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文學/[世界文學感想]

파트리크 쥐스킨트 - 좀머씨 이야기 13.

好學 2012. 3. 23. 21:33

파트리크 쥐스킨트 - 좀머씨 이야기 13. 

그리고 그 못된 개의 잘못은 또 다른 문제였다.
모든 것이 다 문제였다.
어떤 것에 대한 예외도 없이 모든 것이 다 그랬다.
우선 제 일 먼저 내게 맞는 자전거를 사 주지 않은 우리 어머니가 원망스러웠고,
어머니를 그렇게 하도록 만든 아버지가 그랬으며,
선 자세로 자전거를 타야 되는 내 모습을 보면서
몰래 나를 비웃었던 누나와 형들도 마찬가지였다.
나를 구역질나게 만들었던 하르트라웁 박사님 댁 개의 똥도 그랬고,
호숫가 길을 꼭 메워 나를 늦게 도착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던 산보객들도 그랬다.

푸가 형식으로 나를 괴롭히고 모욕스럽게 만든 작곡가 헤슬러도 그랬다.
말도 안되는 억지로 내게 누명을 뒤집어씌우고,
올림 바음 건반 위에 구역질 나는 코딱지를 붙여 놓은
미스 풍켈 선생님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내가 딱 한번 필요로 하였을 때 도와줄 것을 간청하였건만
비겁하게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어긋난 운명의 수레바퀴가 돌아가는 모양만 지켜보았을 뿐
다른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세상 사람들이 자비롭다고 하는 하느님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잘못되기를 바라는 그런 모든 것들에게 의리를 지킬 필요가 무엇이란 말인가?
이런 세상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그토록 비열한 세상에서 노력하며 살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이나 그런 못된 악에 질식해 버리도록 두는 편이 더 낫지 않겠는가?
그런 사람들이나 잘 먹고 보라지! 나를 포함시키지는 말고 말이다!
나는 앞으로는 결코 그 사람들이랑 같이 어울리지 않으리라!
이 세상에 작별을 고하리라!
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리고 말겠다! 그것도 지금 당장!

그런 것들에 생각이 미치자 기분이 훨씬 가벼워졌다.
모든 역겨운 것들과 잘못된 것들을 다 일격에 격파하기 위해서 단지
(나 스스로 삶과 작별을 고하기)
- 그런 행동을 그렇게 고상하게 표현해도 된다면 -
만 하면 된다는 상상이 왠지 마음을 편안하게 위로해 주었다.
홀가분한 마음 때문에 눈물도 그쳤고, 온몸이 떨리던 것도 진정되었다.
세상에 다시 희망이 있어 보였다.
다만 곧바로 실행에 옮기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당장, 내게 다른 생각이 나기 전에 해치워야만 할 일이었다.

나는 페달을 힘차게 밟고 앞으로 달렸다.
윗마을 중간쯤까지 갔을 때 집으로 돌아가려면 가야 되는 길로 가지 않고,
호숫가 길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가,
숲을 지나 언덕을 오르다가 덜컹거리며 들길을 지나,
변전소가 있는 방향으로 뻗어 잇는 등,하교 길을 택해 갔다.
그곳에 내가 알고 있는 것들 중에서 제일 큰 나무가 있었다.
덩치가 커다란 가문비 고목이었다.
그 나무에 올라가서 나무 꼭대기에서 떨어질 생각이었다.
달리 죽는 방법은 내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물론 사람이 물에 빠진다거나 심지어 전기로도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는 했다.
그 가운데 제일 마지막 방법에 대해서는 형이 조금 추상적으로 설명해주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죽으려면 전기를 통하게 할 수 있는 매체가 있어야 해.
그것이 제일 중요한 거야. 그것 없이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전깃줄에 앉아 있는 새들이 다 즉사해서 떨어지겠지.
그런데 그렇지가 않거든, 심지어 네가
- 이론적으로는 십만 볼트 고압선에 목을 매달아도 너한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
네게 전기를 통하게 할 수 있는 매체가 없다면 말이야."

