은 어디 쯤 해당되십니까? 결혼은 개인과 가정과 사회의 행복의 모체입니다. 부모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보고 자란 아이들이 행복하고, 후에 행복한 결혼생활을 합니다.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은 “결혼은 천국도 아니고 지옥도 아니다. 결혼은 연옥이다.”고 했습니다. 저는 천국과 지옥 사이의 연옥을 믿지 않지만, 결혼생활이 천국이 될 수도 있고 지옥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은 맞습니다. 결혼을 천국으로 만드는 비결이 무엇일까요? 남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나의 행복이라는 것이 성경의 교훈입니다.

 

가수 션(노승환)은 둘째 하랑이를 위해서 그 동안 모은 2천만 원을 3명의 어린이 다리 수술, 합병증 치료, 인공 와우(달팽이관) 수술비로 기꺼이 내어놓았습니다. 그들은 첫째 하음이 때도 역시 돌잔치를 위해 준비한 돈을 이웃을 위해 쾌척했습니다. 돌잔치에서는 흔히 아기가 돈을 잡으면 부자가 되고, 연필을 잡으면 학자가 된다고 합니다. 션은 자기 아이들이 돌잔치에 “이웃의 손을 잡았어요.”라고 했습니다. 노승환 정혜영 부부는 남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나의 행복이라는 것을 바로 깨달았습니다.

 

본문 28절에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아내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남편이 행복해지는 비결입니다. 같은 원리로 남편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내가 행복해지는 비결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불행하게 사는 원인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남편이 자기 행복을 위해서 살기 때문에 불행한 것입니다. 남편이 자기 마음대로 살기 때문에 불행한 것입니다. 아내가 자기 행복을 위해서 살기 때문에 불행한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당신이 내게 해 준 것이 뭐야?”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불행한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행복하게 사는 비결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남편은 아내를 행복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만큼 자신이 행복합니다. 아내는 남편을 행복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만큼 자신이 행복합니다. 션은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자가 누구입니까?”라고 질문한 후 “이 세상 모든 여자가 부러워할 정도로 자기의 여자를 행복하게 하는 남자!”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또한 “자기 남자를 이 세상 모두가 존경할 수 있게 만드는 여자”가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여자라고 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행복의 비결을 정확하게 지적한 말입니다.

 

본문 22절부터 24절까지 아내는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듯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했습니다. 아내가 남편의 권위를 세워주라는 것입니다. 아내가 자식들 앞에서 남편의 권위를 세워줍니다. 남편이 돈을 많이 벌어오지 못해도, 남편이 내세울 것이 별로 없어도, 자식들과 가족들 앞에서 아내가 남편의 체면을 세워줍니다. 남편은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무시당해도 세상에서 자신을 인정해 주는 한 사람만 있으면 행복을 느낍니다. 남편이 밖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짓밟혀도 집에 돌아와서 자신을 인정해 주는 아내만 보면 위로가 됩니다. 자기 아내에게 인정받고 존경받는 남편은 행복한 남편입니다. 아내는 자기 남편을 존대하는 만큼 자신이 행복해집니다.

 

25절부터 28절 말씀에는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라는 명령이 나옵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심과 같이 남편이 목숨을 걸고 자기 아내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아내가 좀 못났어도, 아내가 좀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있어도 자기 아내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만큼 자신이 행복합니다. 아내를 행복하게 하는 남편은 행복한 남자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할 때는 그리스도가 교회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신 것처럼 희생의 사랑(sacrificial love)을 해야 합니다. 25절에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미국 컬럼비아 성경 대학의 전 총장 로벗슨 맥킬큰(Robertson McQuilkin)은 아내가 치매에 걸리자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써서 총장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지금까지는 저의 아내가 그래도 저 없이 잠시 견딜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저 없이는 잠시도 견딜 수 없어서 제가 아내를 풀타임으로 돌보아야 합니다. 저는 42년 전에 병들거나 건강하거나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가지 아내를 돌보기로 언약했습니다. 지금까지 아내는 저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저를 돌보았습니다. 앞으로 제가 40년 동안 아내를 풀타임으로 돌본다 하더라도 저는 사랑의 빚을 다 갚지 못합니다.” 얼마나 멋진 희생의 사랑입니까? 맥킬큰 총장은 매우 행복한 남자입니다. 치매에 걸린 아내를 돌보니까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치매에 걸린 아내를 돌보는 남편은 보통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행복을 누리는 남자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할 때는 아내를 거룩하게 하는 사랑(sanctifying love)을 해야 합니다.

 

26절과 27절을 보면, 예수님은 교회를 말씀으로 깨끗하고 거룩하게 하셔서 티나 주름이나 흠이 없는 영광스럽고 정결한 신부로 만드십니다. 남편도 자기 아내를 거룩하게 만드는 사랑을 해야 합니다. 남편이 가정의 신앙생활에 주도권을 잡아야 합니다. 남편이 아내와 가족들을 위해서 가정 예배를 인도해야 합니다. 남편 여러분, 이런 질문을 던져 보십시오. ‘아내가 나를 만나서 더 좋은 사람이 되었는가? 아내가 나를 만나서 더 좋은 어머니가 되었는가? 아내가 나를 만나서 더 좋은 신자가 되었는가?’ 아내가 남편을 만나서 더 좋은 사람, 더 좋은 신자가 되었다면, 그런 남편은 매우 행복한 남편입니다. 그런 남편을 둔 아내도 매우 행복한 아내입니다.

