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학의 교육 2/[인터넷성경교육]

제60과 사무엘하(1): 다윗 왕국의 확립 (1-장) 3

好學 2012. 9. 14. 16:35

제60과 사무엘하(1): 다윗 왕국의 확립 (1-장) 3



 1-3.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의 왕이 됨
  다윗이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헤브론으로 올라가라고 지시하심. 헤브론에서 유다 족속의 왕으로 두 번째 기름 부음 받음(7년 6개월)(10-)  


 
1-4. 사울을 장사한 야베스 족속을 격려하는 다윗(5-7)


 

2. 다윗 왕국의 성립(2-7장)

 

  사울이 죽은 후에 다윗은 우여곡절을 거쳐 "유다와 이스라엘"의 보좌를 얻게된다. 그 과정을 기록하고 있는 (삼하 2;1-5:16)은 다윗이 유다와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은 자신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로 주어진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 단락의 전체적인 구조를 살펴본 후에 각 소단락의 주제를 살펴보도록 하자.  

 

 a. 갈등의 가능성(2:1-11)
   b. 갈등의 표출: 소강 상태(2:12-32)
      c. 요약과 헤브론에서 낳은 아들들의 명단(3:1-5)
   b': 아브넬과 이스보셋의 죽음: 소강상태가 깨짐(3:6-39, 4:1-12)
 a': 갈등 해소(5:1-5)
      c. 요약과 예루살렘에서 낳은 아들들의 명단(5:6-16)

 

  사울이 죽은 후에 유다에는 다윗이 왕으로, 이스라엘에는 이스보셋이 왕으로 등극하면서 갈등의 가능성이 a 단락(2:1-11)에 나타나지만, 이 갈등은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다윗을 왕으로 삼는 a'단락(5:1-5)에서 해소된다. 갈등의 가능성은 실제 갈등으로 표출되고 이스보셋 편의 아브넬 장군과 다윗 편의 요압 장군 사이에 일어난다. 그러나 이 전쟁은 아브넬의 탁월한 군사적 능력으로 인해 요압 편의 완전한 승리로 끝을 맺지 못하면서, b단락(2:12-32)에서 소강 상태에 이른다. 결국 이스라엘에 두 지도자인 아브넬과 이스보셋이 있기 때문에, 갈등의 소강 상태가 다윗에게 유리하도록 완전히 해결되려면 이 둘의 죽음이 필요하게 된다. 결국 b'단락(3:6-4:12)에서는 두 지도자인 아브넬과 이스보셋이 죽게되는 과정이 나타난다. 그리고 위의 a-b 내용과 a'-b' 단락 사이에는 각각 요약과 다윗의 아들들의 명단인 c-c'단락이 삽입되어 있다.
 

 2-1. 갈등의 가능성(2:1-11)


  사울이 죽게 되자 다윗은 여호와께 유다로 돌아갈 것인지에 대해 물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유다로 올라가라고 말씀하시매 다윗은 시글락을 떠나 헤브론으로 올라갔다(1). 헤브론(연합, 친교)은 예루살렘에서 남서쪽으로 약 40km 떨어진 곳에 있는 성으로 옛 이름은 기럇 아르바였다(수 15:13; 삿 1:10). 여호와께서 새로운 정착지를 찾는 다윗에게 헤브론으로 가라고 명하신 까닭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1) 헤브론은 유다 지파의 성읍이며 유다 지파 지역의 중심부에 있었다. 그러므로 이 곳은 다윗이 유다 지파의 세력을 업고 왕이 될 정치적인 거점으로 알맞은 곳이었다(4절).

2) 헤브론은 여호수아 시대에 갈렙에게 패한 아낙 자손들이 차지했던 요새로서(수 15:13-17)산지가 성읍으로 둘러싸인 군사적 요충지였다.

3) 헤브론에는 다윗과 친분이 두터운 유다의 장로들이 거주하고 있었다(삼상 30:26,30). 다윗은 자기의 가족을 데리고 헤브론으로 갔으며, 그 곳에서 유다 사람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유다 족속의 왕을 삼았다(2-4). 이때에 다윗은 신하들을 통해서 길르앗 야베스 족속이 사울의 시체를 거두어 장사지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윗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에게 사람을 보내어, 그들의 충성스러운 행위를 축복하고, 자신이 사울을 이어 왕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렸다(5-7). 그러나 군대장관 아브넬이 사울의 아들인 이스보셋을 데리고 마하나님으로 건너가서 길르앗과, 아술과, 이스르엘과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다(9-10). 마하나임은 '두 진영' 또는 '두 군대'라는 뜻이다.

 

이곳은 유서 깊은 땅으로 야곱이 밧단 아람에서 고향 가나안으로 돌아가던 중 천사들을 만났던 곳이다(창 32:1,2). 이곳은 요단 동쪽 갈르엣과 압복강 사이에 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것은 갓 지파와 므낫세 반지파의 기업의 경계선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쉽게 통제한 것으로 보인다(수 13:26,30). 다윗은 길르앗의 야베스 거민들에게 사절단을 파송했다(4-7). 그러나 길르앗 족속은 이스보셋을 추종하고 다윗을 좆지 않았다. 이는 아직 다윗이 백성들의 민심을 온전히 얻지 못하였음을 알 수 있다.

아술이 어디였는 지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추측들이  있다. 이스르엘은 요단 강에서 길보아 산(삼상 31:1)을 거쳐 갈멜 부근을 지나 지중해까지 뻗쳐 있는 넓은 계곡과 평야 지대이다. 하지만 사울 당시 이스라엘은 길보아 전투에서 패하여 이곳을 블레셋에게 빼앗겼다.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은 40세에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2년 동안 왕으로 있었다. 그리고 다윗은 유다에서 왕이 되어 6년 6개월 동안 왕으로 있었다(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