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文學/[世界文學感想]

파트리크 쥐스킨트 - 좀머씨 이야기 14.

好學 2012. 3. 23. 21:33

파트리크 쥐스킨트 - 좀머씨 이야기 14. 

"엉, 엉! 그토록 사랑스럽고 소중한 아이가 우리 곁을 떠난 것은 우리 잘못이야!
만약에 우리가 좀더 잘해 줬더라면,
너무 못되게 굴지도 않고, 잘못을 저지르지만 않았더라면,
그 착하고 사랑스럽고 소중하고 상냥했던 아이가
아직도 우리 곁에 살아 있으련만!"

그리고 무덤 가에는 카롤리나 퀵켈만이 서 있다가
내게 꽃 한 송이를 던지고는 마지막 시선을 꽂으며
너무나 고통스러워 허스키해진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겠지.
"오, 내 사랑했던 사람아! 나의 유일했던 사랑아! 그 월요일에 같이 갈 것을!"

너무나 황홀한 상상이었다!
그들에 대한 생각이 나를 아주 행복하게 하였다.
나는 나에 대한 칭찬 소리로 가득할 입관부터 문상객 접대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새로운 절차에 따라 행사를 치르는 상상을 계속해 보다가,
급기야는 스스로 너무 감격한 나머지 비록 눈물까지 흘리지는 않았지만
눈에 이슬이 맺혀옴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우리 집 근방에서 있었던 장례식 중에서 가장 멋진 장례식의 모습이었고,
앞으로도 십 년 동안 사람들이 그것에 대한
슬픈 기억을 떠올릴 수 있을 만한 것이었다…..
단지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이라면 내가 이미 죽어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행사에 직접 참석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그것은 안타깝게도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었다.
내 자신의 장례식이므로 나는 분명히 죽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한 번에 두 가지를 다 가질 수는 없는 법이다.
세상에 대한 복수와 세상 안에서의 영생. 그래서 나는 복수를 택하기로 했다!

가문비나무의 줄기에서 몸을 땠다.
오른손으로 줄기에 몸을 반은 의지하고 반은 떼어 내면서,
왼손으로는 내가 앉아 있던 가지를 꼭 잡은 채
서서히 1센티미터씩 바깥쪽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다가 줄기에 거의 손끝만 닿게 되었다…..
그 다음엔 손끝마저 떼어 냈다…..
가지를 움켜잡은 채 서 있게 되었고 그런 내 밑은 땅까지 휑하게 뚫린 낭떠러지였다.
나는 아주 지극히 조심스럽게 밑을 쳐다보았다.
내가 눈으로 가늠해 본 높이는 높이가 10미터인 우리 집 지붕 꼭대기보다 세배는 되어 보였다.
그러니 30미터가 되는 셈이었다.
갈릴레이 갈릴레오의 낙하 법칙에 따르자면
내가 떨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정확히 2.4730986초 였고,
땅바닥에 부딪치며 떨어질 때의 최종속도는 시속87.34킬로미터가 되었다.
나는 아래쪽을 한참 동안이나 쳐다보았다.

깊은 구멍이 나를 유혹하였다.
정말 마력적인 힘으로 나를 끌었다.
내게 손을 흔들며 이렇게 속삭이는 듯했다. (어서 와, 어서, 와!)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끈 같았다. (어서 와, 어서 와!) 아주 쉬운 일이었다.
아주 조금만 몸의 중심을 옮기기만 하면,
그 다음은 저절로 진행될 일이었다….. (어서 와, 어서 와!)
물론 할 생각이었다!
단지 언제 실행에 옮길 것인지만 결정하지 못했다!
아주 특별한 순간에, 어느 한 순간에!
나는 이렇게 무턱대고 스스로에게 말할 수가 없었다.
(지금! 지금 하자!) 결국 달리기 시합을 할 때나 물 속에 뛰어들 때 하는 것처럼
셋까지 세다가 (셋)에서 뛰어내리기로 했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두울….." 거기까지 세다가 눈을 뜨고 뛰어내릴 것인지 아니면
눈을 감고 할 것인 지를 결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갑자기 세는 것을 중단해야 했다.
나는 잠시 생각해 본 다음,
눈을 감은 채 숫자를 세다가 (셋) 하는 순간에 눈을 그대로 감은 채
허공으로 몸을 날린 다음 떨어지는 순간에는 다시 눈을 뜨기로 결정하였다.

