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聖書槪論/[신약성경개론] 개관

[스크랩] 디도서 - 개론

好學 2011. 12. 14. 20:52

 

디도서 - 개론

 

 

디도서 개요

 

▣ 개인적인 인사/1장 1-4절

1. 교회 조직/1장 5-16절

장로들을 위한 자격 /1장 5-9절

거짓 선생들의 특성 /1장 10-16절

2. 그리스도인의 의무/2-3장

나이 많은 성도들 /2장 1-3절

젊은 남자들과 여인들 /2장 4-8절

종들 /2장 9-15절

시민들 /3장 1-11절

 

▣ 끝맺는 권면들/3장 12-15절

 

 

▣ 디도서 서론

 

▣ 인물:디도는 헬라인 신자로서 바울의 사역을 통하여 그리스도께 인도되어졌다(갈 2:3/딛 1:4). 그의 배경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많지 않으며, 사도행전에서는 한 번도 그의 이름이 언급되어 있지 않다. 아마도 이교도에서 회심한 사람 같으며, 바울 사도를 사모하여 성도들을 위한 헌금을 걷는 데 스스로 조력하였던 듯하다(고후 12:18/고후 2:1-9/고후 7:8-12). 드로아에서는 바울을 만나 고린도 교회의 상황에 대해 보고를 하였다(고후 2:12-13/고후 7:5-16).

디도는 바울을 위하여 고린도후서를 전달하였다(고후 8:16-24), 디도는 바울을 돕는 사람이었고, 그레데에 남아 바울이 두기고와 아데마를 보낼 수 있기까지(딛 3:12) 교회를 재조직하였다(딛 1:5). 디도는 바울이 두번째 투옥되었을 때 로마에 함께 있었으며, 그때 이 사도를 위하여 시명을 띠고 달마디아로 여행하였다(딤후 4:10). 디도에 대한 바울의 평가는 고린도후서 8장 23절에 나온다.

 

▣ 편지:바울은 디도를 그레데에 남겨 두고 급히 떠나 왔으므로 그에게 편지를 써서 이 헌신한 동역자를 격려하며 교훈할 필요가 있었다. 그레데 사람들은 함께 일하기에 쉬운 사람들은 아니었으며, 디도서 1장 12-13절에서도 이를 지적하고 있다! 그레데에 교회를 시작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으나, 우리가 아는 바는 다음의 사항들이다. 교회의 조직과 회원들의 생활이 수치스러울 정도로 떨어져 있었다.

교회는 두 가지 근원에서 고난을 당하고 있었던 것 같다. 즉, 율법과 은혜를 섞는 유대주의자들이 방문하였고, 또한 하나님의 은혜를 남용하여 그것을 방종으로 바꾸어 버린 무지한 그리스도인들이었다.

그가 이 편지를 쓸 때 그의 심중에는 몇 가지 목적들이 있었다.

디도에게 교회를 재조직하는 그의 역할을 상기시키며 장로들을 임명하게 하기 위함.

거짓 교사들에 대하여 디도를 경고하기 위함.

교회의 여러 다른 류의 사람들을 목회함에 있어 그를 격려하기 위함.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있어서 은혜의 참다운 뜻을 강조하기 위함.

교회에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을 처리하는 방법을 설명하기 위함.

 

▣ 강조점들:이 간단한 편지에서 몇 가지 단어들이 반복되어 나오고 있는데, 이는 바울의 심중에 있는 부담감을 이해하도록 우리를 돕는다. 선한 일이 주된 강조점인 것에 유의하자(1:16/2:7/2:14/3:1/3:5/3:8/3:14).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선한 일을 하기까지 구원을 받는다는 뜻이다 !그리스도인의 교리와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건전해야만 한다(1:9/1:13/2:1-2/2:8).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며 세상적이어서는 안 된다(1:1/2:12). 하나님의 은혜는 사람이 거룩한 생활을 하도록 인도한다(1:4/2:11-/3:7/3:15). 이 책의 핵심 구절은 3장 8절일 것이다. “...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

 

지교회에게 보내는 멧세지-디도서 1장

 

1. 디도는 말씀을 선포해야 했다(1:1-4)

이러한 공식적인 인사는 편지를 시작하는 서두라는 것 이외에 더 큰 의미가 있다. 이 인사는 지교회의 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이 위치를 서술하고 있다. 바울은 교회(하나님의 선택으로 택함받은 사람들)의 믿음에 따른 종이요 사도였다.

