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 - 개론
▣ 디모데전서 개요-개요
▣ 주제:지교회에서 행동하는 법 /3장 15절
1. 교회와 그 멧세지/1장
건전한 교리를 가르침 /1장 1-11절
영광된 복음을 전파함 /1장 12-17절
믿음을 변호함 /1장 18-20절
2. 교회와 그 구성원들/2-3장
기도하는 남자들 /2장 1-8절
(1)치리하는 자들을 위하여 /2장 1-3절
(2)죄인들을 위하여 /2장 4-8절
단정한 여인들 /2장 9-15절
(1)옷차림에서 /2장 9-10절
(2)행실에서 /2장 11-15절
헌신된 직원들 /3장 1-13절
(1)목회자들 /3장 1-7절
(2)집사들 /3장 8-13절
행동하는 신자들 /3장 14-16절
3. 교회와 그 사역자/4장
좋은 목회자/4장 1-6절
말씀에 대해 설교하는 목회자
경건한 목회자/4장 7-12절
말씀에 대해 실천하는 목회자
성장하는 목회자/4장 13-16절
말씀에서 진보해 가는 목회자4. 교회와 그 사역 /5-6장
연로한 성도들에 대하여 /5장 1-2절
과부들에 대하여 /5장 3-16절
(1)늙은 과부들/5장 3-10절
(2)젊은 과부들/5장 11-16절
교회 지도자들에 대하여 /5장 17-25절
종(노예)들에 대하여 /6장 1-2절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에 대하여 /6장 3-5절
부자들에 대하여 /6장 6-19절
“교육받은“ 자들에 대하여 /6장 20-21절"
▣ 디모데전서 서론
▣ 배경:사도행전은 바울이 로마의 죄수로 있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다(행 28:30-31). 바울의 말년에 대해서는 신약에 확실한 설명이 없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다음의 연대기에 동의를 표한다. 바울은 2년 동안 투옥된 끝에 가이사 앞에서 무죄로 석방되어 로마를 강제로 떠나야 했다. 이 때가 62년 봄인 듯하다. 바울은 누가, 디모데와 함께 에베소를 방문하였는데 여기서 그는 “이리들“에 대한 자신의 예언(행 20:29-30)이 성취된 것을 발견하였다. 왜냐하면 에베소교회에 거짓 선생들이 침투했기 때문이다.
디모데전서에 나오는 그의 경고들로 볼 때, 이 거짓 교훈들은 바울이 골로새서에서 공격하였던 영지주의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울은 그 곳에서 짧은 기간 동안 사역한 후에 빌립보로 갔다. 그는 디모데를 특별한 조력자로 뒤에 남겨 두어 그 교회를 감독하며 거짓 선생들을 제거하도록 하였다. 디모데전서 1장 4절에 의하면 이들의 작별은 슬픈 것이었다.
▣ 편지:바울이 젊은 디모데에게 이 첫번째의 편지를 썼을 때, 그는 골로새에 있으면서 미리 약속했던 대로 빌레몬을 방문하며 즐거운 때를 보내고 있었던 것같다(몬 22절). 바울은 곧 에베소로 돌아갈 계획을 세우고 있었으나(딤후 3:14), 교회의 문제가 대단히 긴급하여 그의 조력자에게 조언하는 일을 감히 미루고 있을 수 없었다.
이 서신은 “큰 도시에서“ 많은 어려운 문제들을 직면하고 있는 젊은 그리스도인 사역자에게 주는 격려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들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디모데는 연장자들을 대상으로 목회하려는 젊은이였다(4:12/5:1-2).
디모데는 몹시 바울을 그리워하였으며 그만두고 싶어하였다(1:3/딤후 1:4).
그는 목회자의 의무와 그리스도인 지도자로서 자신의 개인적인 헌신 생활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었다(4:11-16).
그는 어떤 성급한 결정을 해야 했으며 특별히 교회 직원들에 대해 결정을 내렸는데 이 일이 곤경을 초래하였다(5:17-22).
그는 금욕주의와 육체의 연습을 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사실상 육체를 상하게 하는 일이었다(4:7-8/5:23).
그는 “청년의 정욕“이 그에게 재앙이 되었음을 바울에게 시인하였다(딤후 2:22). 이러한 유혹적인 환경은 불경건한 에베소에서는 쉽게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침묵시킬 필요가 있는 거짓 선생들이 거기 있었다(1:3-).디모데는 교회의 일을 운영해 나가는 데에 조언이 필요하였다. 특히 직원들과 과부들에 관하여 그러하였다(3:1-/5:3-).
