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하는 사마리아인 처럼
누가복음 10:25~37
기도가 부족하다고 생각되면 기도에 대한 책을 사러가고, 믿음이 약해졌다고 판단되면 믿음에 대한 책을 읽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자신의 삶에 어려운 문제들이 가득할 때 각종 양육프로그램에 참석하며 끈임없이 배우고 또 배운다.
많은 시간을 들여 신학공부까지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왜 삶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 것일까?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과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개념정리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고 복잡해지면 개념을 정리하려 한다.
그러나 그것보다 순종과 헌신의 결단이 더 필요할 때가 많다.
유대인들 가운데에는 믿음에 대한 개념정리 전문가들이 많이 있었다.
곧 가장 잘 믿는다고 정평이 난 제사장과 레위인이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믿음에 대한 지식면에서는 탁월했다.
하지만 사랑에 대해서는 말만 유창할 뿐 정작 사랑을 실천하지 데에는 허접한 수준이었다.
한 율법교사가 예수님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냐?”고 물어 왔다. 예수님은 율법교사에게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는지 반문하셨다. 율법교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네 이웃을 자신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눅10:28)고 말씀하셨다. 영생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누리는 축복이다. 레위인도, 제사장들도 영생에 대한 지식은 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서 영생에 합당한 삶을 찾아보긴 어려웠다.
당시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은 서로 커다란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을 비교하는 것은 당시 사회에서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예수님은 여리고로 가다가 강도 만난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가 거의 죽을 지경이 되었으나 제사장과 레위인은 그냥 지나친 반면, 사마리아인은 그를 불쌍히 여겨(눅10:33) 상처를 싸매주고 여비를 들여 주막에 데려가기까지 했다. 강도 만난 사람을 도왔던 사람은 제사장도 레위인도 아닌 바로 사마리아인인 것이다. 당시 사마리아인의 도움을 받는 것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불쾌한 일로 여겨졌다. 이 이야기를 통해 전달하시고 하는 예수님의 교훈은 단순하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눅10: 37)는 것이다. 행동하는 믿음을 가지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동안 보여주신 것은 개념으로서의 사랑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셨다. 사마리아인처럼 살라고 말씀하셨던 주님은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온전한 사랑의 모범을 보여주셨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공부를 한다. 성경을 암송하고 필사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코 잊어서는 안될 중요한 교훈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것으로 증명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제사장처럼 레위인처럼 사는 사람이 아니라 부족하지만 사랑으로 섬기는 한 사람이 필요하다.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행동하고 순종하는 그리스도인이 더없이 필요하다.
남자들이여,
우리는 마음 먹은 대로 실천하고 순종하는가? 아니면 생각으로 끝나는가?
영생의 유업을 받은 자로서 이에 합당한 삶은 어떤 것인가?
예수 믿는다는 것은 말만이 아닌 아름다운 순종과 헌신을 통해 나타나야 한다.
때로는 내가 사랑할 수 없는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하고,
그에게 다가가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갖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오늘 예수님으로부터 “너희도 가서 이와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들었다면 우리는 이미 사랑의 빚을 진 자들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순종의 출발점이고 생각의 종착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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