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神學/[基督論]성경.교회.예배.

기독론 (基督論)

好學 2011. 12. 24. 22:53

기독론 (基督論)





그의 생일을 세상이 몰라 주었고 그의 죽음의 날을 위하여 교수대가 높히 번쩍

들렸는데 도대체 이 분은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 어떤 유명한 설교자가 이와

같은 말로 영원히 흥미를 잃지 않을 기독론의 중대한 문제를 제기하였다.

이문제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그의 공생에의 기간 동안에 위기에 처했을 때

에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다. 그는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

고 여려 사람들이 말하는 그에 대한 견해를 경펑하셨다. 그런데 그는 마침내 하

나님의 가르침을 받고 깨달은 베드로의 다음과 같은 축복된 신앙 고백을 들을

수 있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아직도 기독론의 문제는 논의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기독론의 문제

의 해답을 얻고저 애쓰고 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냐에 대한 참

다운 해답은 신약에서 찾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데 이 신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위하여 잘 알고 있던 사람들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위하

모든 것을 해로 여기는 사람에 의하여 기록되었다.


개 요

I. 그리스도의 본질 (The Nature of Christ)

1. 하나님의 아들 (신성)
2. 말씀 (영원한 先在와 활동)
3. 주 (품위와 주권)
4. 인자 (인간성)
5. 그리스도 (직위와 사명)
6. 다윗의 자손 (왕족의 혈통)
7. 예수 (구원의 사업)


II. 그리스도의 직무 (The Offices of Christ)

1. 예언자
2. 제사장
3. 왕


III. 그리스도의 사업 (The Work of Christ)

1. 그의 죽음

a. 죽음의 중요성
b. 죽음의 의미

2. 그의 부활

a. 사 실
b. 증 거
c. 의 미

3. 그의 승천

a.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
b. 높임을 받은 그리스도
c. 주권을 갖인 그리스도
d. 길을 예비하는 그리스도
e. 중재하는 그리스도
f. 무소 부재의 그리스도
g. 결론: 승천의 가치


I. 그리스도의 본질 (The Nature of Christ)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냐 하는 문제는 그가 지니고 있는 명칭과 칭호를 설명하거나 서술하는 것으로 최선의 해답을 줄 수 있다.

1. 하나님의 아들 (신성)

"인자" (Son of Man) 가 사람에게서 난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하나님의 아
들" (Son of God)은 하나님에게서 난 것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칭호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나타내고 있다. 인간이나 천사를 가리켜 하나님의 자녀라고
부르는 (욥2:1) 일반적 의미로 예수를 가리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칭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독특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 (The Son of God) 이다.
예수는 이 우주 안에 있는 어떤 사람과도 나누지 않은 독특한 관계를 하나님과
맺고 있다. 이와 같은 진리를 좀 더 확실히 설명하고 확신을 갖기 위하여 다음
과 같이 고찰해 보자.

(a) 그리스도의 자각 (The Consciousness of Christ)
그리스도의 자각의 내용이란 어떤 것일가 ?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어
떻게 인식하였을가? 예수 그리스도의 소년 시절의 사건을 기록한 유일한 작가인
누가는 예수께서 열두살 되었을 때에 있은 사건에 대하여 전해 주고 있다. 여기
서 예수는 두 가지를 특별히 의식하였다. 첫째로, 예수게서 하나님을 가리켜 아
버지라고 부르신 하나님과의 특수한 관계를 의식했다는 것을 뜻하며, 둘째로,
지상에서의 특수한 사명을 의식했다. 그러나 언제 어떻게 예수에게 이와 같은
자각이 생기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는 하나의 신비로 남아 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모양으로 우리들에게 오심을 생각할 때에 우리들은 "하나님
의 신비는 위대하도다." 라고 경건하게 부르짖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다음과
같은 예화는 도움이 될 것이다. 유아를 거울 앞에 붙들어 세워 놓으면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면서도 자신인 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성장하
게 되면 거울 속에 반사된 자기 모습을 보고 자신의 모습인 줄 알게 된다.
즉 다시 말하면 어린이는 자기 자신에 대한 자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 예수 그
리스도의 경우에 있어서도 마찬기지가 아닐가? 그는 언제나 하나님의 아들이였
다. 그러나 하나님의 메시야에 관련된 성경을 연구한 후에 그는 마리아의 아들
인 자기는 바로 하나님의 그리스도였다는 자가이 머리 속에 번갯불처럼 번득 비
쳤다.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 온전히 인간의 생활을 하였다는 사실을 고려해
볼 때에 신성에 대한 그리스도의 자각이 이런 모양으로 생기게 되었다고 생각하
는 것은 매우 타당하다.
요단강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의 내적 자각을 확증하는 하늘 아버지의 음성
을 들었다 (마3:17). 그리고 그는 광야에서 자기가 하늘 아버지의 아들임을 의
혹케 하는 사탄의 질문을 성공적으로 반박할 수 있었다.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
거든..." (마4:3) 후에 예수께서는 자기의 신성과 메시야직에 대하여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증언한 베드로를 칭찬하였다.(마16:15-17). 유대인의 공회 앞에서
만일 예수께서 자기가 하나님의 독특한 아들됨을 부인하고 다만 보통 일반 유
대인들이 말하는 대로 그저 단순히 하나님의 자녀라는 점을 시인했더라면 그는
죽음을 면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대제사장 앞에서 자기의 신성
에 대한 자각을 선언하였기 때문에 죽음을 면치 못했다.
그는 이와 같이 선언하면 사형 선고를 받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마26: 63-65).

(b) 예수의 주장 (The Claims of Jesus)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활동에 자기 자신을 견주어 말하였다. "내 아버지께서 이
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내가 아버지께로 나와서..."(요16:28)"아버지

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요20:21) 그는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지식과 하나

님과의 친교를 맺고 있다고 주장하였다.(마11:27,요17:25). 그는 자신 속에 하

나님의 존재가 계시되어 있다고 주장 하였다.(요14:9-11). 그는 하나님의 특권

즉 무소 부재성과 (마18,20)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권리와 (막2:5-10) 죽은 자를

이르키는 능력을 (요6:39,40,54,11:25,10:17,18) 갖고 계시다. 그는 인간의 운

명의 조정자와 심판자라고 선언하였다.((요5:22,마25:31-46).