▣ 핵심 단어:디모데전서에 나오는 핵심 단어들 가운데 하나는 “명한다, 임무를 맡긴다“인데, 때로는 “경계하다“로 번역되었다(1:3/1:5/1:18/ 4:11/5:7/6:13/6:17). 이것은 명령이 계통을 따라 내려오는 것을 가리키는 군사 용어였다.
하나님은 바울에게 복음을 맡기셨으며(1:11), 바울은 이를 디모데에게 전하였다(1:18-19/6:20). 디모데는 이 보물을 지키라는 “임무를 부여받았으며“(딤후 1:3-14) 이것을 충성된 사람들에게 건네 주었고, 이들은 차례로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도록 되어 있었다(딤후 2:2). 군사 용어가 디모데전후서 전체를 구성하고 있다(1:18/5:14 -여기서 “기회“란 “작전의 근거“라는 뜻임/ 딤후 2:3/딤후 3:6).
▣ 기본 주제:디모데전서의 기본적인 주제는 3장 15절에 요약되어 있다. “그 사람들이(“네가“라는 말이 아님) 지교회의 회원들로서 스스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게 하라.“ 본 서는 젊은 목회자, 또는 교회 회원이 “어떻게 행해야하는 것인지를 알려 주는“ 책이다. 지교회는 “진리의 기둥이며 터전(기반)“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을 소홀히 여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함으로써 지교회를 악용하고 있었다. 디모데전서를 연구할 때에 우리가 보다 나은 그리스도인, 보다 나은 교회원들이 되도록 기도하자.
바울의 생애와 사역에서 디모데가 얼마나 큰 역할을 담당하였는지 알기 위해서는 성경 사전에서 디모데의 일생을 읽어 보면 유익이 될 것이다."
▣ 책망받는 거짓 교리들 - 디모데전서 1장
디모데가 사임하고 싶어했으므로, 바울의 첫번째 부담감은 디모데로 하여금 머물러 있어 임무를 완성하라고 격려하는 것이었다.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 일꾼들은 그만두고 싶어했던 경험들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휫튼 대학(Wheaton College)학장이신 레이몬드 에드만(V. Raymond Edman) 박사가 늘상 말씀하시듯 “그만둔다는 것은 언제나 너무 빠른 결정이다.“
바울은 본 장에서 젊은 디모데에게 하나님 앞에서의 그의 지위와 하나님께서 그가 승리하는 것을 보고 싶어하신다는 사실을 상기시킴으로 격려한다.
1. 청지기-하나님은 너에게 사역을 맡기셨다(1:1-11)
디모데는 바울이 그를 데살로니가에 보냈기 때문에 에베소에 있지 않았다. 그에게 그 중요한 교회에서 사역하도록 임무를 맡기신 분은 하나님이셨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신뢰하여 사역을 맡기신 것처럼(1:11), 디모데에게 역시 특별한 청지기 직분을 주셨으며 충성을 다할 것을 기대하셨다.
4절에서 “하나님의 경륜“(또는 거룩한 교훈)이란 “하나님의 청지기 직분“으로 읽어야 마땅하다. 에베소에 있는 거짓 선생들은 그들 자신의 프로그램에 따라서 일하고 있었으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청지기 직분은 아니었다.
청지기의 책임에 있어 첫째로 요구되는 것은 그의 주인에게 충성하는 일이다(고전 4:1-7) 에베소에는 율법 교사들로서 이름을 내려고 하는 거짓 선생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자신들이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도 몰랐다. 이들은 말씀의 진리에서 돌아섰고 우화(신화)와 끝 없는 족보에 귀를 기울였으며, 그들이 대답할 수 있기보다는 질문을 더 많이 하고 있었다. 오늘날의 사이비 종교의 모습을 잘 보여 준다 ! 이들의 “사역“은 그리스도인이나 지교회를 양육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논쟁과 분열을 촉진한다.
5절에서 바울은 거짓 선생들과 그들의 사역을 하나님의 은혜에 속한 참된 청지기의 사역과 대조시킨다. 하나님께 속한 청지기가 목표로 하는 것은 사람들이 마음과 선한 양심과 진지한 믿음으로부터 우러나는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는 것을 보는 일이다. 그러나, 거짓 선생들은 끝 없는 논쟁, 분열, 그리고 헛된 공론을 증진시킨다 !
