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神學/[韓國信仰人]

한경직 목사

好學 2012. 1. 27. 21:07

한경직 목사

 

 

하나님이 세워주신 교회 

 

날로 팽창해 가는 교회의 급선무는 교회의 머리가 그리스도임을 밝혀 교회의 참된 구심점이 흔들리지 않게 하는 일이었다. 

교회창립 일주년 때에 한 목사는 "교회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설교한 바 있다. 

 

(1)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몸이다. 

그리스도가 분열될 수 없는 한 교회의 통일성과 공동성이 파괴될 수 없다. 

사업보다도 인화가 더 중요하다. 

다양의 극치 속에서도 조화를 찾아 총화의 아름다움을 드높이는 것이 교회의 참 모습이다. 

인간은 항상 인간의 부족과 유한성을 인지해야 한다.

진리수호를 빙자하여 평범한 자기의 고집을 고집하거나 교리수호를 구실로 주도권의 야심을 가지고 분열과 불화를 초래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머리에 또 하나의 가시관을 씌우는 과오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교회의 머리는 어제도 오늘도 영원히 변치 않는 그리스도 자신이심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2)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는 말씀을 명심해야 한다. 

"그 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여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엡 4:16)하신 말씀은 교회성장의 정도를 말하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하셨다.

 

(3) 교회는 본질적으로 신적인 교회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사회를 봉사하되 교회가 세속화되어서는 안된다. 

교회가 세상을 섬길지언정 세상의 대접을 받고자 하는 것을 잘못된 자세이다. 

교회가 비록 세상에 있어서 세속문화에 접하고 있으나 하나님의 전으로서의 교회됨과 그리스도의 지체로서의 교회됨을 나타내고 수호해야 한다. 

교회는 반드시 주고 돕는 손을 활짝 펴서 가난한 자, 병든자, 눌린자, 소외된 자의 대변자가 되어야 하고 또 저들을 위하여 최대의 섬김의 도를 이행해야 할 것이라고 교훈하였다. 

 

(4) 이 교회는 우리 하나님이 세워주신 교회요,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이루어진 교회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불쌍히 여기셔서 특별히 북에서 토지를 빼앗기고 집을 잃고 허둥지둥 남쪽으로 살 길을 찾아 38 선을 넘어온 많은 피난민들을 위하여 세워 주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영락교회는 어떤 개인이나 혹은 몇몇 사람이 세운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세워주신 교회라고 누누히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세워주신 교회이기에; 

 

(1) 세워주신 이의 뜻에 순종하는 겸손이 있을 뿐이다. 

(2) 은혜와 자비와 구원의 손길로 세워주신 교회이기에 그저 감사와 봉헌이 있을 뿐이다.

(3) 교회를 세워주신 이의 원대한 뜻과 섬세한 청사진에 대한 경탄과 승복이 있을 뿐이다.

(4) 세우신 이가 그의 선하신 뜻에 의하여 맡기신 일에 충성을 다할 뿐이다.

(5) 세워주신 이의 뜻을 찾아서 그의 아름답고 선하고 완전하신 뜻을 분별하고 증거하는 일 외에 다른 무엇이 있을 수 있겠는가?

(6) 내 꿈,내 이상,내 설계,내 청사진,내 주장, 내 견해,내 수완,내 판단, 내 능력을 앞세워서 고집하는 태도를 하나님께서는 결단코 허락하시지 않는다. 

 

한목사의 목회로 베다니 전도교회는 날로 성장 성숙하여 갔다. 

특히 베다니 교회는 명실공히 [탈출성도들의 만남의 장소]'[피난민들의 상호위로의 집] [신앙의 자유를 얻은 감사와 기도의 제단][혈육이산의 아픔을 달래는 몸부림의 안방][조국분단의 분함을 호소하는 눈물의 밀실][무너진 제단을 기필코 되찾아 수축하리라는 서원의 다락방이 되었다. 

 

교회의 기반을 더욱 공고히

 

네 가지 지도방침 

네 가지 지도 방침이라 함은 곧 영락교회가 걸어 나아가야 할 다음과 같은 신앙노선을 의미한다. 

(1) 성서중심의 복음주의적 신앙 

(2) 경건한 청교도적인 생활훈련

(3) 에큐메니칼 정신으로 교회 상호간의 협력과 연합 사업에 적극 참여

(4) 교회의 대 사회적인 양심의 구현이다. 

 

첫째로, 복음주의적 신앙이라 함은 성경중심, 그리스도 중심, 십자가와 부활 중심의 신앙을 의미한다. 

구원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을 믿는 믿음을 통하여 개인적으로 주어지는 구원을 의미한다. 

구조적인 악을 위하여 사회개혁,사회혁명을 구원의 끝이라고 하는 사상과는 구별되는 말이다. 

모든 일에는 선후가 있는 법이라고 한목사는 힘 주어 말씀하신다. 

그리고 복음주의라 함은, 소위 자유주의 노선과는 대립되는 말이다. 

영락교회는 처음부터 복음주의 노선을 고수하여 왔다.[처단과 분열][좌와 우] 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영락교회는 한목사의 지도방침에 따라 온건하고 전통적인 성서중심의 복음주의적 신앙노선을 고수하였다.

독선적인 근본주의적 보수정통의 유혹에 기울어지지도 않았고 오만한 자유주의의 흐름에도 한눈 팔지 않았다. 

