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文敎育 體驗을 통해서 본 漢字學習의 必要性
朴 東 奎
前 永北綜合高등학驕 校長 / 本聯合會 地圖위원
前 永北綜合高등학驕 校長 / 本聯合會 地圖위원
1. 漢字․漢文敎育의 當爲性 提示
세계인구의 26%를 차지하는 漢字文化圈에 있는 우리 나라는 半世紀 동안 한글전용 내지 一貫性 없는 語文政策으로 漢字․漢文敎育을 소홀히 해 왔다. 세계는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발전하여 國際交流가 증가하고 있는 현실 하에 東洋文化圈에 있는 中國․日本․臺灣․東南亞 등 漢字文化圈에서 主導權을 갖기 위해서는 가장 기초가 되는 漢字․漢文敎育이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30년 가까이 초․중․고교에서 한글 爲主의 국어교육으로 50대 이하 연령층의 한글세대는 漢字를 모르는 이른 바 漢盲의 現象이 나타나 국제사회에서 後進을 면치 못하고 있으니 이런 현실이 퍽 안타깝기만 하다.
일관된 文字政策의 不在로 심각한 문자문화의 危機狀況에 이르게 되었으니 더 이상 漢字․漢文敎育을 외면하거나 猶豫하지 말고 새로운 語文政策을 수립하여 초등학교에서 漢字敎育과 중학교도 裁量選擇이 아닌 必須敎科로 하고, 고등학교에서는 漢文을 必須履修케 하며, 각급학교 교과서의 國漢文의 倂用해야 한다. 그러므로 漢字․漢文 교육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漢字文化圈에 있는 나라 가운데 우리 나라와 직접적으로 아시아 經濟圈 형성에서 참여하고 있는 日本도 초등학교에서부터 1,945자의 漢字敎育을 철저히 시키고 있고, 한글전용을 語文政策으로 일관하고 고집하던 北韓에서도 68년부터 초등학교 500자, 중․고교 1500자, 대학교 1000자를 교육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찌 우리 나라만이 漢字․漢文敎育을 외면하고 한글전용을 固執한다면 우리는 국제사회에서 점차 孤立되어 가는 것은 明若觀火하다.
근간에는 早期 漢字敎育을 全國漢字敎育推進總聯合會를 主軸으로 추진하면서 초등학교 敎育課程에서 漢字1,000자를 교육, 중․고교에서의 國漢文의 混․倂用, 公用文書․標識板․看板 등의 漢字 混․倂記, 漢字敎育을 통한 傳統文化의 繼承發展과 人性敎育의 恢復을 促求하고, 바람직하고 걸 맞는 語文政策의 시행을 主張하고 있는데 국가는 늦지 않는 漢文敎育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이에 筆者는 幼年時節부터 古稀를 맞으면서까지 자신의 漢文학습, 敎壇에서 漢字․漢文敎育, 자녀들에 대한 漢字․漢文의 학습지도, 漢字․漢文지도의 現實과 體驗을 살펴보고 漢字․漢文敎育을 促求하고, 새로운 語文政策으로 漢字敎育의 復活과 國漢文의 倂用으로 새로운 문자문화가 창조되기를 기대한다.
2. 漢字․漢文의 自己學習
필자의 고향은 小白山脈의 黛眉山 산자락의 聞慶市 中坪里인 山村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중평리는 박마을․아랫마을․새마을․여우목 등 네 村落을 이루고 마을마다 書堂이 있어서 訓長이 漢文을 가르쳤는데, 박마을에는 仲父님께서 훈장이신 渼隱書堂과 또 다른 서당이 있어 양쪽 서당의 學童들 사이에는 자기 書堂과 訓長이 더 좋고 잘 가르친다며 서로 자랑하고 앞 다투어 공부하면서 실력을 서로 誇示하곤 하였다.
필자는 당시 仲父님께 주로 방학 동안에 『童蒙先習』․『啓蒙篇』․『明心寶鑑』을 배우게 되었는데 문장의 暗記力이 부족하여 다른 학동들보다 남다르게 암기를 더해야 했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는 先考께 『千字文』을 배웠는데 매일 한 페이지 4字 4行 16字를 읽고 쓰는 공부를 반복했다.
