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智慧묵상/[지혜묵상]신앙지혜

나의 아버지는 누구?

好學 2012. 10. 11. 05:58

 

나의 아버지는 누구?

요한복음 8:31~47

 

 

사람의 행동과 언어는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자기인식과 지금 무엇을 해야 할 지에 대한 자기목표 설정에 따라 달라진다.

남자들이 직장을 다닐 때와 퇴직한 후를 비교해보면 생활방식에 있어서 많은 차이를 드러낸다.

그래서 성경은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마음을 지키라고 말씀하셨는지 모른다.

예수님의 하나님의 아들로서 세상의 모든 일들과 사람들을 바라 보셨고, 죄인들을 죄로부터 자유케하시는 일에 모든 초점이 맞추셨다.

모든 사람을 자유케하리라는 진리에 대한 예수님의 선포는 지극히 파격적이었다. 형식에 매여 살던 당시 종교인들에게 자유라는 단어는 상상할 수 없는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선포는 당시 유대인들이 생각했던 ‘종교적 자유’(요8:33)의 개념을 초월하는 것으로써 죄로부터의 영적인 자유를 의미했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틀을 안정망으로 여기고 그 속에서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형식에 따라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지나친 자의식과 형식에 매여 사는 사람들을 보시며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곳이’(요8:37) 없다고 지적하신다.

예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차이는 다른 아버지에 있었다.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하고 너희는 너희 아버지에게서 들을 것을 행하느니라”(요8:38).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은 자유케 되는 삶을 살지만, 죄 가운데 있는 육신의 아버지를 따라 사는 자는 마귀에게서 났고 욕심대로 행하고자 한다(요8:44). 이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사실에만 집착한 채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은 들으려고도 깨달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로 사는 것과 육신의 아버지의 자녀로 사는 것은 비슷해 보일 수 있지만 전혀 다르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과 내 뜻대로 사는 삶에는 큰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는 크리스천 남성들과 불신 남성들의 생활 사이에 분명한 차이가 존재하는 것과 같다. 단적으로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해결하는 방식이나 기준이 다르다. 내 기분과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기준과 방식이 무엇인지 고민을 하게 된다. 크리스천 남성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그 안에 있어서 모든 삶의 기준이 된다. 내가 삶의 기준이 될 때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고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좋게 보일 수 있는 방식들을 선택하기 쉽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면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주저 없이 선택할 수 있다.

남자들이여,

그대 안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가? 아니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훌륭한 전통이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죄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인생을 살고 싶은가? 아니면 죄의 굴레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며 살고 싶은가?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만나고 나면 내 자신을 더욱 사랑하고 존귀하게 여길 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진다.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살고 싶다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