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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오로 가는 이십오리 길

好學 2012. 8. 14. 22:42

엠마오로 가는 이십오리 길

 


    할렐루야 !!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은혜를 사모하여 나와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에게, 말씀을 통하여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사람이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라 하는 동네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한푼어치의 소망이라든가 희망이라곤 찾아 볼 수 없이 낙심과 실망에 빠져서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누구도 말을 하지 않습니다. 터벅 터벅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제 나름대로 지난날들의 추억들을 하나씩 회상하면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놓고 있었습니다.

    이젠 예루살렘에도 더 이상 머무를 수가 없습니다. 자칫하면 로마 군인들에게 체포되어 예수님과 같이 사형을 당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찌감치 피신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두 사람은 엠마오로 가고 있었습니다.

    생각하면 얼마나 찬란하고 영화로웠던 날들이었습니까? 수천 수만명이 옹위를 하며, 가는곳마다 이적과 기사가 일어나고, 5병2어의 기적을 비롯해서, 바리새인과 대제사장 서기관들의 끈질긴 질문에도 무난히 척척 대답하심으로, 예수님을 따라 다닐때의 그 우쭐하던 마음과, 호산나를 부르는 환호성속에 승리의 입성을 하실 때는, 금방이라도 로마제국의 구속에서 해방을 시켜, 유대나라의 왕이 되며, 제자들은 한자리씩 높은 지위를 었겠노라는 소망도, 하루 아침에 갈보리 산상의 십자가에 예수님이 달리심으로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젠 더 이상 희망이라고는 바랄 수가 없습니다. 그나마 목숨이라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방치해 두었던 고깃배와 그물을 수리해서 고기를 잡아야 묵구멍에 풀칠이라도 할 수가 있습니다. 아니면 다른 직장을 찾아야만 합니다. 이렇한 심정으로 그들은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바로 장사지낸지 사흘째 되는날 아침에 말로만 듣던 부활하신 예수님이 두 사람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들은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근심이 변하여 찬송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절망이 변하여 소망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고통이 변하여 즐거움이 죄었습니다.
    그들은 두려움과 공포가 변하여 평안이 되었습니다.

    예수님만 만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됩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 속의 엠마오로 가는 두 사람은 우리 인생의 실상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모든 인간들이 죄로 인하여 소망이 없을 때에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인간들에게 구원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 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오늘은 낙망과 실망중에 빠져서 엠마오로 가는 두 사람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 찾아오신 본문 말씀을 통하여 함께 은혜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1. 두 사람이 예루살렘을 떠났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두 사람중에 한 사람은 글로바 라고 기록이 되어 있는데 또 한사람은 이름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또 한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요 그 사람은 바로 본 누가복음서를 기록한 누가입니다. 누가는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하면서 이 대목에 와서 그때 당시 자신의 믿음없었던 것을 회상하면서 자신의 이름 밝히기를 고의로 회피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의 여행은 낭만과 꿈이 있는 즐거운 관광여행이 아닙니다. 기다려주는 이도 없고 그렇다고 약속된 장소로 찾아가는 것도 아닙니다. 자연히 발걸음이 무거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선지자는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습니다. (눅13:33)

    예루살렘을 떠났다는 것은 하나님의 품을 떠나 세상으로 다시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예루살렘을 떠났다가 화를 당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①룻기에 나오는 나오미는 베들레헴에 기근이 들었다고 이방나라 모압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가서 아들 둘을 결혼까지 시켜 잘살아 보려고 했지만 남편도 죽고 아들 둘도 죽고 말았습니다. 결국 나오미는 다시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을 때에 축복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②왕상2:36절이하의 말씀에는 시므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시므이는 다윗왕이 난리를 피하여 피난을 갈 때에 다윗을 욕하고 저주하였으나 나중에 다윗이 환궁을 할 때 용서를하여 주었습니다. 그후 다윗이 죽고 솔로몬이 왕위를 이어 받았을 때에 솔로몬은 시므이를 불러 예루살렘성을 떠나지 말 것을 명령하였고 시므이도 그렇게 하기로 하였으나 몇 년이 지났을 때에 시므이의 종 두명이 도망을 갔습니다. 시므이는 솔로몬왕과의 약속을 잊어버리고 종을 찾으려 예루살렘성을 벗어났다가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③눅10:36절 이하에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가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도 강도를 만난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다고 하였습니다.