그의 사역은 교회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었으며, 직접적으로 교회와 연결되어 있었다. 유다서에서는 이 “믿음“을 “성도들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이라고 부른다(유 3절). 이것은 하나님이 바울에게 주신 진리의 예탁이며(딤전 1:11), 바울은 차례로 디도와 디모데에게 주었다.

그레데에 있는 문제들 중의 하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남용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셨으며 따라서 우리는 죄에서 자유하다“고 이 곳의 신자들은 주장하였다. 바울은 믿음을 정의함으로써 이에 응답하기 시작하는데, 그는 믿음을 “경건에 따른 진리“라고 정의한다. 경건은 바울에게 있어 친근한 단어이다(딤전 2:2/딤전 3:16/딤전 4:7-8/딤전 6:3/딤전 6:5-6/딤전 6:11/딤후 3:5). 경건이란 일상적으로 실천하는 거룩함이란 뜻이다(1:16 과 비교).

나중에 2장 11-15절에서 바울은 은혜가 우리를 구원하며, 또한 헌신한 생활을 살도록 훈련시킨다고 설명한다. 자기의 죄를 핑계대기 위하여 은혜의 교리를 사용하는 신자는 진실로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은혜의 멧세지는 그리스도의 재림이라는 축복된 소망을 지시한다. 2장 13절에 디도가 전해야 할 멧세지가 있다. 즉,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믿음을 따르는 거룩한 생활, 주님이 돌아오실 것에 대한 일상적인 기대 등이다.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계획은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세워졌던 것이며 이제 전도(복음의 선포)를 통하여 나타난 것이다. 지교회에서 선교의 위치를 축소시켜서는 안 된다!"

 

2. 그는 교회를 조직해야만 하였다(1:5-9)

우리는 누가 그레데에 교회를 세웠는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것은 바울이 디도를 남겨 두어 교회를 조직하게 하였으며, 약한 곳을 치료하게 하였다는 것이다. 그의 사역에는 분명한 반대가 있었으며 사임하기를 원했다는 암시가 나온다. 바울은 이렇게 쓰고 있다. “그러나 내가 너를 그 곳에 남겨 둔 것이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만일 문제가 없었다면 그 교회는 너를 필요로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육신의 몸에 있는 한 우리의 교회에는 문제들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이 생길 때 문제를 숨기는 것이나 직원들이 사임하고 다른 교회를 찾는다는 것은 문제의 해결이 되지 못한다. 그 해결 방안은 이 문제들을 정직하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직면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하여 해결해 나가는 것이다. “바로잡다“는 5절의 말씀은 의학 용어로서 “부러진 뼈를 맞춘다, 또는 구부러진 수족을 똑바로 펴다“는 뜻이 있다. 교회는 하나의 몸이며 목회자는 경우에 따라 영적인 의사가 되어 어떤 뼈들을 맞추어야 할 때가 있다!

디도는 장로들(감독-7절, 같은 직분을 가리키는 두 가지 이름임)을 선택해야 했던 것은 아니며 교회가 선택한 사람들을 안수하면 되었다. 5절에 나오는 “각 성에“라는 말은 복음이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퍼져 나갔음을 시사하며, 이 일은 마땅히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었다. 여기 나오는 자격들도 디모데전서 3장에 나오는 자격들과 흡사하다.

6절의 “충성된 자녀들“이란 말은 “믿는 자녀들“이란 말이다. “방탕“에 대해서는 누가복음 15장 13절을 참조하라. 감독은 물질적, 영적인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청지기이다(고전 4:1-2 참조). 그는 “미쁜 말씀“을 굳게 잡아야 한다. 디모데전서 1장 15절, 4장 9절, 디모데후서 2장 11절과 디도서 3장 8절에서 바울이 말한 미쁜 말씀을 마음에 새겨 보자.

