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漢字文學/(한자교육)署名運動

指導者가 되려는 분이 마음해야 할 일

好學 2012. 6. 25. 21:01

指導者가 되려는 분이 마음해야 할 일

 

李 應 百
(서울大 명예교수, 본회 共同代表)




제Ⅰ장
四書의 하나인 『大學』이란 책에 이런 글이 있다.

物有本末하고 事有終始하니 知所先後면 卽近道矣리라.

事物에는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이 있고, 먼저 할 것과 나중에 할 것이 있으니, 먼저 할 것을 먼저 처리하고, 나중에 할 것을 나중에 처리하면 무리 없이 모든 일이 순조롭게 잘 처리될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原則을 어기면 시간만 허비하고 일의 성과를 올리지 못하는 것을 우리가 현실적으로 수없이 봐오지 않았는가. 일의 성격으로 보아 중요한 것과 조금 덜 중요한 것이 있는데, 나라나 국민의 현실에 비추어 급하게 처리해야 할 것을 먼저 처리하여 일의 彈力을 붙이고, 그리하여 까다로운 것은 뒤에 처리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여기서 개인이나 黨의 利己的인 고집은 배제되어야 한다. 그런데 처음부터 個人과 黨을 내세워 처리를 고집한다면 시간만 허비하고 다른 시급한 民生 문제가 그것에 밀려 처리되지 못해 국가 사회에 크나큰 불편이 빚어지는 일이 非一非再하지 않았던가. 民生을 위해 가슴을 열고 대국적인 당당한 자세로 임해야 할 것이다.
德이란 넉넉한 마음가짐으로 남을 대하는 포용성(包容性)이 있는 자세다.
『論語』 爲政篇에 이러한 구절이 있다.

子曰, 爲政以德이 譬如北辰이 居其所而 衆星이 共之니라.

子는 孔夫子 곧 공자 선생님이란 말이다. “공자가 말씀하기를 정치를 德으로써 함이 비유컨대 북쪽별 곧 北極星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주위의 뭇별이 北極星을 중심으로 빙빙 運行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이 원칙의 구체적 상황을 『論語』 衛靈公篇에 다음과 같이 예를 들었다.

子曰, 無爲而治者는 其舜也與인저. 夫何爲哉요. 恭己而正南面而已矣로다.

“孔子 말씀하기를 함이 없이 백성을 다스린 이는 그 舜임금이신저. 자기 몸을 공손한 자세로 맞바로 남쪽을 향해 앉아 있을 뿐이신저.” 임금이 南面해서 앉기 때문에 백성들은 北向四拜를 하는 것이다. 舜임금이 바른 자세로 별 말없이 南面해 앉아 있으면 각기 부서를 맡은 卿大夫 신하들이 國政을 맡아서 遂行하는 것은 북극성이 제자리에 자리하고 있으면, 뭇 별은 그를 중심으로 말없이 질서 있게 도는 현상과 같다 하겠다.
『論語』 爲政篇에

道之以政하고, 齊之以刑이면 民免而無恥하고, 道之以德하고 齊之以禮면 有恥且格이니라.

“공자 말씀하기를 백성을 인도하기를 정치적 수단으로 하고 질서 잡기를 형별로써 하면 法網을 피해 처벌을 면하고서도 良心에 부끄러워할 줄을 모르고, 백성을 인도하기를 德으로써 하고, 질서를 잡기를 禮로써 하면, 잘못을 범하고도 처벌을 면했을 때 양심에 부끄러워할 줄도 알고 반성해서 行動擧止가 바르게 된다.”고 했다.

제Ⅱ장
『論語』 里仁篇에

見賢思齊焉하고 見不賢內自省이니라.

“孔子 말씀하기를 어진이를 보면 그를 본받아 어질게 될 것을 생각하고, 어질지 않은 이를 보면 마음 속으로 스스로 나도 저렇게 어질지 못한 면이 있지나 않을까 생각하고 반성을 할 것이니라.” 또 같은 편에

子曰, 放利於行이면 多怨이니라.

“孔子 말씀하기를 이로움에 의지해 행동하면 잘못됐을 때 원망함이 많으니라.” 너무 이익을 취하지 말고 옳은 일을 행할 것을 말씀한 것이다. 또 『論語』 衛靈公篇에

過而不改를 是謂過矣니라.

