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학의 교육 2/[인터넷성경교육]

제61과 사무엘하(2): 다윗 왕국의 위기와 극복(1) (9-13장) 2

好學 2012. 10. 20. 09:34

 제61과 사무엘하(2): 다윗 왕국의 위기와 극복(1) (9-13장) 2

 

 

2. 암몬과 수리아의 도전과 정복(10장) <참고 지도: 다윗의 정복>

  그 후에 사무엘서 기자는 암몬-수리아(아람)와 다윗간의 전쟁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사무엘서 기자는 이미 삼하 8장에서 다윗이 암몬-아람을 정복한 일에 대해서 기록한 바 있다. (삼하 10:1-14)의 사건은 (삼하 8:12)에 간략히 언급된 암몬과의 전쟁을 보다 상세하게 설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마침내 암몬 자손의 왕이 죽고 그 아들 하눈이 대신 암몬의 왕이 되었다
(1). 여기에 언급된 암몬 자손의 왕은(삼상 11장)에 언급된 나하스를 가리킨다. 그는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을 치려고 하다가 오히려 사울 왕에게 패배한 적이 있었다(삼상 11:1-12). 다윗은 나하스가 자기에게 잘 대해주었기 때문에, 그의 아들인 하눈에게 잘 대해주려고 했다. 그러므로 다윗은 사신을 보내서 나하스의 죽음을 조상하도록 지시했다(2).

나하스가 다윗에게 언제 어떠한 은총을 베풀었는지는 성경에 나와 있지 않다.

 학자들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추측을 하고 있다.

 

1) 나하스가 다윗의 즉위식(2:4;5:1-3)에 특사를 보내 축하했을 것이다(Lange).

2) 다윗이 사울을 피해다닐 때 나하스가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Keil).

3) 나하스가 다윗과 상호 평화 조약을 맺었을 것이다(Interpreter's Bible).

우리는 이 세 견해 중 어느 것이 사실인지 확인할 수 없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단지 다윗이 나하스와의 유대 관계를 그 아들 하눈에게까지 유지하기를 원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하눈의 신하들은 이러한 다윗의 뜻을 오해했다. 그들은 다윗이 사신을 보내어 랍바 성을 정탐하게 했다고 비난했다(3). 이 말을 들은 하눈은 다윗이 보낸 신하들의 수염을 절반이나 자르고, 그 의복을 엉덩이 윗 부분까지 잘라서 돌려보냈다.

당시 수염은 명예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이 일은 그들에게 크나 큰 치욕이 되었다. 또한 당시 사람들은 속옷을 입지 않았기 때문에 엉덩이 윗 부분까지 의복을 자른 일도 지독한 모욕적인 사건이었다(4). 다윗은 그 소식을 듣고 크게 노했다. 다윗은 부끄러워서 왕을 보기를 주저하는 신하들에게 수염이 다 자랄 때까지 여리고에 머물러 있도록 지시했다(5).

  

이에 암몬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스라엘 왕의 미움을 사게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스라엘과 싸우기 위해서 돈을 주고 여러 지역에서 군사들을 사들였다. 그들은 벧르홉 아람과 소바 아람 사람의 보병 20,000명과, 마아가 왕과 그의 군사 1,000명, 그리고 돕 사람 12,000명을 용병으로 고용했다(6). 위의 4개국 중에서 3개국은 아람의 도시 국가였다. 당시 아람인들은 통일 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각각 분립적인 소도시 국가로 나뉘어져 있었다. 벧르홉 아람은 벧르홉에 도시를 건설한 아람 소국을 의미한다.

 

벧르홉은 단 지파의 성읍이었던 라이스의 북쪽에 있었다(삿 18:28; 민 13:21). 소바는 다메섹 북쪽과 레바논 산지 동쪽에 있던 아람 소국으로, 아람의 여러 소국들 중에서 하맛과 더불어 가장 강력한 나라였다. 또한 마아가는 바산 동북쪽(신 3:14), 헬몬 산 서남쪽에 있던 아람 왕국으로, 그술과 인접해 있는 나라였다.

이때에 마아가만 암몬의 모병에 응하고, 그술은 응하지 않은 것은 그술 왕 달매가 다윗의 장인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3:3). 돕은 이스라엘 지경 길르앗 지방 안에 있던 한 성이었다(삿 11:2, 5). 이곳은 이스라엘 12지파의 기업에서 떨어져 있었지만, 암몬 땅에서 가까왔기 때문에 암몬의 모병에 응할 수 있었을 것이다. (대상 19:6)을 보면, 이때에 암몬 왕 하눈이 군대를 모집하기 위해서 사용한 돈은 은 칠천 달란트였다.

이를 노동자의 하루 품삯인 드라크마로 환산하면, 6백만 드라크마가 된다. 암몬왕 하눈이 고용한 2만 명의 보병은 역대기의 기록에는 '병거와 마병'이라고만 기록되어 있다(대상 19:6). 당시 하눈이 고용한 아람 용병은 보병과  전차병, 기마병으로 구성되어 있었을 것이다(Keil & Delitzsch).

 

 다윗은 이 소식을 듣고 요압과 이스라엘의 모든 군사들을 암몬으로 보냈다(7). 이때에 암몬 사람은 요압과 싸우기 위해서 성문 어귀에 진을 치고 있었고, 그들이 돈을 주고 고용한 용병들은 따로 들에 있었다(8). 요압은 이들이 둘로 나뉘어 있는 것을 보고 군사를 둘로 나누었다. 그리고 자신은 정예병을 이끌고 아람을 치고, 나머지 군사들은 자기 아우 아비새에게 맡겨서 암몬 사람과 싸우게 했다(9-10). 요압이 먼저 아람 군사들을 공격했고 아람 군사들은 요압 앞에서 패배하여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를 본 암몬 사람들은 싸우기를 그치고 성으로 피해 도망치고 말았다(11-14).

 

  아람 사람들이 요압에게 패배한 것을 본 하닷에셀은 다시 강 건너 편에 있는 모든 아람 군사들을 모았다. 이때에 그 군사들은 소박이 지휘하고 있었다(15-16). 다윗은 그 소식을 듣고 친히 아람-암몬과 싸우기 위해서 출정했다. 그리고 다윗은 이 전쟁에서 크게 승리하였다. 그는 이 전쟁에서 아람 병거 700승과, 마병 40,000명, 그리고 군대장관을 쳐서 죽였다(17-18).

 하닷에셀에게 속한 왕들은 이스라엘에게 패한 후에 이스라엘과 평화 조약을 맺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윗을 두려워하여 다시는 암몬을 도우려고 하지 않았다(19). 그러나 문제는 암몬인이었다. 그들은 먼저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이엇기 때문에, 다윗은 그 쪽에서 다시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확실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므로 다윗은 요압을 시켜서 암몬의 수도인 랍바 성을 치라고 명령했다(11:1).

당시 야전 사령관은 요압이었으며,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바로 이 시점에서 다윗은 그 유명한 밧세바와의 스캔들을 일으키게 된다. 이 사건은 다윗을 두고 두고 괴롭힌 치명적인 사건이었다. 후에 요압은 전쟁에서 이겨서 랍바 성을 정복하게 되었다. 그는 그때에 다윗을 불러서 다윗이 그 성을 취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12:2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