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健康/[한의원]동의보감

한의학 이야기 1

好學 2012. 8. 24. 11:58

한의학 이야기 1

 

 

1. 한의학 · 한의사에 관한 읽을 꺼리

 

(1) 한의학을 함에 있어 마음가짐  "천금방"

 
수 당대(수)의 명의인 '손사막'이 남긴 저서인 「천금방」에 나오는, 의사들의 도덕성 확립을 위해 한번쯤 생각하게 하는 내용이라 소개할까 합니다.

만약 병이 들어 치료받고자 하는 사람이 있으면, 빈부귀천이나, 나이의 많고 적음이나, 얼굴의 곱고 미움이나, 원한 관계가 있는 사이거나 친한 사이거나, 같은 민족이거나 아니거나, 어리석거나 똑똑한 것에 관계없이 모두에 대해 부모 ` 형제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임해야 한다. 앞뒤로 두리번거리며 딴 생각하지 말고 스스로 길흉을 헤아려 환자의 몸과 생명을 소중히 여겨, 그의 고뇌가 자신의 것인 양하여 깊이 슬퍼하는 마음을 가지고 험하고 가파른 길이나, 낮과 밤, 더위나 추위, 배고픔과 목마름과 피로함을 가리지 말고 한마음으로 달려가 구해 주되, 능력을 자랑하거나 공적을 남기겠다는 마음을 갖지 말도록 할 것이다.

질병을 진찰할 때는 지극한 뜻과 깊은 마음을 가지고 자세히 살펴 털끝만큼도 빠뜨리는 일이 없도록 하며, 처방을 하고 침을 놓으며 약을 씀에 있어 모두 고르게 하고, 병을 신속히 치료함이 마땅하다고 해도 일에 닥쳐 헷갈려 헤매는 일 없이 자세히 살펴 깊이 생각할 것이며, 자기의 본분 이상으로 경솔하게 재주를 자랑하거나 명예를 먼저 생각하면 이는 심히 어질지 못한 일이다.

무릇 의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말을 많이 하여 희롱하거나, 농지거리하거나, 시끄럽게 떠들거나, 말다툼을 하거나, 다른 사람에 대해 왈가왈부하거나, 자신의 명성을 뻐기거나, 다른 의사를 비방하거나, 자기의 덕을 자랑하지 말며, 우연히 어떤 병을 낫게 했다고 해서 머리를 곧추세우고 자만심에 찬 모습으로 천하에 자기가 제일이라는 식으로 다닌다면 이는 의사 중의 고황(전부터 내려오는 고치기 어려운 오류)이라고 할 것이다.
 

(2) 살구나무 숲의 전설  "행림(杏林)

 
신선전등의 책에 이와 관련된 고사가 실려 있다. 옛날 중국의 삼국 시대 오나라에 동봉이라는 의사가 있었는데, 뛰어난 의술로 많은 환자들의 병을 고쳐 주었으나, 병이 다 나아서 환자가 사례를 하고자 하면 결코 돈을 받지 않고, 대신 집 뒤에 있는 동산에 살구나무를 심게 하였다. 중병을 앓던 사람은 살구나무 5그루를 심고, 가벼운 병을 앓던 사람은 1그루를 심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집 뒤의 동산이 살구나무 숲 즉, 행림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리하여 마을 사람들은 살구로써 건강을 지키고, 동봉은 많은 살구를 수확하여 이 것을 곡식으로 바꾸어 주위의 가난한 사람들이나 나그네에게 나누어주었다. 사람들은 이 숲을 '의사 동봉 신선의 갈구나무 숲'이라고 부르면서 동봉을 기리게 되었다.

이후로 행림은 의원이나 의학계에 종사하는 사람, 또는 의학계를 일컫는 말이 되었다. 지금 우리 나라 한의과 대학생들의 축제를 대부분 '행림제'라고 부르며, 대한 한의사 협회의 공식 마크도 살구꽃 모양으로 한 점은 바로 이 일화에서 연유한 것이다.
  

(3) 우물곁의 귤나무 이야기  "귤정(橘井)"


옛날 중국에 소탐이라는 의사는 환자를 치료해 준 후 치료비를 받지 않고 대신 각자 자기집 우물곁에 귤나무를 심게 했다고 한다.

