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人生/[우주만물]세상만사

ACT 1. 창공의 시대 (Age of flight)

好學 2012. 2. 11. 04:42

ACT 1. 창공의 시대 (Age of flight)


 

인류역사의 시작부터 인간의 가장 오래된 꿈은 하늘을 새처럼 나는 것이었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이 꿈을 이루기 위해서 수많은 도전이 있었다. 그러나 새와 같이 날아보고자 하는 꿈은 이루어지지 못했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비롯한 대부분의 선구자들은 실패의 대가로 목숨을 잃었다.

 

[라이트 형제]

인간이 하늘을 날고 싶다는 꿈을 이루게 된 것은 20세기에 이르러서 였다. 1903년 12월 17일 미국의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정신을 가졌던 두 젊은 청년 라이트형제에 의해서 드디어 인류역사상 최초로 3차원의 공간에 공기보다 무거운 기계를 자력으로 비행시키는데 성공한 영원히 기억될 사건이 키티호크의 언덕에서 벌어졌던 것이다. 이날,이후 인류는 이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완전히 새로운 시대를 맞게되었다. 그것은 바로 창공의 시대였다.

[최초의 비행 - 1903, 12, 17]

인류의 역사에 영원히 기억될 이 역사적인 사건이 있게 되자 창공의 시대가 개막되었고, 마치 봇물이 터진 듯 수많은 도전적인 모험가들이 나타났다.

특히 유럽에서는 많은 기술자들이 미국에서보다 비행기를 더욱 발전시켜 세상을 놀라게 하는 일이 계속 벌어졌다. 특히 1917년 루이스 블레리오트는 비행기의 균형유지를 위해서 전통적인 형태의 주익과 꼬리날개를 갖춘 단엽기를 개발해내기에 이르렀다. 비행기의 혁신이 계속되면서 속도, 고도, 장거리비행등에 대한 도전과 기록경신이 세간의 화제가 되었으며 이러한 기록을 위해서 새로운 비행기가 속속 등장했다. 물론 이러한 기록에 도전하는 조종사들은 최고의 모험가들로서 대중의 인기를 누렸다. 조잡하고 불안정한 비행기를 몰고 세상을 내려다보면서 최고의 기록을 세우기위한 도전이야말로 이시대 젊은이들의 꿈이었던 것이다. 누가 더빨리 비행했는가? 더 높이 날았는가? 더 멀리 날았는가? 하는 것이 세상의 관심을 끌었고 국가적으로도 경쟁적으로 더 우수한 비행기를 제작하기 위한 경쟁이 시작되었다.

초창기의 각종 기록들

Year

Speed (속도)

Distance (거리)

Altitude (고도)

1909

47.85 mph

(bleriot on a Bleriot XII)

145.59 miles

(Henry Farman on a Farman)

1,486 eet

(Latham on Antoinette)

1910

68.2 mph

(Levlanc on a 100-hp Bleriot)

363.34 miles

(Tabuteau on a 60-hp Maruice Farman)

10,476 feet

(Legangneux on a 50-hp Bleriot)

1911

82.73 mph

(Nieuport on Nieuport monoplane)

449.2 miles

(Gobe on a Nieuport monoplane)

12,828 feet

(Harros on a Bleriot XI)

1912

108.12 mph

(Verdines on a Deperdussin)

628.15 miles

(Fourny on a Maurice Farman)

18,405 feet

(Garros on a Morane-Saulnier)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새로운 기계(비행기)와 그 조종사들이 가장 큰 활약을 하게 될곳은 바로 전장이었다. 1차세계대전을 통해서 비행기는 전장의 병기로서 그 첫선을 보이게 될것이었고, 바야흐로 3차원의 공간을 지배하기 위한 전쟁무기로서의 비행기가 그 위력을 과시하게 될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한정된 지역에 여러나라가 국경을 마주보면서 역사적으로 항상 큰 전쟁이 주기적으로 벌어졌던 유럽, 1815년 영국과 프러시아가 전유럽을 전화로 몰아넣은 나폴레옹을 워털루전투에서 물리친후 100여년간 세계는 평온했다. 하지만 이것은 표면적인 면에서의 평화였다. 산업화와 식민지 쟁탈전에 들어간 제국주의 물결이 온 세계를 뒤흔들었으나 열강끼리의 전면적인 전쟁은 없었으며, 특히 유럽의 여러 국가들은 서로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불안한 충돌이 몇차례 있기는 했으나 전면적인 전쟁의 기운은 찾을수가 없었다. 그러나 차츰 자국의 이익을 외치는 국수주의자들이 늘어나게 되었고 100년에 걸친 평화는 위협을 받고 있었다.

 

[ 독일육군의 포병 훈련, 무기의 발달속도가 가속되는 군비증강 시절의 모습이다. ]

마침 제국주의에 더해서 더욱 그 전성기를 맞이한 산업혁명에 의한 기술의 발전은 전쟁무기에도 큰 발전을 이룩하고 있었다. 이 무기들에 의해서 전쟁의 본질은 바뀌게 될 운명이었고 각국은 자신들이 가진 무기들이 얼마나 큰 파괴력을 가지고 있는지 시험해 볼 기회도 없이 경쟁적으로 군비를 확장해갔다. 기관총과 장거리 대포등이 발전하면서 기마병의 돌격으로 상징되는 구세대의 전쟁은 이제 과거의 것이 되었다. 이제는 전쟁이 발발하면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병사들이 이러한 무기들에 희생될 것이 불을 보듯 뻔했으나 군의 지도부는 아직 이런 무기들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사용할 것인지 내다볼 수가 없었다. 단지 지도를 펼쳐놓고 손으로 짚어가면서 무조건 공격을 생각하는 구 시대의 전략만이 존재했던 것이다. 각국의 군비경쟁은 치열하게 진행되었고 이런 신무기들이 속속 배치되었다. 각국의 군대는 이런 신무기로 무장을 갖춰 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무기를 제대로 사용해본 전투를 경험하지 못했 던 지휘관들은 그들의 명령이 얼마나 처참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것에 대해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