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敎育 1/원고[절기,헌신예배]

기독교 행복론(1): 하나님을 기뻐하라

好學 2012. 4. 22. 21:11

기독교 행복론(1): 하나님을 기뻐하라 (시편 37:1-9)

Christian Hedonism(1): Take Delight in the Lord


1. 행복의 의미 (The Meaning of Christian Happiness)

* 무한한 갈망과 무한한 충족 (Infinite longing and infinite satisfaction)

* 행복 = 찬양, 기도, 뜻 순종 (Delight in praising, praying to, and obeying God)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시 119:103).

* 하나님을 기뻐하겠는 의지 (Will to take delight in God)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하박국 3:17-19).


2. 행복의 근거 (The Ground of Christian Happiness)

* 예수의 행복 (Jesus' happiness) (요한복음 15:11)

* 바울의 기쁨 (Paul the apostle's joy) (빌립보 2:17-18)

* 시편의 기쁨 (Joy in Psalms)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시편 16:11).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운지요 사람들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하나이다 그들이 주의 집에 있는 살진 것으로 풍족할 것이라 주께서 주의 복락의 강물을 마시게 하시리이다” (시편 36:7-8).

“내가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시편 43:4).


3. 행복의 효과 (The Effect of Christian Happiness)

* 하나님의 영광 (Glory to God)

* 고통속의 활력 (Energy amid adversity) (느헤미야 8:10)

* 유혹들의 극복 (Overcoming temptations)


기독교 행복론(1): 하나님을 기뻐하라 (시편 37:1-9)


어제 저녁 우리나라 야구팀이 쿠바 야구팀과 결승전을 했습니다. 우리나라가 3:2로 이긴 상태에서 9회 말. 쿠바가 한 점만 따면 동점이 되고 두 점만 따면 우리나라가 집니다. 온 국민이 조마조마하게 보고 있는데 우리나라가 한꺼번에 쿠바의 두 선수를 잡았습니다. 그것을 병살(倂殺)이라고 하지요. 쿠바는 ‘쓰리 아웃’(three out)으로 물러났습니다. 우리나라는 이번 베이징 올림픽 야구 게임에서 야구의 강호 일본을 두 번이나 이기고, 야구의 종주국 미국도 이기고, 4번 올림픽에서 3번 금메달을 딴 최강팀 쿠바도 이겼습니다. 우리나라는 전승으로 금메달을 땄습니다. 쿠바를 이기는 순간 야구 선수들은 물론 서울 잠심 야구장과 대구의 국채보상공원에서 대형 전광판을 통해 야구를 보던 국민들과 텔레비전 앞에서 야구를 보던 대한민국 국민들은 ‘와, 우리가 이겼다!’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파트에서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온 국민이 짜릿한 승리의 쾌감을 맛보고 환호했습니다.

‘기뻐한다, 즐거워한다.’는 말이 무엇인지 심감이 났습니다. 승리를 기뻐한다는 말은 이해가 됩니다. 음식을 즐긴다는 말도 이해가 됩니다. 돈을 좋아한다는 말도 이해가 됩니다. 자식을 좋아한다는 말도 이해가 됩니다. 연인과 함께 있는 것을 기뻐한다는 말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기뻐한다는 말이 선뜻 이해가 되십니까? 하나님을 기뻐한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1. 행복의 의미

탁월한 수학자겸 철학자인 파스칼(Pascal, 1623-1662)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간에게는 한 때 참된 행복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 있습니다. 인간은 그 흔적을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로 채우려고 하는데 그것은 헛수고입니다. ... 무한한 심연은 오직 무한하시고 불변하시는 존재, 즉 하나님 자신으로만 채워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 행복했던 인간이 죄 때문에 행복을 상실했습니다. 인간은 죄 때문에 상실한 행복을 찾기를 원하지만 찾지 못해서 뻥 뚫린 가슴을 안고 삽니다. 돈이나 쾌락이나 자식으로 채우려고 해도 채워지지 않는 뻥 뚫린 가슴! 밑바닥이 보이지 않는 행복의 욕구, 이것은 무한하시고 불변하시는 하나님만으로 채워질 수 있습니다.