    ④창12:10절에는 아브라함이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시험과 환란을 당하였습니다.

    이 모든 말씀은 예루살렘이나 하나님의 성지를 떠났다가 환란을 당한 내용입니다. 그러나 눅2:36절에 아셀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는 주야로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기도하다가 결례받으러 오신 아기 예수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에(행1:4)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고 하셨습니다.

    2. 두 사람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성경에는 예루살렘에서 엠마오까지 25리라고 하였는데 아마 이들은 지금 25리가 아니라 250리처럼 지루하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앞으로 살아가야 할 일들과 신변의 위협 등으로 걱정과 근심에 쌓여서 가는 길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찾아오셨으나 그들은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이 머리속에 생각하는 것은 주님께서 평소에 말씀하신 "인자가 이런 고난을 겪어야 영광을 얻으리라"는 것은 추호도 생각지 않고 앞으로의 살아갈 걱정으로 그들의 눈은 어두워져서 주님을 보고도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사59:1)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이는 너희 손이 피에, 너희 손가락이 죄악에 더러웠으며 너희 입술은 거짓을 말하며 너희 혀는 악독을 말함이라" 또한 저들은 자기들이 예루살렘을 떠나가면서도 주님께서 자기들을 떠난 것이라고 착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 중에서도 이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다시한번 자신들을 뒤돌아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의 눈과 귀는 하늘의 신령한 것을 보며 하나님의 신령한 음성을 듣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입은 찬송을 불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까?
    여러분들의 손은 지금 남을 도와주며 남을 섬기는 봉사를 하고 있습니까?
    여러분들의 발은 하늘나라를 향하여 날마다 날마다 한걸음씩 전진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죄악의 길로, 불타는 지옥으로 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가슴에 두 손을 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주님을 떠났고, 우리의 눈과 귀가 어두워져서 주님이 보이지 않고, 주님의 음성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것이지 주님께서는 지금도 우리 곁에 여러 분곁에 오셔서 우리와 동행하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 멘>

    3. 두 사람은 주님께서 주시는 축사하신 떡을 받고서야 눈이 밝아졌습니다.

    왕상 19:3절 이하의 말씀에 보면 엘리야 선지자가 브엘세바 광야의 로뎀나무아래 누워서 죽기를 구하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어 엘리야에게 구운 떡과 물을 주어 기운을 회복케 하시고 40주야를 걸어서 호렙산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아담과 해와는 선악과를 먹고서 죄악의 눈이 밝아졌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떡, 축사하신 떡을 먹고 우리의 죄악으로 가리워진 육안이 신령한 눈으로 변화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세상의 근심과 걱정과 환란으로, 재리와 염려로, 가리워진 영의 눈이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의 만나 주님이 주시는 말씀의 떡을 먹고 밝아지는 역사가 일어 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요6:3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신령한 눈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리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자에게 열려지는 것입니다. 신령한 눈이 밝아지면 모든 세계가 달라집니다. 우리 눈이 어떤 것인가에 따라 그대로 보이는 것입니다. (예; 파란색 안경을 쓰면 세상이 파라케 보이고, 빨간 안경을 쓰면 세상이 빨갛게 보입니다)

    ※ 찬송가 204장 3절 주안에 있어 즐거워라 마음의 풍랑이 잠자도다
    세상도 없고 나도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영의 눈이 열리지 않은 사람은 죄의 유혹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참과 거짓을 분별하지 못합니다. 진리를 보고도 진리로 믿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아무쪼록 신령한 영의 눈이 밝아져서 주님을 보고 따를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마음이 뜨거워 졌습니다.

    감리교를 창설하신 존 웨슬리 목사님은 올더스케ㅇ 거리의 작은 집회에서 그의 마음이 뜨거워 졌다고 했습니다. 절망에 빠져서 길을 가고 있던 두 사람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풀어서 들려 주실 때에 저들의 마음이 뜨거워 졌다고 하였습니다.