성서중심의 복음주의적 신앙의 길에서 흔들림이 없이 걸어왔다.

 

둘째는 청교도적인 생활훈련이다. 

청교도적인 생활이라 함은 온전히 거듭난 생활을 의미한다. 

회개하고 새사람된 사람의 생활을 의미한다. 

복음을 믿음으로 거듭난 사람의 생활의 열매는 다음과 같다. 

(1) 성결한 생활 

(2) 성실한 생활

(3) 근면하는 생활

(4) 절제하는 생활

(5) 사랑하는 생활하는 의미한다고 그는 말씀하신다. 

 

1945년 11월 25일 밤 교회설립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한목사님은,"우리 믿 음의 형제들은 청교도적인 생활을 영위할 것임은 물론..."하는 말씀이 있었다. 

한국교회가 진정 한국을 사랑하는 민족교회라고 자처한다면 오늘 우리 사 회의 온갖 부조리와 극단의 이기주의의 산물인 범법행위와 도덕부재의 세상을 만드는 일체의 퇴폐풍조와 공동체의식을 무시하는 이기주의의 행패와 범 신론적인 사상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비생산적인 그리고 낭비적인 풍토와 황 금을 만능의 도구로 생각하는 풍조를 안와좌시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신다.

진정한 정의로운 복지사회를 구현하려면 이 겨레의 일상생활 특히 예수 믿는 우리들의 실생활만이라도 반드시[질박 검소][근면 정직][성실 절제][청정 무사]의 기풍이 안과 밖에서 싹 터야 하겠다고 역설하신다. 

신문에 보도된대로 지난번 부활절 메시지의 말씀에서도 우리 사회에 심화 되어가고 있는 허욕과 사치,무분별한 낭비를 걱정하시면서 절제하는 생활을 강조하신 바있다. 

 

셋째는 에큐메니칼 정신이다. 

에큐메니칼 정신이라 함은 협력,협동,동참, 참여의 정신을 의미한다. 

[백화만발]이란 말로 표현하는 꽃의 세계를 볼 때에 그 다양성과 통일성은 실로 놀라마지 않는다. 

풀이나 나무, 새나 짐승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한 그리스도를 믿으나 그 이해와 표현,그리고 각기 강조하는 점이 다소 다를 수가 있다. 

그러므로 교파가 다르고 이에 따라 정치 예배의식 등이 다소 다르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비록 교파는 다르지만 교파를 초월해서 온 교회 가 다같이 당면하는 일 즉 국가, 민족 사회를 위한 봉사나 복음전파에 있어서,서로 앞장 서서 협력할 줄 알아야 한다고 역설하셨다. 

이종성목사는 "한경직목사는 일찍 세계교회에 눈뜨셨고 한국교회의 갈 길 을 잘 알고 계셨다"고하였다. 

한 목사는 세계를 전도의 장으로 삼아 땅 끝까지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에 협력하자는 뜻이라고 설명하신다. 

온세계의 형제들과 연합하여 하나가 되어 서로 협력하는 가운데 교회의 사명을 다하자는 뜻이라고 말씀하신다. 

 

넷째는 올바른 사회봉사와 사회참여이다. 

우리 주님은 죄인을 불러 영혼을 구원하셨을 뿐만 아니라 병든 자를 고쳐 주시고 주린 자를 먹이시고 슬픔 당한 자를 위로하셨다. 

그리스도는 지금도 교회를 통하여 이 일들을 계속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교회는 전도를 할 뿐만 아니라 사회를 섬기는 많은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의료사업, 사회복지사업,교육사업,모든 문화사업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구원받은 성도들이 살만한 사회와 국가를 이룩하기 위하여 힘을 써야 할 것이다. 

곧 정의가 확립되고 인권이 존중되며 자유가 보장되는 자주 국가를 건설하기 위하여 힘을 써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신다. 

 

사회참여여 문제에 관하여는 다음과 같이 간단 명료한 말씀을 하셨다. 

(1) 교회와 정치는 반드시 분리되어야 한다. 

(2) 국가가 교회의 내정을 간섭할 수 없는 것처럼 교회는 정치에 직접 간섭함을 허용치 않는다. 

 

3. 그가 생각하는 목회자상 

 

한목사님께서 생각하시는 [이상적인 목회자상]은 어떤 것입니까 하고 문의한 바 있다. 

그는 지금까지 [이상적이란 말]은 생각해 본 바 없으나[성실한 목회자]란 말은 항상 염두에 두었노라고 하셨다. 

그가 생각하는 성실한 목회자란 우선 다음과 같이 이해하고 싶었다. 

(1) 거짓이 없는 목회자
(2) 언행일치,신행일치,표리상부의 사람으로서의 목회자
(3) 事神待人 持己 接物에 있어서 일호의 거짓이 없는 목회자 

 

한목사는 [성실한 목회자란?] 

1. 자기를 지키는 목회자라고 말씀하면서 딤후 2;15절을 제시하였다.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케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고 다음은 딤전 4:16절을 주셨다.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삼가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들은 자를 구원하리라"

그리고 구체적으로 다음 네 가지를 말씀하셨다. 

(1) 중생해야 한다. 

(2) 분명한 소명의식이 있어야 한다.

(3) 성막을 짓는 사람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4) 계속 성장해야 한다. 