소탐의 인술이 해를 거듭함에 따라 훗날 귤나무가 여러 집 우물곁에서 크게 자라나 그 뿌리가 물이 솟는 근원에 이르러 귤나무의 맑은 기운이 우물물에 우러나오게 되었는데, 사람들이 이 물을 마시고 각종 질병을 예방 치료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도 의사들을 존칭해서 '귤정'이라고 한다. 치료비를 받지 않을 뿐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의사에 대한 답례의 뜻을 공익을 위한 일에 돌리게 한 이 뜻이야말로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2. 건강 기본에 대한 유명 의학 한문

 

 △ 聖人不治已病, 治未病 (성인불치이병)


 ·뜻풀이 > 성인은 이미 병든 것을 다스리지(치료하지) 않고, 아직 병들지 않은 것을 다스린다.

·좀 더 깊은 풀이 > 여기에는 한의학의 예방을 중시하는 사상이 잘 나타나 있다.

즉, 성인은 천지 자연의 이치를 알아 병이 될 만한 요소를 미리 제거함으로 질병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한다는 뜻이다. 이처럼 한의학은 질병의 치료보다 예방을 더 중시한다. 그러므로 일상 생활에서도 몸과 마음을 수양하되 헛되이 수고롭게 해서는 안 된다.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여 거스르지 말고, 항상 마음을 편안히 하고 욕심을 줄이며, 바깥 사물에 헷갈려 헤매지 말아야 한다.
 

 △ 正氣存內 邪不可干 (정기존내 사불가간)


 ·뜻풀이 > 정기가 안에 있으면 사기(병의 요인이 되는 나쁜 기운, 곧 질병)가 가히 침범하지 못한다.

·좀 더 깊은 풀이 > 몸과 마음을 닦아 건강을 증진시켜 항상 정기를 잃지 않고 잘 보존하면 병에 걸리는 일이 거의 없고, 질병에 걸린다 하더라도 아주 가볍게 지나간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국가나 집안에서 방어를 튼튼히 하고 힘을 기른다면 다른 나라가 침입하거나 도둑이 들지 않는 것과 같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보다는 미리 외양간을 튼튼하게 수리한다는 의미로서 질병에 있어서도 치료보다는 병을 예방하는 게 더 좋은 방법이며, 예방의 우선은 정기를 기르는 것이다.

 △ 治病必求於本 (치병필구어본)

·뜻풀이 > 병을 치료할 때는 반드시 근본(여기서는 음양을 말함)에서 구하여야 한다.

·좀 더 깊은 풀이 > 이는 질병을 치료하기 전에 그 근본을 분명히 파악해야 한다는 뜻으로, 질병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 있어도 그 근본부터 규명해야 한다는 것은 마땅한 이치이다.

한의학에서는 질병을 음양의 조화가 깨어진 상태라고 보기 때문에, 질병을 치료함에 있어서도 반드시 음양의 치우침을 살펴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하여 허약하면 보강해주고, 넘치면 덜어 준다.

△  補其不足 瀉其有餘 (보기부족 사기유여)

·뜻풀이 > 그 부족함을 도와주고, 남는 것을 덜어준다.

·좀 더 깊은 풀이 > 이는 질병을 치료하는 기본 원칙이다. 배고프면 먹고 배부르면 배설하듯이, 부족한 정기를 도와주고 넘치는 질병의 기운을 덜어줌으로써 인체의 부족함과 넘침이 조화를 이루어서 병이 스스로 물러나도록 한다.
 

▲ 6가지 유형의 이런 사람 못 고친다!


다음은 중국 삼국 시대의 유명한 의사인 편작이 이야기한 "六不治" (여섯 가지 못 고치는 것)이다.

1불치 : 교자논어리(驕恣論於理) - 교만하고 방자한 이세로 논하는 것, 즉 건방진 것.

2불치 : 경신중재 (輕身重財) - 몸을 경시하고 재물을 중히 여기는 것

3불치 : 의식불능적(衣食不能適) - 의복과 음식을 함부로 하는 것

4불치 : 음양병 장기부정(陰陽幷 臟氣不定) - 음양과 장기가 일정하지 못한 것.

5불치 : 형리 불능복약(形羸, 不能服藥) - 몸이 극히 수칙하나 약을 먹지 못하는 것

6불치 : 신무불신의(信巫不信醫) -무당을 믿고 의사를 믿지 않는 것

3. 조선시대 이야기

 

 하나) 왕실에선 무슨 일이 있었을까?