29절을 보면 남편은 아내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고 아내를 보호해 주는 공급의 사랑(supplying love)을 해야 합니다. 남편이 열심히 일해서 아내와 가족의 생활비를 제공하고, 강도가 들어오면 남편이 일어나서 아내와 가족들을 보호해 주어야 합니다. 남편이 아내와 가족을 질병과 사고와 기타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야 합니다.

본문 23절에 남편이 “아내의 머리”라고 할 때 ‘머리’는 폭군이 아닙니다. 아내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고 아내를 거룩하게 만들어 주고 아내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면서 아내를 보호하는 ‘섬기는 지도자’입니다. 예수님이 교회의 발을 씻기신 ‘섬기는 지도자’이셨던 것처럼, 남편도 아내의 발을 씻기는 ‘섬기는 지도자’입니다. 남편은 아내를 위해서 희생의 사랑, 성화의 사랑, 제공의 사랑을 해야 합니다. 이런 남편을 둔 아내는 매우 행복합니다. 아내가 행복하면 남편도 행복합니다. 이런 말씀을 들으시면서 ‘제 남편은 희생의 사랑, 성화의 사랑, 제공의 사랑과 거리가 멀어요.’라고 말씀하시는 여성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경우에 성경이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남편이 이런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하더라도, 아내는 남편의 권위를 세워주면서 남편이 바로 서도록 온유하게 도와주어야 합니다. 온유한 사랑으로 남편의 권위를 세워주면서 남편이 바로 서도록 도와주는 것이 아내의 행복을 키워나가는 길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남편에게도 아내가 희생적 사랑으로 남편의 권위를 세워주면 남편은 그런 아내 때문에 행복하고 남편의 그런 행복이 결국 아내가 믿는 예수님을 받아들이도록 문을 여는 것입니다(벧전 3:1-6).

 

25년간 교회에 다니면서 교인들에게 존경을 받는 어떤 신자가 목사님을 찾아와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목사님, 말씀 드릴 것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누구에게도 드린 적이 없습니다. 저의 아내와 결혼하고 30년 동안 매일 싸웠습니다.” 목사님은 너무 당혹스러워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목사님은 대답할 말을 찾는 시간이라도 벌기 위해서 “매일 싸우십니까?”고 반문했습니다. 그는 “예, 매일 싸웁니다.”고 대답했습니다. 목사님은 “오늘 교회 오시기 전에도 싸웠습니까?”고 물었습니다. 그는 “예.”라고 대답했습니다. 목사님은 “그 싸움이 어떻게 끝났습니까?”고 물었습니다. 그는 “아내가 두 손을 땅에 대고 무릎으로 내게 기어왔습니다.”고 대답했습니다. 목사님은 너무도 궁금해서 “아내가 뭐라고 하시던가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아내는 제게 ‘비겁쟁이야, 침대 밑에 숨어 있지 말고 이리 나와서 남자답게 한바탕 붙잔 말이야.’라고 했습니다.”고 대답했습니다. 아내 여러분, 남편과 한바탕 붙어 싸우면 행복하겠습니까? 남편이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비겁쟁이야, 침대 밑에서 기어 나와 나랑 한바탕 붙잔 말이야.”라고 하시면 안 됩니다. 남편이 하는 일이 못 마땅해도 남편을 소중하게 여기고 남편을 세워주어야 아내가 행복합니다. 남편이 노래를 부를 때에 옆에서 박수를 쳐주면 남편이 행복합니다. 행복한 남편을 보는 아내도 행복합니다.

배우자를 사랑할 때 이미 거룩한 사람이 되어 있는 성자(saint)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부족한 것이 많은 죄인(sinner)을 사랑하여 점점 거룩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다시 스스로 질문해 보십시오. ‘아내가 나와 결혼했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더 많이 닮게 되었는가? 아내가 나와 결혼했기 때문에 더 좋은 사람, 더 좋은 친구, 더 좋은 엄마가 되었는가? 남편이 나와 결혼했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더 많이 닮게 되었는가? 남편이 나와 결혼했기 때문에 더 좋은 사람, 더 좋은 친구, 더 좋은 아빠가 되었는가?’ 자메이카 속담에 “결혼하기 전에는 두 눈을 뜨십시오. 결혼한 후에는 한 눈을 감으십시오.”라는 말이 있습니다. 내 남편, 내 아내가 부족해도 한 눈을 감아 주는 것이 결혼생활입니다. 한 눈을 감고 너그럽게 대하면서 배우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더 닮아가도록 노력하는 것이 결혼생활입니다.