 

2. 강단을 바로 지키는 목회자를 의미한다고 말씀하신다. 

(1) 성경 중심의 설교를 해야 한다. 

(2) 반드시 그리스도 중심이어야 한다.

(3) 언행일치의 설교를 해야 한다.

(4) 육신,영혼,가정,사회,국가적 생활에까지 미치는 설교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5) 뭇 사람의 손을 잡아 주는 설교가 되어야 한다.

(6) 시대를 통찰하는 십자가 중심의 설교

(7) 기도가 따르는 설교

(8) 뭇 양에 관한 실존적인 메시지가 담긴 설교

(9) 종국적으로는 죄인을 구원하는 설교로서 강단을 바로 지키는 목회자가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3. 교회를 운영하는 책임이 있음을 아는 목회가 되어야 한다. 

(1) 공평과 화평과 관용으로 다스린다. 

(2) 뭇 양을 돌보되 길 잃은 양,병든 양,약한 양을 돌봐야 한다.

(3) 사업의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

(4) 바른 신앙노선으로 인도하는 지도방침이 분명해야 한다. 

 

은 퇴

1. 원로목사로 초대 
한목사는 신의주에서 13년간, 영락교회에서 27년간,40년목회를 일기로 일선에서 은퇴하셨다. 

만사는 다 [때]가 있다.

[나는 때]가 있으며 [죽는 때]가 있고 [시작한 때]가 있으니 [끝나는 때]가 있다.

70세를 고희라고 한다.

살만치 살았다는 뜻도 있겠지만 인간의 수명의 가장 귀한 단계에 도달했다는 뜻도 있다. 

이 중요한 단계에까지 오르는 사람이 많지 않기에 고희라고 했다고 생각한다.

한목사는 정년은퇴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소감의 말씀과 감사의 말씀을 하신다.

"어언 내 나이도 70이 되었으며 고희의 수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다. 

더구나 폐결핵으로 앓고 있을 때에 3년만이라고 이 생명을 더 해주시면 하는 소원의 기도를 드렸는데 이렇게 건강하게 고희의 수를 누리다가 정년 은퇴할 때까지 일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할 뿐이다. 

나의 이러한 감사에는 특별한 의미가 따른다."고 하시면서 

(1) 지금까지 많은 충성된 종들과 같이 일하게 하심을 감사한다. 

우리 교 회는 가장 어려운 때에 어렵게 건설된 교회이다. 

어느 한 사람이나 몇 사람의 손이 아니라 부지기수의 믿음의 손길과 충성된 발길이 이 교회 건립의 거름이 되었음을 감사한다.

(2) 우리 교회는 태평성대 속에서 태평가를 구가하면서 건설한 교회가 아니다. 

우리의 때는 난시요, 전시였다. 

우리의 건설은 나라와 유관하고 민족과 유관한 건설이었다. 

국가와 민족에 보탬이 되는 섬김의 건설이었음을 감사한다. 

전시가 아니었던들 모자원 같은 기관이 설립되었을리 만무한다.

탈출의 비극이 없었던들 대광학교와 같은 교육기관이 서둘러 설립되었을리 만무하다. 

전쟁으로 인하여 불우한 소년 소녀들이 시장과 길거리에서 방황하지 않았던들 영락중상업 교등학교를 야간학교로 설립하지 않았을 것이다. 

전란으로 말미암아 사상적으로 도덕적으로 혼란해진 모습이 없었던들 우리의 전도열이 그렇게 높지 못했을 것이다. 

어려운 때에 필요한 어려운 일을 하게 하시고 성취케 하신 일들이 사회와 민족을 위한 것들이 되게 하심을 감사한다. 

(3) 하나님의 은혜로 교회의 성장이 일취월장하여 성숙에의 단계로 들어갈 수 있는 기초 작업을 할 수 있었음을 감사한다. 

기초가 영원히 흔들리지 않기 위하여 신앙의 동지들과 손잡고 기도하며 일하게 하심을 감사한다. 

감사의 기도는 최대의 힘임을 경험하였다. 

감사의 기도는 만족과 평안을 선물로 안 겨주고, 감사의 기도는 은혜를 은혜로 알게 하는 믿음의 선물이 되게 하며, 감사의 기도는 나를 겸손에의 길로 갈 수 있는 비결임을 보여준다.

(4) 정년 은퇴는 고갯길을 오르는 길손이 정상에 올라 땀 씻으며 온 길과 갈 길을 바라보면서 심호흡을 하는 것과 같음을 느낀다.

(5) 목사의 기도는 축복의 기도요,감사의 기도요, 간구의 기도인 동시에 목회자의 기도는 땀의 기도요,고뇌의 기도이다. 

때로는 눈물의 기도요,맥박의 단절을 느끼는 숨가뿐 기도이다. 

목사는 현직에 있어도 목사요 은퇴했어도 목사인 까닭으로 기도의 내용과 그 특성이 달라질리 만무하다. 

그러나 왠지 더 자유로운 심정을 가지게 된다. 

기도의 폭이 넓어짐을 느낀다. 

기도 의 시간이 더욱 많아짐을 감사한다.

(6) 은퇴는 필연적으로 일종의 고독감을 같은 것을 수반하기 쉽다. 

그러나 새로운 비죤을 주시고 힘과 건강이 미치지 못할 정도의 일을 주심으로 고독 이란 것이 발 붙일 곳이 없게 하신다. 