先考․仲父님의 학습지도 과정에서 기본예절과 바른생활과 관련된 내용을 접하게 하여 意圖的으로 바른 人性을 기르게 지도하셨다.
첫 새벽에는 큰 소리로 읽어 배우고, 낮에는 연필․붓으로 각각 세 번씩 쓰고, 저녁에 확인을 받는 學習過程으로 읽고 쓰는 主學習을 했지만 漢字의 訓意나 문장내용의 의미를 다 攄得하지 못하고 盲目的으로 읽고 쓰는 書堂式의 학습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仲父님께서는 우리 사촌 10여명과 다른 학동 10여명을 모아 千字文에서부터 四書三經까지 지도해 주셨고, 연령이 많고 先習한 학습자는 훈장이 직접 가르치고 초보학습자는 先習한 接長이 지도해 주곤 했다.
필자는 초등학교 재학시절과 주로 방학 중에 집중적으로 학습했는데 입학 전 千字文 가운데 ‘行’자을 ‘행할 행’으로 가르친 훈장이 있는가 하면 ‘다닐 행’ 항렬 항’으로 각각 다르게 가르쳐 양 서당 학동들 사이에 자기들이 배운 것이 옳다고 우기던 일, 천자문의 마지막 ‘焉․哉․乎․也’ 뜻을 끝내 모르고 암기만 했던 학습, 초등학교 習字時間에 漢字를 잘 쓴다고 담임교사의 칭찬을 받던 일이 60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기억이 새롭다.
중학교에 입학하여 각 교과마다 漢字語에 대한 이해가 남보다 빠르고 漢文시간에는 교사가 불러내 칠판에 漢字를 쓰게 하여 잘 썼다고 동그라미를 크게 그려주며 칭찬을 받은 것이 漢字학습을 意慾的으로 하게 된 契機가 되었다.
漢文문장을 註釋할 때 文字排列 순서대로 解釋되어야 할 텐데 순서 없이 위․아래 글자를 한 자씩 짚어가면서 해석하던 학습은 문장의 이해를 더 어렵게 했다. 훈장은 암기만 하면 후일에 文理가 저절로 터진다고만 했지 語順에 대한 지도가 없이 배웠기 때문에 문장해석에 시간과 노력이 많이 소요하게 되었다. 漢文문장은 많은 부문에서 縮約․省略․倒置․引用․含蓄 등으로 문장의 讀解가 쉽지 않았다.
요즘에는 문장해석에 대한 語順․文型의 기본원리를 漢文 학습과정에서 지도하기 때문에 效率的인 漢文학습을 하게 되어 自己學習으로도 충분히 학습의 성과를 거둘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국어과를 담당하면서 중․고 漢文敎科를 專擔指導할 것에 대비해서 漢文讀解에 沒頭했고, 73년도 고등학교 漢文과 準敎師 資格考試에 應試․合格하여 漢文과 資格證 취득으로 본격적인 漢文 修業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퇴임 후에는 漢文 讀解力의 부족함을 切感하여 전통문화연구회에 나가 2년 동안 『論語』․『孟子』․『小學』․『漢詩』 등을 受講하면서 젊은 강사 熱講에 魅了되어 더 공부해야겠다는 學習意慾이 생겼다. 學然後知不足 敎然後知困의 名句가 생각나는데, 배운 뒤에 부족함을 알고 가르친 뒤에 어려움을 안다고 했으니 배움에는 끝이 없고 나이에 관계없이 배워야한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2002년 3월서부터 抱川鄕校서 漢學者 香隱 柳鳳鉉 선생의 漢詩를 受講하면서 한시 習作에 몰두하게 되어 매주 漢詩 1편씩 습작하여 그동안 150 여 편의 漢詩를 習作한 바 있고, 2002년 6월 포천문화원이 주최한 유림회관에서 蓬萊 楊士彦 선생 追慕 全國白日場에서 參榜, 2003년 4월 成均館에서 성균관한시연구회가 주최한 吳德女 여사 德行讚揚 전국백일장에서 參榜, 2004년 백사 李恒福 선생 추모 전국백일장에서는 佳作에 입상한 바 있어 그동안의 입상을 계기 삼아서 계속 한시공부에 열중하게 되었다. 그동안 모은 漢詩는 期待水準에 이르지 못하지만 古稀에 기념문집을 간행했다.