그는 하나님만이 요구할 수 있는 충성과 복종을 인간에게 요구한다. 그는 그의

추종자들에게 절대적 복종을 요구한다. 예수의 뒤를 따르는 자들은 예수와 아주

밀접한 유대를 맺지 않으면 안된다. 왜 그러냐 하면 부모를 그리스도 보다 더

사랑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에게 합당채 않기 때문이다.(마10:37,눅14:25-33).

이와 같은 엄청난 요구는 모든 인간 중에서 가장 겸손하게 산 분이신 그가 하

신 것이다. 바울이 유대인임을 표명했듯이 예수께서 이와 같은 요구를 하신 것

은 매우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것이였다. 그리스도께서 신성을 지니신 분이라는

결론을 맺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악인이 아

니였다는 점과 광인이 아니였다는 점을 시인하지 않으면 안된다. 만일 예수 그

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할 때 실제로 그렇지 않다면 그는 선한 분이

라고 할 수 없으며 또 만일 하나님의 아들도 아닌데 그렇게 상상했었다면 그는

결코 현명한 분이 아니였다. 미치지 않고 똑똑한 사람은 자기의 완전한 인격과

탁월한 지혜를 부인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독특한 의미에

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였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밖에 없다.


(c) 그리스도의 권위(The Autrority of Christ)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가르침 속에서 "내 의견은 .... " "그럴지도 몰라." "내 생각에는..."

"그렇게 상상할 수도 있으리라"는 등의 애매한 표현은 찾아 볼 수 없다.

어떤 합리주의적 유대인 학자는 예수 그리스도게서 하나님의 권위를 갖고 말씀

하신 것을 인정하였다. 헨리반 다이크(Henry Van Dyke) 박사는 산상 수훈을 강

해사는 가운데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앙심이 있는 히브리인의 절대적으로 압도적인 통찰력에 의하여 그리스도는

자기 자신의 신앙에 규칙을 초월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겸허한 인류의 교사는

이간의 모든 행위를 제어할 절대적 권위를 갖고 있었다. 이 도덕 개혁가는 모든

다른 도덕적 기초를 부인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
(마7:24) 이와 같은 예수님의 간단한 말씀 가운데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라는 진리를 확증한 것을 상기시켜 준다.


(d) 그리스도의 결백성 (The Sinlessness of Christ)
회개하여 의롭게 되라고 사람들을 가르치는 교사 치고 자기 자신의 죄악과 불

완전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참으로 거룩하면 거룩할 수록 더욱 더

자기 자신의 유한성을 인정하고 자신의 죄악을 슬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예수의 말씀과 행위 속에서는 죄의 흔적을 조금도 찾아 볼 수 없다.

예수께서는 죄악에 대한 깊은 지식을 갖고 있었으나 자기 자신의 영혼 속에는

죄의 그림자도 갖고 있지 않았다. 도리어 모든 인간중에 가장 겸손한 그는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고 도전하였다.(요8:46).


(e) 제자들의 증언 (The Testimony of the Disciples)
유대인은 누구나 모세를 신성한 분으로 생각해 왔다. 그러나 그의 가장 열열한

제자들도 "성부와 모세와 성자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고 선언하지는 감히

못했다.(마28:19참조). 그 이유는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로

하나님의 본질을 나누어 갖고 있는 것으로 자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편 신악은 이와 같은 이적을 다음과 같이 전해 주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던 무리들이 있는데 이들은 예수의 여러 가지 인간성의 특징을 친히 보았

다. 그러나 후에 이들은 그를 神으로서 섬겼다. 또한 구원에 이르는 능력으로

그를 전했고 그의 이름을 힘입어 기도를 드렸다. 예수 사랑을 받은 제자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우주를 창조한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라고 기술하기를

주저치 않았다.(요1:1,3).

그리고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라고 경탄과 존경의 부르짖음을 발한 도마의 말을 아무 주저없이 인용하였다.

(요20:28). 스승이 먹고 마시는 것과 잠자는 것과 굶주리신 것과 목말라 하시는

것과 기도하시는 것과 우시는 것을 본 즉 스승의 인간성의 모든 면을 목도한

베드로는 후에 유대인들에게 예수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계신 것과 성령을 주실

수 있는 특권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과 (행4:12) 죄의 사유자가 되신다는 것과

(행5:31) 죽은 자를 심판하시는 이라고(행10:42) 말하였다.

베드로는 그의 두 번째 편지에서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지

어다."라고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하고 찬양하였다.

사도 바울이 육신을 입으신 예수를 친히 보았다는 기록은 없으나 (그는 영광스

러운 형체를 입으신 예수를 본 적은 있으나) 그는 예수를 친히 만나 본 사람들

과 직접 교제는 했다. 어려서부터 그의 생활 속에 침투해 들어온 종교심으로 하

나님을 공경하여온 바울은 아주 침착한 심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라고 하였으며(딛2:13)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신다고 하였으며 (골2:9)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支持者라고 하였다.(골1:17)

그의 이름을 기도 속에서 언급하였으며(고전1:2,행7:59 참조) 그의 이름을 축도

속에서 성부와 성령의 이름과 함께 사용하였다.(고후13:13).

초대 교회가 시작될 때부터 그리스도는 신으로 인정되고 또 섬김을 받았다.

기원 2세기 초에 로마의 한 관리는 기독 교인들이 새벽에 모여 "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섬기여 찬양한다."는 사실을 보고 하였다. 한 이방인 저술가는 "기

독 교인들은 아직도 팔레스타인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위대한 사람을 섬기고 있다."고 기록하였다.

이방인의 조롱조차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하여 증언해 주고 있다. 고대 로마 궁

전에서 하나의 제명을 발견하였다.

(3세기 이전의 것임) 나귀의 머리가 달린 인간이 십자가에 달려 있는데 그 앞에

예배를 드리는 태도로 한 사람이 서 있는 그림 밑에"알렉사메노스는 그의 신을

예배하고 있다."는 제명이 붙어 있었다.

헨리 반 다아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자의 찬송과 기도와 박해자들의 핍작과 회의주의자들의 조소와 조롱하는 자

들의 난폭한 희롱,이 모든 것들은 초대 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신을 대했다

는 사실을 분명히 입증해 주고 있다....

마치 아브라함 링컨의 추종자들이 그를 하나의 선하고 충실한 미국 국민으로서

생각했던 것과 같이 초대 기독 교인들은 예수를 친히 자신 속에 하나님을 계시

하는 자라고 보았다.)