수많은 신앙의 친구들이 주위에 있음을 감사한다. 

깨끗하고 조용하고 아름다운 환경을 주심을 감사한다. 

각종 나무를 주셨고 풍요한 열매를 주셨기에 감사할 뿐이다. 

자녀들이 가까이 있어서 고독을 몰아 내 주기 때문에 나는 감사를 생산하는 경험이었다. 

그러므로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하는 찬송이 있을 뿐이다. 

" 건강이 좋지 않아 오래 살 줄 몰랐는데 하나님께서 은혜로서 도와 주셨으니 하나님께 감사한다. 

은퇴하는 자에게 도에 지나친 말씀을 해 주셨는데 나는 영락교회 목사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 하였으니 하나님께 부끄럽다. 

영락교회가 축복받은 것은 당회원들의 충성, 권사들의 노고,남녀집사 및 권찰들의 수고,그리고 교회 학교 교사들과 성가대원들의 헌신적인 노력 때문인 것이다. 

이 모든 사람들이 교회를 사랑하였다. 

은퇴하는 이 때에 나는 사과해야 할 일들이 있다.

교인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에 그들과 동참하지 못했으며 나를 만나지 못하고 간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백낙준 박사는 박조준목사 위임식 설교에 "포도나무는 새 가지가 나와야 한다"고 하였다. 

이제 저 보다 는 모든 면에 뛰어난 사람을 세워주셨으니 저보다 더 사랑하고 도와주셔야 한다." 고 말씀하셨다.

훌륭한 목회를 끝내고 은퇴라는 한경직목사의 겸손한 답사였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 

"나는 나라를 사랑한다."고 하시는 한목사의 말씀을 그대로 옮겨 기록한다. 

말씀하신 것을 받아 썼으니 다소의 차이가 있을런지 모르겠다.

"그 동안 나는 여러 차례 외국에서 집회를 인도하키 위해 초청강사로서 갔던 일이 많다. 

모든 집회가 유의했고 은혜스러웠다. 

그러나 내가 누구에게도 은혜를 끼쳤다는 생각을 해 본 일이 없다. 

언제나 나 자신이 여행을 통하여 은혜를 받게 마련이다. 

강의 내용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시작하여 말씀을 전달하는 과정,수 많은 믿음의 친구들과의 사귐을 가지는 일,외국 풍물을 새로운 각도에서 경험하는 중에서 얻은 바가 많다. 

외국에 여러번 가서 여러분을 만나 말하고 사귀는 중에 미국에서는 몇 차례 시위의 대상이 되어 본 일이 있다. 

시위를 벌이는 분들 중에는 친분이 있는 친구들도 있었다. 

시위의 목적은 당시의 정부체제에 대하여 왜 말이 없느냐는 것이었다. 

때로는 뜻하지 않게 없는 사실을 만들어 유포시키는 일도 있었다. 

한편 섭섭한 마음이 없지 않았으나 그러나 별로 쾌념치 않았다. 

그리고 변명 겸 내 소신을 밝힐 내 믿음의 양심에 따라 나라를 사랑하는 까닭에 나는 나의 애국의 길을 걸을 따름이다. 

이 문제에 관하여 우리 교회의 시무장로님 중에서도 문의한 적이 있었다. 

다시 말하면 어째서 말이 없느냐 하는 말이고 때로는 어째서 침묵만 지키느냐고 물어온다. 

나는 다음과 같은 기본 입장을 생각한 후 기도하고, 기도한 후 다시 생각하는 중에 내 내심에 나 나름대로 간직하는 바 생각이 있노라고 하였다. 

 

 

(1) 강단은 시국 강연장에나 정치논단이 아니라는 점을 항상 기억한다. 

(2) 다른 사람의 흠점을 거론하지 않는 대원칙을 잊지 않는다.

(3) 더구나 본인이 없는 곳에서 그 사람에 대한 공격적인 얘기를 공개적으로 하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한다.

(4) 어느 특정인에 관한 일은 언제나 직접 그 개인에게 조용히 충고하고 주의를 촉구한다. 

그것이 정치적이거나 도덕적이거나 상관할 것 없이 그런 방법을 취하는 바 이 사사로운 면담의 대화의 내용이 비록 공적인 것이라 하여도 그 내용을 공개할 수 없는 것이다.

(5) 정치노선에 유관한 것은 나는 국가의 안보적 차원에서 심사숙고한다. 

안보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통제정책에 이용하는 폐단과 위험이 있다 하더라도 그 자체가 정말 국가안보에 미칠 가능성이 없다고 단언할 수 없는 한 안보위주의 길을 걷고저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오늘 우리의 상황은 언제나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실정이다. 

국제적인 역학적 균형의 이치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 위험의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 없는 한 언제나 지혜롭게 처신해야 한다. 

나는 나라를 내 생명과 같이 사랑한다. 

그러므로 공산주의는 나의 제일의 적이다. 

38도선이 우리 국토를 양단하고 북의 공산주의의 침략적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어 서 우리를 엿보는 사실이 엄연히 있는 한 우리의 문제는 우리 나라와 민족의 차원에서 모든 것을 보고 모든 것을 계산하지 않을 수 없다. 

