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敎育 1/원고[절기,헌신예배]

기독교 행복론(8): 돈은 행복의 통화 (디모데전서 6:5-10, 17-19)

好學 2012. 11. 26. 20:07

 

기독교 행복론(8): 돈은 행복의 통화 (디모데전서 6:5-10, 17-19)

 

 

1. 자족 (Contentment) *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1) 공수래공수거 (Come empty, go empty, 7절).

2) 생활필수품 (Be content with necessities, 8절).

3) 부의 함정 (Remember the trap of riches, 9-10절)

 

2. 자선 (Charity)

1) 마음을 낮추라 (Make yourself humble, 17절)

2) 하나님께 희망 (Hope in God, 17절)

3) 선행을 힘쓰라 (Be rich in good deeds, 18-19절)

 

* 박정윤, <행복한 부자> (How to Be Rich and Happy), “재무 팔복” (Eight Financial Beatitudes): 의로운 청지기로 사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의 집에 부요와 재물이 있을 것임이요 예산을 생활화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의 삶이 여유로울 것임이요 빚지지 않고 사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는 빚의 근심으로부터 자유할 것임이요 모든 일을 주께 하듯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는 유업의 상을 받을 것임이요 지혜롭게 소비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의 가정이 화목하고 번영할 것임이요 저축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는 불황 속에서도 어려움을 겪지 않을 것임이요 분산투자를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는 위험을 줄여 곤경에 빠지지 않을 것임이요 사랑으로 베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는 천국은행으로부터 영원한 배당을 받을 것임이라

 

기독교 행복론(8): 돈은 행복의 통화 (디모데전서 6:5-10, 17-19)

어느 청소년 수련원에서 “하나님과 돈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물었더니 청소년들이 거침없이 “돈이요”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요즘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에서도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사채놀이를 하며 돈 때문에 폭력도 서슴거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더 나아가 청소년 성매매 등, 위험수위를 넘은 돈 맛에 어린 영혼들이 썩어간다고 합니다. 돈이 행복의 비결이라고 생각하고 돈을 우상으로 섬기고 사랑하는 것이 시대의 풍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돈으로 침대는 살 수 있으나 잠은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책은 살 수 있으나 두뇌는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음식은 살 수 있으나 식욕은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장신구는 살 수 있으나 아름다움은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주택(house)은 살 수 있으나 가정(home)은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쾌락은 살 수 있으나 행복은 살 수 없습니다. 존 록펠러는 “나는 수백만 달러를 벌었으나 그것이 내게 행복을 주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헨리 포드는 “나는 기계공으로 일할 때가 회장 때보다 더 행복했다.”고 했습니다. 앤드류 카네기는 “억만 장자들은 별로 웃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돈으로 무엇을 하시고 계십니까? 돈으로 무엇을 하시고 싶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여러분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합니다.

 

1. 자족의 원리 바울은 본문에서 경건을 이익의 수단으로 삼는 사람들을 주의하도록 경고합니다.