감독은 두 가지 이유로 인하여 말씀을 알아야 한다. 즉, 성도들에게 사역할 수 있기 위하여, 그리고 거짓 선생들을 논박할 수 있기 위해서이다. “거스려 말하는 사람들“이란 반박하는 사람들, 모순된 사람들을 뜻한다."

 

3. 디도는 거짓 선생들을 반박해야 했다(1:10-16)

그리스도께서 좋은 씨(신자들)를 뿌리는 곳마다 사단은 모조 씨앗을 가지고 거짓 선생들과 더불어 뒤따라 다닌다. 그레데에는 바울의 가르침을 반박하며 유대인의 우화(율법주의)와 인간의 명령(전통)을 대신 가르치는 일단의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는 계속해서 거짓 선생들을 조심해야만 한다 ! “할례당“(10절)은 바울을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보내려고 싸웠던 사람으로서, 여전히 진리를 반대하고 있다. 은혜와 율법을 혼합시킬 때 우리는 거짓 교리로 끝나고 만다. 바울은 이러한 교사들이 헛된 말장이이며 속이는 자들이며 무법한 자들이라고 묘사한다.

바울은 유명한 시인 에피메니데스의 말을 인용하기조차 하는데, 이 사람은 그레데인들을 거짓말장이요, 잔인한 동물이며 “게으른 족제비“라고 묘사하였는데, 과히 아름다운 묘사는 아니다! 사실상 바울 시대의 사람들은 “그레데 사람“이라는 새로운 단어를 발명해 냈으며, 그 뜻은 “거짓말하다, 그레데인처럼 말하다“란 뜻이었다.

물론 바울은 모든 그레데인들이 다 게으른 족제비요 거짓말장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교회 내부와 외부에 예의바른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음에는 의심할 바 없다.

음식규정법과 금욕주의는 거짓 선생들의 핵심적인 교리들이었으며, 바울은 15절에서 그들을 공격한다. 15절이 잘못 배운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크게 남용되고 있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죄악된 관습을 지지하는 데에 이 구절을 사용하며 이렇게 말한다.

“순전한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순전하며... 따라서 내가 하는 일은 그릇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바울이 이 말을 썼을 때 그의 심중에는 이러한 뜻은 없었다. 그는 디모데전서 4장 2-5절에서처럼 정결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에 대한 문제를 취급하고 있었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신자는 모든 음식을 깨끗한 것으로 받아 들일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불신자와 거짓 선생들은 더러운 마음과 양심을 가졌으며, 따라서 아무것도 순전하게 보지 않는다. 사실상 순전하지 않은 음식이 인간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음식을 더럽히는 것이다! 도덕적이고 영적인 순전함은 음식이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깨끗한 마음과 선한 양심이 문제이다. 예수님은 이 점에 대하여 마태복음 6장 22-23절에서 가르치셨다(롬 14:14 참조).

디도는 이러한 거짓 교사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그가 이들의 관점을 알기 위하여 그들과 연합하여야 하는가? 아니다! 그들의 입을 막고(11절) 그들을 날카롭게 꾸짖어야 한다(13절). 결국에 가서 그들의 가르침은 모든 가족들을 실의에 빠뜨릴 것이다(부패시킬 것이다. 11절). 이들이 동기는, 간단히 말해서, 돈을 얻는 것이며(더러운 이익)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16절은 이 상황을 명확하게 종합해 준다. 이 거짓 교사들은 이렇게 고백하고 저렇게 실천한다. 이들은 그들의 행위로 그리스도를 부정하고 있으며, 가증되고 불순종하였다. 이들은 결코 시험에 합격할 수가 없을 것이다(신에게 버림을 받게 된다).

우리는 오늘날 교회를 공격하는 거짓 선생들을 본다. 무지함 때문에 거짓 교리를 붙들고 있는 경우와. 거짓 교리를 붙들고 하나님의 진리라고 가르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무지한 사람들은 동정을 받고 진리를 배워야 하나, 고의적인 거짓 선생들은 책망을 받고 거절을 당해야 한다. 교회가 진리를 타협할 때 진리는 거짓말에게 삼키워질 것이다.“건전한 교리“, “건전한 믿음“을 강조하는 것에 유의하자(9, 13절). 이것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들에서 살펴본 “건강한“ 교리이다. 거짓 교리들은 그리스도의 몸(교회)에 영적인 병을 일으킬 뿐이다."