그러나 우리들은 초대 교회가 성부를 예배하지 않았다고 추론할 필요는 없다.

실은 그와 반대로 초대 교회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릴 때에 예수의 이름으로 빌

었고 하나님께 그의 아들을 선물로 주신 것을 감사하였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너무나 생생하게 실감하고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

들이 一體라는 것을 의식했기 때문에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를 드리게 된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였다. 唯一神에 관한 구약의 가르침을 확고히 믿는 신앙과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는 확고한 신앙과 결합되어 삼위 일체의 교리를 형성하기

에 이르렀다.

다음과 같은 니케아 신조(the Nicence Creed)는 지금껏 많은 인용되었으며 아

직도 여러 경우에 열거되는 수가 있다. 그런데 이 니케아 신조는 초대 교회의

진실한 확실을 표명한 것이다.

" 우리들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즉 神중의 神이

요 빛중의 빛이요 참신 중의 참신이신 성부와 본질적으로 동일한 독생자들 믿는

다. 그를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만물이 창조되었으며 그는 우

리들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세상에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셔서 고난을 당하신 후

삼일 만에 부활하여 하늘에 승천하셨는데 죽은 자와 산자를 심판하시기 위하여

다시 오실 것이다."


2. 말씀 (영원한 선재와 활동)

인간은 말에 의하여 자기 자신의 뜻을 발표하며 다른 사람과 교통할 수 있다.

즉 인간은 자기의 언어를 통하여 자기의 사상과 감정을 나타낼 수 있으며 명령

을 할 수도 있고 자기의 의지를 나타낼 수 있다. 곧 인간은 자기의 말을 통하여

그의 사상과 인격을 전달할 수 있다.

사람의 인격을 완전히 알수 있는 길은 그의 언어를 통해서이다. 물론 외모로도

어떤 사람의 인격을 짐작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의 말을 들어 보지 않고는 그

의 인격을 온전히 파악할 수는 없다. 인간이 쓰는 언어는 그의 인격을 표현하

는 수단이 된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도 "그의 말씀"을 통하여 다른 존재와 교통도 할 수 있고

교제도 할 수 있다. 곧 하나님의 말씀은 그의 능력과 지혜와 뜻을 나타낼 수 있

는 표현 수단이다.

그리스도는 곧 말씀이다. 왜 그러냐 하면 그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목적

과 뜻과 행위를 계시하실 수 있고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서 세상과 접촉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자신을 우리들이 말을 통해서 세상과 접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말을 통하여 발표한다. 이와 같이 영원한 하나님께서

도 자신의 말씀을 통하여 자신을 계시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본체의 형상

이시나"(히1:3).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말씀이신 까닭은 그가 그의 육신으로

하나님을 계시하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멧세지를 전할 뿐만 아니

라 그가 곧 하나님의 멧세지이다.

이와 같은 계시자의 필요성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인간의 이성으로 헤아려 볼

수 없는 무한한 거리에 연한 알 수 없는 수백만의 천체로 구성되어 있는 대 우

주의 크기를 한 번 생각해 보라. 물질의 우주를 초월한 아득한 공간을 한 번 상

상해 보자. 그 다음에 이 모든 것의 근원이 되시는 유일신의 위대한 능력을 한

번 헤아려 보자, 한편 인간의 미천한 면을 살펴 보기로 하자.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의 키는 대개 여섯 자 정도이고 몸의 폭은 한 자 반 정도이고 사방 반

마일의 상자를 만든다면 그 속에 20억의 사람을 밀착하여 수용할 수 있을 정도

인간의 모습은 초라하다. 거기에 비하면 하나님은 얼마나 위대하시고 강대한가!

참으로 인간은 보잘 것 없지 않는가! 더욱이 하나님은 영이신고로 육안과 감각

기관으로서 파악할 수 없다. 그러면 이렇게 미천한 인간이 그렇게 위대한 하나

님과 어떻게 교제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생기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의 본질과 인격을 파악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자신을 예언자의 말씀과 꿈과 환상과 기타의 방법을 통하여 계시

하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은 이보다 더 분명한 해답을 갈망해 왔다.

"하나님은 도대체 어떤 분이신가? 이 질문에 대한 보다 명확한 해답을 주기 위

하여 역사상에 매우 엄청난 사건이 생기게 되었는데 곧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요1:14)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성을 취하여 인간의 인격을 통하여 영원

한 하나님을 계시하기 위하여 인간이 되었다."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

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히1:1,2)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리스도와 같으신 분이

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형상이시요"(히1:3).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골1:15).


3. 주 (주권)

성경 용어 사전을 한 번 훑어보면 "주"라는 말은 예수에게 주어진 매우 평범한

칭호 중의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 칭호는 그의 신성과 그의 존귀와

고귀성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a) 신성 (Deity)
이름 앞에 "주"라는 칭호를 사용하였을 때에 유대인과 이방인에 대하여 모두

神이 된다는 사사을 전해주고 있다.

헬라어로 "주"를 의미하는 "쿠리오스"(Kurios)라는 말은 헬라어로 번역된 구약

에 있어서의 여호와 (Jehovah)에 대등한 말이다. 그러므로 유대인에게 "주 예수

"라는 말은 분명히 神을 의 찬미하는 말이다. 로마의 황제가 자기 자신을 가리

켜 "주 씨자"(Lord Caesar)라고 불렀고 또 그의 신하들에게 그렇게 불러 주기를

요구한 사실을 볼 때에 이방인들은 황제가 神으로 자처하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다. 기독교인들도 이 용어의 의미를 이렇게 깨닫고 오직 참 하나님에게만

붙일 수 있는 칭호를 인간에게 붙이느니 보다는 차라리 박해를 당할 것을 선택

하였다. 오직 높임을 받기에 합당한 하나님에게만 "주"라는 칭호를 붙이며 또

그렇게 예배 하여야 한다.

(b) 높임을 받음 (Exaltation)
영원한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맺은 관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

호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역사 속에서 그는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죽었다. 부

활함으로써 "주"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행2:36,10:36,롬14:9). 본질상 그는

항상 신이시다. 그런데 그는 그의 업적으로 말미암아 주(Lord)가 되었다.