일시적인 감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때로는 깊은 통찰력에 의하여 인내에 인내를 더하는 참을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정말 국가의 존망이 달려있는 위기가 닥쳐왔을 때에야 누가 무엇을 주저할 것인가? 

모두 몸 받쳐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6) 사회참여 문제에 대한 교회의 입장은 모름지기 두 가지 면을 생각해야 한다. 

사회복지에 유관한 사회참여는 국가의 손길보다 더 앞설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이것은 우리 신앙인의 쌍무적 사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다뤄야 할 사회참여 문제는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항상 사회질서와 국가의 안위 문제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언제나 공산당이 좋아 하고 공산당이 박수치고 공산당이 38선을 넘볼 기회를 주는 모든 물리적인 투쟁을 나는 찬성하지 않는다. 

 

상당히 오래 전 일이다. 

가까운 친구인 모 저명 목사의 부탁으로 어떤 모임에 갔었다. 

모두 기독교계 굴지의 인사들이 모였다. 

화제는 모종의 서명운동을 전개하여 국 내외에 널리 알려서 우리 국민의 여론의 소재를 밝힘과 동시에 보다 유효한 물리적인 행동의 봉화 구실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수일 후 C군이 찾아왔다. 

C군은 나의 친한 친구 목사의 자제이다. 

나를 자주 찾고 매우 유능한 청년이었다.

나에게 서명을 부탁하였다. 

나는 이미 본 바가 있고 생각한 바 있었기에 마음에 정한 바 있었다. 

이 운동의 결과가 유효하지도 못하려니와 늑대를 쫓으려다가 호랑이를 불러들이는 격이 되거나,혹 떼려 갔다가 혹 붙여오는 격이 될 것임이 명백하겠고 동시에 실효를 거두지 못하면서 공연히 대혼란만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문이 막 열린 군전도의 길이 막힐 것이 분명하였다. 

나는 기도하는 심정으로 서명을 사양하였다.

친구들은 모두 나를 못마땅하게 생각했을런지 모르나 나로서는 변할 수 없는 신념이 있었다. 

무위한 혼란은 공산당을 불러들이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언제나 생각해서 조심해야 한다.

공산주의 하에서는 자유? 인권? 생명? 아무 것도 없으며 아무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개인의 피해의식만을 앞세워 대중을 오도하는 일을 우리 신앙인들은 삼가야 할 것이다. 

특히 우리 신앙인들은 역사가 하나님의 수중에 있음을 기억하고 참아야 할 때에는 참아야 하고 침묵을 지켜야 할 때에는 침묵을 지키며 기 회를 기다려야 할 때는 기다리되, 결연한 행동이 필요할 때에는 사생취의 (捨生取義)의 자세로 행동을 취해야 할 것이다.

과거 R정권 때에는 나를 흥사단계 사람으로 오인하고 나를 질시하고 나를 경계하고 나를 경원하였다. 

그러나 처음 세운 나라의 기초가 튼튼해야겠다는 생각에 가능한 모든 협조를 아끼지 않았다.

C정권 때에는 그저 걱정만 하였다. 

하나님 앞에 기도로 걱정하고 또 도움을 청하였다.

P정권 때에는 나는 많은 어려움을 당하였다. 

초기 C씨기 기틀을 잡고 있을 때에는 민심 수습을 위하여 외국 특히 미국에 우리의 뜻을 전달하기 위하여 고 짐활란박사,최두선박사 등과 같이 민간 사절단으로 도미하여 많은 애를 썼다. 

중도에 주인이 바뀌었다. 

P씨가 정권을 잡았다. 

오도된 정보에 의하여 우리집 가택 수색까지 하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내가 국가를 대표하여 국위를 선양코저 외국에 나가있는 동안에 내 집을 수색하였다. 

물론 귀국한 뒤에 면대하여 정중한 사과를 받은 일이 있다. 

그러나 나는 국가의 안위를 앞세워서 할 일을 다 했을 뿐이다. 

국가의 안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못 마땅하지만 그렇다고 혼란을 조성하는데 한 몫 낄 마음은 없었다. 

이는 오로지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요 예수 믿는 목사로서 공산주의자들을 제일의 적으로 보기 때문이었다. 

저들이 좋아하고 저들이 쾌재를 부르고 저들에게 발 붙일 기회를 주는 일은 결코 할 수 없다는 신념 때문이다. 

현 시점에서는 이것을 먼저 앞세워야 할 애국의 길을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굳게 서있다. 

고맙지만 사양하노라 

본당이 건축된 후 교회는 급성장하였다. 

이에 따라서 많은 부속건물이 필요하였다. 

노후한 구건물들은 하나하나 철거하게 되고 새건물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였다. 

목사 사택으로 사용하던 건물도 물론 말할 수 없이 낡은 건물이었다. 

당회가 의논하고 목동에 목사 사택을 한 채 지었다. 

넓은 대지에 이층 문화주택이라고 들었다. 

완성된 후에 그 사택으로 모시고자 하였다. 

그러나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당시 한목사의 심정은 매우 괴로웠다고 했다. 

입장이 난처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당회의 성의는 감사하지만 과연 목사가 교회 구내를 떠나는 것이 마땅한 것인가 하고 거듭 생각하여 보았노라고 하셨다. 

사택이 교회와의 거리가 멀어지면, 그 거리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교인들과의 거리가 멀어지는 것 같고 교인들과의 대화의 기회를 스스로 멀리하게 만드는 우를 범하는 것 같아서 그리고 이사할 마음이 없다고 하신 모앙이다. 

