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교육 3/(국어사전)國語辭典

우물 안의 韓國語

好學 2012. 6. 23. 06:56

우물 안의 한국어
― 憲法裁判所의 誤判으로 끝낼 것인가? ―

 


孫元日

 


1. 우물에 빠진 韓國語
며칠 전 교육방송에서 한 國語學者의 설명을 들었다(07. 1. 2, 21시반). 한글을 높게 쳐든 자료를 보이면서 한글의 優秀함을 힘차게 설명한 끝에 대학의 恩師로부터 들은 말이라며 다음과 같은 趣旨의 강의를 했다.
“외국사람으로부터 한국은 高等敎育에 어느 言語를 사용하느냐” 라는 質問을 받는 수가 많은데 우리는 우수한 한글이 있어서 모든 과목의 교육을 한국어로써 다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 모두 크게 놀랜다?고 하였다. 사실이 그렇다.]  이 설명은 아마도 다른 사람에 의해서도 여러 곳에서 많이 하고 있을만한 내용이다.
하지만 몇 십년 前은 그럴 수 있었으나 자금은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거짓말이 되기 때문이다. 모든 국민이 한글世代가 되었고 한국어 단어의 약 70%가 되는 漢字語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게 되었는데 어떻게 그것이 可能한가? 고등교육, 전문교육의 중심 용어의 거의 전부가 漢字로 구성된 漢字語이므로 그 단어의 개념을 正確하고 효율적으로 理解하고 表現하기 위해서는 漢字를 반드시 배워야 한다. 그런데 국어교과서는 한글로 덮어도 그 밑에 있는 漢字語의 意味를 다 알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으니 큰 일이다. 물론 漢字로 된 漢字語이지만 어릴 때 처음 배울 때 고유어로서 의미를 풀어서 배우게 하고 기억하게 하면 문제가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의미가 아주 단순한 것이 아니면 그렇게 될 수 있는 수가 극히 적을 것이다.
흔히 우리는 미래사회를 知識基盤社會라고 부르고 있는 것처럼 복잡도가 더욱 높아질 것이 틀림 없으니 의미 파악을 더 나쁘게 하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事態에서 정부는 國語基本法을 제정하여 漢字語의 한글화를 철저히 통제하는 등 언어에 대한 전면적 통제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세계 100 곳에 2011년까지 <세종학당>을 건설하는 한편 한글을 계급투쟁의 무기로 삼겠다는 宣言을 하며 사태를 더욱 惡化시키고 있다.
이러한 상황 아래 우리는 하나의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초등학교에서의 基礎漢字敎育을 復活하는 새 교육과정 改編에서 이루어지기를 기대하였다. 그러나 이 개편작업 자체가 지엽적인 문제의 <싸움터가 되어> 霧散되었다고 한다. 우물 안에 갇힌 한국어가 빠져 나올 기회를 완전히 놓친 것이다.

2. 언어의 沈沒은 復活할 수 없다
언어의 沈沒은 전체가 되면 물론이고 일부에 대한 것도 일단 진행되었으면 다시는 먼저 상태로 復活되지 않는다. 言語는 萬人에 의해서 잠시도 쉬지 않고 변하기 때문이다. 韓國語는 漢字의 전면적 폐지로 致命的 파괴를 입었다. 中國과 日本이 로마字 알파벳으로의 변혁을 하려다가 부분적 조치에 그쳤던 것에 비하면 너무나 경솔했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迷信에 밀려서다. 지금도 이 미신의 지배 하에 있다. 어떤 미신인가, 要約하면 다음과 같다.
(1) 한국인은 한글이 있기에 文盲者를 없앨 수 있었고 한글 만으로 아무 지장이 없다?
(2) 한국어에는 70%나 되는 漢字語가 있으며 앞으로도 필요하나 본래의 漢字 대신 한글로 표기해도 같은 意味처리를 할 수 있다. 한국인은 한글로 덮은 漢字語를 漢字로 배우지 않고도 다 안다?
(3) 한글은 ‘글자(文字)’인 동시에 ‘文’이며 ‘言語’다?
(4) 國語는 고유어, 漢字語, 외래어를 포함한 것이나 필요에 따라 고유어만을 가리킬 수 있다?
(5) 歐美의 언어환경이 우리의 理想이다. 문자는 음성을 적기 위해 있다?
(6) 음성이 말이고 언어이며 모두 다 意味를 실어 나른다?
(7) 언어는 道具다?
(8) 언어는 정부, 공무원이 통제해야 잘 된다?
(9) 音聲언어, 文字언어, 手話언어, 點字언어 등은 각각 별개의 언어다?
(10) 한글은 다른 글자보다 특별히 컴퓨터에 잘 適應된다?

