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漢字文學/(한자교육)署名運動

語文政策의 基本과 나아갈 길

好學 2012. 6. 13. 20:35

語文政策의 基本과 나아갈 길



李應百




사람이 동물과 다름은 意思 소통을 충분히 할 수 있는 言語가 있는 것이다. 言語의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해결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 文字다.
우리말은 현재 固有語와 漢字語, 外來語로 구성돼 있다. 그것을 1443(세종 25)에 창제된 訓民正音 곧 한글로 적을 수 있다. 그러나 한글 표기가 가장 어울리는 것은 固有語 표기이고, 그 다음이 外來語다. 漢字語도 한글로 그 音을 기록할 수 있으나 表意性이 부족하다. 그것은 固有語의 한글 表記에서 다 같이 [낟]의 音을 지닌 ‘낟’알[穀], ‘낫’다[愈], ‘났’다[生-過去], ‘낮’다[低], ‘낯’[面], ‘낱’[個],‘낳’다[産-語根]의 표기가 다르듯이 漢字語에서 音이 다같이 [기사]로 나는 것이 (己巳, 技士, 技師, 奇士, 奇事, 記事, 饑死, 棋士, 碁士, 幾死, 機事, 騎士, 騎射)와 같이 다르게 표기된다.
한글專用을 주장하는 이들이 이것을 미로통 ‘기사’로 적는 것을 주장하는 것은 위의 [낟]으로 소리나는 語根을 미로통 ‘낟’으로 表記하란 말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뜻에 따라 위에서와 같이 달리 적는 것은 그 表意性을 살리는 次元에서다. 漢字語의 表意性이 漢字로 적을 때 사는 現象은, 固有語 表記에서 ‘낟’의 語根을 뜻에 따라 달리 적는 것과 일치한다. 그런데 다 같은 表意性을 한글로 적을 때 固有語에서는 形態를 살려 區分해 적고, 이미 漢字로 區分해 적고 있는 漢字語에서는 한글의 音만으로 劃一的으로 적는다는 것은 自體 모순이다.
여기서 한글은 國字이고, 漢字는 國字가 아니므로, 國語는 國字로 적어야 마땅하다는 생각에서 국어 속의 固有語와 漢字語, 外來語를 미로통 한글로 적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본다.


漢字는 한글이 창제되기 전 아주 늦게 잡아도 漢武帝가 漢江 이북에 漢四郡(樂浪․眞蕃․臨屯․玄菟)을 설치한 B.C. 108년인 1,600년 전부터 우리 나라에 들어와 先人들이 位次가 높은 中國文化를 흡수하고, 漢字 漢文으로 日常 記錄 手段으로 삼아 우리 傳統文化의 역사기록이나 文集 등을 후세에 남겼다. 그리하여 그 당시 口頭言語는 우리말을 使用했겠으나 아직 그것을 表記할 固有文字가 없었기 때문에 漢文으로 기록했다.
『三國史記』 金庾信 列傳에 金庾信이 善德女王 13년(644) 3월에 百濟軍 二千을 목 베고 개선했는데, 百濟軍이 再侵하여 王命으로 再出征할 때, 自宅 앞을 지날 때 식구들이 門 밖에서 마중하려 했으나 그냥 지나기 50步쯤에서 말을 멈추고, 집의 우물(財買井)물을 길어 오라 하여 마시면서 말하기를?우리 집 물이 옛맛 그대로구나!?했다. 이것을 『三國史記』에는?吾家之水 尙有舊味?라고 漢文으로 기록했다.
이와 같은 事情으로 자연히 漢字語가 불어나 현재 국어 사전 수록 語彙의 70%가 漢字語로 되어 있으며, 己未獨立宣言文이나 國民敎育憲章 같은 집약된 내용이 담겨진 글에서는 그 뼈대가 漢字語로 돼 있고, 固有語는 漢字語를 연결짓는 이음새 구실을 하고 있다.
百濟의 王仁에 의해 漢字 漢文을 받아들인 日本에서 漢字를 日本語에 섞어 쓸 때, 漢字의 音과 訓을 아울러 썼는데, 우리는 漢字의 音만을 쓰는 傳統이 있다. 이러한 漢字 읽기의 方法의 차이는 語彙 保有量의 차이를 가져왔다.
가령 日本서는 兒童을 音인 지도(ジドウ)라고 읽는 동시에 와라베(ワラベ)라고 訓으로도 읽었다. 우리는 15세기 杜詩諺解 같은데서 農夫를 音으로 ‘농부’라고 적고, 별도로 ‘녀름지리’라고도 적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두 말 중 간결한 ‘농부’가 살아 남고, 固有語는 古語(死語)로 뒤쳐지게 되어, 日本이 우리보다 語彙의 保有量이 나긋하게 되었다고 하겠다.