가령 예를 들면 어떤 청년이 억만 장자의 집에 태어났는데 그는 다른 사람의 노

력으로 쌓아올린 재산을 유산으로 받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노력

으로 모은 재산을 소유하는 것으로 만족한다고 하자,

그러므로 그는 자신하여 자기의 특권을 내버리고 평범한 일꾼의 위치을 취하여

힘써 노력함으로써 명예와 부귀의 위치를 쟁취하였다고 하자.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아들은 본시 하나님과 동등하나 인간의 몸을 입고 죄 없는 인간이 되

어 인간의 종이 되었다가 마침내 인ㄿ의 구속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

갔다. 그의 상급으로서 그는 만물 위에 뛰어난 주로서 높임을 받게 되었다.

그에게 있어서 이보다 더 적절한 보상을 없을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인류을 사랑하고 인류를 위하여 목숨까지 버린 그이 이외에 또

누구에게 인류를 다스릴 권리를 줄 수 있겠는가!(계1:5) 주님의 이와 같은 권리

를 수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게 되었으며 예수께서 십자가를 통하여 모든 인류의

마음을 지배할 수 있는 주권을 획득하게 되었다.

(c) 주 권 (Sovereignty)
애굽에서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기 자신을 구속주와 구세주로서

계시하였다. 시내산에서는 주와 왕으로써 계시하였다. 이 두 가지는 상호 일치

한다. 왜 그러냐 하면 구세주가 될 수 있는 분만이 인간의 통치자가 될 권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십계명이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

로라" (출20:2). 환언하면 "너를 구속한 나 하나님은 너를 다스릴 권리를 갖고 있다."를 의미한다.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초대 교인들은 참다운 그리스

도의 제자로서 멸망과 죄악으로부터 그들의 생명을 지배할 수 있는 主가 될 수

있는 권리를 소유하고 있다고 인정하였다. 그들은 값으로 산 것이기 때문에 그

들 자신의 것이 아니라 (고전6:20) 그들은 위하여 죽었다가 부활한 주님께 속해

있는 것이다(고후5:15) 그러므로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사람들이 예수를 주님이

라고 부른데는 다음과 같은 뜻이 내포되어 있다. "죽음을 통하여 나의 마음을

지배할 수 있는 주권을 갖게 된 분을 나는 온갖 힘을 다하여 예배하며 섬기고저 한다."

안식일에 병고침을 받은 사람이 자리를 들고 걸어가는 것으로 말미암아 비난

당하엿을 때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요5:11). 그는 마음의 논리

를 갖고 본능적으로 그에게 생명을 준 이는 그에게 그 생명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줄 권리도 갖고 있다고 알았다. 만일 예수가 우리들의 구세주라

면 그는 우리들이 主도 되지 않으면 안된다.


4. 인 자 (인간성)

(a) 누구이신가? 히브리어의 용법에 의할 것 같으면 "누구 누구의 아들"이라는

말은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다. 가령 예를 들면 "나라의 본 자손들"은 진리와

축복을 함께 나눈자들을 가리킨다 (마8:12). "부활의 자녀"라는 부활의 생명에

참여 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눅20:36).

"평안을 받을 사람"(Son of Peace)은 평화스러운 성질을 갖고 있는 사람을 말

한다.(눅10:6)." 멸망의 자식"은 멸망받을 사람을 가리킨다 (요17:12). 그러므

로 "인자"라는 말은 주고 인간성과 인간의 특질을 나눈자를 의미한다. 이와 같

이 "인자"는 인간의 나약성과 무력함의 특징을 나타내는 명칭이기도 하다 (민

23:19,욥16:21,25:6). 이와 같은 의미에서 에스겔서에는 인자라는 말이 약 80

번쯤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인간의 나약성과 운명을 인간에게 상기시켜 그의 예

언의 소명을 성취하는데 있어서 인간을 겸손하게 하는데 자극제로 삼았다.

그리스도에게 "인자"라는 명칭을 적용할 때 이는 그가 인간의 본질과 특질과

그의 나약성까지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 인자라는 명

칭은 바로 예수의 신성을 의미하고 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 자신을 가리켜

"나는 인자다"라고 선언한다면 사람들은 "흥,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알고 있는

데 뭐 그따위 소리를 하는가?" 이렇게 비웃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인자라

는 표현을 할 때에는 인간성을 지닌 神을 의미한다. 곧 구세주를 의미한다.

이 인자라는 칭호는 예수의 지상 생활 (막2:10,2:28,마8:20,눅19:10) 과 인류

를 대신하여 받은 그의 고난(막8:31)과 영광 중에 인류를 다스릴 그의 통치와

관련되어 있다 (마25:31,26:24,단7:14 참조).

예수께서 자신을 가리켜 "인자"라고 칭할 때에 그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내포

하여 말하고저 하였을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인 나는 또한 인간인고로 나약한

점도 지니고 있으며 고통도 당하며 죽음까지도 경험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므로 나는 죄를 용서할 수도 있으며(마9:6) 다만 일시

적이요 민족적 의미 밖에 지니고 있지 않는 종교적 규례보다 우월하다.(마12:8)

이와 같은 인간성을 갖고 부활하여 승천하였다가 나와 같이 인간성을 지닌 사람

들을 다스리기 위하여 재림할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의 인간성은 참다운 것이지 결코 거짓된 것이 아니다. 그는 실제

로 고통을 당했으며 굶주렸고 목말라 하셨고 피곤했고 슬퍼하셨다. 그는 일반적

으로 죄가 되지 않는 온갖 인간성의 약점을 체험하셨다.

(b)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 어떻게 인자가 되었는가? 하늘에서 나신 "둘째
사람이" 세상에 오신 것은 참으로 큰 이적이다 (고전 15:47). 하나님의 아들이

인자로서 인간의 아버지와 상관 없이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 잉태 됨으로

서 세상에 들어올 수 있었다.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탄생한 모양과 꼭깥이 그의 전 생애를 순결하게 살았다.

즉 다시 말하면 동정녀를 통하여 출생한 것과 같이 동정의 생활 (온전히 무죄한

생활)을 영위하셨다. 동정의 생활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동정녀 탄행 못지 않

은 기적이라 할 수 있다. 기적적으로 탄생한 그는 기적적으로 살다 죽어 기적적

으로 부활하여 승천하셨다.

