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敎育 1/원고[절기,헌신예배]

기독교 행복론(2): 하나님의 행복 (시편 33:9-12)

好學 2012. 8. 14. 14:46

기독교 행복론(2): 하나님의 행복 (시편 33:9-12)

Christian Hedonism(2): The Happiness of God 

우리의 행복← 하나님의 행복← 하나님의 주권.

Our happiness← God's happiness← God's sovereignty


1. 하나님의 주권 (The Sovereignty of God) (9-11절)

(1) 좌절 없음 (No frustration)

“오직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 (시편 115:3).

“그의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땅의 모든 사람들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대에게든지 땅의 사람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고 할 자가 아무도 없도다” (다니엘 4:34-35).

(2) 재난 포함 (Including disasters)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세하여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슬러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사도행전 4:27-28).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셨나니” (창 50:20).

(3) 내면 조류 (Deep current)


2. 두 가지 렌즈 (Two Lenses)

(1) 조나단 에드워즈 (Jonathan Edwards)

(2) 십자가, 191호기 (Cross, Flight 191)

(3) 하나님의 영광/ 아들/ 일 (God's glory/ Son/ work)


3. 절대 선(善)의 주권 (The Sovereignty of Absolute Good)

(1) 최고 최상의 절대자 (Most High God)

(2) 하나님 찬양이 행복 (Happiness of praises)

(3) 하나님의 복된 백성 (Happy people of God) (12절)



기독교 행복론(2): 하나님의 행복 (시편 33:9-12)


지난번에는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행복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번에는 하나님의 행복이 우리의 행복의 근거라는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버지가 항상 찡그리고 있으면 자녀들은 불편합니다. 아버지가 신경질을 부려도 자녀들은 초조합니다. 아버지가 불평과 원망을 털어놓으면 자녀들은 불안합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행복하면 자녀들도 행복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은 항상 행복하십니다. 하나님이 행복하시기 때문에 우리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행복의 근거는 하나님의 행복인 것입니다.

우리의 행복의 근거는 하나님의 행복이고, 하나님의 행복의 근거는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이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자신의 뜻대로 다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속이 상합니다. 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신용을 잃고 체통이 깎이고 수치스럽습니다. 계획한 대로 되지 않으면 좌절하고 실망합니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고, 말하는 대로 되지 않고, 계획한 대로 되지 않을 때에 행복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원하시는 대로 다 되고, 말하시는 대로 다 되고, 계획하신 대로 다 되도록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항상 행복하십니다.

모든 것을 자신의 주권대로 이루시는 하나님이 어떻게 죄악과 역경으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을 보시고 행복하실 수 있을까요?

본문 9절에 “그가 말씀하시매 이루어졌으며 그가 명령하시매 견고히 섰도다.”는 말씀대로 하나님은 말씀하신 대로 이루시고, 명령하신대로 성취하시는 분이십니다. 10절에 “여호와께서 나라들의 계획을 폐하시며 민족들의 사상을 무효하게 하시도다.”는 말씀대로 하나님은 나라들의 계획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날 때 그 계획들을 꺾으십니다. 하나님은 민족의 사상이 하나님의 목적에 위배될 때 그 사상을 수포로 돌아가게 하십니다. 11절에 “여호와의 계획은 영원히 서고 그의 생각은 대대에 이르리로다.”는 말씀대로 하나님은 계획하신 대로 그대로 이루시고, 생각하신 대로 그대로 실천하십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영원한 계획이고 하나님의 생각은 대대로 유효합니다.

시편 115편 3절에 “오직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원하시는 모든 것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권리와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자신의 영광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우리의 유익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존재들 중에서 가장 행복한 존재이십니다. 하나님의 무한한 행복이 그리스도인들이 마시고 또 더 마시기 원하는 행복의 원천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절대로 꺾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에게는 좌절이 없습니다. “나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으니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 내가 시초부터 종말을 알리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뜻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사 46:9-10). 만일 하나님의 목적이 수포로 돌아간다면 하나님보다 더 큰 어떤 세력이 있어서 하나님의 목적을 꺾는다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보다 더 큰 어떤 세력은 절대로 없습니다.

천하를 호령하던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의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땅의 모든 사람들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대에게든지 땅의 사람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고 할 자가 아무도 없도다” (단 4:34-35).

하나님의 주권은 재앙까지 포함합니다. “화와 복이 지존자의 입으로부터 나오지 아니하느냐” (램애 3:38). “여호와의 행하심이 없는데 재앙이 어찌 성읍에 임하겠느냐” (암 3:6). 하나님은 악을 만드시지 않지만 모든 악이 하나님의 통제 하에 있습니다. 욥의 경우처럼 사탄이 욥의 자식들과 재산을 다 날리는 재난과 욥의 몸에 악창이 나는 질병을 당하게 했지만, 사탄이 일으킨 그런 재난과 질병도 하나님이 허용하신 것입니다(욥 2:10).