이 迷信의 뿌리는 西歐의 文字理論에 있다. 로마字가 문자의 발달과정으로 보아 가장 발달된 것이고 단어의 개념은 누구나 알게 되어 있다는 구조주의 언어학파의 주장을 따른다. 漢字에 대한 경험과 학습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기독교의 성경과 서적 등의 영향을 받아 서구의 表音문자를 최상의 것으로 보는 ‘문자 발달 단계설’을 믿은 것이다. 이 說은 다음의 설명 예와 같이 근거가 전혀 없다.

表語문자, 表音문자, 알파벳문자는 각각 特定한 언어, 사회, 시대에서 최대한 활용되었다.(---) 이 셋 종류는 우수함의 順位도 아니고 문자의 進化 단계를 나타내는 것도 아니다. 각각 단지 다른 형태의 문자이고 새로운 다른 별도의 필요성이 생기면 이에 適應하는 형태로서 사용될 수가 있다. 言語는 ?進化?한다. 다시 말해 인간의 의도적 관여와는 관계없이 발달한다. 그러나 文字는 언어와는 다르게 인간이 여러 가지 특정 目的을 달성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개입하여 변화될 수 있는 것이다.(A History of Language, S. Fischer. p.118).

이상의 迷信 이외에도 漢字 폐지를 촉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漢字는 國産이 아니므로 쓰지 말자는 주장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表語문자로서의 漢字가 가지고 있는 長點과 한글로 덮기 때문에 일어나는 不確實性 증가 등을 냉정하게 비교하면 납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基礎漢字를 어린이가 배우게 하는 것은 虐待라고 하여 반대하는 것도 있다. 또한 과거의 모든 惡弊가 漢字 때문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아무튼 이상에서 본 迷信과 불평 등을 한국어에서 쫓아내는 것이 가장 급히 해야 할 일이 되어 있다.

3. 迷信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국어는 膠着語에 속하여 문장의 결론이 맨 뒤에 나오기 마련이며 문장의 구조가 다른 언어에 비해 단순하다. 그러므로 漢字/漢字語가 內容語로서 語順에 따라 意味를 파악해나가기 쉬운 장점이 있다. 따라서 본래의 漢字를 노출해야 速讀이 된다. 모든 사회의 추세와 같이 앞으로 더욱 더 專門化, 細分化, 高度化가 촉진되므로 漢字語는 계속 늘어날 것이며 고유어의 비율은 날이 갈수록 낮아질 것이다.
뇌의 언어 力量을 강하게 하기 위해서는 일단 무조건 腦에 대한 入力과 腦로부터의 出力의 양 쪽에 걸려 있는 여러 가지 迷信과 制約에서 벗어나 다양화, 고급화 해야 한다. 이 점에서도 漢字/漢字語가 줄이기는커녕 급히 확충될 것이다.
오늘날 이 땅에 敎養이 담긴 책을 읽는 사람이 없다는 한탄이 계속되는 이유도 한글전용이 主因이다. 어느 이름이 난 출판사 사장은 신문의 <책의 날 對談>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사회에서 ‘교양인’이라는 말은 死語가 됐다. 교양을 영어로 뜻하는 Culture(정신의 경작), 독일어의 Bilding(형성)을 意味합니다. 우리는 평생공부를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아예 읽지 않거나 한 달만 지나면 잊혀질 책만 끼고 사는 것 아닌지요.”