두거나 사모님의 태도는 더욱 완강하였다. 

가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좀더 넓게 편리하게 살기 위하여 목사가 교회 구내를 떠나 멀리 가는 것은 양심이 허락 지 않는다고 반대하였다. 

당회는 그런데까지 깊이 한목사님을 이해하지 못 하였다. 

부끄러운 일이다. 

해외 집회를 위하여 필요한 여비를 드리면 남은 돈은 언제나 반제하셨다. 

생활비를 성의껏 드리면 두 늙은이가 쓰면 얼마나 쓴다고 이렇게 많이 주느냐고 하시면서 꼭 필요하신 금액만 떼고 교회에 돌려주시었다.

그러므로 김준곤목사는 "한목사는 영원한 청교도다.

그가 청렴 청빈한 생활을 한다는 것은 너무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가 옷을 벗어주고 봉급을 털어주어서 사모님이 애를 먹었다는 많은 일화들이 있다.

모자원, 보린원,경로원,농아인 등 불우한 사람들을 돕는 교회 구호사업도 주님의 사랑의 사회적 실천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하는 일은 선전이 없다. 

오른손 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숨은 이야기가 더 많다. 

실천에 있어서 의식 과잉이 되어 북치고 나팔부는 사람들 가운데서 홀로 세미한 피리소리 같은 실천자! 그래서 더욱 성자답다."고 증언하신다. 

 

경험과 비죤 

영락교회는 27년간 목회하시고 은퇴하신지 어언 10년의 세월이 흘렀을 때 한목사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드린바 있다. 

"목사님에게 앞으로 다시 5년 간의 목회의 기회를 드린다면 어떻게 교회를 운영하시겠습니까?"

"나는 과거의 목회생활을 회고 성찰은 하면서도 만일 내게 다시 목회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렇게 혹은 저렇게 해보리라는 가상적인 생각은 꿈에도 해본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매우 어려운 질문이기에 대답할 수 없음을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전제하시면서 "다만 한가지만은 말할 수 있노라"고 하신 적이 있다.

"흔히 나이 많은 사람을 경험의 사람이라고 하고 젊은 사람을 비죤의 사람 혹은 꿈의 사람이라고 하지. 

경험을 무시하는 꿈의 전진은 새로운 창조와 개척을 가져올 수 있으면서도 저돌적인 행동방식으로 인하여 주변의 문제와 후속적인 문제 때문에 뜻하지 않은 부끄러움을 당할 우려가 있다. 

반면에 경험은 신중과 슬기를 동반하여 만사를 통찰과 전망의 맷돌을 서서히 돌리면서 결정하기 때문에 극히 건설적인 성과를 마련할 수 있지만 그것이 도를 넘으면 폐쇄적이어서 촌보의 전진이 없는 옛 것을 전수하는 낙오의 부끄러움을 당하기 쉽다. 

그러나 경험이 비죤에 발 맞추고 비죤이 경험과 어깨동무를 한다면 실수없는 전진적인 창조의 건설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이 시대는 꿈을 위주로 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dead hand ruling이라는 서양속담을 명심하고 시대적인 착오를 범하는 우를 보여서는 안될 것. "이라고 말씀하셨다. 

경험을 무시하지 않는 비죤,비죤을 경시하지 않는 경험이 양자가 중용의 도를 지켜야 한다고 하셨다.

꿈과 경험을 겸득한 지자 가 없는 것은 아니나 지나치게 내 꿈,내경험,내이상,내 능력만을 의존코자 하 는 우자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인간의지는 한계가 있고 인간의 힘도 한계가 있다.

이것을 아는 겸손이 있어 비로소 위로부터 주시는 뜻을 구현할 수 있는 참 인간이 될 수 있다. 

 

부탁하시는 말씀

한목사는 기회있을 때마다 교역자와 장로, 제직과 여러 교우들에게 다음과 같이 부탁한다. 

 

1.목사님들에게 

목사는 모름지기 겸손하고 성실해야 하며 생활화된 설교로서 그리스도의 산 증인이 되어야 한다. 

교역자란 먼저 그 자신이 구원받은 자로서 자신의 생활이 산설교임을 기억해야 한다. 

목사는 천국의 문지기로서 그 자신이 먼저 천국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부름받은 소명감이 분명하여 신령한 눈 이 날마다 밝아져 보는 것이 분명한 비죤의 사람이어야 한다. 

건축가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자기가 지으려는 집을 자신의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 하듯 교역자는 비죤을 가지고 목회에 충실히 임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계속 자기 성장에 매진하여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보여야 한다. 

목사는 자기 자신에 대하여는 완전히 죽어야 한다. 

물질,명예에 있어서도 그리고 성공에 대한 관심에도 완전히 죽어야 한다. 

그리고 목회자는 성령으로 충만하여 언제나 기도의 생활을 하며 기도와 묵상을 통하여 언제나 주님을 마음 속에 모시고 주님과 동행하는 생활을 계속하여야 할 것이다. 

 

2.장로님들에게 

공정하게 교회를 다스려야 하며 덕으로 교인들을 대하여야 한다. 

[말]을 조 심해야 하며 [교회평화]를 위하여 [자기]를 이겨야 한다. 