아기는 자기를 낳은 어머니만 있으면 행복합니다. 인간은 자신을 창조하신 하나님만 만나면 행복합니다. 아기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도 금방 엄마를 찾다가 엄마가 없으면 웁니다. 인간은 돈과 권력과 성공 등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도 행복을 줄 수 있는 뭔가를 또 찾습니다. 인간이 몰라서 그럴 뿐, 인간은 하나님을 찾고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 없이 모든 것을 가져도 행복하지 않고 공허하기만 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으로만 행복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만나야 참된 행복을 맛봅니다.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믿어야 참된 기쁨을 맛봅니다. 우리는 올림픽 야구 게임을 통해서 승리를 기뻐하는 것이 무엇인지 체험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딸이 좋은 배우자를 만나면 “엄마, 그 사람은 정말 좋아요. 그 사람과 함께 있으면 행복해요.”라고 계속 그 사람을 칭찬합니다. 고향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저 고향 산천만 봐도 온갖 스트레스가 사라집니다. 하나님을 기뻐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좋다고 늘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기 때문에, “난 예수가 좋다오! 난 예수가 좋다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찬양입니다. 온 국민이 승리의 환호성을 지른 것처럼, 찬양은 하나님 안에서 찾은 행복의 환호성입니다. 찬양은 행복의 완성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하면 찬양이 살아날 뿐 아니라, 기도가 살아납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도를 좋아합니다. 여자 역도 무제한급 장미란 선수의 미니홈피에 “나의 작은 기도로 세상을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이란 표어가 나옵니다. 장미란 선수는 기도로 하나님과 교제하기를 즐기는 선수입니다. 베이징 야구 시상식에서 애국가가 전 세계에 울려 퍼지고 태극기가 제일 높은 가운데 자리에서 서서히 상승할 때 우리나라 야구 선수들 중에 눈을 감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선수들이 많았습니다. “저게 바로 대한민국의 저력이구나!” 싶었습니다. 야구 선수들이 땀을 흘리면서 훈련도 많이 했지만, 간절하게 기도하면서 게임을 한 것입니다. 올림픽 선수들이 세계인들의 눈앞에서 공개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모습은 대한민국 선수들 외에는 거의 없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기뻐하는 모습입니다.

연인을 좋아하면 연인의 말을 들어주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삽니다. 다윗은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고 했습니다(시 119:103). 하나님을 기뻐하면 다른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을 좋아하게 됩니다(미 6:8). 하나님을 기뻐하면 하나님께 물질을 드릴 때도 인색하지 않고 즐겁게 드립니다(고후 9:7).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라.’는 명령이 가능한 것입니까?

어떤 여성도가 “저년은 No, 이년은 Yes.”라고 기도를 했답니다. 그것이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이년’은 예수님을 오래 믿었지만 화끈한 은사를 받지 못했습니다. ‘저년’은 예수님을 믿은 지 얼마 안 되었지만 화끈한 은사를 받아 교인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질투가 난 여성도가 “주님, 저년에게는 은사를 주지 마십시오.”라는 뜻에서 “저년은 No”라고 기도하고, “주님, 이년에게는 화끈한 은사를 주시옵소서.”라는 뜻에서 “이년은 Yes.”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타락한 본성입니다.

시편 37편의 저자는 불의를 행하면서도 잘 되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악인이 자기 꾀를 이루고 형통합니다(7절). 의인은 가난하고 악인은 풍부합니다(16절). 악인이 무성한 나뭇잎처럼 큰 세력을 휘두르고 있습니다(35절). 악인이 의인을 엿보아 살해할 기회를 찾고 있습니다(32절).

“하나님, 저 사람은 죄를 지으면서도 잘 되는데, 저는 바로 살려고 하는데 꼬이기만 하니 어떻게 된 것입니까? 하나님, 솔직히 질투가 납니다.” 이런 상황입니다. 예수 믿은 지 얼마 안 되는 사람이 화끈한 은사를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저년은 No, 이년은 Yes.”라고 기도하는 것이 인간이라면, 불의를 행하면서도 형통하는 사람을 보고 불평과 질투가 절로 나오는 상황 속에서 “여호와를 기뻐하라.”고 하는 것이 말이 됩니까?

성경은 ‘하나님을 기뻐하라.’고 합니다. 웃음이 없는 얼굴에 웃음을 그려 넣으라는 것입니까? 이런 질문은 기쁨과 행복이 기분이라는 착각에서 나오는 질문입니다. 기쁨과 행복은 기분을 포함하지만, 기분만이 아닙니다. 기쁨은 의지의 선택, 의지의 순종, 의지의 결단입니다. 기뻐하겠다고 마음먹으면 기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합 3:17-19).

절망적인 환경 속에서도, 하박국은 하나님을 기뻐하기로 결단한 것입니다. 하나님 때문에 행복하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로 각오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하나님을 기뻐하면서 행복하기로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안에서 행복하기로 각오하시면 항상 행복할 수 있습니다. 행복은 의지적인 선택입니다.

2. 행복의 근거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하고 행복한 것이 정당한 것입니까?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담당하신 ‘슬픔의 사람’(사 53:4)이셨지만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기쁨으로 이루신 ‘기쁨의 사람’이셨습니다. 예수님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요 15:11). 예수님은 기쁨이 충만하셨습니다. 우리는 충만한 기쁨으로 행복하게 사신 예수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고 했습니다(빌 2:17-18). 바울은 고통의 환경으로 보면 항상 “근심하는(sorrowful) 자” 같았지만 사실은 “항상 기뻐”했습니다 (고후 6:10). 바울 사도가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기뻐했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하면서 행복하게 살려고 할 때에 큰 걸림돌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행복을 좋아하시는가? 하나님이 내가 행복해지는 것을 좋아하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저는 20대 청년 시절 하나님이 제가 행복한 것을 차마 보시지 못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제가 고통당하는 것을 보고 고소해 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행복한 것을 시기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입니다. 고생을 많이 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자신의 행복을 좋아하시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후에 깨닫고 보니, 하나님은 제가 행복해지는 것을 싫어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저에게 많은 고통을 허용하신 것은 저를 다듬으셔서 더 나은 인물로 만드시려는 고귀한 뜻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제가 더 행복해지도록 만드시기 위해서 일시적으로 고난을 허용하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행복하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려 죽게 하신 것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와 사망과 지옥의 불행에서 건짐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의와 생명과 천국의 행복한 삶을 보장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기어이 행복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행복해지는 것을 참으로 원하십니다. 시편의 몇 구절만 보아도 그것은 확실한 진리입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시 16:11).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운지요 사람들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하나이다 그들이 주의 집에 있는 살진 것으로 풍족할 것이라 주께서 주의 복락의 강물(the river of thy delights)을 마시게 하시리이다” (시 36:7-8). “내가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시 43:4).

