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학의 교육 2/[인터넷성경교육]

제55과 룻기(3): 룻과 보아스(3장) 9

好學 2012. 1. 7. 20:36

제55과 룻기(3): 룻과 보아스(3장) 9

 

 

새벽을 기다리며


'밤'은 깊어만 간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의 질문을 던지면서 시작한다.  그렇다면 과연 룻은 사랑을 고백한 그 밤부터 타작마당을 떠난 새벽까지 무엇을 생각하며 긴 밤을 지새웠을까?  

14절

   "룻이 새벽까지 그 발치에 누웠다가
    사람이 피차 알아보기 어려울 때에 일어났으니 보아스의 말에
    여인이 타작 마당에 들어온 것을 사람이 알지 못하여야 할 것이라 하였음이라."

생각해 보면 참으로 많은 시간들이 지났다.  꿈 많던 소녀 시절에는 백마(白馬)를 탄 기사의 손에 이끌리어 언덕 위에 하얀 집을 짖고, 밤이면 가든에서 파티를 여는 젊은 날을 꿈꾸었을 법도 하다.  

아마 그때는 이방 땅 모압 태생이었기에 하나님도 알지 못했을 것이고, 그러니 하나님 없는 자기 자신의 꿈의 날개를 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베들레헴이 고향인 젊은 청년 나오미의 아들이 백마(白馬)를 타고 자기 앞에 나타났고, 룻에게 프로포즈를 했다.  하지만 룻에게는 여러 가지가 걸렸을지도 모른다.  우선 타국인이다는 점이 서로에게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을 것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성경이 침묵하고 있기 때문에 잘 모르겠지만 결혼을 한 것만은 분명하다.

꿈 많던 신혼시절이었다.  그러나 꿈은 사라지고, 남은 것은 시어머니 한 분 밖에 아무 것도 없었다.  현실이 그랬다.  어느 날 눈을 떠보니 그랬다.  이러 자고 결혼한 것도 아니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이었을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나 룻의 인생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녀는 깨어났다.  무슨 말인가?  자기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소리 없이 자기 곁을 떠났으나,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분명하게 그녀의 마음에 각인(刻印)되는 것, 오직 하나 떠나지 않는 것이 있었다.  과연 그것이 무엇인가?  이것이 룻의 인생을 결정적으로 반전(反轉)시켜 버리고 말았다.  

룻은 하나님 아버지를 만난 것이다.  드디어 룻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할 말이, 정리할 것들이, 기억되는 것들이, 감사할 것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룻으로 하여금 자신의 인생에 남아 있는 여백을 새롭게 만들도록 섭리하시기 시작하셨다.  

(1) 받은 은혜(복)를 세어 보아라.

정신없이 살아온 지난날들, 부모님과 고향산천(故鄕山川)을 떠나 온 이후 이처럼 여유 있는 시간은 아마 처음이었을 것이다.  보아스의 타작마당에서 깊어 가는 밤을 지새우면서 룻은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마저도 깜짝 놀랐을 것이다.  모압을 떠나올 수 있었던 힘, 홀로 되신 시모를 따라 패가망신(敗家亡身)하다시피 무너져버린 엘리멜렉의 가문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던져야 했던가에 대한 밀려오는 숫한 질문들, 그러나 지내 놓고 보니 하나님의 섬세하신 간섭하심과 인도하심을 따라 기가 막히게 진행되어 온 지난날들을 그녀는 추억했을 것이다.  

점점 더 분명하게 하나님의 섭리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자신을 보았다.  그러면 그럴수록 이처럼 찾아오신 하나님의 섭리에 기꺼이, 또한 믿음으로 순종(응답)해야 한다는 결단을 새롭게 했을 것이다 :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지금까지도 그랬다면 앞으로는 더 얼마나 엄청난 하나님의 이야기가 만들어져 갈 것인가?  룻의 가슴은 이처럼 강렬하게 뛰고 있었다.

(2) 삶이 무절제하지 않았다.  

룻은 동이 트기 전에 정확하게 일어났다.  우리는 지금 룻이 보아스의 타작마당에서 지샌 밤의 풍경을 스케치하고 있는 중이다.  여기서 우리의 시선은 지금 보아스의 타작마당에 산처럼 쌓여있는 것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우리의 시선을 보아스의 풍성한 타작마당이 압도해 버릴 수도 있다.  혹은 "보아스는 좋겠다. 나는 언제나 보아스처럼 될꼬?"라며 부러움에 취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타작마당이라는 그림을 정확하게 이해하는데 방해가 될 뿐이다.

룻을 보아야 한다.  그녀는 자신의 어떤 것들을 무기로 해서 보아스를 어떻게 해 보려고 하지 않았다.  룻은 자기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신데렐라처럼 살지 않았다.  룻은 시모 나오미, 보아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을 향해 일하시기 시작한 하나님께 자신의 전부를 다 맡겨 버린다.  그 밤부터 새벽까지 룻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오직 하나님의 섭리에 자신을 맡긴다.  이것은 룻의 '믿음'이다.  그러기에 그녀는 무절제하지 않았다.  아무도 보는 이 없었다.  보아스만 얻으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  보아스 뒤에 누가 있는가?  예, 하나님이 계신다.  그렇기에 룻은 결코 경거망동(輕擧妄動)하게,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방자하게 행동하지 않았다.  이것이 그녀가 통과하고 있는 밤의 그림이다.

자기를 지키며, 절제하며, 조절하며, 다스리는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이다.  룻이 그랬다.  그녀는 오늘 때문에 내일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내일 때문에 오늘을 부끄럽게 만들지 않았다.  

(3) 약속을 지켰다.  
룻이 하는 것은 여기까지였다.  그 다음은 하나님께서 해 주신다.  룻은 보아스가 말 한 "새벽까지 그 발치에 누웠다가 사람이 피차 알아보기 어려울 때에"(14a) 정확하게 일어났다.  단잠에 빠져버림으로 말미암아 크나큰 곤경에 처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룻은 시작도 지혜로웠지만 끝은 더 지혜로웠고 만족스럽다.  자신이 소중하다면 상대방 역시 소중하다.  긴 밤이었지만 보아스와의 약속을 성실하게 지킬 정도로 그녀는 삶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