그들은 돈 사랑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돈을 제일 사랑하고 진리를 돈보다 못한 줄로 생각합니다. 그들은 진리와 함께 기뻐할 줄을 모릅니다. 바울은 여기서 임마누엘 칸트처럼 경건은 그 자체로 옳은 것이기 때문에 추구하라고 권면하지 않습니다. 이익에는 관심을 갖지 말고 오직 경건 자체를 위해서 경건을 추구하라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6절에서 “경건이 큰 이익”이라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우리가 이익을 위해서 살지 말라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익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돈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이익보다 더 큰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경건은 우리가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식하고 바로 사는 삶이 우리에게 더 큰 이익을 준다는 것입니다. 6절 말씀대로 우리에게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됩니다. 자족은 돈이 많은 환경이나 적은 환경이나 외부적인 환경에 관계없이 마음에 행복을 유지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바울은 자족의 비결을 삶에서 배워 익혔습니다. 바울은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고 고백했습니다(빌 4:11-12). 바울이 돈이 있든 없든, 많든 적든 어떤 환경에도 영향을 받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비결이 무엇이었습니까?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했습니다(빌 4:13). 바울은 자신에게 어떤 환경이라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에 어떤 환경도 능히 감당할 수 있다고 한 것입니다. 어떤 환경에도 영향을 받지 않고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마음, 즉 자족의 비결은 주님으로 만족하는 것입니다. 자족의 반대말은 탐욕입니다. 9절에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진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오해하면 안 됩니다. 본래 기업은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이익을 창출하는 것이 그 기본 정신입니다. 성경은 돈을 버는 비즈니스를 하지 말라고 하지 않습니다. 돈을 더 많이 주는 직장을 찾는 것이 나쁘다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돈을 벌도록 일을 해야 합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우리가 먹고 살고 남들이 먹고 살도록 하기 위해서 돈을 버는 것을 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오직 ‘돈, 돈, 돈’ 하면서 탐욕을 채우고 사치하기 위해서 부자가 되겠다는 것이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탐욕을 버리고 자족하면 늘 행복할 수 있습니다.

 

왜 우리는 탐욕을 버리고 자족해야 합니까? 우리가 탐욕을 추구하지 말고 자족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1) 공수래공수거(7절).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대도시 미술관에 빈손으로 들어온 사람이 미술관 벽에 걸린 그림들을 하나 둘 챙겨 들고 나간다면 여러분은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아이,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 사람은 “저는 미술품 수집가가 될 겁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아니, 그렇지만 그 미술품들은 선생님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여기서 미술품 하나라도 밖으로 들고 나갈 수 없습니다. 빈손으로 들어오신 대로 빈손으로 나가셔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말하는데, 그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이 미술품들은 다 내 겁니다. 내가 내 걸 가지고 나가는데 무슨 말이 필요합니까? 괜히 내 기분을 망치지 마십시오.” 그가 만일 이런 식으로 대답한다면 여러분은 그를 정신 나간 바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미술관에 들어오는 사람이 빈손으로 들어가서 빈손으로 나가는 것처럼, 우리도 세상에 빈손으로 들어와서 세상에서 빈손으로 나갑니다.

태평양 상공에서 비행기가 추락해서 273명이 세상을 떠났다고 가정해 봅시다. 탑승객 중에는 유명한 정치가도 있고 수십억 달러 기업인도 있고 교사와 유학생도 있고 목회자와 그 자녀도 있습니다. 비행기 추락 이후에 그들이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그들의 손에는 VISA 카드도 없고 만 원짜리 지폐 한 장도 없고 증권도 없고 콘도 회원권도 없습니다. 정치가와 기업인과 교사와 유학생과 목회자와 그 자녀가 다 똑 같이 빈손입니다. 거기서 볼 때 하나님의 영광에는 관심도 없이 돈만 버는 데 평생을 보낸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비참하겠습니까. 평생 열차표를 집채만큼 모았는데 마지막 열차를 놓침으로 열차표가 아무 소용이 없게 된 것처럼 얼마나 공허하겠습니까. 우리는 세상에 들어올 때 빈손으로 온 것처럼 세상에서 나갈 때도 빈손으로 나가는 존재입니다. 고귀한 인생을 하나님의 영광과 관계없이 돈만 버는 일에 낭비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자족하라는 것입니다.

2) 생활필수품(8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소박한 삶에 필요한 정도만 있으면 자족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고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게 하시기 때문에 자족할 수 있습니다(히 13:5-6). 참된 만족은 마음의 경건에서 오는 것이지, 손의 돈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1800년대의 자연주의자 헨리 쏘로(Henry Thoreau)는 “사람은 없어도 살 수 있는 물건의 숫자만큼 부유하다.”는 말을 했습니다. 남이 가진 것이 하나라도 없으면 못 사는 사람은 그만큼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입니다. 남이 가진 것이 없어도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것으로 만족하고, 먹고 살 수 있으니 만족한 사람이 진짜 부유하고 행복한 사람입니다. 세계 금융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든 하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이 돈보다 더 좋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을 공짜로 구경하고 공기와 햇빛을 공짜로 즐기고 가족들과 오순도순 사는 것도 공짜로 즐깁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연의 공짜 선물이 있고, 사랑의 인간관계의 공짜 선물이 있으니 자족할 수 있습니다. 하루에 50만 원짜리 호텔에 들어가서 희미한 불빛 아래 낯선 여인과 고급 칵테일을 마시는 사람과 허름한 모텔에 들어가서 석양을 보면서 사랑하는 아내에게 연애편지를 쓰는 사람 중에 누가 더 행복하다고 생각하십니까?

