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智慧묵상/[지혜묵상]신앙지혜

소명인가? 소망인가?

好學 2012. 9. 12. 10:35

소명인가? 소망인가?

이사야 6:8

 

 

선교적 부르심에 대한 단상이란 글에서 빌 테일러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선교로 인도하시는 방법에는 크게 네 가지 경로가 있다고 소개했다. 첫째, 개인적인 부르심이다. 선교사 개인이 환상, 강한 성령의 역사, 주님의 음성을 경험하는 것을 말한다. 둘째, ‘룻과 나오미 모델’이다. 룻이 나오미를 따라가듯 순종을 택하는 것이다. 셋째,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연민의 마음에서 헌신하는 것을 말한다. 마지막 넷째, 타인들의 필요를 발견하고 자신의 인생과 은사를 선교에 투자하는 것이다. 선교사들의 대부분이 이러한 경로를 통해 선교사로 부름받는다.

“나를 당신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성가<평화의 기도>의 노랫말을 지은 성 프란체스코는 기독교 역사상 예수를 가장 많이 닮은 사람으로 알려진다. 프란체스코는 1181년 이탈리아 아시시에서 부유한 포목상의 아들로 태어났다. 기사가 되길 꿈꾸던 그는 22세때 이웃 도시 페루자와의 전쟁에 출정했다가 포로로 잡혀 1년동안 병으로 시다렸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어느 날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된다. 다가오는 나환자를 보고 피해 가던 그가 저도 모르게 나환자를 부둥켜 안아 입을 맞추고 눈물을 흘리며 외투를 벗어 준 것이다. 23세때는 성 다미아노 성당의 십자가상 앞에서 기도하다가 “가서 무너지려고 하는 나의 집을 돌보라”는 예수의 음성을 듣고 자신의 소명을 깨닫는다. 프란체스코는 변해가는 아들을 나무라는 아버지 앞에서 옷을 모두 벗은 뒤, “나는 이제 당신의 아들이 아닙니다. 나는 이제 하느님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라는 말을 남기고 수행의 길을 나섰다.

우리의 소명과 꿈이 갈등관계에 있어서는 안된다. 그리스도인 남성들의 꿈은 곧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이다.소명이 분명한 사람은 명확한 인생의 꿈을 갖고 있다. 이사야처럼 분명한 소명을 갖고 있는 사람은 자신의 꿈과 소명을 다르게 갖고 있지 않는다.

월트 캘러스태드목사는 <당신의 꿈을 키우라>에서 역동적인 꿈의 방정식은 재능, 하나님의 소명, 준비, 기회라는 네 가지의 요소가 더해질 때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꿈을 실현하기 위한 굳건한 기초가 된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우리의 꿈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유일하고 진정한 힘의 원천이시다. 성경은 우리를 하나님과 접속시켜 주는 '플러그'이다. 우리의 소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소명충전지로 가득채워져 있어야 한다. 믿음은 우리의 꿈을 새롭게 하고 강화시켜 주는 본질적인 요소이다. 믿음이 있을 때 정열적인 열정을 가지고 꿈을 성취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소망은 성취할 수 있다는 기대가 포함된 열망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은 최고의 것을 기대하고 그것을 이루도록 격려한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있을 때 우리의 소명(꿈)은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남자들을 이끌어간다.

남성들이여,

당신의 부르심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당신을 통하여 어떠한 일들을 이루시기를 원하시는지 발견하였는가?

소명을 발견하지 못한 남성은 인생을 두려움없이 열정적으로 살 수 없다.

소명을 발견한 남성은 하나님이 부탁하신 일이기에 소명을 순종하는 삶이 그의 나라와 의를 이루는 삶이 되어진다.

소명을 붙들고 소명을 따라 사는가?

승진과 물질과 더 나은 삶이라는 나의 소망을 따라사는가?

소명인가?

소망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