 

목회자들에게 보내는 편지(Ⅰ)-디도서 2장

 

만일 디도가 거짓 선생들을 논박하는 데에 시간을 다 썼다면 교회는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 목회자가 균형잡힌 사역을 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진리의 적들을 논박하는 것과 아울러 성도들을 가르치고 권고하는 일을 해야 한다. 본 장에서 바울은 교회 안에 있는 세 그룹의 사람들을 다루며, 주님에 대한 그들의 의무를 상기시켜야 한다고 디도에게 조언한다.

 

1. 나이 많은 성도들(2:1-3)

그레데에 있는 교회는 오순절에 있었던 베드로의 사역의 결과로 생긴 것이었다(행 2:11 참조). 교제 모임에는 나이 많은 성도들이 있었다. 지교회의 가족중에 주님과 함께 오랫동안 걸어 온 나이 많은 순례자들이 있다는 것은 축복된 일이다! 이들은 그처럼 오래 살도록 특권을 부여받은 것이며, 이러한 특권에는 진지한 책임이 따른다.

나이 많은 남자들은 근엄하며(방심하지 않고 주의깊으며), 무게가 있으며(진지한, 쉽게 존경이 가는), 절제하며(자기 조절), 믿음이 건전하다(건강하다). 영적인 건강은 육체적인 건강보다도 더욱 중요하다 ! 그들의 사랑과 인내는 모든 사람의 본보기가 된다. 그런데 “선배 성도들“이 젊은 무리들에게 인내심을 보인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

나이 많은 여인들은 그들의 행동에서 존경을 받아야 하며, 잡담이나 술취하는 일을 피해야 한다. 이들은 교회에서 교훈과 본보기로 젊은 여인들을 가르칠 놀라운 기회를 가진다.

바울은 형제들로 말미암아 지원을 받는 몇몇 과부들을 교회에 두어 섬기게 하기를 심중에 기대했을 가능성이 있다."

 

2. 젊은 남자들과 여자들(2:4-8)

바울은 젊은 여인들에게 먼저 말하면서 나이 많은 여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경건한 아내와 어머니가 되는 방법을 배우라고 격려한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젊은 그리스도인 아내들에게 기대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그녀는 근신하며, 결혼과 가정에 대해 진지한 자세를 가진다. 진지한 아내와 어머니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 여인은 결혼해서는 안 된다. 가정은 놀이터가 아니다!사랑은 행복한 가정의 활력소이다. 따라서 바울은 남편과 자녀들을 사랑하라고 상기시킨다. 에베소서 5장 22-23절에서 남편과 아내 사이의 사랑에 대한 세부 사항을 알아보라.

그리스도인 아내는 지각있고 신중하며 순결하고 정숙하여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한다. “가정 주부들“이란 “가정에서 일하는 사람들“ 또는 “가정을 형성하는 사람들“이란 뜻이다. 그녀는 집에서 일해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이 훼방을 받게 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의 가정이 불순종하며 부주의한 아내들과 남편들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위한 보잘것 없는 간증을 보이게 된다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가정을 소홀히 하는 남편들과 아내들은 불신자들보다 더 나쁘다!

디도가 젊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바울은 교회에서 젊은이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가르치기 위한 본보기로 디도를 사용하신다. “모든 사람들이 따라 해도 좋을 선한 일의 본이 되라 !“는 것이 바울의 권고이다. 순결하고, 성실하며 진지하라 ! 이것이 바울의 권고들을 요약한 진술이다. 8절에서 그는 그리스도인답게 말해야 한다고 상기시키는데, 그렇지 않으면 적들은 비판할 것들을 찾아낼 것이다."

 

3. 종들(2:9-15)

우리는 앞서 디모데전서에서 이 그룹을 다루었으며 또한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에서도 다루었다. 바울은 노예들을 향한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들의 일상적인 생활이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들의 일차적인 책임은 순종이었다. 이들은 “거스려 말하지“ 말아야 했다(“반박하는 사람“-9절). 순복하는 의지와 조절을 받는 혀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놀라운 간증이 될 수 있다.

