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歷史,宗敎,哲學/(역사)중세敎會史

기독교 박해의 역사 1

好學 2009. 11. 7. 22:20

 

기독교 박해의 역사 1

 

 

사도시대교회는 기독교의 세계화를 위하여 준비되어진 하나님의 교회 역사이지만 참으로 파란만장한 것이었다. 사도시대에 이르러 수많은 하나님의 종, 하나님의 자녀들이 인간으로서는 참아내기 어려운 지경의 각종 박해를 받았으며 때로는 십자가에서, 때로는 단두대에서, 그리고 심지어는 로마의 원형경기장에서 속절없이 죽어갔다.

그러나 그들은 오직 하나님을 위하여 그 모진 박해를 기쁨으로 받아들였고 타오르는 화염 속에서 죽어가면서도, 사나운 맹수들에게 찢기어 삼키 우면서도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의 찬송을 드림으로서 박해자들을 전율하게 만들었다. 기독교에 대한 무서운 박해는 기독교 역사가 본격적으로 진군하기 시작하였던 로마교회를 통하여 시작되어 졌다.

우리는 사도시대의 기독교박해를 고찰하면서 그 박해가 발생하게 된 이유와 배경을 신학적으로 분석하며 또한 그 박해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신학적으로 정립한다.

 

제1장.유대인들에 의한 박해.

도시대 기독교교회에 대한 박해는 유대교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때에 유대인들은 같은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유대교와 기독교로 갈라져 서로 대립하는 형편이었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대립은 이스라엘 본토에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세계 전역에 흩어져 있는 디아스포라 유대인 전체에 확산 되었다.

 

1.유대교와 기독교의 대립.

초기 기독교 당시 유대인들은 매우매우 혼란스러운 입장에 처해 있었다. 유대인들은 수세기 동안 외세의 침략과 정복에 의하여 국가 없는 조국을 마음 속에 지키고 그리며 살았다. 그러 그들에게는 조상대대로 전승되어 온 메시야사상에 의한 시온니즘적 대망이 있었고 그 대망이 이루어지는 날을 기다리며 살았다. 그러한 유대인들에게 예수그리스도의 출현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가난한 일개 목수의 아들이 메시야를 자처한 것도 민족적 자존심에 상처를 주었는데 그 목수의 아들이 점점 오만방자해 지더니 이제는 아예 하나님과의 내선일체를 주장하고 나섰다.

 

유대인들은 심히 분노하였고 그를 로마법정에 세워 처단해 버렸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난줄 알았던 예수그리스도의 잔영<殘靈>이 그의 제자들을 통하여 되살아 났다.그리고 그를 추종하는 세력들이 점점 늘어가면서 상대적으로 유대교 세력이 약화되었다. 이미 국가의 멸망으로 민족 전체가 전 세계에 뿔뿔이 흩어졌고 본토에 남은자 마져 교리적 문제로 사분오열되었으며 밀려들어오는 헬라니즘, 그레꼬로만니즘 등등의 이방문화로 인하여 전통적인 시온니즘이 와해되고 있는 상황 하에서 가볍게 보았던 신흥종파가 유대인 사회 전체를 위협했다. 이러한 상황은 본토 예루살렘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로마, 그리스, 이집트, 팔레스틴 등등의 지역에 흩어져 있던 디아스포라 유대인 사회 전체에 만연되었다. 특히 디아스포라 유대인 사회는 본토 유대인 사회보다 더욱 심각한 상황이었다.

 

여러 가지 사연으로 인하여 조국을 떠나 살고 있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조상대대로 계승되어 온 시온니즘 하에서 회당을 중심으로 하는 신앙적 삶을 살았다. 그러한 유대인들에게 어느 날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다. 드디어 고대하던 메시야가 탄생하였다는 희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전해들은 소식들은 정확한 것이 아니었다. 어떤 경우에는 진실보다 많이 오류 되어 있거나 무시되어 있어서 신경 쓸 것 없는 가벼운 이야기였고 어떤 때는 너무 과장되어 놀라운 소식일 때도 있었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처음 전해들은 이야가는 참으로 놀라우면서도 실망스러운 이야기였다.