舊韓末 開化期에 西洋敎育 制度의 流入으로 學校에서 敎科書를 엮을 때 漢字를 制限 없이 섞어 쓰고, 日帝暗黑期의 普通學校 朝鮮語讀本에는 1,212字의 漢字를 섞어 썼다.
光復後 초․중․고교 ‘국어’교과서의 漢字 表記 변천 과정은 다음 4단계로 나눌 수 있다.
1. 漢字倂用期    1945~1964. 8
2. 漢字一部混用期    1964. 9~1970. 3
3. 漢字除去期(한글 專用期)  1970. 3~1975. 2
4. 漢字部分倂用期    1975. 3~현재

光復後 20년 동안은 필요한 漢字를 ‘학교(學校)’또는 ‘學校●●’와 같이 倂用했었다. 1951. 7 文敎部에서 常用漢字 1,000字를 制定하고, 1959. 11에 300字를 더해 임시허용 漢字 1,300자를 제정했다. 300字는 문교부 文字頻度調査 자료의 3,312字 가운데 頻度가 높은 것을 추린 것이다.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1964. 9~1970. 3까지의 漢字 一部 倂用期다. 당시 임시허용漢字 1,300자 시절에 초․중․고교 ‘국어?의 漢字混用狀況은 다음과 같다.

초등학교 4학년 200자    
   〃      5학년 250자    600자
   〃      6학년 150자    
중학교                       400자
고등 학교                   300자
               계          1,300자

당시 중․고교 ‘국어’에는 임시 허용漢字 외의 漢字라도 文脈 이해상 필요한 것은 괄호 속에 넣었다.
중․고교 ‘국어’외의 국어로 표기된 교과서에서는 임시 허용 漢字를 포함해 文脈 이해상 필요한 漢字를 괄호 속에 넣었다. 당시 국어로 표기된 檢認定 교과서 각 1종씩을 수합해 거기에 나타난 서로 다른 漢字를 調査했더니 총 3,503자였다. 말하자면 고등학교까지 ‘국어’에 임시허용 漢字 1,300자를 混用하고, 국어로 표기된 다른 교과서에 1,300자 포함 3,503자를 괄호 속에 倂用한 것이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漢字도 한글과 같이 國字이므로 그 교육의 기본은 ‘국어’에서 학습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漢字를 露出 混用함으로써 ‘국어’시간 전에 漢字를 읽을 수 있도록 參考書나 字典을 찾아 豫習을 했던 것이다. 學習에서 復習도 중요하지만, 豫習도 그 못지 않게 중요하므로, 당시의 學生들의 漢字 實力은 시간이 갈수록 자연스럽게 향상됐던 것이다.
그리하여 당시는 초등학교 졸업생이 面書記는 흔히 취직했었는데, 특히 戶籍係 담당은 漢字를 流麗한 筆體로 正確하게 處理했던 것이다. 郡書記나, 學力이 出衆한 사람은 초등학교 敎師 資格 시험에도 應試해 通過했던 것이다.