종들은 그들의 주인들을 기쁘게 하려고 노력해야 하며 단순히 그들에게 필요한 것만을 행해서는 안 된다. “십리를 가는“ 행위는 구원의 실제를 사람들에게 입증하는 데에 도움을 줄 것이다.

10절에 “떼어먹다“는 말은 “훔친다“는 뜻이다. 노예들은 주인에게서 물품을 훔치라는 유혹을 받게 되는데, 주인들이 재산의 관리를 종들에게 맡기는 일이 종종 있기 때문에 이러한 유혹을 받기가 쉬웠다. “좋은 믿음“이란 “정직, 충성“을 의미한다. 바울은 10절에서 정직하게 봉사해야 할 보다 높은 동기를 말한다. 즉, 이들이 하나님의 교리를 빛나게 하기 위하여, 다시 말하자면 그들의 생활에서 “성경을 아름다운 것“이 되게 하기 위함과, 불신자들에게 매력있게 보이기 위함이다. 결국 우리는 5절과 10절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적극적이면서도 소극적인 동기를 본다.“하나님의 은혜“는 그레데에서 남용된 교리였으며, 바울은 이제 잠깐 멈추어 교리적인 기반으로 그의 충고들에 띠를 두른다.

은혜를 방종으로 바꾸어 생각하며, 그리스도인은 더이상 율법 아래 있지 않으므로 죄 가운데 살 수 있다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신자는 율법 아래 있지 않지만 이것이 훨씬 더 큰 책임인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와 친절에 대항하여 고의적으로 죄를 범할 수가 있는가 !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대한 세 가지 시제를 제시한다.

-과거-“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가져온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났다“

-현재-“우리를 가르치시며...“

-미래-“복스러운 소망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다른 말로 설명한다면,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구속할 뿐만 아니라 우리를 개혁하고 우리에게 보상을 주신다. “복스러운(행복한) 소망을 바라보며 위대하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것을 기다린다.“ 이것이 보다 정확한 번역이다. 하나님의 영광은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 이 땅에 거하였으나(요 1:14), 그가 승천하실 때 그 영광도 천국으로 돌아갔다(행 1:9). 이제 그의 영광은 신자의 생활 가운데 머문다. 그리스도께서 돌아오실 때 우리는 그의 영광을 볼 것이며, 주의 영광에 참여할 것이다(요 17:22-24).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는 영광의 소망이시다!“

그리스도는 자신을 우리를 위해 주셨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은 그에게 우리 자신을 드리며 그가 오실 때까지 그리스도를 높이는 생활을 하는 것이다. “구속하다“는 말은 노예 생활에서 값을 치르고 벗어난다는 뜻이다. 우리는 주님의 “특별한 백성“이다. 즉, 우리는 그의 특별한 보좌이며, 그의 사랑받는 개인적인 소유물이다(출 19:5/벧전 2:9).

“특별한“이란 말은 “별난“이란 뜻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개인적으로 구입하셔서 그의 소유가 되었다는 뜻이다. 우리는 값으로 산 바된 사람들이며, 순전케된 사람들이요, “선한 일을 사모하는“ 실천적인 사람들이다. 디도서 전체에서 “선한 일“에 대한 주제를 추적해 보라. 그러면 당신은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에는 두 개의 “기둥“이 있다. 즉, 십자가를 뒤돌아보며(14절) 그리스도의 오심을 내다보는(13절) 것이다. 이 두 개의 기둥이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인의 행실에 꾸준히 남아 있도록 도움을 준다. 이러한 사실들은 성만찬에 들어 있는 의미이며, 우리는 그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기념하는 것이다."

 

목회자에게 보내는 멧세지(Ⅱ)-디도서 3장

 

본 장은 지교회들을 사역하는 일에 관하여 디도에게 주는 바울의 연속된 권면이다. 그는 나이 많은 성도들, 젊은 남자들과 여자들, 종들에 대해 논의하였는데, 이제는 두 계층의 사람들을 첨부하여 다룬다.