3) 부의 함정(9-10절):

9절에 “부하려 하는” 것은 성공해서 행복하기 위해서 더 많이, 또 더 많이 가지려는 것입니다. 부는 만족을 주는 대신 더 많은 욕망을 줍니다. 자유를 주는 대신에 속박을 줍니다. 건강과 평안을 주는 대신에 상처와 근심을 줍니다. 부를 믿고 항해에 나섰는데 근심의 폭풍이 불어 빠져버렸습니다. 자꾸 더 가지려는 사람은 “파멸과 멸망”의 함정에 빠집니다. 탐욕과 사치를 위해서 부자가 되겠다는 사람은 파멸에 빠져 많은 근심으로 자기를 찌릅니다. 하나님의 영광에는 전혀 관심이 없이 오직 돈만 벌겠다는 것은 사탄의 함정에 빠져 평생 지옥의 쓴맛을 보겠다는 것입니다.

 

2. 자선의 원리 바울은 우리가 자족할 줄 알아야 행복하다는 것을 말하면서 또한 돈을 바로 사용해야 행복하다는 교훈을 줍니다. 우리가 돈을 바로 사용하는 세 가지 원리가 있습니다.

1) 마음을 낮추라(17절): 돈 때문에 교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돈이 있으면 마음이 쉽게 속습니다. 돈이 많으면 ‘저 사람은 왜 저 모양일까?’ ‘이만하면 나도 잘 했지.’ 하는 식의 우월의식이 내 속에 자리를 잡습니다. 돈이 매력이 있는 것은 돈이 있으면 힘(power)이 생기고 돈이 있으면 떵떵 거리며 살 수 있는 교만(pride)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돈 때문에 교만해서는 안 됩니다. 돈이 부풀어 오르게 하는 교만의 풍선에서 계속 바람을 빼야 합니다.

왜 돈 때문에 교만해집니까?

자신을 오해하고 부(富)를 오해가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은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부를 관리하는 청지기입니다.

부는 우리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이 맡기신 하나님의 재산입니다(신 8:18).

부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입니다.

우리는 청지기로 겸손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

2) 하나님께 희망(17절): 불확실한 부에 희망을 두지 말고 모든 것을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희망을 두어야 합니다. 이것은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하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막 10:23). 돈이 주는 세상의 모든 희망에서 하나님께로 눈을 돌려 하나님에게 모든 희망을 거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선물을 주신 분보다는 선물 자체를 사랑하기 쉽습니다(신 8:17-19).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은 누리는 것에 가책을 느끼면 안 됩니다. 금식과 금욕이 하나님을 섬길 때에 때때로 필요하지만, 항상 반드시 금식하고 금욕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을 누리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경배해야 합니다(딤전 4:2-

5).

여기서 주의해야 할 부분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살 수 있도록 하신 모든 것들을 사서 감사하면서 즐기면 우리가 돈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대왕의 자녀가 왜 거지처럼 살아야 합니까?” 이 말은 절반만 진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을 감사하면서 누려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사치하면 안 됩니다. 자신과 자신의 가족만이 떵떵거리고 사는데 돈이 최고니까 돈에 희망을 걸면 안 됩니다. 돈에 희망을 걸지 말고 후하게 주시고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희망을 걸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희망을 걸고 하나님이 주신 것을 누릴 줄도 알아야 합니다(전 2:24; 3:12-15, 22; 5:18-20; 11:9-10). 3) 선행을 힘쓰라(18-19절):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것을 누릴(enjoy) 뿐 아니라 선용할(employ)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선한 일에 부해야 합니다(6:18). 교만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하나님께 희망을 고정하기만 하면, 우리는 우리의 돈을 하나님의 다양한 사역을 더 힘차게, 더 많이 전개하는데 투입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행복이 있습니다.