Ⅳ.
1970. 4에 한글專用 敎育政策 실시로 국어로 表記된 초․중․고교 敎科書를 한글 表記 一色으로 改版하여 暗澹一路를 걷게 되었다. 그러던 중 1972. 8. 16에 문교부에서는 漢文敎育用 基礎漢字 1,800자를 制定 公布했다.
한글專用 국어 교과서로 필요한 漢字를 일일이 板書를 하기도 어려운 국어교사들의 苦衷 여론을 받아들인 文敎部에서 1975년 새학기부터 중․고교 ‘국어’에 중․고교용 基礎漢字 각 900자씩을 괄호 속에 넣어 발간하였다. 당시 뜻 있는 국어 교사는 학생들에게 하얀 종이를 오려 괄호앞 한글음을 덮어 붙이게 하여 漢字를 露出시킴으로써 예습 과정의 실효를 올리는 誠意도 보였던 것이다.
敎育은 필요에 따라 행해지는데 ‘국어’교과서 연습문제에서는 漢字 관련 문제가 들어있는데, 試驗 때에 評價를 하지 않고, 大入 修能考査에서도 도외시하며, 일간지를 비롯해 대부분의 인쇄물이 한글專用으로, 漢字 認知의 보람을 찾을 길이 없게 됨으로 해서 漢字 學習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게 되어 버렸다.
그런데다가 학생의 괄호 속 漢字에 대한 질문을 받은 국어 교사 중에서는“그것은 漢文 선생님께 여쭈어 보거라.”하는 반응도 있어, 이래저래 漢字는 익히지 않아도 좋다는 인식이 팽배하게 되었다.


그러는 가운데 사단법인 韓國語文會에서 漢字能力檢定 試驗을 1급에서 8급까지 실시한 것이 人氣를 끌어 國家公認을 받게 되고, 그러한 公認을 받은 단체가 늘어남으로써, 요새 企業體의 人事考課에서 3급(1,800자)이상 합격을 기본 응시 자격으로 하는 데가 갈수록 늘어가는 추세에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漢字는 뜻을 전달할 뿐 아니라 人性 자체가 훌륭히 닦이는 機能이 있다. 초등학생에게 漢字 檢定 준비로 推句와 四字小學을 읽혀 가는데, 눈빛이 초롱초롱해지고 言語行動이 의젓하게 되어 父母들의 칭찬을 받는다. 企業體에서도 分明히 기록된 履歷書며 責任感과 誠實度가 높은 長點에 注目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高潮되는 社會의 필요성을 公敎育에서 外面하는 현 敎育制度에 문제가 있다.
어느 나라든지 大學을 졸업하면 엘리트로 公認되는데, 우리 나라 大學 卒業生은 80년대 이전의 漢字 섞인 新聞이며, 漢字가 들어 있는 선배들의 碩․博士 論文도 제대로 判讀을 하지 못하는 처지에 있어, 60년대 중등학교 졸업생만도 못함을 크게 反省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그 個人의 잘못이라기보다 敎育制度의 缺陷의 결과인 것이다.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지금 와서 普遍化한 한글專用 趨勢를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고, 초․중․고교 敎科書에서 漢字 混倂用 제도를 60년대 方式을 勘案해 바꿀 것이다.

1. 초등학교 ‘국어’에 敎育漢字를 1학년에 50자, 2학년에 100자, 3학년에 150자, 4학년에 200자, 5․6학년에 각 250자씩 1,000자를 맞바로 混用할 것이다.
2. 중․고 ‘국어’의 현행 괄호를 벗겨 漢字를 露出시킬 것이다.
3. 각급 학교의 국어로 표기된 교과서에서 文脈 理解에 필요한 漢字를 국어에서 배운 것은 露出 混用하고, 그 外는 괄호 속에 넣을 것이다.
4. 學校의 신문이며 校誌에 필요한 漢字를 섞어 漢字 認知度의 보람을 느끼게 할 것이다.
5. 각급 학교의 시험과, 大學 修學能力 試驗 地文에 漢字를 섞고, 漢字問題를 필수적으로 낼 것이다.
6. 大學의 學士․碩․博士 論文에 필요한 漢字를 섞을 것이다.
7. 敎育의 基本인, 漢字를 포함한 ‘국어’교육을 튼튼히 한 다음, 요새 擧論되는 英語 교육은 原住民 敎師를 비싸게 들여올 것이 아니라 英美에서 國家가 公認하는 視聽覺 자료를 들여다가 師弟 함께 따라 익히고, 수 없이 反復해 욀 정도로 입에 올리면, 극히 자연스럽게 會話의 門이 열리게 될 것이다. 英文學者이며 詩人인 皮千得 교수는 英語學習의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 옛 書堂에서 글을 소리내서 읽어 외듯 입에 올려 몸에 붙일 일이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