 

1. 치리자들(3:1-7)

그리스도인은 좋은 시민들이 되어야 한다. 참으로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빌 3:20). 그러나, 우리가 여기 지상에 있을 동안에는 실천적인 일상생활에서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적용하여야 한다. 교회는 정치와 혼합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백성은 도시나 나라의 일에 있어서 그리스도인의 원리들을 적용하려고 노력해야만 한다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롬 13:1-/벧전 3:8-17 참조).

신자가 인간을 높일 수는 없지만 그 나라의 관리와 법을 존경해야 한다. 만일 그 법이 말씀에 모순된다면 그리스도인의 첫번째 충성은 하나님을 향한 것이어야 한다(행 4:19/행 5:29).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예비하라“는 말은 정부의 계획 중에서 좋은 것들을 지원하는 것이 마땅함을 암시하고 있다.

과거를 돌이켜 볼 때 인간을 중히 여기는 위대한 개혁들이 그리스도교의 원리들을 따르는 사람들에 의하여 주도되어 왔음은 분명한 일이며, 우리가 선한 일을 행할 수 있는데도 다만 관망만 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의 소금이며 세상의 빛이다. 이 말은 정부의 선한 사업들에 우리 자신을 적극적으로 개입시켜야 함을 암시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신념을 타협하거나 또는 주님의 일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먼저 그리스도인 시민이 되어야 하며, 정당의 회원은 그 다음인 것이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논쟁으로 그들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2절에서 바울은 악한 의도로 거짓말을 퍼뜨리는 것이나 싸움을 벌이는 것을 경고한다. “사람의 분노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약 1:20). 양순과 온유는 법적인 권력보다도 더 강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죄와 싸울 때 여러 가지 다른 무기들을 의존한다(고후 10:1-6). 신자는 자기의 전투를 감행하기 위하여 성경적인 방법을 모두 동원한 후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알고 있다(롬 12:17-21). 온유함은 연약함이 아니며, 차라리 조절을 받고 있는 힘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온유하셨으나(마 11:29), 능력을 발휘하는 법을 알고 계셨다.

3-7절에서 바울은 정직한 생활을 해야하는 동기를 상기시킨다. 곧,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구원하였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적인 생활을 조절하시며 더욱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한다는 것이 본 서의 강조점이다. 바울은 “너희가 구원받기 전에 가졌던 옛 생활을 생각해 보라 !“고 쓰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구원받지 않은 친구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며, 그들에 대하여 동정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친절과 사랑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 하나님은 3절에서 열거하고 있는 죄들은 미워하시지만 죄인들을 사랑하신다 !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세상과 화해하셨으며(고후 5:14-21), 그리하여 믿음으로 주님께 오는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실 수 있게 되었다(4절의 “사랑“은 “박애, 자선“과 비슷하다).

이것은 그런 자격이 없는 인간들에게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와 수여의 마음가짐이다. 하나님의 이같은 사랑에 대한 놀라운 소식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인격과 교훈과 죽음을 통하여 나타났다.

바울은 우리의 구원이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며, 다만 구원이 선한 행위를 초래하는 것이라고 매우 명백하게 밝힌다(8절/ 엡 2:8-10 참조). “씻음“이란 세례(침례)와는 아무 연관이 없다. 이것은 “대야“라는 뜻이며, 장막에 있던 구약의 대야를 가리킨다. 바울은 에베소서 5장 26절에서 같은 단어를 사용하며, 여기서는 말씀으로 말미암아 씻음이 이루어진다.

성경 전체를 통하여 씻을 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한다(요 15:3/시 119:9/엡 5:26). 다른 말로 하면, 5절은 새로운 출생(중생)을 위한 두 가지 동인(動因)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영이다(요 3:5/벧전 1:23/약 1:18 참조). 성령은 모든 신자들 위에 “부어졌으며“, 이때의 동사의 시제는 모두를 위하여 단번에 부어진 것임을 시사한다. 즉, 오순절에 신자들에게 성령의 세례(침례)를 통하여 성령이 부어진 것을 말한다.

신자는 은혜로 말미암아 의로워지며, 하나님의 상속자이다 !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참으로 축복된 지위를 소유하고 있다 ! 이러한 놀라운 구원은 우리로 하여금 보다 훌륭한 시민이 되려는 동기를 부여하며 우리 주위의 잃어버린 사람들이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를 보며 주님을 알고 싶어지도록 만든다."

