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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사상가 5

好學 2011. 12. 17. 05:39

종교개혁 사상가 5 

 

4명의 주요 종교개혁 사상가 와 한국 교회 개혁의 과제

 


차            례
I. 종교개혁 신앙과 사상의 부활
II. 마틴 루터
III. 존 칼빈
IV. 토마스 뮌쩌
V. 존 웨슬리
VI. 한국 교회 개혁의 과제

 

V. 존 웨슬리


복음적 신인협조설
   

 

   웨슬리는 루터의 신앙 의인화 신학에 철저히 근거하면서도 성화 신학을 칼빈보다 더욱 발전시켰다. 그의 성화 신학이 칼빈의 성화 신학보다 더욱 행동주의를 강조하는 이유는 복음적 신인협조설에서 나타난다. 칼빈의 성화는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인간 속에서 행하는 행동이지 인간은 노예 신세이다. 거기에 반하여 웨슬리의 성화는 하나님의 성령이 먼저 역사 하지만 거기에 대한 인간의 자유의지의 응답으로 곧 신인 협조로 성화가 이루어진다.   

 

신앙 의인화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총으로만 이루어지고 그와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거듭남도 성령의 내재의 은총으로 되는 것이지만 성화는 믿음(하나님의 선물)과 사랑(인간의 선행적 참여)으로 이루어진다고 웨슬리는 생각한다.
     그러나 이 인간의 선행을 가능케 하는 자유의지는 본성적으로 또는 자연적으로 갖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선재적 은총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펠라기우스나 중세 가톨릭 교회의 반(半; semi) 펠라기우스주의의 본성적으로 자유의지를 갖고 태어난다는 자유의지론과 다르다. 웨슬리에 있어서 인간은 모두 원죄를 갖고 태어난다. 그런데 성령의 선재적 은총으로 믿는 성도나 안 믿는 자연인들 속에도 부분적인 자유의지의 회복이 이루어졌다고 해석한다. 이 선재적 은총은 자유의지뿐 아니라 양심과 종교성으로도 나타난다. 이 선재적 은총으로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 구원을 향해 즉, 은총을 향해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는 것을 뜻한다.

 

행동주의    

 

웨슬리의 행동주의 신학은 루터의 신앙 제일주의와 정숙주의를 비판하면서 형성된다. 웨슬리는 그의 설교 {하나님에 관하여}에서 루터의 구원론을 비판한다. 루터가 갈라디아서 강해에서 성화에 무관심하였다고 비판한다. 루터는 의인화만을 강조하다가 성화에 관심 없었으나 로마 가톨릭 교회는 성화를 강조하다가 의인화에 무관심하였다고 웨슬리는 지적한다.
     웨슬리에게 선행과 사랑은 저절로 맺히는 열매가 아니라 인간의 자유 의지적 참여에 의해 신인 협조적으로 이루어지는 행위이다. 그래서 루터는 로마서를 강조한 나머지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복음이라고 평가 절하했으나 웨슬리는 로마서의 신앙과 함께 야고보서의 선행을 동등하게 중요시 여긴다.    

 

따라서 웨슬리는 도덕적 행동을 강조하는 산상수훈도 야고보서처럼 중요한 설교 본문으로 선택하였다. 산상수훈 설교는 그의 성화 신학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그의 기록된 설교 152편 중 무려 13편이 산상수훈 해설 설교이다. 특히 그는 산상수훈 강해에서 사회적 성화 개념과 지상의 하나님 나라 실현을 아주 강하게 주장하였다.
    

 

이렇게 산상수훈 등을 성화 생활의 기준으로 생각한 것은 칼빈의 율법 이해와 상통한다. 곧 율법을 통해 자아 부정과 영성 훈련을 실천함으로써 더욱 경건하고 성화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칼빈의 율법 이해가 웨슬리에게도 그대로 나타난다.
     그러나 율법을 준수하고 복종하는 칼빈의 선행은 성령의 역사이다. 인간은 다만 노예 신세일 따름이다. 칼빈의 선행 이해는 1백% 성령의 역사요 인간 의지의 참여는 0%이다. 그러나 웨슬리의 선행 이해는 1백% 성령의 역사와 거기에 대한 1백% 인간의 자유의지의 적극적 응답과 참여로 표현되어 있다.