바울은 율법의 의의를 디모데에게 설명하는데, 그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구원하시려고 율법을 주신 것이 아니라 구원이 얼마나 필요한가를 보여 주기 위하여 주신 것이라고 지적한다. 율법을 정당하게 사용하는 일은 필요하다(롬 7:16). 9-10절에서 바울은 율법이 정죄하고 있는 죄인들의 명단을 열거하는데, 이 명단을 출애굽기 20장과 비교한다면 실제적으로는 모든 계명들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하나님은 바울과 디모데에게 영광스러운 복음을 맡기셨던 것이지 율법의 제도를 맡기신 것은 아니었다!(고후 3-4장 참조) “건전한 교리“는 문자 그대로는 “건강한 교훈“, 즉 영적인 건강을 증진시키는 교훈을 뜻한다. “위생학, 건강법“(hygiene)이라는 영어 단어는 헬라어 단어에서 왔으며, 여기서는 “건전한, 바른“으로 번역되었다(딤후 1:13/딤후 4:3/딛 1:9/딛 1:13/딛 2:1-2/딛 2:8 참조).
디모데후서 2장 17절에서 바울은 거짓 교훈들이 “썩은 것“을 삼킨다고 경고한다. 의사인 누가는 바울이 의학에 관해 많이 언급한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없었다 !"
2. 종-하나님은 맡은 일을 감당될 능력을 주신다(1:12-17)
여기서 바울은 은혜로 말미암아 효과적으로 봉사할 수 있게 된 자신을 하나의 본보기로 제시한다. 12절에 나오는 “직분“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디아코니아인데, “종“이란 뜻을 가진 영어 단어 “디콘“(deacon)은 여기서 온 말이다.
디모데는 그가 어리다는 이유와 사역할 만한 자질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으로 말미암아 장애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 분명하였다. “나를 보라 !“고 사도는 말한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시기 전에 나는 훼방자요 살인자였다 ! 만일 하나님의 은혜가 살인자를 선교사로 만들 수 있다면 당신도 성공시킬 수 있다“(고전 15:10).
주님을 섬기는 모든 사람들은(모든 신자들은 종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며(엡 2:8-9), 또한 은혜를 통하여 봉사하게 된다(롬 12:3-6).
14절에서 바울은 그의 생애에 있어 동기를 부여한 세 가지 힘, 곧 은혜, 믿음, 사랑을 열거한다. 그리스도와 또한 잃어버린 사람들을 향한 그의 사랑은 수고를 하지 않을 수 없도록 그를 강압하였고(고후 5:14-) 그리스도를 믿는 그의 믿음은 그에게 능력을 주었으며(엡 1:19)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생활에 역사하심으로 그는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히 12:28).
바울은 자기가 구원받은 것을 하나님이 잃어버린 죄인들을 위하여, 특히 사랑하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하시는 일의 본보기로 여긴다. 오늘날 불신자들은 바울과 같이 빛을 보거나 음성을 듣는 방식으로 구원을 받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죄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 이스라엘은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구원을 받은 것처럼 장차 어느 날 그리스도를 보고, 회개하고, 믿으며,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바울은 “미쁘다 이 말이여“라는 구절을 여러 번 인용하고 있는데, 15절에서 그 첫번째로 사용한 것을 본다(3:1/4:9/딤후 2:11/딛 3:8). 이것은 초대교회의 신약 예언자들로 말미암은 예언의 말이라고 생각되는데, 교회의 주된 가르침을 요약한 말이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참고할 만한 기록된 성경이 없었으므로 이 “말들“은 믿음에 대한 권위 있는 진술로서 그들에 의해 인용되었다."
3. 군사-하나님은 전쟁을 위해 너를 준비하셨다(1:18-20)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경기장이 아니라 전쟁터였다. 디모데는 하나님께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인 군사로 등록되었다(딤후 2:3-4). 바울은 이 젊은 목회자에게 몇 년 전에 있었던 성직 수여식을 상기시킨다. 지교회에 있는 선지자들 중의 몇 명은 성령에 의해 미혼인 디모데를 불러 특별한 봉사 사역을 위하여 안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행 13:1-3/딤전 4:14/딤후 1:6).
“하나님이 너를 먼저 준비시키지 않고서는 너를 부르지 않으신다“라고 바울은 격려한다. “하나님의 영이 너에게 인을 치셨다는 사실은 하나님이 네가 전쟁을 뚫고 앞으로 전진하는 것을 보실 것이라는 증거이다“(빌 1:6 참조). 이러한 성령의 약속은 말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디모데가 종사하고 있는 영적인 전쟁의 무기들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양날 가진 날카로운 칼처럼 사용하며 사단을 무찔러야 하는 것이다(엡 6:17/히 4:12).