 

2. 이교도들(3:8-11)

“이교도“라는 단어는 “선택한다“는 뜻을 가진 말에서 온 것으로, 나쁜 의미에서 선택을 하고 분파를 일으키는 사람을 암시한다. 갈라디아서 5장 20절은 이단(당을 지음, 분열)을 육신의 일의 목록에 포함시킨다. 이단(분당)이 고린도의 육적인 교회에 유행하고 있었다(고전 11:19).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이러한 사람들은 단어들이나 족보를 가지고 논쟁하기를 좋아하였으며, 이들이 유대교의 배경을 가졌고 구약의 줄거리에 기반을 둔 진기한 교리들을 세우려고 했음을 암시해 준다. 우리는 골로새서를 연구할 때 이 사람들을 만났었다. 이처럼 유익이 없고 공허한 토론은 피해야만 한다. 이들은 결코 대적을 납득시키지 못하며, 다만 교회의 분열만을 초래할 뿐이다.

디도는 이러한 문제의 사람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 것인가? 한 가지 예를들면, 그들과의 논쟁을 피해야 한다. 다음으로 두 번의 권면에도 불구하고 계속 문제를 일으키기를 고집한다면(이것은 공식적인 경고를 의미한다), 이들은 교제로부터 배격되어야 한다. 문제를 일으키는 교회원이 다른 교회로 교적을 옮겨가려고 위임서를 원할 때는 가게끔 해야 하며, 만일 그가 돌아온다면 경고를 하고 이를 받아들여야만 한다. 만일 그가 다시 문제를 일으킨다면 두번째로 교적을 옮기는 편지를 써주어야 하지만 그가 다시 돌아오면 교제 가운데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동정심 많으나 배움이 없는 어떤 성도들은 “그가 이번에는 변화되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할 것이다. 바울은 11절에서 그 사람은 변화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뒤집혀졌으며“(붕괴되었으며) 지속적인 죄의 상태에 있어 결국은 치료할 수 없는 상태에 있는 것이다. 우리의 지교회들의 목회자들과 직원들이 이러한 중요한 원리를 관철한다면 분열이 훨씬 줄어들 것이다.

바울은 주의 사역에서 그를 조력하는 사람들의 여행에 대하여 알리면서 이 간단한 편지를 끝맺고 있다. 그는 그레데에서의 어려운 사역을 조력하기 위하여 “증원군이 오고 있음“을 디도에게 알린다. 아데마나 두기고가 디도를 대신함으로써 그가 니고볼리에서 바울과 합세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 동안 디도는 누군가 그의 사역을 지속하기 위해 올 때까지 그 일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하나님은 한 가지 사역을 일으키기 위하여 다른 사역을 파괴하는 일을 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움직이실 때는 발을 들여 놓을 준비를 갖춘 대리자를 예비해 놓고 계신 것이다. 만일 대리자가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이동할 시기가 아니라는 표시이다.

세나와 아볼로는 아마도 이 편지를 디도에게 전달할 사람들인 것 같다. 바울은 그들이 여행을 계속할 수 있도록 협조하라고 디도에게 조언한다. 아마도 그들의 여행은 바울을 대신한 특별한 사명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리스도안들은 주님의 봉사에 임하여 서로를 도와야만 한다(고전 16:6/고전 16:11/롬 15:24 참조). 우리는 거짓 교훈을 가르치는 사람들을 지원하지 않도록조심해야만 한다(요이 9-11절).

14절은 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디도의 사역을 지원해야 하며, 다른 사람들을 돕는 디도의 일을 조력해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말이다. 목회자와 성도들이 이 사역에 동참해야 한다!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해당하는 말이며 목회자나 직원들만 해당하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그는 그의 사도적인 인사로 끝을 맺으며 사랑과 믿음을 연결짓고 있다. “은혜가 너희 무리에게 있을지어다 !“는 바울의 친필 편지임을 표시한다(살후 3:17)."

출처 : The King dom
글쓴이 : KINGDOM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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