모든 악이 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 들어 있다는 가장 명백한 사건이 그리스도의 십자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누가 계획했습니까?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하고 당시 종교 지도자들과 정치 지도자들과 군중들과 로마 군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 들어 있었습니다.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세하여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슬러(여기까지는 인간들의 죄악)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적 계획) 이 성에 모였나이다” (행 4:27-28).

하나님은 전쟁을 일으키는 모든 악한 왕들도 통제하십니다(계 17).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봇물[수로]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잠 21;1).

모든 재난과 고통이 하나님의 주권 속에 들어 있기 때문에, 인간의 악한 의도가 하나님의 목적을 꺾지 못합니다. 요셉이 형제들에게 한 말을 들어 보십시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셨나니” (창 50:20). 요셉의 경우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경우 하나님은 악을 포함해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우리에게 선한 결과가 나타나게 하십니다(롬 8:28).

이 세상에 우연이란 없습니다. 사람이 제비를 뽑지만 하나님이 모든 일을 작정하십니다(잠 16:33). 참새가 팔리는 것도 하나님의 허락 하에 이루어집니다(마 10:29).

그린란드의 차가운 바닷물 속에는 무수한 빙하들이 있습니다. 작은 빙하들도 있고 거대한 빙하들도 있습니다. 빙하들을 유심히 관찰해 보면, 물 위에 떠 있는 작은 빙하 조각들은 이쪽으로 움직이는데 물속에 있는 큰 빙하들은 저쪽으로 움직입니다. 왜 그럴까요? 수면의 얼음 조각들은 바람 방향으로 움직이지만, 수심의 빙하들은 조류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우리가 시련과 역경에 부딪힐 때에 우리의 삶을 움직이는 두 종류의 힘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는 표면의 바람이요, 다른 하나는 내면의 조류입니다. 바람은 예측할 없는 인간의 고통을 상징합니다. 조류는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한 결과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상징합니다. 우리의 인생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통제하셔서 우리에게 유익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원하시는 대로 이루시는데 왜 세상에는 이렇게 악과 고통이 많습니까?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진다면 왜 목회자들과 교인들이 선교센터를 짓기 위해 가던 길에서 교통사고로 죽었습니까?

18세기 미국의 가장 위대한 신학자겸 목회자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는 어릴 때부터 하나님의 주권 문제로 고민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무시무시한 교리 같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님에게 하나님의 주권이 “즐거운 확신”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통제하심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 죄악과 고통이 이렇게 많은데 하나님이 어떻게 행복하실 수 있을까요?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님은 하나님은 두 렌즈로 세상을 보신다고 했습니다. 선교하러 필리핀에 나갔던 10명이 교통사고로 죽은 사건--좁은 렌즈로 보면 그것은 분명히 슬픈 일입니다(겔 18:32). 선교지에서 변고를 당한 그 10명이 바로 천국 낙원에 입성해서 주님의 품에 안겨 지복의 삶을 산다--이런 넓은 렌즈로 보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됩니다.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피를 흘린 사건--좁은 렌즈로 보면 그것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사건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고, 천사들도 그를 영원히 찬양합니다(사 53:4, 10; 롬 3:25-26; 히 2:10; 계 5:9-10). 이것이 넓은 렌즈로 보는 것입니다. 좁은 렌즈는 슬픔을 주지만, 넓은 렌즈는 기쁨을 줍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이 191호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그 비행기가 연착하는 바람에 그 비행기를 탈 수 없었습니다. 그는 254명의 탑승객 전원이 사망하는 추락 사고를 간신히 면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선하신 하나님이 기적적인 주권으로 보호하신 사건이었습니다.

이런 기사가 나가자 어떤 독자가 정반대의 소식을 전했습니다. 에드워즈 엘리어트라는 목사님이 191호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 달려가셨고 그 목사님은 추락한 비행기 안에서 죽었습니다. 목사님이 추락한 비행기 안에서 죽은 것은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보호하신 사건이 아닙니까? 하나님은 비행기 안에서 세상을 떠난 목사님도 기적적으로 보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고통의 세상에서 기쁨의 천국으로 바로 불러가셨습니다. 목사님은 공항으로 달려가셨지만, 하나님은 목사님으로 하여금 천국으로 달려오게 하신 것입니다.