1997년 7월, 중등교육 海外硏修 團長으로 25명의 교원을 인솔하여 中國의 北京․西海․上海 등지의 학교를 방문하여 朝鮮族 3세의 통역으로 양국의 교원상호간에 國際協議가 진행되어야 하는데 통역이 우리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종래는 漢字를 칠판에 표기하면서 의사를 소통할 수 있었는데 사전에 중국의 2,238 簡化文字 가운데 常用漢字를 미리 익힌 것이 意思疏通에 주효한 것은 漢字에 대한 識見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서 亞太文化圈에서의 漢文敎育이 국제교류에서 필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체험했다.
2004년 12월, 대한노인회 경기도 연합회가 周旋한 도내 노인대학 학장 연수차 중국 山東省의 靑島․威海 등지의 文化遺跡地와 張保皐 유적지를 踏査․硏修를 다녀왔는데 사전에 중국의 簡字를 익히고, 簡字를 복사해서 모르는 簡字를 접하면 바로 확인해서 큰 불편 없이 무사히 다녀왔다. 團員은 70~80대의 老年層으로 漢字에 대한 識見이 있었기에 看板이나 地圖를 충분히 讀解할 수 있었기 때문에 큰 불편이 없었다고 한다면, 그 이하 世代는 漢字를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을 방문한다면 불편은 이루 헤아릴 수 없게 된다.
2005년 6월, 도내 노인대학 학장 33명이 日本의 九州 지방을 연수차 다녀왔는데 일본에서도 漢字를 倂記하기 때문에 漢字에 대한 識見이 있으면 여행하는데 불편 없이 여행할 수 있었다. 基本漢字와 소위 略字를 讀解할 수 있었기 때문에 지도나 간판이나 상품 가격을 쉽게 이해하고 수용이 용이했다. 韓․中․日이 漢字의 簡字와 略字를 공동연구해서 통일된 文字化가 절실하다고 하겠다.
3. 敎壇에서의 漢字․漢文의 교육
교단생활 중에서 교과담당을 초반에는 國語를, 후반에는 漢文科를 담당하였는데 漢文교과 資格取得 후에는 漢文을 전담하고 본격적인 漢文 授業에 열정을 쏟았다.
60년대는 국어 교과서에 漢字를 괄호 안에 倂記해 놓았는데 읽고 쓰기 수준의 학습을 통해서 漢字의 訓音을 설명하고 매시간 일정량의 漢字․漢字語를 제시해 스스로 학습한 후 다음 시간에 확인 후 5~6명의 학생들은 지명해서 칠판에 쓰게 해서 誤字나 쓰지 못한 漢字를 재학습하고, 우수한 학생을 賞讚해 주고, 不進兒에게는 學習刺戟을 주어 의욕적인 학습을 촉구해 學習效果를 거두었다.
70년대부터 80년대 초까지 한글전용의 실시와 함께 漢文과가 新設되어 漢文을 담당하면서 새로운 漢文과 학습지도로 象形文字인 漢字를 六書의 製字原理에 의하여 漢字를 字解하는데 접근케 하여 漢字를 확대시켜 지도했다. 예를 들면 ‘方’자를 앎으로써 ‘防․放․紡․訪․妨’의 音을 쉽게 알 수 있고, ‘食’자을 기초로 해서 ‘飾․蝕․飮․飢․飯’ 등의 뜻을 部首別 로 字源, 즉 部首․訓․音 등에 바탕을 두어 밝히면서 漢字․漢字語를 점차 확대해서 지도했다.