그러나, 정확한 교리를 가지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리스도인 군사들은 정확한 생활을 가져야만 한다(믿음과 선한 양심, 19절). 바울은 디모데와 디도에게 보내는 이 목회서신들에서 양심이라는 단어를 몇 차례 사용한다(딤전 1:5/딤전 1:19/딤전 3:9/딤전 4:2/딤후 1:3/딛 1:15).
양심이란 단어는 라틴어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함께 안다“는 뜻이다. 양심은 우리의 행위들을 증거하는 내적인 재판관이다(롬 2:15). 신자가 죄를 숨기고 살면서도 정통 교리를 유지해 가기란 가능하다. 그러나, 이것은 바로 영적인 파선으로 인도해 가는 방법이다. “양심을 버린다“는 것은 죄와 사단에게로 가는 문을 열어 놓는 것이다. “순전한 양심“은 “더럽혀진 양심“이 되며 궁극적으로는 영적으로 어떠한 느낌도 없는 “화인맞은 양심“이 된다.바울은 에베소에서 디모데에게 문제를 일으킨 두 사람의 이름을 말하는데, 그들은 후메내오(딤후 2:17)와 알렉산더(딤후 4:14)이다. 이 두 사람은 분명히 에베소 교회의 회원들이었는데 훼방하는 것(아마도 거짓 교리)때문에 바울에게 징계를 당했을 것이다. 20절의 “배운다“는 말은 “징계로 말미암아 배운다“는 뜻이며, 사단이 불리한 환경들을 통하여 그들을 다루게 되는 것을 암시한다.
젊은 디모데가 하나님의 진리로써 이러한 사람들을 직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교회의 순전함과 능력을 보존하려고 한다면 이 일을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어제의 거짓 교사들에게 저항하였더라면 오늘날 거짓 교리들은 훨씬 적었을 것이다."
▣ 교회에서의 기도 생활 - 디모데전서 2장
2-3장에서 바울은 교회의 공적인 사역과 각기 다른 회원들이 맡아야 할 역할들에 대해 논한다. 1장에서는 말씀에 대한 사역을 다루었는데 본 장에서는 기도를 강조한다. 말씀과 기도는 목회자의 두 가지 주된 사역이다(행 6:4).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들이 어떤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사람들을 기쁘게 하며 교회 정책을 실천하느라고 목회자들을 바쁘게 하여 이 중요한 사역을 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은 대단히 슬픈 일이다. 교회가 조직을 단순화하고 동기를 순화시킨다면 목회자들은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영적인 사역을 더 잘 할 수있을 것이다.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역과 기도의 사역을 균형있게 행한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말씀은 교회를 가르치며, 기도는 말씀에 순종하도록 교회를 감동시킨다. 성경을 가르치는 일을 많이 하면서도 기도를 적게 하면 “빛은 많지만 온기는 없게 될 것이며“ 이 교회는 정통이지만 차갑게 얼어붙게 될 것이다 ! 이와는 극단적으로 반대를 이루는 교회는 기도를 많이 하고 신앙의 열성은 많지만 말씀을 가르치는 일은 적은 경우인데, 이 교회는 열성은 있지만 지식은 없는 모임을 만들어 낼 것이다.
1. 지교회에서의 기도의 위치(2:1-8)
중요성-바울은 “무엇보다도 먼저“ 기도를 열거한다. 지교회가 기도하는 것은 마땅히 하도록 되어 있어서가 아니다. 기도는 지교회의 생활에 있어서 생명적인 요소이다. 성령은 기도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교회에 역사하신다(살전 2:13/엡 3:20-21). 기도하는 교회는 능력을 소유할 것이며, 그리스도를 위한 지속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다. 사도행전에서 신자들이 기도에 전심하여 그들의 원수들을 정복할 수 있었던 일을 살펴보자. 바울은 기도하라고 우리에게 권면한다. 이것은 중요하다 !
본성-바울은 교회의 기도가 다음과 같은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간구-필요를 요청하는 것이다.
-기도-예배와 경배를 암시한다.
-도고-다른 사람을 위하여 요청하는 것이다.-감사-하나님이 행하신 일에 대한 진가를 평가하는 것이다(빌 4:6/단 6:10-11 참조).
우리는 교회 내의 가족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거기서 멈추어서는 안 된다. “모든 사람들“이 우리의 기도를 필요로 한다.
목표-2절은 기도가 그 사회의 평화를 유지하도록 돕는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리스도인들이 통치자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하나님은 지배하시며 사악한 사람들로부터 자기 교회를 보호하신다. 3절은 무엇보다도 기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함을 시사한다.