추락할 비행기를 타지 않은 것도 선하신 하나님의 주권이고, 공항으로 달려가 추락할 비행기를 탄 것도 선하신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추락한 것만 보는 것은 좁은 렌즈로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추락한 비행기로 달려가신 목사님이 천국으로 달려가셨다는 것을 보는 것은 넓은 렌즈로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투자자 중의 한 사람 존 템플턴은 불경기를 맞아 남들이 비관할 때는 주식을 사들이고 호경기를 맞아 남들이 낙관할 때는 주식을 내다 팔았습니다. 그는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에 주식을 사들였습니다. 1997년 한국에 IMF 외환위기 때도 주식을 사들였습니다. 9.11 테러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주식을 사들였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위기의식에 사로잡혀 도망치기에 바빴던 때에 주식을 사들였습니다. 템플턴은 “햇살만 내려 쪼이는 곳은 사막이 된다.”는 말로 호경기만 있는 사회는 오히려 위험한 사회임을 지적하였습니다. 옳은 말입니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폭풍우만 보는 것은 좁은 렌즈이지만, 그런 폭풍우가 대지를 적시고 동식물을 살찌우는 것을 보는 것은 넓은 렌즈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선하신 뜻대로 이루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넓은 렌즈로 오늘의 현실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건을 다 사용하셔서 구원이라는 장엄한 모자이크 작품을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넓은 렌즈로 보실 때 하나님은 항상 행복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행복의 기초입니다. 이것이 또한 우리의 행복의 기초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일을 절대 주권으로 통제하십니다. 하나님은 좌절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이 하시는 모든 일을 깊이 음미하시는 행복하신 하나님입니다(시 104:31). 하나님은 모든 것을 구원역사와 연결해서 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이런 각도에서 자신의 영광을 즐기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완전하심과 아름다우심, 경외심을 유발하는 광채, 도덕적으로 무한히 탁월하신 성품, 무한한 위대성과 가치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무한히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또 자신의 아들의 영광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정확하게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본 자는 아버지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보시면서 행복해 하십니다(사 42:1; 마 3:17; 요 1:1; 골 2:9; 히 1:3).
하나님은 또한 자신의 일의 영광을 즐기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하신 창조와 구원의 일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행복이 창조와 구원의 일에 나타나 있습니다.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나는 최고다. 나 외에 다른 신들은 없다. 나는 나의 영광을 위해 창조했고 구원한다. 나는 나의 영광을 즐긴다. 너희들은 나의 영광을 드러내라. 너희들은 나의 명령에 절대 복종해라.’ 하나님이 어떻게 이런 식으로 말씀하실까요? 사랑은 자신의 것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했는데(고전 13:5), 하나님이 어떻게 자기 자신의 영광을 추구하실까요? 하나님이 자기도취에 빠지셨을까요? 하나님은 자화자찬 하시는 분일까요? 하나님은 자기만 아는 폭군이실까요?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 위에 어떤 다른 존재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최고의 존재이시기 때문에 더 이상의 존재에 관심을 돌리실 수가 없습니다. 최고의 존재이신 하나님이 누구에게 “저는 별 존재가 아닙니다. 제가 별 수 있습니까?”라고 하실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자신의 영광의 무한한 가치를 부인하시면, 자신 외에 자신보다 더 높은 어떤 존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됩니다. 이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즐기시고 자신의 영광을 위해 일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영광을 즐기신다고 할 때에 그것이 하나님 자신만을 위한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무한히 완전하게 영광스러운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고 찬양할 때 우리는 행복의 생수를 마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름다운 아기를 볼 때도 “아, 귀여운 애기 좀 봐. 손도 예쁘고, 귀도 귀엽네.”하고 감탄합니다. 우리는 무지개를 보면서도 감탄합니다. 우리는 폭죽으로 불꽃이 하늘을 수놓을 때도 탄복합니다. 귀여운 아기를 보고 가만히 있으면 답답합니다. 빨주노초파남보, 다양한 색깔의 영롱한 무지개를 보고 침묵을 지키는 것은 영혼의 고문입니다. 각양각색의 불꽃이 하늘을 수놓을 때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은 고역입니다.

우리가 무한히 아름다우신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이 답답합니다. 우리가 무한히 선하신 하나님을 찬양할 때 우리의 기쁨이 완성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것은 고역이 아니라 기쁨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영광을 즐기시는 것은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도 위하신 것입니다. 자신의 영광으로 행복해하시는 하나님을 우리가 찬양할 때 우리도 행복의 극치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엡 1:4-6, 12, 14; 살후 1:10).

본문 12절 말씀대로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은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백성, 하나님의 행복을 자기 행복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절대 주권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절대주권으로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시고 행복해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절대주권으로 우리를 괴롭히시는 폭군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절대주권으로 우리를 죄와 사망과 지옥에서 건져내셔서 천국 낙원에서 영원히 살게 하시는 선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무서운 교리가 아니라 즐거운 교리입니다.

모든 것을 뜻대로 하시는 하나님은 행복하신 분이십니다. 세상에는 죄악과 고통이 많아도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넓은 렌즈로 보시고 행복해하십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넓은 렌즈를 가지고 오늘의 고통의 현실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행복하신 하나님을 바라볼 때 우리도 늘 행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우리에게 “즐거운 확신”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행복이 우리의 행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