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文學/[世界文學感想]

파트리크 쥐스킨트 - 좀머씨 이야기 11.

好學 2012. 3. 18. 20:47

파트리크 쥐스킨트 - 좀머씨 이야기 11. 

그 전 주에 나는 다른 중요한 할 일이 있기도 했었고,
다른 한 편으로는 숙제로 내주었던 연습곡이
카논 형식의 푸가 형태여서 오른손과 왼손을 옆으로 쫙 벌리고 치다가,
가끔씩 한 손은 이쪽에 다른 한 손은 저쪽에 두면서 쳐야 했고,
서로 불협화음을 이루는 리듬과 특이한 음정을 지키면서,
높은 음에서 귀에 몹시 거슬리는 소리까지 내야 되는 등
굉장히 어려운 것이라서 거의 연습을 하지 못했다.

작곡가는 내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헤쓸러라는 사람이었다.
악마가 있어서 그 사람을 잡아 갔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렇기는 하지만 만약 그날 피아노를 배우러 가는 도중에 여러 가지
- 특히 하르트라웁 박사님 댁 오소리개의 공격 -
흥분되는 일들을 겪지 않았고,
그것들에 이은 미스 풍켈 선생님의 혹독한 꾸지람으로
내 마음이 그렇게 갈기갈기 찢겨지지만 않았더라면
그 두 곡을 그런 대로 연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나는 무서워서 벌벌 떨면서, 땀도 뻘뻘 흘리고,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 피아노 앞에 앉아서
- 내 앞에는 여든 여덟 개의 건반과 헤쓸러 씨의 연습곡이 놓여 있었고,
뒤에는 치밀어 오르는 노여움으로 내 목덜미에
더운 입김을 뿜어대고 있던 미스 풍켈 선생님이 있었다…

최악의 연주를 해 보였다.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었다.
베이스와 바이올린을 위한 키, 반음과 온음, 4분의 1 쉼표와 8분의 1 쉼표,
왼쪽과 오른쪽, 첫 줄의 마지막 마디도 미처 치지 않았는데
피아노 건반과 악보가 흐르는 눈물로
마치 만화경을 보는 듯 갈기갈기 찢겨져 버렸고,
나는 결국 손을 밑으로 내리고 가만히 훌쩍거리며 울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럴 줄 알았지!"
목뒤에서 어금니 사이로 뱉어 내는 듯한 말이 튀어나왔고,
잘게 부서진 침 방울들이 내 목덜미를 때렸다.
"내가 그럴 줄 알았다구.
늦게 오고, 얼음과자 사 먹고, 변명을 늘어놓고 뭐 그런 것들은 참 잘도 하겠지!
그렇지만 숙제는 하나도 못해 오고!
그렇게만 해 보라고, 한심한 녀석 같으니라구!
너 같은 녀석한테 내가 한 수 가르쳐 줄 테니까!"

그렇게 말한 다음 선생님은 내 뒤에서 앞으로 나와,
내 옆자리에 털퍼덕 주저앉더니 두 손으로 내 오른손을 잡고,
손가락 하나하나를 벌려 가며
헤쓸러 씨가 작곡했을 때 그랬을 것처럼 건반 하나하나를 찍어눌렀다.
"이건 이쪽으로! 그리고 저건 저쪽에!
그리고 이건 여기에! 그리고 엄지는 여기에! 셋째 손가락은 요기에!
그리고 이거는 저기에! 또 이거는 여기에…"
그렇게 오른손가락을 가르치고 난 다음에는 같은 방법으로 왼손을 다뤘다.

"이거는 저기로! 또 저거는 여기로! 요거는 저기로…!"
그렇게 분노를 삭이며 내 손가락에 마치
연습곡의 악보에 있는 음표 하나 하나를 박아 넣게라도 하려는 듯이
손을 이리 저리로 끌면서 꾹꾹 눌러 댔다.
그렇게 하기를 약 30분 정도 하자 손가락이 몹시 아팠다.
그런 다음 선생님은 마침내 내 손가락을 놓더니
책을 덮어 버리고 식식거리며 숨을 몰아 쉬었다.
"다음 번에 올 때까지는 할 수 있어야 돼!
그것도 악보를 보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달달 외워서 알레그로로 쳐야지 만약 그렇게 못한다면 혼날 줄 알아!"

그러고는 연탄곡 연주곡이 들어 있는 두꺼운 책을 꺼내어
악보를 놓는 곳에 꽝 리를 내며 펼쳐 보였다.
"지금부터는 제발 악보 읽는 법 좀 알라고 10분 동안 디아벨리 곡을 치겠다.
어디 실수만 해 봐라!"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옷소매로 얼굴에 묻은 눈물을 닦아 냈다.
디아벨리는 좋은 작곡가였다.
그는 끔찍한 헤쓸러처럼 푸가 형식으로 사람을 괴롭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디아벨리 곡은 치기가 아주 쉬웠다
그의 곡은 매우 단순하면서도 대단히 멋들어진 소리를 연출해 냈다.
비록 누나가 <아무리 피아노를 못 치는 사람이라도 디아벨리는 칠 수 있어>
라는 말을 종종 했어도 나는 그를 사랑하였다.
아무튼 우리는 디아벨리를 연탄으로 쳤는데
미스 풍켈 선생님은 왼쪽에서 베이스를 쳤고 나는 오른쪽에서 소프라노를 동일 음으로 쳤다.
한동안은 제법 잘 나가서 나는 차츰 마음에 안정을 되찾게 되었고,
안톤 디아벨리 작곡가를 창조하신 신께 감사를 드리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긴장이 풀린 나머지 짧은 소나타가
처음에 올림 자 음이 표시되어 있는 사 장조라는 것을 완전히 잊어버렸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계속해서 흰 건반만
편하게 두드려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곳에서 악보에 특별한 표시가 없어도
사 음의 아래에 있는 올림 바 음의 검은 색 건반을 눌러야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어쨌든 나는 내가 쳐야 할 파트에 올림 바 음이 처음으로 나왔을 때
그렇게 쳐야 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 만만하게 옆 건반을 눌러 바 음이 잘못 나오는 바람에
음악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거슬렸을 튀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뻔하지!"
미스 풍켈 선생님이 다시 숨을 식식 소리나게 몰아 쉬며 연주를 멈췄다.
"뻔해! 조금만 어려운 게 나와도 금방 틀려 버리지!
넌 눈도 없니? 올림 바잖아! 여기 이렇게 크고 확실하게 씌어 있잖아!
똑똑히 보라구! 다시 한번 처음부터 해! 하나 - 둘 - 셋 - 넷…"

내가 왜 두 번째도 똑같은 실수를 저질렀는지는 오늘날까지도 잘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아마도 곡 전체를 올림 바음으로만 치고 싶을 정도로
음표마다 올림 바음을 치려고 했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스스로에게 억지로 강요하면서
올림 바를 치지 않을 것을 무진장 노력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아직 올림 바를 치면 안 돼, 아직 아냐… 아직…
그러다가 이미 잘 알고 있었던 부분에서 그만 올림 바 대신 바 음을 눌러 버렸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