당시에는 漢文科의 專攻敎師가 全無하다시피해서 國語科를 담당한 교사가 담당하거나 漢文에 관심이 있고, 읽고 쓸 수 있는 漢文교양이 있는 50대 이상 교사가 담당했다. 漢文교과 시간배당은 일반교과 配當을 한 후에 1~2시간씩 땜질식으로 그것도 최저시간을 배당해 그저 읽고 쓰는 방법으로 지도에 그쳤으므로 본인은 5~6명의 교사들에게 漢文 학습지도 방법의 硏修하여 나름대로의 學習成果를 거두었다.
교사재임 시에는 특별활동 漢文班을 편성해서 생활과 실용의 漢字와 新聞社說 등 漢字를 익히고 펜글씨로 筆寫토록 하는 학습과정으로 學習興味를 불러일으켰다.
字典․玉篇을 持參시켜 활용의 極大化로 漢字와 친숙하게 하여 漢字의 讀解와 漢字의 書寫力이 다른 학생들 보다 출중하게 되었고, 후일 성년이 된 졸업생을 만나게 되면 漢文공부가 재학시절에는 필요함을 별로 느끼지 못했지만 이제는 漢文이 실생활에 도움이 많이 된다고 하니 반가운 것은 물론이고 애써 가르친 보람을 느꼈다.
중․고교 교감재임 시에는 漢文 교과담당을 자청하여 주당 9시간씩 맡아 興味中心․實用爲主의 학습을 전개하여 新習漢字가 나오면 部首․訓․音․劃․筆順과 單語構成과 語順 등으로 발전적으로 지도하였고, 학습자료는 敎科書․學習帳․玉篇은 필수로 지참하게 하고 學習帳의 사용법, 誤謬漢字의 修正 등을 개별적으로 붉은 볼펜으로 加筆해 주어 학습의 능률을 올리고 敎學의 인연을 두텁게 하였다. 優秀學習者의 漢文공책을 전시하여 우수학습자를 표창해 주고, 학생들에게 賞讚을 아끼지 않아 學習意慾을 북돋아 주어 각자 漢文학습에 열중하게 되었다.
전교생이 볼 수 있는 장소에 每週 마다 1日 1漢字․1單語를 揭示하여 학생이 스스로 학습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中間考査와 期末考査에 20%씩 포함시켜 출제해 줌으로써 학습동기를 유발시켜 학습성과를 거두었다.
校長재임 시에 漢字․漢文 학습에 남달리 관심을 갖고 漢文科 교사와 자주 학습지도 방법이나 내용에 대하여 협의하고, 한글로 된 出席簿와 名札을 漢字로 表記 또는 佩用토록 하여 300자 정도의 漢字를 익히게 하였다.
講堂이나 교실에서 訓話나 特講할 기회마다 漢字로 표기해 주어 漢字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을 갖게 하였고, 일과 후에는 漢字공부를 희망하는 학생을 모아 개별지도를 해주어 그들이 사회에 나가 어문생활에 도움이 되리라고 확신하면서 지도했다.
졸업에 앞서 漢字로 履歷書 쓰기를 비롯하여 본적․주소․가족성명․학교명 등을 쓸 수 있게 익히고 反復學習하여 漢字 활용에 도움이 되게 지도했다.
각급학교에서는 12월 중순 冬季放學이 시작되면서 다음 해 2월말까지 사실상 학습의 空白期다. 이 시기를 漢字학습에 접근케 할 기회로 삼아서 지도하고, 다음 상급학교를 진학하는 학생들에게는 豫備學習의 過程으로 삼아서 漢字를 지도하고 학습한다면 漢文의 學習成果를 擧揚할 수 있다고 하겠다.
중학교 校長재직 시에 입학예정자를 입학에 앞서 2월 초에 소집하여 油印物을 통해서 基礎漢字 300자를 課題로, 고등학교 교장재직 시에는 12월 중순 高入이 끝난 뒤에 入學豫定者에게는 중학교 漢文교과서에 수록된 新習漢字를 3번 쓰기를 과제로 제시해 주어 입학 후 확인 지도해서 漢文학습의 기초를 익히고 다지게 했다.