4. 한국어를 침몰하게 하는 愛國者?
문제는 정부 관계자의 언어에 대한 獨斷, 獨走에서 출발한다. 도대체 政府의 공무원, 官許 언어학자 그리고 많은 선생님이 문자와 언어, 말과 언어 등 구분을 명확하게 하지 않는다. 교육과정과 국어교과서의 설명이 正確하지 않고 앞뒤 의 설명 사이에 矛盾이 많다. 초등학생이 공부하는 範圍가 초등학생 시절 이후라야 하는데 실제는 그 당시로서 그치고 있다. 배워야 할 목표는 全生涯에 걸친 토대를 단단히 하는 것인데도 내용을 보면 그렇지가 않는 것 같다.
국어사전을 例로 보자. 표제어의 70%가 漢字語이며 이에 대한 설명문 역시 대다수가 漢字語다. 다른 言語와 對譯이 되어 있는 각종 사전, 그리고 수많은 전문분야의 사전 등이 대체로 基礎漢字 2000자 정도 내로서 설명되고 있다. 그러므로 基礎漢字를 모르면 사전을 이용할 수 없다.
<한글전용>을 하려면 결국 한국어 속의 漢字語를 전부 새로운 단어로서 代替해야 할 것이며 새 단어는 漢字에 뿌리를 둔 것이 아니어야 하니 매우 어렵다. 거의 불가능하다. 마치 湖水를 메워서 農土로 쓰자는 주장이 일어났을 때 그렇게 할 수는 있으나 그만한 호수를 따로 만들어 놓고 해야 한다는 이치와 같다. 새로운 단어를 몇개 만드는 데도 힘에 넘치는 데 한글학자는 몇 만, 몇 십만의 새말을 만들 수 있다고 큰 소리친다. 愛國이 말만으로 되지 않는다.
한글학자는 또 압도적 수로서 세상 일을 認識하고 判斷하고 記憶하고 表現할 수 있게 하는 漢字/漢字語가 계속 필요한 현실을 無視하고 있다. 엄연히 있는 현실을 보지 않는다. 논술시험에 따른 논의에서도 漢字語가 중심어인데도 모두 이에 대해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漢字語에 의한 知識의 蓄積과 思考力의 向上을 돕지 않고 전문교육을 받을 능력을 갖게 할 수는 없다. 국어교과서를 보면 한글전용을 擁護하는 데 온갖 미신과 억지를 다 動員하고 있다. 國語基本法 또한 漢字 없애기 위한 法이라며 漢字語가 가득히 쓰이고 있으니 우숩다.

5. 違憲 訴願의 고약한 却下
한국어를 迷信으로부터 구해낼 방법으로서 憲法裁判所에 소원을 낸 고마운 분이 있었다. 경위를 간단히 적으면 다음과 같다.
* 1992년 2월 10일, 헌법재판소에 「한글전용 초등국정교과서 편찬지시처분에 대한 헌법소원」이 청구되었다. 다음은 사건 개요다.

* 국민학교 때부터 漢字敎育이 행하여 져야 하고 그러기 위하여는 국민학교 국어교과서에 漢字를 混用하여야 하는데 文敎部가 편찬, 발행한 ?1987년도 1종 도서 편찬 세부계획에 의하여 국민학교 국어교과서에 한글만을 專用하도록 되어 있으므로, 이 세부계획이 헌법 제31조에 규정된 청구인들의 敎育權 내지 그 子孫들의 능력에 따라 均等하게 교육을 받을 權利를 侵害하는 것이라면서 訴願審判을 청구하였다.
* 이에 대한 심판 결론이 무려 5년 10개월이나 지난 1996. 12. 26, 관계재판관 전원의 一致된 의견이라며 審判請求를 却下했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국어교과서를 끊이지 않고 계속 한글로만 편찬하고 가르치고 있었는데 마치 한글전용을 하지 않기로 한 것을 확인할 것 같이 ‘소원이 실현된 것처럼’ 보이게 된 것이다.
* 결정의 핵심은 訴願을 제기한 다음 해에 문교부장간이 집필자에게 내린 指針에서 “文章은 한글로 쓰되”라고 해오던 것을 93년에 “삭제하여 문제가 되어 온 한글만 쓰기의 근거가 없어졌다.”고 한 것에 있다. 여기서 확실히 해둘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문제의 조항을 삭제했다는 93년의 국어교과서 및 다른 각종 교과서가 그 지침대로 혼용해서 출판했는지 확인했는가?
둘째, 소원이 92년 2월에 제출되었으니 92년의 지침이 어떻게 되었으며 실제 인쇄는 어떻게 되었는가?
셋째, 94년, 95년, 96년의 지침과 인쇄는 어떻게 되었는가?
넷째, 93년에 내린 ?한글만 쓰기를 않기로 했다?는 原則이 섰고 계속된다는 전제가 섰기에 소원을 각하되었을 것인데 그 후 혼용이 실행되었는가?