 

*베들레헴의 어느 마구간에서 목수의 아내가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가 유대인의 왕이라고 해서 동방의 박사들이 경배했다. 이에 헤롯이 놀라 당시에 태어난 사내아이들을 모두 살해하였다.*.

 

이러한 이야기를 전해들은 유대인들은 한편으로는 놀라움과 기대감을 가졌고 한편으로는 실망하였다. 그들은 조상대대로 전해 내려온 구세주가 드디어 왔는가? 하는 점에서 놀라움과 기대감에 부풀었다. 그러나 구세주가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사실에 의문과 실망을 하였다. 그들은 구세주가 헤롯왕조의 후예로 태어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헤롯은 유대인이 아닌 이두메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상식대로라면 구세주는 목수의 아들이 아닌 다윗가문 중에 명망 있는 어느 집안에서 태어나게 되어 있었다. 때문에 그 후로 30여년이 흐르도록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가 더 이상 전해지지 않음에 따라 그들은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잊어버렸다. 그러나 30여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 목수의 아들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 들려왔다.

 

그가 세례요한에게 세례 받은 후 광야에서 시험받은 이야기를 비롯하여 각종 이적과 기적을 행한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그들은 크게 놀랐고 흥분하였으며 메시야에 의한 조국과 민족의 영광이 재현될 것을 열망하게 되었다. 특히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선포했다는 대목에서 그들은 크게 고무되었고 새로운 시온니즘에 대한 정열이 불타올랐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다시 실망스러운 소식이 들려왔다. 그것은 예수님의 죽음이었다. 비록 그가 약속한 대로 다시 살아났다는 소문이 함께 전해졌지만 그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의 부활소식은 믿을 수 없는 낭설로 받아 들여졌다.

 

그러나 계속하여 전해지는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소식으로 인하여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두 개의 서로 다른 종교적 집단으로 나누어 졌다. 그들에게 전달되는 예수그리스도는 전해주는 자의 성향에 따라 크게 달랐고 경우에 따라서는 심히 대조적이었다. 민족적 시온니즘 자들이 전하는 예수그리스도는 십자가에 허무하게 죽어간 허약하고 나약한 가난뱅이였으며 혹세무민<惑世誣民>의 위선자이며 사기꾼이었고 매국노였다. 반면에 평화주의자들이 전하는 예수그리스도는 각종 기적과 이적을 일으키는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이었고 죽는 순간까지 모든 죄인을 용서하는 사랑의 메시야였으며 사망권세를 물리치고 부활 승천한 왕중의 왕이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오시어 세상을 심판하실 심판주였다. 때문에 유대인들은 전해주는 자들의 성향과 전해 받는 자들의 성향에 따라 두 가지로 구분되었다. 전달하는 자나 전달받는 자가 모두 민족적 시온니즘자들인 경우에 그들은 유대교에 머물면서 예수그리스도와 그의 후예들을 증오하고 적대하였다. 반면에 전달하는 자와 전달받는 자가 다 함께 평화주의자일 경우에 그들은 새로운 평화주의적 시온니즘을 형성하면서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그런데 또 다시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오순절 성령임재 사건이 전달된 것이다. 성경은 그 때에<천하 각국으로부터 온 경건한 유대인들이 그 사건에 동참했다-행2:5>고 증거 한다. 그때에 천하 각 국으로부터 온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통하여 성령임재 사건을 전해들은 유대인들은 민족적 시온니즘에서 탈피하여 평화주의적 시온니즘으로 돌아섰고 그리하여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그러나 수 십 세기 동안 계승되어진 시온니즘 주의자들은 여전히 그 소식을 낭설로 받아들였다. 때문에 그들은 기독교로 개종하는 유대인들을 반역자로 몰아 증오하고 적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