“孔子 말씀하기를 사람에게 잘못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잘못하고서 반성해 고치지 않는 것이 진짜 잘못이니라.” 사람이 신이 아닌 이상 일상생활에서 잘못을 범할 수 있다. 잘못이라고 인정되는 순간 고치면 될 것을 잘못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시치미를 떼고 뻔뻔스레 고치지 않는 것이 진짜 잘못이라는 말씀이다. 天主敎에서는 잘못을 저질렀을 때 신부를 獨對하고 잘못한 것을 구체적으로 고하면, 신부로부터 그것을 풀기 위한 기도 등 지시를 받는 행사인 告解聖事를 한다고 한다. 반성해 고치는 계기를 公式化한 좋은 절차다. 그런데 뉘우치기만 하고 고치지 않으면 잘못이 지워지지 않고 그냥 남는다는 공자 말씀이다.
잘못을 고치는 것은 양심에 따른 행동이다. 나아가서 지도자로서 사람들을 대할 때 마음써야 할 자세에 대해 『論語』의 堯曰篇에

舜命禹曰, 寬則得衆하고 信則民任焉하고, 敏則有功하고 公則說이니라.

“舜임금이 禹에게 명령해 가로되 마음이 너그러우면 백성들이 이편이 되고, 믿음직스러우면 백성들이 信任하고, 일을 민첩하게 하면 成果가 있고, 公平하면 백성들이 기뻐하느니라.” ‘말씀 설’이 여기서는 ‘기쁠 열’로 읽힌다.
힘과 德으로 사람들을 복종시키는 것을 『孟子』 公孫丑上에

以力服人者는 非心服也요, 力不贍也며, 以德服人者는 中心이 悅而誠服也니라.

“힘으로써 사람을 복종시키는 사람은 마음으로 복종하는 것이 아니고, 버틸 힘이 모자라기 때문이요, 덕으로 사람을 복종시키는 사람은 마음 속으로 기뻐서 진실로 복종하는 것이니라.”

제Ⅲ장
『論語』 雍也篇에

仁者는 己欲立而立人하고, 己欲達而達人이니라.

“어진 사람은 자기가 출세하고자 하면 남을 먼저 출세시키고, 자기가 뜻을 成就하고자 하면 남의 뜻을 먼저 성취시킨다.” 그러면 상대방이 열심히 이쪽의 출세와 뜻 성취가 가능하게 도와준다는 원리다. 출마하는 사람이 상대방을 헐뜯으면 상대방은 그보다 더 이쪽을 헐뜯게 되는데, 상대방의 인격과 능력을 추워주면 그 자신의 인격이 높아져 유권자들의 지지도가 높아진다는 것을 염두에 두는 것이 지혜로운 판단이겠다.
『論語』 衛靈公篇에

子曰, 君子는 求諸己하고, 小人은 求諸人이니라.

“孔子 말씀하기를 人格이 닦인 사람은 자기 자신의 잘못의 원인을 자기에게서 찾고, 인격이 닦이지 못한 사람은 잘못했을 때 그 원인을 남에게서 찾아 남을 탓하려고 하느니라.” 諸(저)는 ‘諸國’, ‘諸君’의 경우처럼 일반적으로 ‘모든 제(諸)’로 읽지만, 여기서는 於助辭로 ‘之於’[에서]의 준말로 ‘지어→져→저’로 읽는다.
일이 결과적으로 잘못됐을 때 조상 탓, 가족 탓, 남의 탓을 하는 사람은 小人이고, 자기 반성을 해 잘못의 원인을 자기 스스로에게서 찾으려 하는 사람은 인격이 닦인 君子라는 것이다. 다 같이 일이 잘못됐을 때 그 원인을 어디서 찾느냐 하는 마음 姿勢에 따라 군자 소인이 갈린다는 말씀이다.

제Ⅳ장
사람은 말과 행동 곧 言行으로 삶을 營爲한다. 그만큼 말이 소중한 것이다.『孟子』 公孫丑上에

孟子曰, 子路는 人이 告之以有過則喜하고, 禹는 聞善言則拜하시다.

“孟子 말씀하기를 孔子의 제자로 솔직함을 좋아하는 子路는 남이 그에게 이러이러한 잘못이 있다고 일러주면 고맙다고 기뻐하고, 禹 임금은 좋은 말을 들으면 고맙다고 절을 했다.” 남이 눈앞에서 短點을 맞바로 지적하면 대개는 불쾌하게 받아들이는데, 子路는 그 스스로 두 번 다시 그런 잘못을 거듭하지 않도록 일깨워 주어 고맙다고 기뻐하는 雅量을 지녔고, 禹 임금은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天子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좋은 말을 들으면 고맙다고 절을 하는 겸손한 자세가 舜 임금으로부터 天子의 자리를 물려 받을 수 있는 원인이 된 것이라 생각된다.
『論語』 爲政篇에

子曰, 君子는 先行其言이요, 而後從之니라.