    (눅24:32)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마음이 뜨거워 질 때 변화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마음이 뜨거워 져야 한다는 것은 비단 우리가 성령의 불을 받아서 우리의 육체가 뜨거워지는 것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요즘의 시대를 보면 너무나 냉정하고 너무나 차가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마치 남극이나 북극의 빙산과 같이 날이 갈수록 이 시대의 사람들은 차거워져만 가고 있습니다. 인간 본연의 아름답고 따뜻함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뜨거운 사랑과, 뜨거운 열심과, 뜨거운 마음으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사람들은 이 시대를 Mega death 시대라고 합니다. Mega라는 것은 핵폭탄의 푹팔력의 단위를 나타내는 말로서 1Mega=100만명을 죽일 수 있는 단위입니다. 곧 떼죽음 시대라는 뜻입니다. 사람이 죽어도 한 두 사람 죽는 것은 눈도 꿈쩍하지 않습니다. 수십명씩 죽어야 그제사 마음이 동합니다.

    (마11:16)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설교를 아무리 들어도 얼어붙은 마음이 녹을 줄을 모릅니다. 뜨거워지지 않고 있습니다.

    (롬12: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고 하였습니다. 열심(熱心)이란 뜨거운 마음을 말합니다. 뜨거운 마음이 있으면 죄를 지을수가 없습니다. 또 마음이 뜨겁지 않으면 범죄를 하여도 가책이 없습니다. 주일날 빠져도 십일조를 하지 않아도 전혀 가책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뜨거운 마음이 없으면 신앙생활 하기가 어렵고 힘이 듭니다.

    예; 자동차도 기름에 불이 붙어서 뜨거워 져야 움직일 수가 있습니다.
    (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하였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사람의 마음이 뜨거워 질 때 변화의 역사가 일어남 같이 고달픈 인생길을 가는 여러분들도 오늘 이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은혜받고 뜨거워 지는 역사가 일어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5. 마음이 뜨거워진 두 사람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성도의 결실입니다. 두 사람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부활하신 주님을 증거하였습니다.
    탕자가 아버지 집으로 돌아옴 같이,
    나오미가 베들레헴으로 돌아옴 같이,
    이 두 사람도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마음이 뜨거워진 사람은 능동적으로 행동을 합니다. 적극적인 신앙을 갖게됩니다.

    회개란 가든 길을 돌이키고 180°회전하는 것입니다. 도적질 하던 도둑이 도둑질을 끊고 죄 짖던 사람이 죄를 짖지 않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낙심중에 세상을 향하여 가던 발걸음이 예수를 만나 담대함을 얻어 생명의 위험을 무릎쓰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것은 신앙의 열매입니다. 이것은 마음이 뜨거워 질 때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로마에서 핍박을 피하여 가다가 주님을 만나고 다시 로마로 가서 십자가에 거꾸로 못박혀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엠마오로 가는 낙심된 자를 찾아오셔서 구원하여 주신 주님은 오늘 이 시간이 자리에도 함께 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아멘>
    언제나 주님께서는 우리를 먼저 찾아오시곤 하였습니다.
    브엘세바 광야에서 지친 몸으로 홀로 잠들어 있는 야곱에게도 하나님이 찾아 오셨고,
    새벽 미명에 성전에서 고히 잠들어 있는 사무엘에게도 하나님이 찾아오셨고,
    호렙산에서 양을 치던 모세에게도 하나님은 떨기나무 불꽃속에서 모세를 찾아오셨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하여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에서 한 밤중에 풍랑으로 고통을 당할 때에도 주님은 물위로 걸어서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공포와 낙심중에 질려 있던 제자들에ㄱ 부활하신 주님이 찾아오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면서 저들에게 숨을 내 쉬면서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요20:22)

    지금 이 순간에도 앞으로 우리가 어디가서 무엇을 하던지 동행해 주시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28:20)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는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을 멈추고 돌이켜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돌아갈 예루살렘은 처음사랑 처음 믿음으로 뜨거웠던 바로 그 순간입니다.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면 않됩니다.

    (호6: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욜2:12)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고 부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항상 구하는이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는 자에게 도움을 주십니다. 세상에서 실패와 낙심을 하였을 때에 우리 곁에 찾아 오셔서 말씀을 들려주시는 주님을 발견하고 우리들의 마음이 뜨겁게 변화를 받아서 새사람이 되고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우리 모두 부활하신 주님을 땅끝까지 증거하는 증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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