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학의 교육 2/[인터넷성경교육]

제59과 사무엘상(3): 사울과 다윗 (16-31장) 2

好學 2012. 3. 18. 07:12

제59과 사무엘상(3): 사울과 다윗 (16-31장) 2


2. 왕궁에서의 다윗(17장-20장)

 

2-1. 궁중의 악사 다윗(16:14-23)

 

사무엘서 기자는 다윗을 이스라엘의 역사의 중앙에 서게 만든 두 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있다. 한 에피소드에선 다윗이 사울의 고통을 치료하는 젊은 음악사로 등장하고(16:14-23), 다른 에피소드에선 다윗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골리앗을 무찌르는 용사로 등장한다(17:1-18:5). 다윗에게 하나님의 신이 임하신 후에 사울은 반대로 악신을 경험하게 되었다.(16:14).

사울의 신하들은 다윗을 추천하여 그로 하여금 사울 앞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자로 삼도록 추천하였다. 사울은 이 추천을 받아들여 이새의 집에 기별하여 다윗을 데려오도록 지시했다. 사울은 다윗을 보고 크게 기뻐하여 자기를 위해 일하게 하고, 자기의 병기를 드는 자로 삼았다. 그리고 이새에게 사람을 보내어 다윗을 자기와 함께 있게 하라고 부탁했다. 그 후에 때때로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사울을 찾아왔다. 그러나 그때마다 다윗은 악기를 연주하여 사울을 상쾌하게 했으며, 악신을 사울로부터 떠나가게 만들었다(16:14-23). 이러한 모습은 사울이 왕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다윗에게 의지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2. 골리앗을 죽은 용사 다윗(17장)  <참고 지도: 다윗과 골리앗>


  두 번째 에피소드(17:1-18:5)에서도 사울은 왕으로서의 제 역할을 감당하지 못한다. 블레셋 사람들은 사울의 정신이 쇠약해졌다는 말을 듣고 믹마스 전투에서의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서 군대를 소집하여 소고와 아세가 사이에 있던 에베스담밈에 진을 쳤다(1). '소고'는 '가시가 많은 곳'이란 뜻을 가진 이름으로, 유다 산지와 블레셋 평원(세펠라) 지역에 있던 요새로서(수 15:35), 베들레헴에서 서쪽으로 약 22.5km 떨어진 곳에 있었다. 블레셋 군대가 유다에 속한 이곳에 진을 쳤다는 것은 이미 블레셋이 이스라엘에 대해 기선을 제압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세가는 '파헤친 땅'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으로, 아얄론 골짜기(수 10:12) 남쪽에 있던 도시로, 해발 약 120m 정도 되는 곳이었다.

에베스담밈은 '피의 경계선'이란 뜻을 가진 이름인데, 이러한 이름은 이곳에 잦은 전투로 많은 피를 흘렸기 때문에 붙여졌을 것이다. 이곳은 소고에서 북동쪽으로 약 2.5km 떨어진 곳에 있으며 (대상 11:13)에는 '바스담밈'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때에 사울과 이스라엘 군대는 블레셋 군대와 싸우기 위해서 엘라 골짜기에 진을 치고 있었다(2). '엘라 골짜기'는 '상수리 나무의 골짜기'란 뜻을 가진 이름으로, 이곳은 예루살렘에서 서남쪽으로 약 22.5km 떨어진 곳에 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시 이 지역에는 나무가 무성했으며, 골짜기 밑에는 다윗이 골리앗을 죽였을 때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작은 돌들이 깔려있다.

이곳은 여름철만 빼고는 항상 골짜기에 물이 흘렀으므로,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이 전투는 물이 마른 여름철에 벌어졌음이 분명하다(Hertzberg). '항오를 벌였다'(아라크)는 말은 '상대를 엄습하다', '일렬로 정렬하다'는 뜻을 가진 말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싸우기 위해서 방어진을 친 것을 의미한다. 블레셋 군사들과 이스라엘 군사들은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양쪽 산에 진을 치고있었다(3).

 

  이때에 블레셋의 진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그의 이름은 "골리앗"이었다. "싸움을 돋우는 자(아쉬 하베나임)는 '둘 사이에 있는 사람'이란 말로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기 위해서 두 군대 사이에 개입한 선봉장을 의미한다. 그는 블레셋의 '가드'사람이었다. 가드는 아세가에서 서쪽으로 약 8.9km 떨어진 곳에 있는 블레셋 5대 도시 중에 하나였다(4). 이 지역에는 거인 족인 아낙 족속 함께 살고있었다(수 11:22). 아마 골리앗도 이러한 거인족의 후예였을 것이다. 그의 신장은 여섯 규빗 한 뼘이었는데(한 규빗-45cm, 한 뼘-13cm), 이는 약 283cm나 되는 큰 키였다.  

 골리앗은 최소한 270cm 이상 된 장대한 신장을 가진 거구였다. 그는 머리에 놋으로 된 투구를 썼고, 몸에는 "어린갑', 즉 천 위에 비늘 모양의 놋이나, 철판 조각을 붙여서 만든 갑옷을 입었다. 그런데 그 갑옷의 무게는 놋으로 오천 세겔(한 세겔-11.5g), 즉 57.5kg이나 되었다. 그는 다리에는 다리를 보호하는 "놋 경갑"을 쳤으며, 어깨 사이에는 놋 단창을 메었다. '놋 단창'은 어깨의 뒷  부분에 차는 창을 가리킨다. 그의 창 자루는 베틀채와 같았는데, 이는 멀리 던지기 위해서 창 자루에 고리가 달린 가죽끈을 감아 놓은 창의 모양을 표현한 것이다.

 

그가 가진 창날은 철 육백 세겔, 즉 7kg나 되었다. 이와 같이 블레셋  군대의 선봉장이었던 골리앗)은 신장이나 무기 등에서  보통 사람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었으며, 마치 우뚝 솟은 난공 불락의 요새와 같이 보여졌다(4-7). 골리앗은 이스라엘을 향해서 서로 대표를 선택하여 결투를 하고, 지는 편이 이긴 편의 종이 되기로 약속하자고 외쳤다(8-10). 이 이야기를 들은 사울과 이스라엘 군대는 크게 두려워하며 떨고 있었다(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