"하나….. 두울….." 그때 뭔가를 두드리는 소리 같은 것이 났다.
길에서 나는 소리였다. (탁,탁,탁,탁) 하는
뭔가 딱딱하고 리드미컬한 소리가 내가 숫자를 세는 속도의 두 배로 났다.
그래서 내가 (하나) 할 때 (탁) 소리가 났고, (하나)와 (두울) 사이에,
(두울)과 그 다음에 세기로 되어 있는 (셋)사이에 -
시스 풍켈 선생님이 박절기로 박자를 끊듯이 정확하게 (탁, 탁, 탁, 탁) 하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마치 내가 숫자를 세는 것을 흉내라도 내려는 것처럼 들렸다.
내가 눈을 뜨자 묘하게도 그 소리도 그쳤다.
그 대신에 뭔가 민첩하게 지나가는 소리와 나뭇가지를 헤쳐 나가는 소리,
동물 같은 요란한 헐떡임 소리만이 들렸다.
그리고는 갑자기 좀머 아저씨의 모습이 30미터 밑에,
그것도 내가 뛰어내린다면 나만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저씨도 넘어지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그런 수직적인 위치에 나타났다.
난 나뭇가지를 손으로 꽉 부여잡고 움직이지 않았다.

좀머 아저씨는 미동도 없이 서서 숨을 헐떡이며 몰아 쉬고 있었다.
호흡이 어느 정도 가누어지자 아저씨는 갑자기 숨을 죽이더니
무슨 소리라도 엿들으려는 것처럼 고개를 돌려 사방을 살폈다.
그러고는 몸을 구부리더니 왼쪽 덤불 밑을 살피고,
키가 작은 나무들이 수풀을 이룬 오른쪽을 살피고,
인디언처럼 나무 주위를 슬쩍 돌더니,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위쪽만 빼고!) 사방을 다시 한번 살피고,
귀기울여 보다가 아무도 자기를 따라오지 않고 있으며
먼 곳까지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
세 번의 빠른 동작으로 밀짚모자, 지팡이, 배낭을 벗어 놓고는
침대에 눕는 것처럼 길게 다리를 뻗고 나무 뿌리 사이의 땅바닥에 드러누웠다.

그리고는 누워서 미처 쉬기도 전에 눕자마자
바로 일어서더니 깊은 한숨을 길게 몰아 내쉬었다.
아니 그것은 한숨이 아니었다.
한숨을 쉬면 뭔가 홀가분해지는 듯한 소리가 나지만
그것은 뭔가 고통스러운 신음에 가까웠고 홀가분해지고 싶은
갈망과 절망이 엉켜서 가슴에서부터 배어 나오는 깊고 참담한 소리였다.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중환자가 내는 끙끙 앓는 소리같이
머리카락이 빳빳하게 서도록 만든 그 애절한 신음소리는
아저씨를 홀가분하게 해 준다던가, 아저씨에게 안식을 준다던가,
단 일 초라도 아저씨를 쉬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저씨는 금방 다시 몸을 추스르며 일어났다.

그리고 배낭 속을 뒤적이다가 허겁지겁 버터 빵을 꺼내 들더니
납작한 물병도 꺼내고, 빵을 한 입 베어 물때마다 마치 적이 숲에 깔려 있기라도 하는 듯,
혹은 어떤 포악한 미행자가 있어서
그 사람과 아저씨가 떨어져 있는 거리가 얼마 되지 않으며,
그 간격이 점점 좁혀지는 상황이어서 언제라도 그 사람이
그 자리에 나타나기라도 할 듯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사방을 자꾸 살피며 빵을 먹었다.
아니 먹었다기보다는 마구 구겨서 입 속으로 그것들을 밀어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