바울 사도는 에베소 5장 31절에서 창세기 2장 24절을 인용하면서 남자가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합하여 한 몸을 이루라고 했습니다. 에베소 5장 32절에서는 이것이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 대한 ‘심오한 신비’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어째서 심오한 신비일까요?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복을 전달하는 통로가 되도록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복의 막다른 골목으로 창조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풍성한 복이 내게 와서 내게만 머물러 있게 나를 만드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복이 한 인간에게서 다른 인간으로 흘러가도록 만드셨습니다. 전기가 여기서 저기로 흘러가는 것처럼 하나님의 복이 한 인간에게 다른 인간에게로 흘러가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 의도입니다. 인간은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과 복을 나눌 수 있는 다른 인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남자를 만드시고 남자로 깊이 잠들게 하신 후에 남자의 갈비뼈로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이 여자를 남자의 갈비뼈로 만드셨으니 여자는 남자의 몸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남자의 갈비뼈로 다른 남자를 만드신 것이 아니라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여자는 남자와 같으면서도 남자와 다릅니다. 여자가 남자의 몸에서 나왔으니 남자와 같지만, 남자와 달리 생겼으니 남자와 다릅니다. 하나님은 남자와 똑 같은 남자가 합해서 한 몸을 이루게 하신 것이 아니라 남자와 다른 여자와 한 몸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서로 다른 사람이 한 몸을 이루는 것이 참으로 아름다운 것입니다.

같은 멜로디를 함께 부르면 제창(unison, one voice)이 됩니다.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서로 다른 멜로디를 함께 어울리게 부르면 합창(harmony)이 됩니다. 똑 같은 멜로디를 같이 부르는 것보다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가 화음으로 부르는 것이 훨씬 더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은 동성의 연합을 만드신 것이 아니라 이성의 연합을 만드셨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예수님과 한 몸이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믿는 모든 사람들과 한 몸이 됩니다(갈 3:28).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다 그리스도의 한 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예수님의 생명을 드러내시는 유기체(organism), 예수님의 영이 거주하시는 유기체입니다.

그리스도와 교회가 한 몸인 것처럼 남편과 아내가 한 몸입니다.

하나님은 남편과 아내의 연합을 기준으로 삼아 그리스도와 교회의 연합을 이루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연합을 기준으로 삼아 남편과 아내의 연합을 이루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남편과 아내의 결혼을 그리스도와 교회의 결혼을 본 따서 만드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언약의 연합이 남편과 아내의 결혼의 연합의 본(pattern)입니다.

 

지오프리 브로밀리(Geoffrey Bromiley)가 말한 대로 “하나님이 인간을 하나님 닮은꼴로 만드신 것처럼, 하나님이 결혼을 하나님과 하나님의 인간의 결혼 닮은꼴로 만드신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의 결혼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의 영원한 결혼을 닮아서 그 놀라운 신비적 연합을 드러내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결혼이 원형이고, 남편과 아내의 결혼이 모형입니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영원한 결혼이 본이고, 남편과 아내의 결혼은 그것을 본 뜬 것입니다.

이 얼마나 심오한 신비입니까!

남편과 아내의 결혼이 하나님과 인간의 결혼을 본 뜬 것이라니, 와, 얼마나 깊은 신비(profound mystery)입니까!

남편과 아내의 결혼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어쩌다가 만나서 같이 사는 차원이 아닙니다.

 

결혼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서로에게 유익한 조건을 걸고 맺은 계약이 아닙니다.

계약은 조건이 불리하면 언제든지 파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혼은 하나님과 인간의 영원한 결혼을 본 뜬 언약입니다.

아무리 조건이 불리해도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기로 목숨을 걸고 맺은 언약입니다.

남편과 아내의 결혼은 우주와 인류를 창조하시고 운행하시고 섭리하시는, 우주와 인류보다 무한히 더 크신 하나님과 인간의 영원한 결혼을 본 딴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의 결혼의 의미가 이리도 깊을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남편으로서 여러분의 결혼을 이렇게 깊은 차원에서 생각해 보셨습니까?

여러분이 아내로서 여러분의 결혼을 이렇게 깊은 차원에서 생각해 보셨습니까?

여러분이 앞으로 결혼할 사람을 두고 결혼을 이렇게 심오한 신비로 생각해 보셨습니까?

정조를 지키면서 서로 신뢰할만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상호 신뢰가 결혼반지입니다.

이것이 가정의 낙원을 지키는 화염검입니다.

남편과 아내는 결혼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서 땀 흘려 노력해야 합니다.

땀이 없는 곳에 발전이 없고(No perspiration, no progress), 고통이 없는 곳에 소득이 없습니다(No pain, no gain).

 

아내 여러분,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듯, 하나님이 주신 남편의 권위를 인정하고 세워줌으로써 남편을 행복하게 하십시오.

그것이 아내 여러분의 행복입니다.

 

남편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목숨을 버린 것처럼 목숨을 걸고 아내를 사랑함으로써 아내를 행복하게 하십시오.

그것이 남편 여러분의 행복입니다.

이렇게 할 때, 그리스도와 교회의 영원한 결혼을 본 따서 인간의 결혼을 만드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각자가 배우자의 행복에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때, 각자의 행복과 가족의 행복은 최고조로 달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