“孔子 말씀하기를 군자는 말보다 행동을 앞세우고, 실천한 뒤에 그것에 대한 辭緣을 말하느니라. 말을 톡톡 앞세우기 좋아하는 현실에서 이 얼마나 愼重하고 믿음직한 행동인가. 그를 위해 『論語』 里仁篇에

子曰, 君子는 欲訥於言而後從之니라.

“孔子 말씀하기를 君子는 말을 아껴 더듬더듬 語訥(어눌)하게 하고, 말보다 실천을 앞세운다.” 靑山流水 같이 말을 반드르르 앞세우고 실천이 뒤따르지 않는 현 시점에서 얼마나 좋은 말씀인가. 그러기에 『論語』 里仁篇에

子曰, 古者言之不出은 恥躬之不逮라.

孔子 말씀하기를 옛사람이 쉽게 말로 내지 않는 것은 말만 앞세우고 실천이 뒤따르지 못할까 걱정이 되기 때문이란 말씀이다. 얼마나 말이 지녀야할 신중한 자세인가. 실천이 뒤따르지 않는 말은 불신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알아 말을 함부로 할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제Ⅴ장
특히 지도자는 言行에 愼重을 기해야 한다. 『孟子』 離婁上에

人必自侮以後에 人이 侮之하고 家必自毁以後에 人이 毁之하고, 國必自伐以後에 人이 伐之니라.

孟子 말씀했다. “사람은 그 자신의 인격을 스스로 업신여긴 다음에 남이 업신여기고, 집은 이 집에서 못살겠다고 스스로 탓한 뒤에 남이 몹쓸 집안으로 비방하게 되고, 나라는 국민이 이 나라에서 못살겠다고 불평을 한 뒤에 다른 나라에서도 못된 나가라고 인정하게 된다.” 個人이고 집이고 나라고 그 주인이 애써 最善을 다해 지키고 좋게 만들 때 제 구실을 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 심중한 말씀이다. 大韓民國 못살 나라라고 국민 스스로의 불평이 나라 밖으로 새 나가면, 다른 나라들이 大韓民國을 몹쓸 나라라고 인정하여 손해를 우리가 받게 될 것이나, 하나의 運命共同體로 여기고 最善을 다해 지키고 정진할 때 살기 좋은 나라로 바뀌어 경제가 향상되고 禮節바르며 人心도 넉넉한 나라가 되어 다른 나라들이 우러러보고 배우려고 할 것이다. 이렇게 훌륭히 나라를 지키고 발전시킬 국민이 되는 비결은 무엇일까. 『孟子』 離婁下에

孟子曰, 人有不爲也而後에 可以有爲니라.

“孟子 말씀하기를 사람으로 견디기 어려운 고생을 겪은 뒤에야 쓸모 있는 사람이 된다.” 요새 대학 卒業生들이 肉體的 노동을 기피하고 월급 많은 직장을 구하려는 정신 자세를 바꾸어 무슨 일이든 부딪쳐 뚫고 나가는 정신 자세가 필요한데, 그 근본에는 不義가 아닌 義로움이 깔려 있어야 한다. 이러한 훌륭하고 쓸모 있는 指導者는 造物主가 어떻게 點指해 내려보내는가. 『孟子』 告子下에

天將降大任於是人也에 必先苦其心志하고 勞其筋骨하여… 增益其不能이니라.

“하늘이 장차 이 사람에게 중대한 임무를 맡기려면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의지를 괴롭히고, 그 筋骨을 힘들게 하여… 더욱 그로서는 견뎌내기 어렵겠다는 경지까지 몰아친다. 이러한 試鍊을 견뎌낸 사람이라야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말씀이다. 섣부른 權謀術數로는 통할 수 없는 일이다.

위 글은 東洋의 古典인 四書에서 지도자로서 마음해야 할 사항을 추려 알기 쉽게 해설을 붙여 간 것이다. 古典은 수천년 두고 先知識들의 意識의 集結體로 두고두고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말씀으로 차근차근 읽어 음미하고 實踐에 옮기면 개인이나 나라, 인류 전체를 위해서도 더 없이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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