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時事/[시사 칼럼]

개성 부자

好學 2012. 4. 7. 07:33

개성 부자

 

 

개성 상인 중에 알짜배기 부자가 많았던 이유로 흔히 신용(信用)과 절약을 들곤 한다. 해성그룹을 일으킨 단사천 회장은 한 번도 30대 재벌에 꼽힌 적이 없지만 이병철·정주영 회장도 돈이 급하면 신세 진 '현금왕'이었다. 그는 늘 값싼 동네 이발소를 드나들었고 비싼 음식은 먹지 않았다고 한다. 삼정펄프 전재준 회장은 35년 된 소파를 쓰고 여든 넘어서도 승용차를 손수 운전했다.

▶개성 상인 중엔 아낄 땐 아끼면서도 사회와 공동체를 위해 자기 것을 내놓아야 할 때는 미련없이 풀어놓는 사람도 유난히 많다. 동양제철화학이나 해성그룹, 아모레퍼시픽 창업주가 장학회와 육영·문화재단에 적지 않은 돈을 기부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가장 중요한 소장 유물에 드는 '동원컬렉션'도 개성 상인 출신 이홍근 회장이 기증한 것들이다.

▶개성간이상업학교를 나온 이 회장은 곡물·양조·보험 사업에서 재산을 쌓아 동원(東垣)산업을 세우고 5000점 넘는 국보급 서화·도자기·공예품을 모았다. 그는 아무리 돈이 아쉬워도 작품을 되파는 법이 없었고 "자식들에겐 단 한 점도 물려주지 않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한다. 1980년 그가 작고한 후 자녀들은 아버지가 모은 보물을 남김없이 국립박물관에 기증했다. 거기에다 고고학·미술사 연구 발전기금으로 써달라며 은행 주식 7만주, 당시 1억원어치까지 얹어 내놓았다.

▶개성 출신 여든세 살 손창근씨가 식목일을 맞아 "후세에 온전하게 물려줄 수 있도록 잘 관리해 달라"며 경기도 용인·안성의 임야 662㏊, 남산 두 배에 이르는 땅을 산림청에 기증했다. 그는 지난 50년 동안 이곳에서 잣나무·낙엽송 200만 그루를 자기의 분신처럼 가꿔 왔다. 직접 잡풀을 뽑고 나무가 크게 자랄 수 있도록 솎아주고 가지치기해온 공든 땅이다. 손씨는 개성 갑부였던 부친이 모았던 서화·골동품 140점도 1973년 서강대에 기증했다. 작년엔 추사 김정희의 국보 '세한도'와 정선·김홍도 그림을 비롯해 305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맡겼다.

 

▶산림청 직원들은 시가 1000억원에 달하는 땅을 아무 조건 없이 내놓은 손씨의 얼굴을 모른다. 손씨는 지난 3월 대리인을 통해 기부 의사를 밝혔고 혼자서 소유권 이전 등기까지 마쳤다. "그래도 선생님의 선행을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산림청 직원 말에 손씨는 "아들딸과 가족도 내 뜻에 선뜻 동의했다는 것만 알려 달라"고 했다 한다. "부자의 그릇은 그가 돈 쓰는 법을 보고 평가하라"던 소크라테스 말이 생각난다. 돈과 관련된 온갖 비리와 부패가 넘쳐나는 시대에 모처럼 듣는 아름다운 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