성육신의 교리를 동정녀 탄생의 사실 위에 근거를 두고 있다 (요1:14) 이 교리

에 대하여 유능한 학자 마틴 J. 스캇(Scott) 씨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모든 기독 교인들이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성육신은 하나님께서 (즉 하나님의

아들) 인간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인간으로 변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으며 또 하나님께서 하나님되를 그만 두고 인간이 되기 시작

했다는 것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신으로 머물러 계시면서

새로운 본질 즉 인간성을 취하여 신성과 결합시킴으로서 참 하나님인 동시에

참 인간이 되셨다.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창조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다 (요2:1-11). 그러나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인간이 된

것은 아니다. 왜 그러냐 하면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을 완전히 포도주가 됨으

로서 물이 다시 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실례는 하나님이 인간이 되었다는 진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만

그러나 실례를 통하여 이와 같은 진리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가령 예를

들면 만일 어떤 위대한 임금이 거지들의 상태를 개선하기 위하여 몸소 그의 왕

좌와 궁전의 사치를 떠나 거지의 남루한 옷을 걸치고 거지들과 함께 살면서 고

통을 같이 나누어 본다면 이 임금은 거지가 되었다고 말한 수는 있어도 아직고

이 거지는 임금임에는 틀림없다. 이 거지의 당한 고통은 임금의 고통이라고 말

하는 편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인 동시에 또한 참 인간이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 하

나님이 인간이 되었다는 것은 매우 분명하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이 인간이 되었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항상 인간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영원

한 분은 하나님이지 결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일정한 기간

동안 하나님께서 인간성을 취하여 인간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인간성을 취한

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의 아들이 신으로 머물러 있으면서

다른 본질 즉 인간성을 추히야 그 인간성을 신성과 연합시켜 하나의 인격체인

예수 그리스도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성육신은 영원 전서부터 참다운

신이신 하나님의 아들이 두가지 본질 즉 신성과 인간성으로 구성된 하나의 인격

체인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 시간 속에 참다운 인간으로 들어온 것을 의미한다.

물론 이것은 하나의 신비이다. 우리들은 우리들의 이성으로 삼위 일체의 교리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과 같일 이 신비도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들의 주위에는 신비로 가득 차 있다. 우리들은 가축들이 취한 풀과 물이

어떻게 살과 피가 되는 지 그 신비를 이해할 수 없다. 젖을 아무리 화학적으로

분석해 보드래도 그 속에서 피의 성분을 찾아 볼 수 없다. 그러나 어머니의 젖

가슴에서 어린애가 빨아먹는 젖은 어린애의 피와 살이 된다. 어린애에게 젖을

빨아먹는 젖은 어떻게 생기는지 그 신비를 알 수는 없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현인들도 사상과 언어와의 관련성에 대하여 설명할 수는

없으리라. 그러므로 우리들은 성육신의 교리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놀랄

필요는 없다. 우리들은 성육신의 교리를 우리들에게 계시해 주신 하나님은 아무

도 속이지 않으며 또 아무에게도 속지 않기 때문에 이 교리를 믿을 수 있다.


(c) 왜 하나님의 아들은 인자가 되었느느가? 다시 말하면 성육신의 목적은 무엇 인가?

1. 이미 알고 있는 바와 같이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을 계시하기 위하여 세상

에 왔다. 그는 그의 말씀과 행동이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 하

였다.(요5:19,20,10:38). 그의 전도 사업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마음을 계시

한 것이다. 죄인에게 전도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비난한 자들은 하늘의 정신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 자들이다. (눅15:1-7).

2. 그는 인간성을 美化하여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에 적당하게 만들기 위하여 친

히 인간성을 입었다. 그러므로 그는 하늘 나라의 모범이 되셨다. 이 모범에 의

하여 인간성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을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의 아ㄷ르인 그가 인자가 된 것은 인간의 자녀들도 하나님의 아들로 만

들기 위함이였다.(요1:12) 그리고 언젠가는 인간들도 그와 같이 될 것이다.

(요1서3:2) 심지어 그들의 육체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

라." (빌3:21).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고전15:47). 그러므로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창5:3참조)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고전 15:

49). 왜 그러냐 하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기 때문이다 (고전15: 45).

3. 그러나 인간성의 완성에 방해가 된 것은 죄였는데 이 죄는 태초에 아담으로

부터 본래의 의에 속한 영광을 박탈해 버렸다. 우리들은 이 죄의 허물과 권세

로부터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대속의 제물로 희생되었다.


5. 그리스도 (The Christ) 직위와 사명 (Official Title and Mission)

(a) 예 언 (The Prophecy)
헬라어로 "그리스도"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메시야"인데 이는 문자 그대로 "기

름 부음을 받은 자"를 의미한다. 이 말이 암시하고 있는 바와 같이 기름 부음은

신께 대한 봉사와 헌신의 상징이였던 것이다. 제사장과 때로는 예언자들이 그들

의 직책을 맡기 시작할 때에 기름 부음을 받았던 것이다. 그런데 또한 "기름 부

음을 받은 자"라는 칭호를 여호와의 대행자로서 나라를 다스리는 이스라엘의 왕

에게 특별히 붙였던 것이다.(삼하1:14).

어떤 경우에는 기름 부음의 상징에 영적 실제성이 따랐던 것이다. 그래서 기름

부음의 상징에 영적 실제성이 따랐던 것이다. 그래서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자각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삼상10:1,6,16:13).

사울은 실패하였다. 그러나 그의 뒤를 계승한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의 합당한

임금으로 세움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였다. 그는 또한 하나님의 대행자로

서의 자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왕들은 슬프게도 하나님의 표준에서

이탈하여 그의 백성들을 우상 숭배하도록 인도하였다. 심지어 경건한 임금 중에

도 전혀 허물이 없었던 자는 하나도 없었다. 이와 같이 어두운 배경을 등지고

예언자들이 나타나 다윗 보다도 훨씬 위대한 임금이 다윗의 혈통에서 날 것이라

고 예언하였다. 전에 나타난 바 없는 하나님의 성령의 권세가 이 분에게 임했던

것이다 (사11:1-3,61:1). 다윗의 자손이지만 그는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

문에 신의 명칭을 지닐 수 있었다.(사9:6,7,렘23:6). 다윗의 통치와 달라서 예

수 그리스도의 통치는 영원하며 또한 만방을 다스리게 될 것이다.

이 분은 기름 부음 받은 분으로 메시아 곧 그리스도인데 이스라엘의 소망은 그에게 달려 있었다.