4. 자녀들에 대한 漢字․漢文 學習指導
평소 자식들에게 漢字 早期敎育을 切感하여 세 자식들에게 幼年期서부터 한글에 이어 漢字에 대하여 곧 관심을 갖고 한 글자 한 글자를 익히게 했다.
基本部首의 漢字를 시작으로 一․二․三…十․百․千․萬, 月․火․水․木․金․土․日, 東․西․南․北, 春․夏․秋․冬 등 순으로 쓰고 읽게 하여 訓音을 일러주었고 筆順에 맞게 반복하여 쓰게 하였다. 漢字를 지도하면서 점차 漢字語로 발전지도하고 지도과정에서 기본생활과 관련지어 人性醇化에 역점을 두고 지도했다.
방학기간과 상급학교 시험 시까지 3개월 동안 漢字 基礎學習 기회로 삼아서 千字文과 新聞社說의 漢字를 읽고 쓰는 자습기회로 주었고, 매일 확인지도 했더니 漢字와 親熟하고 국어단어에 대한 이해가 빠름을 확인하게 되었다.
딸은 고등학교에서 理科課程을 履修하고도 대학진학을 漢文과를 선택하여 履修하고 고등학교 漢文교사로 재직하면서 自己成長에 노력하였고 대학원은 中國語를 이수하였고, 학습지도에 열성을 다해서 지도했을 뿐만 아니라 書藝 공부를 열심히 해서 展示會에 출품․입상하는 영광도 차지했다.
두 아들도 딸과 같이 新聞社說을 읽고 쓰는 학습을 反復하게 하였기 때문에 대학에 진학하면서 講義 시에 漢字의 表記를 무난히 독해해서 학업에 별 어려움 없이 공부했다고 했고, 직장에서 漢字의 이해와 활용이 다른 동료보다 앞선다고 하니 대견하기만 하다.
딸은 자기자식 3남매도 같은 방법으로 어려서부터 漢字 早期學習을 서둘러 지도하여, 漢字에 대한 親近感과 흥미를 갖게 해주고 있다. 외손자들이 우리 집에 오면 시간을 내어 간단한 漢字를 읽고 쓸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었더니, 곧 잘 읽고 쓸 수 있어 칭찬해 주면서부터 두 외손녀는 漢字학습에 접근케 되었다. 국어단어도 漢字의 訓音을 설명해 주었더니 단어를 쉽게 이해했다. 지난 방학기간에는 ‘4단계 초등漢字’의 책자를 마련해 주었더니 揷畵가 곁들어 있어 흥미 있게 漢字와 친숙해져 漢文학습의 계기를 마련했다고 하겠다.
사위는 韓醫師로 자식들에게 家業을 承繼시킬 것을 대비하여 漢字학습을 서둘러 지도하지 않나 생각된다. 東醫寶鑑은 자체가 原文이 모두 漢字로 되어 있기 때문에 漢字를 모르면 韓醫師가 되기가 어려움이 많기 때문에 한의사가 되기 위해서 漢文을 必須로 履修해야 된다.
학습자에게는 學習媒體인 각종 자료가 매우 중요하다. 책상 위 책꽂이에는 國語辭典․玉篇이나 字典․英韓辭典을 필수로 갖춰 주어야 하며 옥편활용을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활용토록 친절히 지도해야 한다. 옥편의 활용은 訓과 音, 그리고 단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니 옥편의 활용을 極大化하여야 한다.
基本 部首字를 우선해서 지도하고 反復學習하게 되면 다른 漢字학습보다 漢字․漢文학습의 성과를 거두게 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部首漢字의 학습을 우선하는 것은 우리 國語의 字母音을 먼저 익히는 것과 같은 原理이기 때문이다.
'好學의 漢字文學 > (한자교육)署名運動' 카테고리의 다른 글
指導者가 되려는 분이 마음해야 할 일 (0) | 2012.06.25 |
---|---|
다시 古典을 읽어야 할 때 (0) | 2012.06.24 |
金城湯池 (0) | 2012.06.24 |
‘知過必改’ (0) | 2012.06.24 |
‘秋夜雨中’ (0) | 2012.06.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