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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사상가 3

好學 2011. 12. 17. 05:36

종교개혁 사상가 3 

 

4명의 주요 종교개혁 사상가 와 한국 교회 개혁의 과제

 


차            례
I. 종교개혁 신앙과 사상의 부활
II. 마틴 루터
III. 존 칼빈
IV. 토마스 뮌쩌
V. 존 웨슬리
VI. 한국 교회 개혁의 과제

 

 

III. 존 칼빈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 속에 있는 구원
     칼빈은 인간 구원에 있어서 인간의 어떤 가능성도 배제한다. 오직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능력과 뜻  에 의해서만 인간 구원이 가능함을 강조한다. 마치 토기장이가 한 그릇은 귀하게, 한 그릇은 천하게 그 뜻대로 만드는 것처럼, 하나님께 모든 인간 구원의 가능성이 달려 있음을 말한다. 그래서 칼빈은 어거스틴의 '구원받을 자의 예정'을 발전시켜 한 걸음 더욱 나아가 구원받을 자의 예정과 멸망 받을 자의 예정도 말하는 '이중예정론'을 말한다. 따라서 칼빈에게서 인간의 의지는 노예적이며, 성령이 없으면 자유가 없다. 마치 인간 의지는 두 기사 앞에 놓인 짐승 혹은 말과 같은 존재이므로 성령이 타면 천국으로, 악령이 타면 지옥으로 달려간다. 그러므로 인간 구원이 하나님의 은총 1백%, 인간의 의지 0%로 이루어짐을 말한다.
     거기에 비해 중세 신학에 영향을 미친 펠라기우스는 인간의 의지 50%, 하나님의 은총 50%를 말하는 신인협조설을 주장하며, 웨슬리는 하나님의 은총 1백%, 인간의 의지 1백%를 말하는 복음적 신인협조설을 주장한다.

 

행동주의로 나타나는 성화 신앙
     칼빈은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통치를 말하면서도 행동주의적 성화(聖化) 신앙을 강조한다. 누가 구원을 받았는지, 누가 하나님의 예정에 들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구원의 확신을 얻기 위해 선행을 실천해야 한다는 행동주의 신앙이 나오게 된다.
     따라서 칼빈의 {기독교 강요} 전체를 읽어보면 예정론보다 성화론이 더욱 강조된다. 칼빈은 우리의 성화의 채찍질로서의 율법의 적극적 역할 곧 제3의 용법을 강조한다.
    

 

거기에 비해 루터는 율법이 죄를 깨닫게 하는 역할(제1의 용법)만을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까닭에 칼빈은 성도가 율법의 요구에 따라 게을리 하지 않고 부지런히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속 직업이 하나님이 내게 주신 소명인 줄 알고 그 직업 속에서 확신을 얻으려고 하였다. 또한 그 직업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뿐 아니라 그 직업을 천국으로 만들어야 함을 강조한다. 이러한 금욕적 직업 생활은 자본주의를 발전시켰다. 자본주의가 발전한 나라들을 모두 조사해 보니 칼빈주의 신앙이 강한 나라들임을 막스 베버는 {개신교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를 통해 증명하였다.
신정 정치의 역사적 실천
    

 칼빈의 성화는 사회적 성화 운동으로까지 발전한다. 곧 제네바 시를 하나님의 뜻이 실현된 신정 정치의 사회로 만들고자 하였다. 많은 시련과 역경을 겪으면서  사람들은 개 이름을 칼빈이라고 지어 그를 모욕하기도 했다  인내를 갖고 사회적 성화 운동을 실천했고, 저속한 노래를 금지시키고 카드놀이도 금지시키며 76명을 귀향 살이 보냈고 58명을 처형시켰다(간음죄, 혹은 칼빈 모독죄, 삼위일체 부인죄 등을 이유로).
   

   루터는 두 왕국설을 주장하면서 하나님의 오른손 왕국(교회)과 왼손 왕국(국가)의 정교 분리를 강조했고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왔기에 독재 권력에도 복종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칼빈은 교회의 주인도 그리스도요 국가의 주인도 그리스도라고 생각하였다. 곧 세속 국가도 그리스도의 뜻을 거슬려서는 안된다. 그는 하나님의 통치가 교회와 국가 속에서 모두 실현되는 역사의 목표를 희망하였다.
    

정치적 왕국은 단순히 의식주에 관계된 현실 생활에만 관심 갖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거룩하게 경건하게 존경스럽게 살도록 관심을 가져야 하고, 하나님에 의해 국가가 세워졌기에 국가는 하나님의 정의를 위해 봉사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똑같은 하나님의 권위와 통치가 시민법의 근거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칼빈의 구원론과 정치 윤리에 있어서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이 아주 중요하다. 국가의 권위에 대한 복종의 문제에 있어서 두 가지의 예외를 칼빈은 주장한다. 
     첫째로, 최고 통치자(왕) 밑에 있는 관리들은 백성의 이익을 위해 변호하고 백성들을 대변해야 한다.
     둘째로, 그리스도의 뜻과 법에 어긋나는 모든 것에는 복종해서는 안된다. 칼빈은 신앙의 문제뿐 아니라 정치의 문제에 있어서도 통치자가 그리스도의 뜻을 거스를 때 복종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취했다. 그는 그 예로 예레미야, 다니엘, 나단, 사무엘, 호세아 등 선지자들을 언급한다. 교회는 예언자적 사명감으로 불의한 권세에 굴복하지 않고 국가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발전하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칼빈의 사회적 성화 신앙과 저항 정신은 메리 여왕에게 항거했던 존 녹스, 히틀러 정권에 항거했던 디트리히 본회퍼 등에게로 이어졌다.
     이러한 칼빈의 정신은 한국 교회의 민주화 운동과 통일 운동에도 계속 살아서 숨쉴 수 있다. 한국 교회가 루터식 경건주의의 영향을 받아 왔기에 비정치화 하려는 신앙적 입장이 초창기 선교사부터 지금의 보수적 교회 지도자들에게 계속 전해져 내려왔다. 이런 의식구조가 칼빈의 정치 윤리에 의해서 거듭나고 갱신되어져야 한다.

 

칼빈의 성례전 이해
     칼빈은 루터와 쯔빙글리의 성만찬 논쟁을 중도적 차원에서 종합하려 하였다고 볼 수 있다. 칼빈은 루터의 공체설을 반대한다. 안디옥 학파의 기독론을 받아들여 보좌 우편에 계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은 성만찬 상에 올 수 없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그는 쯔빙글리의 상징설 혹은 기념설도 비판한다. 쯔빙글리처럼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성령으로 출석한다는 영적 임재설을 말한다. 또한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은혜를 받는 수단'이 된다.
     그리고 성만찬은 회중의 공동체적 사랑을 나누며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임을 경험하는 사랑의 성만찬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더욱 나아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웃에게 나누어주고 구제하기 위해 사회 구제와 봉사만을 목적으로 반드시 성만찬식 때 헌금할 것을 강조하였다. 또한 날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총을 전하기 위한 영적 힘을 얻기 위해 성만찬을 나누어야 함을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