성서에 명시된 장로의 자격을 생활화하여 뭇교인 앞에 떳떳이 설 수 있어야 한다. 

 

3. 전도사님들에게 

우리 교회가 이렇게 커지니 전도사님들의 역할도 유난히 커져가고 있다. 

목사님들 보다도 도리어 교인 접촉이 많고 또 직접 접촉하기 때문에 전도사님들의 임무가 어떤 면에서는 더욱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문자 그대로 선한 목자가 되기를 바란다. 

적절한 말씀으로 먹이고, 기도하고, 돌봐야 할 것이다. 

여러분의 발길이 닿는 곳에 축복이 같이 하기를 바라며 여러분의 음성이 들리는 곳에 크신 하늘의 위로가 수반되기를 바란다. 

 

4. 청년들에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를 지켜야 한다. 

[근 면],[성실],[정결],[사랑]을 최고의 덕으로 삼아 이를 기리고 생활화하여야 한다. 

나라를 사랑하라! 

나라사랑하는 참 길을 주안에서 찾으라! 

나라가 여러분을 부를 때에는 사생취의(捨生取義)하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5. 부녀들에게 

봉사와 섬김의 도를 힘써 지켜 교회 안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편만케 할 것이며 우리 교회의 아름다운 전통을 이어받아 전도사업에 가일층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6.학생들에게 

우리가 사는 20세기의 현실을 직시하세요. 

이 세기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지식이 팽창하고 기술이 고도로 발달된 시대이다. 

그런데 깊이 생각하라! 

지금은 이 지식, 이 기술이 도리어 전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소.

무슨 의미인지 설명할 필요가 없다.

[핵] 무기가 그 하나이다.

지식만능 기술만능이란 말도 옛 이야기이다. 

지식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술 만도 부족하다. 

이 지식, 이 기술을 바로 쓸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 

지식과 기술이 안겨주는 이 엄청난 힘을 인류의 복지를 위하여 바로 쓸 줄 아는 사람이 과거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교육은 지식과 기술에만 그쳐서는 안된다. 

이것들을 배우는 동시에 이 모든 것을 바로 쓸줄 아는 인간의 도야가 필요하다.

인간이 인간을 스스로 만들지 못한다. 

여기에 신앙문제가 들어온다. 

인간은 약하다.

인간은 죄인이다. 

구주가 필요하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를 믿어야 한다. 

신앙을 통하여 죄사함을 받고 새 사람이 되어야 한다. 

과학문명이 발전할수록 참 종교가 필요하다. 

오직 참된 신앙을 통하여 새 사람이 되고, 새사람이 될 때에 과학이 안겨 주는 모든 힘을 나 자신을 위하여 내 이웃을 위하여 아니,온 세계를 위하여 바로 쓰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될 때에 내 마음과 내 가정과 내 나라와 아니,온 세계에 평화와 행복이 깃들 것이다. 

사람은 약하다. 

내 스스로 원하는 일을 하지 못한다. 

나를 본래 지으신 조물주에게로 돌아가야 한다. 

 

7. 집사님들에게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시니 주님을 사랑하듯 교회를 사랑하라. 

[법]과 [규율]과[경우]를 초월하여 사랑과 화합으로 금도를 넓혀라.

모든 불의를 사랑으로 쫓아내어야 할 것이며 교회는 땅에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임을 기억하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인내로 교회 평화를 도모하라. 

 

8. 신학도들에게 

모든 학문 가운데 신학을 택한다고 하는 것은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한 마디로 소명감이다. 

곧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까닭이다. 

체험과 그 환경은 각각 다를 것이다. 

그러나 이 소명감만은 누구나 공통할 것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신학도들은 이 소명감이 분명해야 한다. 

그리고 이 소명감이 있는 신학도로서는 간단없이 "경건과 학문", 이 두 가지를 기억해야 한다. 

꼭 같지는 아니한 것이나 중생의 체험을 통한 새 사람이 되어야 하겠고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하신 성경의 말씀을 늘 기억하고 경건한 생활을 하도록 힘써야 한다. 

이러한 생활을 위하여는 매일 기도의 시간과 성경을 읽어야 할 것이다. 

그 리고 모든 신학에 관한 학문을 진지하게 공부할 것이며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말고 성경과 교회 역사를 통하여 내려오는 그 중심적인 조류를 파악하기에 힘쓸 것이다. 

언제나 그리스도의 몸은 하나요 교회도 하나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고 교역자는 우선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고 또 그리스도인의 최고 목표는 그리스도다운 그리스도인이 되면 그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이 때로는 십자가를 의미하는 바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최고 목표라는 것 을 기억하고 [믿음의 주요 온전케하시는 예수]를 바라보며 나아가기를 바란다. 

 

9. 교사들에게 

모든 교사들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어린 생명의 영을 맡은 청지기임을 알아야 한다. 

깨달음 없이 깨닫게 할 수 없으며 서지 못하고 서게할 수 없음 을 명심해야 한다. 

예수 믿는 교사는 이 민족의 새문화 창조의 역군임을 알아야 한다. 

사생동행 솔선수범의 곧 산교육임을 명심해야 한다. 

 

10. 공무원에게 

대한민국 공무원으로서 온 국민을 봉사할 수 있는 자리에 앉았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임을 기억하고 항상 감사와 기쁨으로 맡은 바 일에 충성을 다하여 봉사하기를 바란다. 