박정윤 장로님이 쓰신 <행복한 부자>에 “재무 팔복”이 나옵니다. 의로운 청지기로 사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의 집에 부요와 재물이 있을 것임이요 예산을 생활화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의 삶이 여유로울 것임이요 빚지지 않고 사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는 빚의 근심으로부터 자유할 것임이요 모든 일을 주께 하듯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는 유업의 상을 받을 것임이요 지혜롭게 소비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의 가정이 화목하고 번영할 것임이요 저축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는 불황 속에서도 어려움을 겪지 않을 것임이요 분산투자를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는 위험을 줄여 곤경에 빠지지 않을 것임이요 사랑으로 베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는 천국은행으로부터 영원한 배당을 받을 것임이라 월드 뱅크의 자료에 의하면 2005년 하루에 1불 25센트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14억 명입니다. 전 세계 4명 중의 1명꼴입니다. 월드 비전에 의하면 식량이 없어 죽어가는 아이가 매 7초 당 1명, 하루에 14,000명입니다. 브라질에서 어떤 아이가 엄마에게 “엄마, 도나 줄리타네 집에 날 팔아 주세요. 그 집에는 맛있는 음식이 많아요.”라고 했답니다. 우리는 이런 세계를 보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을 나눌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것은 하나님께 꾸어 주는 것입니다(잠 19:17).

하나님이 반드시 갚아 주십니다. 부자가 죄인은 아닙니다.

성경은 부자이기 때문이라고 죄인이라 하지 않습니다.

욥은 갑부이면서 모범적인 신앙인이었습니다.

솔로몬도 하나님의 은혜로 세계 최고의 갑부였습니다(왕상 3:13; 10:23).

하나님은 온전한 십일조를 하면 하늘 문을 여시고 쌓을 곳이 없도록 채워 주시겠다는 약속도 하셨습니다(말 3:10).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는 자신의 돈을 사용해서 예수님의 장례식 비용으로 썼습니다(마 27:57-61).

고넬료도 부자로서 구제를 많이 했습니다(행 10:2).

 

우리는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합니다. 부자라고 죄인처럼 살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후하게 바치고, 남들의 유익을 위해 후하게 베풀 줄 알아야 합니다. 앞으로 화폐개혁이 있다면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지혜로울까요? 옛 화폐는 최소한으로 가지고 새 화폐 쪽으로 많이 바꾸어 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옛 화폐는 무용지물이 될 때 후회의 탄식이 적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화폐 개혁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쓰는 돈은 천국에서는 무용지물입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이 세상의 돈은 최소한으로 가지고 있고, 나머지 돈은 천국 화폐로 바꾸어 두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과 남들을 위해서 돈을 쓰는 것은 이 세상의 화폐를 천국 화폐로 바꾸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과 남들을 섬기기 위해서 쓰는 돈은 다 천국 은행에 저축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축복의 창고로 살지 말고, 축복의 통로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19절 말씀대로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누고 베푼 공로로 영생을 취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영생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가 돈으로 나누고 베풀면 천국 은행에 저축하는 참된 삶을 사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고후 9:8).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에 먹고 살 것이 있으면 자족해야 합니다.

탐욕을 가지고 자꾸 더 가지려고 함으로써 많은 근심으로 자신을 찌르는 파멸의 길로 가지 않기 위해서도 자족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것을 관리하는 청지기로서 겸손하게 하나님께 희망을 두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도 후하게 바칠 수 있고, 이웃의 유익을 위해서도 후하게 베풀 수 있습니다.

자족(contentment)과 자선(charity)이 돈을 행복의 통화로 만드는 비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