* 이 사건에 관련된 資料가 상당히 많으며 그 속에는 역시 漢字/漢字語가 가득히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 지식은 어디서 어떻게 확보하였을까? 이 사건을 5년 10개월이나 다루어 온 담당자에게 한글만 가지고 사법적 관점에서 처리가 옳고 정확하게 실현될 것으로 보는지, 솔직한 견해를 듣고 싶다.
* 憲法裁判所의 표기법에 관한 소원에 대한 이번 조치는 却下할 것이 아니라 혼용을 문교부가 시인, 이행한 사실을 확정하여 憲法 31조에 의한 기본권을 확보했야 했다.
* 韓國語의 表記法에 대한 논의는 광복 직후부터 계속 치열하게 논쟁했던 사항이다. 60년 한글만 쓰기를 강행한 결과 확실히 실패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정부는 오히려 반대 방향인 破局으로 몰아붙치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다시 또 憲法訴願을 내며 國語基本法에 대한 憲法不合致 판정 신청을 낼 필요가 있다. 이 결정이 민족의 앞날, 수천 년, 수만 년의 運을 左右하게 될 것이다.
 
6. 이대로 주저앉자니 한숨만
地球儀를 보자. 知識의 高度化가 아주 높은 지역이 어디어디인가? 歐美 로마字 알파벳圈과 東아시아 漢字圈이 特出하다. 이 兩極化 현상은 地球 전체를 덮는 氣象異變이 생기지 않는 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熱帶의 越南이 우리보다 한발 (20~30년) 앞서 漢字圈에서 離脫하여 로마字 알파벳권으로 들어갔는데 이쪽도 저쪽도 아니게 되었고 성공했다고 볼 수 없다.
우리가 中國과 日本과의 사이에 영구히 존재하면서 월남의 경험을 참고하지 아니하고 덥석 漢字圈에서 떨어져나간 것은 분명히 賢明한 선택이 아니다. 歐美의 언어환경이 꼭 좋은 것이 아니다.
言語의 핵심은 意味이고 인류가 풀지 못한 최대의 문제의 하나다. 文法과 表記 등은 論理를 통해서 어느 정도 形式化할 수 있으나 意味는 형식화하기가 극히 어렵다. 언어는 특정한 시간, 특정한 장소, 특정한 사람에 의한 특정한 내용을 뇌가 내는 것이므로 시시각각 급히 변한다.
문자체계의 良否도 결국은 意味의 파악과 전달에 어떻게 얼마나 寄與하느냐에 의해서 판단되는 것이다. 우리가 尨大한 漢字/漢字語를 이용하지 않기로 한다면 그만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내어야 하는데 지난 60년간 몇 자 밖에 만들지 못했다. 중심이 될만한 수 만의 단어를 만들려면 몇 백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니 사실상 성공할 수 없다.
또 漢字語가 아무리 많다 한들 한글로 덮어서 오래 쓰다 보면 고유어처럼 기억하고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有識者가 있다. 그러나 몇자이면 몰라도 대다수 단어를 그렇게 애매하게 알고 기억해서는 知識基盤사회에서 탈락하게 될 것이 뻔하다. 다들 근거 없는 소리, 거짓말을 너무도 쉽게 하고 있다. 비전문가가 정치인까지 저마다 언어사용 햇수로만 보면 모두 전문가라고 나설 수 있다. 하지만 언어는 전적으로 腦가 하는 것이라 愼重히 주장해야 한다.
왜 한글전용이 성공했다고 큰 소리 치는 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歐美語 사용에 대한 착각, 힘들지 않고 배울 수 있다는 幻想을 가지고 있는가 하면 論術에 대해서도 무책임한 말이 쏟아져 나와 있다. 起源이 모호하며 수가 아주 적은 固有語 만으로 세상 일을 다 表現할 수가 없고 꼭 그렇게 限定하려면 일상생활 용어 수준에서 맴돌 수 밖에 없는 現實을 바로 보아야 한다. 한글과 漢字와의 混用이 순리이며 正常化다.
言語의 本質은 아직 아무도 모른다. 腦가 腦를 아는 것이 되기 때문에 전체의 構造와 機能을 완전히 알기는 영원히 不可能할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몇몇 용감한 사람들이 언어에 대한 단순한 기초 지식조차도 없이 한글로 표기하기 때문에 세상일을 알기 쉽다. 또는 공부를 하지 안 해도 다 안다는 어처구니 없는 주장을 하는 선생님이 있다. 배우는 학생들은 저마다 배워야 이긴다는 평범한 自衛策을 세우고, 있는 힘을 다해 공부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