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歷史,宗敎,哲學/(역사)중세敎會史

종교개혁 사상가 2

好學 2011. 12. 17. 05:34

종교개혁 사상가 2

 

4명의 주요 종교개혁 사상가 와 한국 교회 개혁의 과제

 


차            례
I. 종교개혁 신앙과 사상의 부활
II. 마틴 루터
III. 존 칼빈
IV. 토마스 뮌쩌
V. 존 웨슬리
VI. 한국 교회 개혁의 과제

 

 

II. 마틴 루터

신앙 의인화
     루터가 중세 천주교 신학과 결별하게 된 것은 그의 자서전적 고백에 의하면 로마서 1장 17절의 해석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본문을 루터는 무섭게 정죄하고 형벌하고 분노하고 심판하는 '하나님의 의'가 아니라 우리를 용납하고 사랑하는 '하나님의 의'로 이해하게 되었다. 그가 가장 미워한 로마서 1장 17절이 가장 사랑하는 구절로 되었고 바로 천국의 문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이 경험을 루터는 "탑의 경험"이라고 표현하였다.
     십자가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베푸시는 엄청난 용서의 은총을 믿기만 하면 오직 믿음으로만(Sola Fide) 의롭다 하심(Justification)을 입게 된다는 사실을 루터는 고백한다.
     루터는 인간이 능동적으로 의를 힘입기 위해 능동적인 선행과 노력을 하면 할수록 더욱 절망에 빠지게 되어 아무런 효과가 없고, 인간의 이성으로 자연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을 이해하는 스콜라주의적인 사변도 하나님의 의와 사랑을 온전히 발견할 수 없으며, 오직 십자가의 은총을 믿을 때만이 구원이 가능함을 강조한다. 루터는 "우리의 신학은 오직 십자가뿐"이라고 강조한다.

 

자유의 복음
     루터는 바로 십자가 신앙을 통해 중세인을 자유롭게 하였다. 율법과 선행의 무거운 짐에서 자유롭게 하였다. 또한 어려운 라틴어 예배 의식의 노예에서 벗어나 평신도도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독일어 예배 의식으로 바꾸었고, 미사에서 벗어나 설교를 듣는 청각적 예배로 개혁하였다. 또한 신부만 성경을 라틴어로 읽던 모든 모순에서 평신도도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성경을 쉬운 독일어로 번역하여 평신도 성경 읽기의 해방운동을 일으켰을 뿐 아니라 평신도도 성경을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게 하였다.
     이러한 자유와 해방운동은 철저히 십자가의 은총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신앙 의인화에 기초하여 미신과 터부와 맹종과 형식과 율법과 고행과 금욕에서 중세인을 해방시킨 것이다. 루터는 그 유명한 {기독자의 자유}에서 고린도전서 9장 19절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 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된 것은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를 중요시 여긴다. 복음을 믿음으로써 얻은 자유는 방종과 향락의 기회로 사용되어서는 안 되고 성령의 노예가 되어 이웃을 사랑으로 섬기는 종노릇을 해야 한다. 루터는 변증법적 성격으로 크리스천의 본성을 설명한다.

 

십자가의 신학
     루터는 로마서 8장 17절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를 강조하였다. 그는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의 짐을 지는 예수의 제자가 될 것을 주장한다. 참 신학자는 책을 읽고 명상하고 사변하는 데서 만들어지지 않고 삶과 죽음, 비난당함과 고난 당함 속에서 만들어진다고 강조한다. 루터는 라이프찌히 논쟁(1519년) 이후 죽음이 엄습하는 것을 느끼고 오직 십자가만을 붙들고 십자가 위에서만 그의 신학을 수립하였다.
     본회퍼는 이 루터의 십자가 신학을 값비싼 은혜라고 풀이한다. 루터가 수도원에서 안일하게 기도하고 명상하는 수도사적 경건에 머무르지 않고 수도원 문을 박차고 나와서 세속 속에서, 역사 속에서 종교개혁 운동의 십자가를 지기로 결심한 것은 값비싼 은혜의 결단이라고 이해한다. 오늘의 한국 교회는 너무 값싼 은혜  성공과 기적과 축복과 형통  만을 추구하지, 십자가를 지고 예수의 뒤를 따르는 루터의 값비싼 은혜를 무시하고 있다.

 

성례전 이해
     루터는 그의 저서 {교회의 바벨론 포로}에서 몇 가지 성례전 이해를 밝힌다.
     첫째, 가톨릭 교회의 화체설을 비판한다. 루터는 이 화체설의 미신적 요소를 비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터의 공체설은 중세 가톨릭 교회처럼 부활한 그리스도의 몸이 신체적으로 임재한다는 신체적 임재설을 주장한다.
     둘째, 평신도들도 성만찬의 두 요소 즉, 떡과 포도주를 모두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세에는 사제들만 떡과 포도주를 모두 받았고 평신도들은 떡만 받았다. 그러나 루터는 그리스도께서 평신도들의 죄도 사하시기 위해서 고귀한 피를 흘리셨으며, 예수님 자신이 두 종류를 모두 나누어 주셨기 때문에 평신도도 떡뿐 아니라 포도주도 마셔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희생의 미사를 비판한다. 중세 가톨릭 교회는 미사 때마다 희생의 제사를 드리는 것으로, 또한 우리의 죄사함의 보속을 위해서 인간도 희생의 제물로 바쳐지는 노력과 공로가 있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단 한번 영원한 희생의 제사를 드렸는데 또다시 미사 때마다 희생되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넷째, 두 가지 성례전만을 강조한다. 다른 다섯 가지 중세의 성례전들은 비성서적이고 세례와 성만찬 두 가지만 성서적이라고 해석한다. 또한 다른 성례전들은 그리스도께서 행하시지 않고 두 가지만 그리스도께서 친히 행하셨다고 해석한다.

 

두 왕국설
     루터는 정치와 종교의, 하나님 나라와 세속 왕국을 구분 지었다. 중세 교황이 세속 권력 위에 군림하려는 위험성을 비판하는 입장에서 이런 윤리관이 나왔다. 루터는 세속 국가권력에게 복종해야 할 의무와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해야 할 책임을 철저히 구분 지었다. 교회는 사랑과 용서로 다스려져야 하고, 세속 국가는 칼과 정의로 다스려져야 한다는 이중 구조의 윤리를 말한다. 따라서 크리스천은 산상수훈대로 그리스도의 왕국 시민답게 사랑을 실천해야 하고, 또한 세상 왕국의 시민으로서 세속법 질서를 따라야 한다.
    

  그러나 세속 왕국도 사탄의 도성이 아니고 하나님의 정의로운 뜻을 실현하는 도구다. 창조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하나님이 쓰시는 왼손 왕국이다. 그리고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의 뜻을 실현하는 오른손 왕국이다. 비록 세속 왕국이 세속 일을 할지라도 하나님의 일을 하기에 우리는 모든 세속 권력 앞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루터는 정치와의 협력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선제후가 교황과 황제의 정치적 위협에서 그를 구해 주었다. 그러나 루터는 제후와 귀족 세력을 지지함으로써 억눌리고 소외당하고 가난한 농민의 비난의 대상이 되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