 

개인적 성화와 사회적 성화   

 

웨슬리 구원론의 핵심은 성화(Sanctification)이다. 회개는 종교의 현관이요, 믿음은 종교의 문이라면 성화는 종교 자체이다. 그런데 이 성화는 개인적일 뿐 아니라 사회적이다. 웨슬리는 신앙의 본질은 내면적이지만 신앙의 증거는 사회적이라고 강조한다. 기독교를 은둔자의 종교, 기도하고 명상하는 종교로만 만드는 것은 기독교를 파괴시키는 행위로 본다.
     그래서 웨슬리 신학자 알버트 아우틀러는 개인적 성화만을 강조하는 것은 불건전한 복음주의라고 해석하고 개인적 성화와 사회적 성화를 모두 강조하는 것은 건전한 복음주의라고 해석하면서 웨슬리의 사상은 바로 건전한 복음주의라고 풀이한다.

 

은총의 낙관주의    

 

이 성화의 완성이 죽기 전에 가능하다고 웨슬리는 해석한다. 그 이유는 우리의 죄악성의 깊이로는 불가능하지만, 그러나 은총의 높이가 크시기에 크신 은총으로 지상의 완전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절대적 완전은 죽음 후에 영화(榮華; Glorification)에서 일어진다. 왜냐하면 지상의 완전은 의식적인 죄는 범하지 않지만 무의식적인 죄의 가능성은 남아 있고, 무지, 실수, 유혹, 연약의 상태는 남아 있기에 상대적 완전이다. 그리고 완전은 정착된 상태가 아니고 계속적인 과정 속에 있다.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계속 달려가는 것이 완전이다. 또한 이것은 개인적 완전을 의미할 뿐 아니라 사회적 완전도 뜻한다.

 

희년운동    

 

은총의 낙관주의에 의해서 사회적으로도 지상의 천국을 실현할 수 있다고 웨슬리는 믿는다. 물론 절대적 신국의 모습은 초월적, 미래적이지만 상대적인 의미에서 웨슬리는 지상의 천국을 믿는다. 그것이 곧 그의 희년사상으로 나타난다.
     그의 현재적 천국 개념과 희년사상은 그의 완전 교리와 연결된다. 역사 속에서도 완전한 사랑을 실현할 수 있다는 신앙은 모든 창조의 개혁과 재창조의 꿈으로 발전한다. 그래서 웨슬리는 감리교(성서적 기독교)는 완전한 사랑의 승리를 믿는다고 강조한다. "그리하여 정의와 평화가 서로 입맞추리라(시 85:10). 정의가 땅에서부터 흘러 넘치고 평화가 하늘에서부터 내려온다  아무도 그가 소유한 것이 그의 소유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들 중에는 아무도 궁핍한 사람이 없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그의 이웃을 그 자신처럼 사랑하기 때문이다."     

 

 웨슬리는 레위기 25장에 나타난 희년의 모습대로 빚진 자를 탕감하고, 포로된 흑인 노예를 해방시켜 주고, 굶주린 민중들에게 먹을 것을 제대로 나누어주고, 상속할 재산의 대부분은 사회에 환원하고(자녀들에게 필수적인 것은 상속할 수 있지만), 가난한 민중에게 힘에 겨운 세금을 부과하지 말고, 부자들이 사치 있게 음식을 낭비하지 말아야 하며, 일거리 없는 자들이 구체적으로 일거리를 찾을 수 있는 제도적 개혁을 주장하였다.    

 

또한 희년생활은 마태복음 25장 35-40절의 작은 자에 대한 사랑, 즉 갇힌 자, 병든 자, 가난한 자, 헐벗은 자, 나그네 등에 대한 사랑임을 역설한다. 또한 눈먼 자에게 눈이 되어 주는 것, 발없는 자에게 발이 되어 주는 것, 과부에게 남편이 되어 주는 것, 고아에게 아버지가 되어 주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는 구체적인 경제 개혁 운동으로 고용 체계의 개혁, 시장경제의 부당성, 세금 제도의 개혁, '할 수 있는 한 돈을 많이 벌어서, 할 수 있는 한 많이 저축하고, 할 수 있는 한 많이 나누어 주라'는 돈 사용의 3대 원리, 청지기 의식에 의한 재산상속의 반대, 돈 사랑의 위험, 헌금이 아닌 작은 자들에 대한 사회 봉사로서의 하늘 나라의 저축, 인류 최초의 농민과 노동자와 광부들의 노동조합, 여성 해방운동(여성 설교가의 임명) 등을 가르치고 실천하였던 희년 운동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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