형은 그런 것들까지도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전기라든가 그런 기구들을 이해하기조차 너무 어려웠다.
더구나 전기를 통하게 할 수 있는 매체가 어떤 것인지도 나는 알지 못했다.
그러므로 내가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뿐이었다.
떨어지는 것이라면 경험이 있었다.
그리고 떨어지는 것이 무섭지 않았다.
내게 있어서 그것은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나는 자전거를 변전소 옆에 세워 두고 덤불 속을 헤치며 가문비나무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그 나무는 너무 고목이라서 줄기 아래쪽으로는 잔가지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먼저 그 곁에 있던 작은 소나무를 기어올라가 거기에서 그 나무로 건너갔다.
건너간 다음부터는 모든 것이 쉬웠다.

굵직하고 손으로 잡기 좋은 가지를 올라타며 꼭대기 쪽으로 기어올랐다.
그것은 마치 사다리라도 올라가는 것처럼 쉬운 일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오르다가 머리 위해 있던 무성한 가지 사이로
갑자기 햇볕이 내리쬐고, 내몸이 약간 휘청해진다는 것을 느낄 만큼
줄기가 가늘어진 부근에서 멈추어 섰다.
그곳은 꼭대기로부터 조금 떨어져 있던 곳이었는데,
거기에서 처음으로 밑을 내려다보니 발 밑으로 솔잎과 나뭇가지와 솔방울들이
초록과 갈색으로 두텁게 엮어져 있어서 더 이상 땅이 보이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뛰어내린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굳이 뛰어내린다면 그것은 바로 눈 아래 있는 것처럼 느껴지면서
단단한 침대처럼 보여 사람의 눈을 속이는 구름 덩어리에 뛰어내려서
결국 어디로 떨어질지 모르는 짓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떨어지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어디로 어떻게 떨어지는지 보고 싶었다.
나의 추락을 모름지기 갈릴레이의 낙하 법칙에 아무런 방해 없이 적용 받게 해야만 했다.
결국 나는 가지를 붙잡으면서 줄기를 타고,
아래쪽에 방해받지 않고 그대로 떨어질 수 있는 구멍이
어디에 있는지 살펴보면서, 약간 어두웠던 밑으로 다시 내려갔다.
가지를 몇 개 내려가자 정말 그런 곳이 나타났다.
마디가 많아서 울퉁불퉁한 뿌리에 떨어졌다가는
심한 충격으로 죽지 않을 수 없게 될 곳을 향하여
수직으로 깊게 파인 굴처럼 휑하니 뚫린 구멍이었다.
아무것에도 방해받지 않고 완벽하게 떨어지기 위해서는 뛰어내리기 전에
줄기로부터 몸을 아주 약간만 앞쪽으로 밀어내기만 하면 되는 지점이었다.

나는 나뭇가지 위에서 천천히 무릎을 꿇고 앉아
몸은 줄기에 비스듬히 기댄 채 숨을 몰아 쉬었다.
그 순간이 되기 전에는 거기까지 찾아서 헤매는 것이 무척 힘든 과정이었기 때문에
내가 왜 무엇을 위하여 행동하고 있는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나로 하여금
그렇게 하도록 만들었던 갖가지 상념들이 다시 머리 속에 떠올랐고,
나는 사악한 세상과 그 안에서 사는 사람들에 대하여
갖은 험담과 욕설을 퍼부은 다음,과연 내 장례식이 어떤 모습일지를 상상해 보기 시작했다.

아주 멋진 장례식이 되겠지! 교회 종이 울릴 테고,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울려 퍼지고,
윗마을에 있는 공동 묘지는 수많은 조객들로 미어 터지겠지.
나는 유리 관 속에 누워서 수많은 꽃 속에 파묻혀 있을 테고,
까만 색 조랑말이 날 끌고 가면 사방에서 사람들의 통곡 소리가 요란하겠지.
부모님이 우실 테고, 누나와 형들도 울 테고, 우리반 아이들도 울 테고,
하르트라웁 박사 부인과 미스 풍켈 선생님도 울 테고,
멀리서 찾아 온 친척들과 친구들도 엉엉 울면서 그들 모두 손으로 가슴을 치며 소리지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