(b) 성 취 (The Fulfilment)
예수께서 구약에 약속된 메시아 곧 그리스도임을 주장하였다고 신약 성경은 끊

임없이 우리들에게 증언해 주고 있다.

마치 우리 나라에서 대통령을 뽑을 때에 먼저 선거하고 다음에 정식으로 취임

식을 갖는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영원히 메시야 곧 그리스도로 선출된

다음에 공적으로 그의 메시야직에 취임하는 것을 요단강에서 선언하였다.

마치 사무엘이 먼저 사울에게 기름을 붓고 다음에 기름 부음의 의미를 그에게

설명해 주었던 것과 같이 (삼상10:1). 하나님의 아버지께서도 그의 아들에게 성

령의 능력으로 기름붓고 그에게 다음과 같이 기름 부음의 의미를 말씀해 주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막1:11) 이 구절을 다른 말

로 표현하면 "너는 여러 예언자들이 오리라고 예언한 여호와의 아들이니라 나는

여기서 너의 사명을 완수하는데 필요한 능력과 권위를 부여하며 출복하여 파송 한다."

예수의 전도를 받으면서도 아직 메시야가 올 것을 기대하고 있은 사람들이 있

는데 이들은 불행하게도 정치적 색채가 농후한 메시아관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군인과 정치가를 겸한 아주 "강한 사람"을 대망하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그런

메시야가 될 수 있었을가? 성령께서는 예수께서 이와 같은 문제를 갖고 사탄과

더불어 씨름하도록 광야로 인도했다.

그런데 사탄은 교묘하게 예수에게 대중의 인기를 얻어 단시일 내에 쉽게 권력

을 얻으라고 유혹하였다. 즉 대중의 물질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라고 암시하였으

며 (마4:3,4,요6:14,15,26) 성전 꼭대기에서 내려 뜀으로써 민중들을 현혹하여

민중의 지도자가 되어 백성들을 이끌고 나가 전쟁을 할 것을 유혹하였다.

(마4:8,9,계13:2,4,참조)

예수께서는 사탄이 이기심과 격정에 자극된 인기 정책을 적극 옹호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와 같은 정책은 마침내 유혈의 비극으로 유도하여 파멸

을 초래하고 말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결코 사탄의 시험에 넘어가지 않았

다. 그는 하나님의 길을 따라 오직 인간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영적 무기에

의존하였다. 이 하나님의 길은 오해와 고통과 죽음으로 인도하는 길이였지만 광

야에서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선택하였다. 그가 십자가를 택한 것은 그 십자가의

길이 그의 일생을 위한 하나님의 계혹의 일부분이기 때문이였다.

십자가의 길을 버리라는 마귀의 시험을 받은 일이 있기는 하지만 주님께서는

결코 심자가의 길에게 벗어난 적이 없다. (마16:22 참조).

예수께서는 건실하게도 당시의 정치적 상황은 사람들에게 그의 전도 사업들 로

마 제국에 대한 반항으로 오해받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리

는 것을 금하였다. 마12:15,16,눅23:5을 비교하라. 우리는 여기서 그의 성공이

도리여 그에 대한 비방으로 변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는 대중들의 인기를 끌 수

있는 운동을 완강히 거부하였다 (요6:15). 백성들로 하여금 허망한 소망을 갖

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예수께서는 변화산에서의 그의 변모와 그의 메시아직을

공적으로 선언할 것을 금했던 것이다 (마16:20,17:9). 그는 그의 온전한 지혜로

써 백성들 앞에서 그를 "비애국자"로 몰든지 그렇지 않으면 로마 제국에 불충실

하다는 구실로 그를 책잡으려고 하는 교묘한 함정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마22:15-21). 이와 같은 모든 것을 통하여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는 하나님의 진리의 선포자이지 결코 예수보다 앞서 왔던 자나 또는 뒤

에 온 자중에 거짓 메시야로서 자기의 명예를 구하는 민중 선동가가 있었는데

이들과는 전혀 다른 참다운 메시랴라고 말한 이사야의 예언을 성취시켰다.

(마12:16-21,요10:8,행5:36,21:38 참조). 그는 충실하게 육적 방법을 피하고 영

적 방법을 따랐다. 그래서 로마의 총독 빌라도는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라고 증언하였던 것이다.

우리들은 예수께서 메시야에 대하여 올바른 소망을 갖고는 있으나 그의 인격과

그의 사업에 대하여 그릇된 개념을 갖고 있는 백성들 사이에서 그의 전도를 시작한 것을 볼 수 있다.

가령 매우 소박한 예를 들어 설명하면 병에 붙어 있는 넷델은 바른 것인데 다른

틀린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맨 처음에게는 자기 자신을

메시야로 공공연하게 선언하지 않았다. (마16:20). 예수께서 메시야로 선언만

하였더라면 이것이 로마 제국에 대한 반란의 신호탄과 같은 역활을 하였을 것이

다. 그는 하늘 나라를 말씀하실 때에 그 규범과 영적 본질을 설파함으로써 백성

들로 하여금 영적 하늘 나라를 간절히 사모하게 하여 영적 메시야를 간절히 바

라게 하였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와 같은 노력이 전혀 효과가 없었던 것

은 아니다. 그 이유로 사도 요한은 (요1장) 처음부터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

는 영적 무리가 있었다는 것을 말했으며 또한 예수께서도 영적 진리를 받을 준

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자기 자신을 메시야로서 종종 계시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요4:25,26.9:35-37).

그러나 전체로서의 이스라엘 나라는 예수의 영적 전도 사업과 메시야관을 일치

시켜 관련있는 것으로 생각지 않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를 유능한 교사와

능력있느 설교가, 심지어 선지들로는 인정하면서도 (마16:13,14) 경제와 군사와

정치의 최고 지도자 즉 메시야로서는 바다 드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기대를 갖는다고 이스라엘 백성을 꾸짖을 이유가 어디에 있

는가? 하나님께서는 지상의 왕국을 세울 것을 약속하셨다. (슥14:9-21,암9:11-

15,렘23:6,8). 실로 지상의 왕국을 건설하기에 앞서 이스라엘 백성을 도덕적으

로 정화시키고 영적으로 중생캐 하는 일이 있을 것으로 되어 있다.