적은 일에도 충성하고 꾸준히 충성하기를 바라며 특별히 국가가 어려움을 당할 때에는 생명까지 바칠 각오가 있어야 한다. 

성경에 "죽도록 충성하라"고 하신 말씀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여러분 하나 하나는 우리 국가의 대표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 국민도 그리고 외국인들도 여러분의 행동을 보고 우리나라를 평가하게 된다. 

관존민비의 옛 사상을 온전히 버리고 권리의식의 자세도 씻어 버리고 문자 그대로 공복의 자세로 봉사해야 한다.

상식과 양식으로 모든 공무를 처리해야 하고 진정한 애국 애족의 정신과 올바른 자유민주주의 사상과 깨끗한 생활의 터전을 위하여 근면과 성실과 친절과 온유 겸손의 태도로 정말 민중을 위한 봉사자가 되기를 바란다. 

특별히 가난한 자,약한 자, 권세없는 자들을 잘 돌봐야 한다. 

이렇게 되면 실로 하나님과 사람에게 고임을 받고 국가 중흥에 큰 공헌을 하게 될 것이며 실로 보람있는 삶을 가지게 될 것이다. 

 

11.고학의 길 

한목사님은 숭실대학 재학시에도 고학을 했지만 미국 유학시에도 줄 곳 고학을 하였다고 한다. 

한목사님의 가정 형편으로는 고학하지 않고는 대학의 문을 들어설 수 없었다. 

그러나 숭실대학 시절의 고학은 돈벌어 학비를 조달한다는 생각보다는 고학하는 그 일 자체에서 큰 보람과 큰 뜻을 가질 수 있었다고 하신다. 

맡은 일에 취미와 성격에 적합했을 뿐만 아니라,하는 공부에도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하신다. 

미국유학 시절에도 한목사님은 계속 고학을 하셨다. 

학교에서 주는 대여장학금도 있었고 학비를 보조하여 주는 선의의 어른들도 있었으나 고학을 계속하셨다. 

남의 상점에 가서 아침 저녁 청소를 해 주기도 하고 클럽에서 웨이터 일을 하면서 숙식비를 벌기도 하였다. 

고학을 통하여 얻은 것은 그 일 자체의 기능적인 것이 아니라 그 일을 하는 정신과 뜻과 생활에 있음을 경험하였노라고 하신다. 

우선 약속을 지켜야 하고 시간은 엄수해야 하고 책임을 철저히 완수해야 하고 결근이 없어야 한다. 

맡은 일에 정성을 다하는 성실한 태도가 필요하다. 

일을 시키는 사람은 시키는 사람으로서의 만족을 얻게끔 하여야 하고, 일하는 사람은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유익함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신다. 

여기에 삶의 필요한 사회적인 훈련이 있고 인격적인 훈련의 요소가 듬뿍 있음을 느끼셨노라고 하신다. 

일을 시키고 일을 하는 사람 사이에 이뤄지는 바람직한 인간 관계에서 창조되고 얻어지는 근로의 보상은 매우 큰 것임을 경험하셨다. 

이것이 영구적인 직업이 아닌 임시적인 아르바이트라 하더라도 이 일을 통하여 얻어지는 직업에 대한 태도와 훈련의 뜻이 매우 큰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고 하신다. 

성실한 고학 생활은 성실한 사람이 되게 하는데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하신다. 

대광학교 초창기에 대부분의 학생들이 고학을 하는 불우한 학생들인 줄 알고 있다. 

종이봉지를 붙이고, 성냥곽을 붙이고, 라이터 돌을 팔고,신문을 팔고, 심지어 공사장에서 중노동까지 하는 학생들이 많았다고 들었다. 

이런 중에서의 교육의 성과는 매우 컸다고 생각한다. 

영락교회가 야간학교를 시작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주경야독이란 문자 그대로 교육을 실시하는데서 교육의 특별한 진가를 얻을 수 있었다고 기억한다. 

과외공부가 금지되면서부터 대학생들의 아르바이트의 범위가 매우 넓어졌다. 

상점,백화점,식당,걸거리에서의 교통안내 등 그 영역이 굉장히 넓어졌다. 

모두 자신있게 맡은 일에 임하고 있는 모습과 하고 있는 일에서 뜻을 찾고 보람을 얻는 그 자세는 참으로 만족하게 보인다. 

육체적인 일을 천시하는 우리들의 전통적 습성에서 점차 탈피해가는 과정을 통하여 바람직한 직업관이 확립되기를 바란다.

타골의 다음 시귀가 생각난다. 

하나님은 굳은 땅 갈고 있는 농군의 곁에 계시며 돌을 부수어 길 만드는 사람과 같이 계신다. 

하나님은 뜨거운 쪼약 빛 아래서 쏟아지는 소나기 맞으며 일하는 사람들 먼지 뒤덮인 옷 걸친 사람들과 같이 계신다. 

더러워지고 남루해진들 무슨 상관이 있으랴 일하면서 그를 만나고 땀 흘리면서 그의 곁에 있어봐요 1 

뜻 깊은 시라고 생각한다.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게 된다. 

각 분야에 걸쳐서 그의 뜻을 구현하는 일에 동참한다는 의식으로 직업을 선택하는 슬기는 고학을 통하여 얻을 수 있을 것임을 암시하여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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