베들레헴 침례교회 존 파이퍼(John Piper) 목사님은 목회는 아픔과 행복의 혼합이라고 했습니다. 목회는 너무 큰 황폐(devastation)와 너무 큰 기쁨(delight)이 섞여 있다고 했습니다. 목회자가 행복하지 않으면 교인들이 행복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존 파이퍼는 “내가 하나님 안에서 가장 만족할 때, 하나님은 내 안에서 가장 영화스럽습니다.”고 했습니다.

저는 100% 공감입니다. 저도 목회하면서 때로 고통을 당하기도 하지만 목회가 참으로 행복합니다. 저는 행복한 목회자입니다. 목회만이 아니라 인생은 아픔과 기쁨의 혼합입니다. 우리는 죄 때문에는 슬퍼해야 하지만(마 5:4), 은혜로우신 하나님 때문에는 항상 기뻐해야 합니다. 우리는 고통의 현실 속에서 항상 슬퍼하는 것 같으나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항상 기뻐하겠다고 각오하고 살아야 합니다.

3. 행복의 효과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하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우리 장로교회가 받아들이는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 1문에 대한 답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최고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영원히 즐기는 것이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하나님을 즐기는 것은 같은 동전의 양면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면 우리에게 기쁨이 넘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즐기면 하나님은 영광을 받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행복을 얻으면 하나님은 우리로부터 영광을 받으십니다.

18세기 미국의 부흥사요 신학자요 목회자인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이 사람들에게 보일 때에 영광을 받으시는 것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하나님을 즐길 때에 영광을 받으신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행복할 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복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파스칼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행복을 추구합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수단이야 어떠하든 모두 그런 목적이 있습니다. 전쟁에 가는 것이나 전쟁을 피하는 것도 견해만 다를 뿐 행복하려는 갈망에서 나온 것입니다. 모든 사람의 모든 행위의 모든 동기, 심지어 목매어 죽는 사람들의 동기도 행복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행복추구는 죄가 아니라 인간의 본질입니다. 중력의 법칙이 자연의 법칙인 것처럼 행복의 추구는 마음의 법칙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행복 추구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우리가 행복해지기를 원하는 욕망이 너무 큰 것이 문제가 아니라 너무 작은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해변에서 휴가를 즐기는 것이 무엇인지 상상도 하지 못해서 슬럼가에서 진흙 놀이하는 것을 해변의 바캉스보다 더 좋아하는 아이처럼 살고 있습니다(C. S. Lewis).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자신의 행복을 마땅히 간절하게 추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즐기는 행복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뿐 아니라 우리의 어떤 역경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고 했습니다 (느 8:10).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하면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할 때 하나님이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주시니 우리는 힘이 납니다. 힘이 나니까, 어떤 역경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주실 때에, 우리의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드러나게 하십니다(6절). 하나님은 우리로 땅을 차지하게, 즉 땅에서 잘 되게 하십니다(9, 11절). 하나님은 우리를 영원히 붙잡아주시고 (17절) 우리의 걸음이 실족하게 않게 하십니다(31절). 하나님은 우리가 넘어져도 아주 엎드러지지 않게 하십니다(24절). 하나님은 환난과 기근 중에도 우리가 풍족하게 하십니다(19절).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안한 미래를 보장하십니다(37절). 하나님은 우리를 삶의 모든 고통과 위험에서 구원해 주십니다(39-40절).

하나님을 기뻐하면 역경 속에서 견디는 힘을 얻을 뿐 아니라 죄악의 능력을 깨뜨리는 비결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을 즐기는 사람은 자기를 유혹하는 미끼가 맛이 없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욕망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공장입니다. 죄는 강력하고, 죄를 짓고 죽어도 좋다고 생각할 정도로 매혹적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을 기뻐하면 죄의 쇠고랑을 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좋아하면 죄악의 즐거움에는 끌리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즐기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즐기면 어떤 어려움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즐기면 죄악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즐기는 것이 우리의 힘입니다.

아기는 엄마가 없으면 우는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을 멀리 하면 불안합니다.

아기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도 엄마를 찾는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을 찾는 존재입니다.

아기가 엄마 품에만 있으면 흡족한 것처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품에 안기면 만족합니다.

죄와 고통이 많은 세상이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기뻐하기로 작정하십시오.

하나님을 기뻐하십시오.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