*겔36:25-27, 요3:1-3 참조). 그리고 세례 요한과 예수께서도 이스라엘 백성이

현재 이 상태로는 도저히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 분명히 말씀했던 것

이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늘 나라"라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

에게 큰 감동을 주었으나 "회개하라"는 말은 그들에게 별로 큰 영향을 주지 못

했다. 유대교의 지도자들과 (마21:31,32) 백성들은 (눅13:1-3,19:41-44) 하늘

나라에 들어 가는데 필요한 구비 조건을 갖출 것을 거부하여 마침내 하늘 나라

의 특권을 상실하고 말았다. (마21:43).

그러나 전지하신 하나님게서는 이스라엘의 실패를 미리 아셨다.(사6:9,10,53:

1,요12:37-40). 또한 그는 저니능하시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실패를 무효로하고

지금가지 비밀에 부쳐 두었던 계획을 전개하여 진행시켰다. 하나님의 계획은 다

음과 같은 것이었다. 이스라엘이 메시야를 거부함으로서 하나님께서는 이방인

중에서 선민을 취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롬11:11,행15:13,14,롬9:25,26).

또한 이 이방인들은 유대인 신자들과 연합하여 교회를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엡3:4-6).

예수께서 친히 그의 제자들에게 이 시대 (교회 시대)에 대하여 암시하여 주셨다.

이 교회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기간을 말하며 이와 같은

계시들을 "비밀"(Mysteries)이라고 부르는 것은 구약 시대의 예언자들에게는 이

와 같은 계시가 알려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13:11-17). 이방인 백부장의

확고 부동한 신앙은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불신앙과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으

며 이스라엘이 거부한 하늘 나라에 모든 지방의 이방인들이 들어 가는 광경을

보여 주는 그의 영감된 환상을 상기케 한다 (마8:10-12).

광야에서 미리 예감하였던 위기를 닥쳐 왔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의 제자들

에게 슬픈 소식을 전할 준비를 하였다. 그는 재치있게 그의 제자들의 믿음을

견고하게 만들기 시작하엿다. 마침내 수제자인 베드로는 예수의 메시야직에 대

하여 하늘의 영감을 받아 간증하였다 이 신앙 고백을 듣고 예수께서는 놀라운

말씀을 하셨다 (마16:18,19). 그런데 이 말씀을 다음과 같이 알 수 있게 풀이할 수 있으리라.

"이스라엘의 회중 (교회 행7:38)은 메시야로서의 나를 거부하고 그들이 지도자

들은 이스라엘 나라의 바로 모퉁이돌이 되는 나를 파문할 것이다 (마21:42).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그것에 의하여 실패하지 않으리라. 왜 그러냐 하면 나

는 "베드로야 너와 같은 사람들로 구성된 또 다른 하나의 회중(교회)를 세우리

라." (벧전 2:4-9). 이 회중들은 나의 신성과 나의 메시야를 믿으리라. 너는

회중에게 문을 여는 특권을 갖게 될 것이며 너와 너의 형제들은 일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그 다음에 그리스도는 그의 부활 전에는 그의 제자들이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

던 말씀을 하셨다. (눅24:25-28). 곧 십자가는 메시야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분이었다.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

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음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사

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마16:21).

때가 차매 엄연히 예언은 성취되었다. 예수께서 자기의 신성을 부인하고 죽음

을 모면할려는 얼마든지 할 수 있을 때에 왕임을 부인하고 무죄 석방될려고 할

것 같으면 얼마든지 무죄 삭방될 수 있을 때에 그는 유대인의 왕임을 끝끝내 시

인하고 십자가 상에서 돌아 가셨다.

그러나 고난의 메시야는 (사53:7-9) 죽음에서 부활하였고 (사53:10,11) 다니엘

이 미리 영적 눈으로 본 것과 같이 하나님 우편에 승천하셨다. (단7:14,마28:18).

그리고 죽은 자와 산자를 심판하기 위하여 재림할 것이다.

신구약의 교훈을 개관한 후에 우리들은 메시야의 칭호를 정의할 단계에 이르렀

다. 곧 메시야라는 말은 이스라엘을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며 또한 그들이 생명

의 주로서 그들을 다시릴 권세를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자를 가리킨다. 유대 사

상가들은 이와 같은 메시야관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거침돌이 되고

말았다. 유명한 유대인 학자 클라운 몬테피오레(Claude Montefior)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만일 내가 예수를 신으로 믿는다면 그는 나의 주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나의 주 곧 현대 유대인의 주는 오직 하나님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6. 다윗의 자손 (왕족의 혈통)

이 칭호는 메시야라는 말과 동의어가 될 수 있다 왜 그러냐 하면 메시야의 가

장 중요한 자격의 하나는 다윗의 후손이여랴 하기 때문이다.

(a). 예 언 (The Fulfilment)
유다는 포로로 잡혀 갔다가 돌아 왔으나 왕도 독립도 잃어 버린채 계속해서 파

사와 헬라와 애굽과 수리아에 예속되어 종살이 하다가 잠간 동안 독립을 누리었

으나 마침내 로마에 예속되고 말았다. 이와 샅이 수 세기 동안 이방인에게 예속

된 생활을 하는 가운데 실망 낙담하여 백성들이 시편 기자와 더물어 다음과 같

이 부르짖은 때도 한 두 번이 아니였다." 주여 주의 성실하심으로 다윗에게 맹

세하신 이전 인자하심이 어디 있나이까?" (시89:49). 그러나 그들은 절망치 않

고 메시야의 예언으로 그들의 마음을 다시 무장하고 다윗의 후손을 인내심으로 대망하였다.

그들은 실망치 않았다. 다윗의 왕통이 끊어진 지, 수 백년 후 어떤 날 한 천사

가 유대인 처녀에게 나타나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하여 주었다.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

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높으

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

시니리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 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눅1:31-33 (사9:6,7 참조).

마침내 구세주가 다윗의 집의 계승자는 다만 집의 형세가 쇠잔하여져 살아 있

는 다윗의 집에 계승자는 다만 이천한 목수와 단순하고 소박한 처녀에 불과했을

때에 하나님게서는 기적을 베풀어 베어버림을 받은 나무 밑둥에서 싹이 나와 큰

나무를 이루어 많은 사람들이 안식할 수 있는 그늘을 제공해 주게 되었다.