 
왕실에선 이렇게 치료했답니다. 왕실의 주요 인물들, 즉 국왕 · 왕비 · 왕세자 등의 질병을 치료하거나, 비, 빈, 내명부(궁 안에 근무하는 품계가 있는 여자) 등의 병환이나 해산(解産)때에는 내의원과는 별도로 임시 기구를 설치하였다.

왕의 경우는 시약청을 설치하여, 1품관이 도제조가 되고 유의와 어의들이 함께 모여 진맥과 처방을 논의하여 약을 지어 올리게 되어 있다. 이 때 약을 달인 후에 수의(어의 중의 우두머리)가 먼저 맛을 보고 다음에 세자가 맛을 본 후 왕에게 진상하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는데 이는 왕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서, 이 때 약을 진공하는 의관을 의약동참이라 하였다.

왕비와 왕세자의 병에는 의약청을 설치하여 내의원의 도제조 이하 의관들이 이곳에 모여 처방을 논의한 후 조제하여 올렸다.

산실청은 비나 빈이 아기를 해산할 때 설치하는 기구이고 호산청은 빈이나 내명부가 해산할 때 설치하던 임시 기구였다.

이러한 임시 기구는 치료나 해산이 끝나면 즉시 폐지하였는데, 이 때 완치되거나 무사히 해산하면 모두가 큰 상을 받게 되지만 잘못되면 관계 의관은 벌을 받게 되며, 심지어는 의관이 사형을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둘) 남녀칠세부동석! 그렇다면, 여성들은 어떻게 의원 앞에서?!!


 - '의녀 제도'라고 들어 보셨나요? -

의녀 제도는 조선 태종 6년(1406)에 허도의 건의조가 실시되었다.

이 제도가 생기게 된 이유는, 성리학의 영향으로 남녀의 구별이 엄격해져서, 양반 부녀자들이 남자 의원에게 진찰 받기를 꺼려하여 치료도 받아보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의녀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서울에 있는 각 관아의 여종인 관비고, 교육은 제생원(뒤에는 혜민서)에서 담당하였다.

특히, 세종은 의녀 양성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점차 그 수를 늘렸을 뿐만 아니라, 지방에서도 10세 이상 15세 이하의 관비를 2명씩 뽑아 올려 교육시킨 후, 본 고장으로 보내 의료에 종사하게 함으로써 지방 부녀자도 의료의 혜택을 입을 수 있게 하였다. 이들에게는 기초적이며 필수적인 과목과 산부인과에 관한 것이 교육되었고, 이들의 교육을 위한 권장법까지 제정되었다.

의녀는 산파의 기능도 가지고 있어, 이 뒤에 산파는 하나의 직업인으로서 사회에 봉사하게 되었다.

이러한 의녀의 기능은 연산군 이후 점차 다양화되었다. 즉, 연산군은 의녀를 기녀와 함께 주연에 참석시켰고, 이로 인해 의녀는 의업에만 종사하지 못하고 기녀와 같은 대우를 받게 되어, 「의기」 또는 「약방기생」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의녀는 이 밖에도 혼가의 예물 조사, 기녀 교육, 궁중의식의 의장대, 죄인 체포, 사약 운반 등 의업 이외에 여러 가지 직무를 맡게 되었다. 의녀는 이렇게 다양하게 활동하였지만, 치료와 간병 그리고 산파로서의 기능이었다.

의녀의 수는 많지 않았지만, 특히 부녀자에 대한 의료 시혜 내지는 여성의 사회 참여라는 면에서 볼 때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으며, 조선말기까지 존속하였다.
 

* 여기서 하나!!! 더 !사약(賜藥)을 기억하시나요?


사약은 옛날 형벌의 일종으로서 형전에 근거를 둔 것은 아니지만 옛날부터 시행해온 것으로 독약을 내려 자살하도록 하는 방법이다. 사약은 특히 왕족이나 집권층의 범죄자에게 국왕이 독약을 내리어 자살을 강요하였으므로 하사 받은 약 즉 賜藥이라는 미명 하에 덜 잔인하고 덜 비참하게 죽도록 한 것이다. 이때 사용한 것은 비소를 사용한 듯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수은이나 금을 먹여 위장에 구멍이 나게 해서 죽게 한 일도 있었고 이밖에도 생꿀, 생금, 부자, 게의 알 등을 혼합해서 많은 양을 쓰게 되면 부정맥, 혈압강하, 경련, 의식장애를 일으킨다.

사약을 받은 후 온돌방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고 하니 강렬한 열성약과 뜨거운 외부기운이 합해져 매우 고통스러운 죽음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