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智慧묵상/[지혜묵상]신앙지혜

섬세한 사랑

好學 2012. 10. 12. 21:15

섬세한 사랑

요한복음 11:17~44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생각만해도 든든한 일이다. 그것도 다름아닌 그분이 예수님이라면 마음의 든든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가까이 하셨던 한 가족이 나온다. 나사로는 예수님이 사랑하는 자였고,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에 향유 옥합을 붓고 자신의 머리털로 주님의 죽음을 예비했던 사람이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의 질병에 대한 소식을 들으시고 이틀을 더 머무신 후 유대로 가고자 하셨다. 이에 제자들은 만류했지만 예수님은 떠나셨다. 그런데 유대로 오던 중 나사로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접하셨다. 하지만 주님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죽어 무덤에 있은 지 나흘이 지난 뒤였다(요11:17).

적극적인 성품의 마르다는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마중 나와 주님이 계셨다면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아쉬움도 표현한다. 마르다에게 예수님은 부활에 대해 자세히 말씀해 주셨다. 나중에 소식을 들은 마리아가 마르다가 예수님을 맞이한 곳에서 엎드려 울었다. 이를 본 예수님은 비통하게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시며(요17:33) 눈물을 흘리셨다. 참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참 사랑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하신다. 부활에 대한 가르침으로 마르다를 위로하셨던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는 마리아에게는 같이 울어주심으로 위로하였다. 서로 다른 기질의 소유했던 마리아와 마르다를 예수님은 각기 다른 방법으로 섬세하게 사랑해주셨다.

사랑은 내 방식을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내 방식을 조절하는 것이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깨지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자기중심적인 생각과 행동 때문이다. 즉 내 입장에서만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놀라운 능력을 나타내고 과시하는 것에 초점을 두신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확실한 부활 소망을 심어주시는데 집중하셨다.

바로 그 예수님께서 이미 나흘 동안 사망 가운데 있는 나사로를 불러내셨고, 나사로는 수족을 베로 동인 채 걸어 나왔다(요17:44).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의 능력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죽어 나흘이 지난 사람을 살려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은 자를 살리셨다.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며 향유 옥합을 부었던 마리아 앞에서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날 부활을 보여주셨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가족을 통해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다 말씀해주신 것이다.

남자들이여,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사람의 기질을 먼저 이해하고 사랑해야 함을 알고 있는가? 섬세한 사랑은 섬세한 행복의 출발점이다. 마리아와 마리아를 서로 다른 방법으로 사랑하셨던 예수님처럼 서로의 특별함을 헤아리고 존중하는 것이 사랑이다. 위로를 주는 섬세한 사랑은 헤아림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