영감받은 선지자들의 의하여 해석된 다윗의 언약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지상에 내려올텐데 그 때에 지상에 다

윗의 후손이 살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호와께서는 그를 통하여 그의 백성을

구원하고 또한 다르릴 것이다. 예수께서 다윗의 후손이라는 것은 그의 출생시에

있은 선언에 의하여 알 수 있으며 또 그의 족보를 통해서도 알 수 있으며(마1:

눅3:) 이 칭호를 예수께도 받아 드렸다는 사실과 (마9:27,20:30,21:1-11) 또 신

약 성경의 기자들의 간증에 의해서도 예수께서 다윗의 후손이라는 점을 명백히

알 수 있다 (행13:23,롬1:3,딤후2:8 계5:5,22:16).

그러나 "다윗의 자손"이란 칭호가 메시야에 대하여 완전히 기술해 주고 있다고

는 생각할 수 없다. 왜 그러냐 하면 이 칭호는 다만 그의 인간의 혈통에 대해서

만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

성경 말씀을 구했던 것이다. 어떤 경우에 예수께서는 유대인의 지도자들의 불완

전한 메시야관을 교정하시려고 하였ㄷ. (마22:42-46).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고 나서 다시 "뉘 자손이

냐?"고 예수께서 물었더니 바리새인들은 "다윗의 자손이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이 대답을 들은 후에 예수께서는 시110:1을 인용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물으셨다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이와 같은

질문을 당한 바리새인들은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이 물음이 답변으로서

메시야는 다윗의 자손도 되며 또한 주도 되신다. 동정녀 마리아를 통하여 예수

께서는 하나님의 아들과 동시에 마리아의 아들로 기적적으로 탄생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의 아들인 동시에 또 사람의 아들이 되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는 다윗의 주가 되었고 마리아의 아들로서 그는 다윗의 자손이 되었다.

구약에는 메시야의 두 계통이 기록되어 있다. 어떤 곳에는 주 여호와께서 친히

그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늘로부터 오시리라고 기록되어 있고 (사40:10,

42:13,시98:9) 또 어떤 곳에는 구원자가 다윗의 집에서 나오리라고 기록되어 있

다.왜 그러냐 하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다윗의 자손으로 탄생했기 때문이다. (눅1:32).

사9:6,7 속에 오시는 임금의 신성과 다윗의 후손에 관한 말씀이 어떻게 결합되

어 있는 가를 살펴 보자. 여기에 언급되어 있는 "영존하시는 아버지"라는 칭호

는 예수가 아버지요 아버지가 곧 예수라고 하여 삼위 일체론을 부인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오해되어 왔다.

구약 성경의 언어의 지식을 갖고 있다면 이와 같은 오류에는 떨어지지 않을 것

이다. 그 당시에 정의와 현명으로써 선정을 베푼 통치자들을 가르켜 國父라고

칭했던 것이다. 그래서 여호와께서는 이사야를 통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그가 예루살렘 거민과 유다 집의 아버지가 될 것이며 내가 또 다윗 집의 열쇠

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 (사9:6,7,계3:7 참조).

사22:21,22, 예수께서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실 때에 백성들이 갈채할 때에 나타

난 바와 같이 이 칭호가 다윗에게 적용 되었다. "찬송하리로다 오늘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막11:10). 이들이 다윗을 가르켜 우리 조상이라고 부른 것은 다

윗이 그들의 직계 조상이라는 말도 아니며 또한 그를 가르켜 하늘 아버지라고

칭한 것도 물론 아니다. 다윗을 가르켜 조상이라고 한 것은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영합한 임금이요, 또한 이스라엘 나라의 기초를 실지로 세웠고 (사울이

실패했기 때문에) 또한 극토를 6,000평방 마일로부터 60,000평방 마일로 확장

했기 때문이였다. 이와 마찬가지 의미에서 미국 국민들은 죠지 와싱턴 대통령을

가르켜 "우리 나라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이스라엘의 조상 다윗은 인간이였기 때문에 죽었고 그의 나라는 지상에 속한

것이였기 때문에 시간 속에서 붕괴되고 말았다. 그러나 메시야 왕(King-Messiah

)은 신이시기 때문에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가 될 것이다.

다윗은 그의 백성들의 일시적 조상이 되었지만 메시야는 만백성의 영원한 (영원

불변이요. 불사의) 조상이 될 것이다. (시2:6-8,눅23:29).


7. 예 수 (구원의 사업)

구약은 하나님께서 구원의 근원이 되신다고 가르쳐 주고 있다. 그는 이스라엘

의 구세주이며 구원자이시다. 그는 그의 백성을 애굽의 종살이로부터 구원하셨

다. 그 후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체험상으로 그가 구세주임을 알게 되었다.

(시106:21 사43:3,11, 45:15,22,렘14:8).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대행자를 통하여 행동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그가 신

비스러운 "자기 앞의 사자"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사실을 읽어 볼 수

있다 (사63:9).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수단으로 사용하셨다. 모세를 통하

여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종살이로부터 해방시켰다.

또한 때로는 사사들을 이르켜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가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도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다."(갈4:4-5). 구세주께서 세상에 들어 오실 때에 그는 그의 지상

의 사명을 나타내 주는 명칭을 받았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1:21)

최초의 복음 전파자들은 유대인들에게 "구세주"의 의미를 설명할 필요가 없었

다. 왜 그러냐 하면 그들은 이미 그들의 역사를 통하여 구세주에 대하여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행3:26,13:23). 유대인들은 마치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어

이스라엘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원한 것처럼 예수를 보내여 그의 백성을 죄에

서 구원하신다는 것을 복음의 내용으로 알고 있었다. 그들은 알고는 있었으나 믿기를 거부하였다.

십자가에서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이름에 합당한 그의 사명을 완성하셨다. 왜

그러냐 하면 사람을 죄에서 구원하신다는 것은 속죄를 의미하여 또 속죄에는 죽

음이 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살고 계실 때

에도 그의 이름에 합당한 생활을 했던 것이다. 그는 항상 구세주이시다.

모든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나는 죄의 종이였으나 예수께서 나를 일곱 마귀로

부터 구원해 주셨다." 증언할 수 있었다.

어떤 중풍병자는 "예수께서 나의 죄를 용서해 주셨다."고 말할 수 있었다.



'好學의 神學 > [基督論]성경.교회.예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Ⅰ.계시란 무엇인가? (서론)   (0) 2012.01.20
종말론 [終末論]   (0) 2011.12.24
교회론 [敎會論]   (0) 2011.12.24
한국교회와 성서교육   (0) 2011.12.12
성경론(聖經論:BIBLIOLOGY)  (0) 2010.0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