만일 우리가 자신들의 필요에 대처하기 위해서만 기도한다면 기도에 대한 관점이 낮은 것이다. 물론, 우리는 잃어버린 사람들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4-7절).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죽으셨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할 것을 신자에게 명령하신다.
조건들-8절은 지교회에서의 공중 기도를 위한 세 가지 조건들을 서술한다.
-“분노함이 없이“-서로 사랑함으로 해야 한다.
-이들은 거룩한 손을 가져야 한다. 즉 깨끗한 삶을 살아야 한다.
-믿음을 가져야만 한다. 마가복음 11장 20-26절에서 이와 비슷한 구절을 읽어 보자.
물론 여자들끼리 모인 교제에서는 대중 기도를 해도 좋다. 그러나, 공적인 모임에서 남자들이 참석했을 때는 하지 말아야 한다."
2. 지교회에서의 여성들의 지위(2:9-15)
다른 종교적인 신앙과는 달리 기독교는 여성과 어린 아이의 지위를 향상시켰다. 이러한 교훈을 했다고 해서 바울을 비판할 것이 아니라, 여인들은 그리스도인의 믿음이 온 세계의 여권 운동에 놀라운 축복이 되었음을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한다.
바울은 다시 머리의 원리를 강조하고 있다(엡 5:22-/고전 11:1-16). 이 원리를 인정하기를 거절하는 지교회는 혼란을 초래하게 된다는 것은 극히 당연한 일이다.
교회에는 삼중의 머리가 있다. 즉, 몸에 대한 그리스도의 머리되심(골 1:18)과 양떼에 대한 목회자의 머리됨(행 20:28), 그리고 여인에 대한 남자의 머리됨(고전 11:1-16/딤전 2:12)이다. 목회자의 머리됨을 무시하는 교회원들, 또는 남자의 머리됨을 부정하는 여인은 둘 다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되심을 부인하는 것이다.
바울은 교회에서의 이상적인 그리스도인 여인의 특징들을 말해 준다.정숙 또는 아담함(9절)-바울은 그리스도인 여인들이 낡은 옷을 입으며 모양을 내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외모보다는 내적인 사람이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정숙한 단장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나, 극도로 모양을 내는 일은 몸을 강조하는 것이며 그리스도인을 세상적으로 보이게 하는 것이다. 신자는 현대적이면서도 여전히 단정할 수가 있다(벧전 3:1-5 참조).
순전함-그녀는 “거룩함을 고백한다.“ 거룩함은 바울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들 중의 하나이다(2:2/2:10/3:16/4:7-9/딤후 3:5/딛 1:1). “거룩함“(godliness)이라는 단어는 “하나님을 닮은“(god-likeness)이란 단어를 줄인 말인 것은 물론이다.
근면-그녀는 선한 일을 실천한다(10절). 이 편지의 후반부(5:11-14)에서 바울은 이집 저집을 배회하며 사단에게 죄로 인도하도록 기회를 주는 게으른 여인들에 대한 경고를 한다. 그리스도인 여인들이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그녀의 생활로써 전하는 것이다(벧전 3:1-3 , 베드로는 여기서 그리스도인 아내들에게 그녀의 잃어버린 자인 남편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방법을 말해 준다).
겸손-고린도전서 14장 34-40절에서 바울은 이 명령을 보충하고 있다. 마치 사단이 여인을 통하여 에덴에 발판을 얻은 것처럼 지교회에서도 진지하기는 하지만 잘못 지도된 여인을 통하여 사단이 발판을 굳히는 때가 가끔 있다. 거짓이단들(재림교회, 크리스찬 싸이언스, 접신론 등)에서는 오순절 운동에서와 같이 여인들이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지교회가 모임을 가질 때 겸손한 침묵으로 앉아 있으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듣는 것이 여자의 위치여야 한다. 만일 무슨 질문이 있다면 집에서 남편에게 물어야 할 것이다(집에만 있고 교회에는 참석하지 않는 남편들이 너무도 많다는 것이 비극이다).
이러한 역할은 여인들이 여인들에게 또는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일을 못하게 막는 것은 아니며, 교회 아닌 다른 교제 모임(방학 중의 성경학교, 어린이 복음전도반 등)에서 지도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막는 것도 아니다.
바울은 굳건한 교리적인 기반을 가지고 이러한 치리 방법에 띠를 두른다. 아담이 먼저 창조되었고 하와보다 우선권을 가지고 있었다(고전 11:8-9 참조). 머리됨의 원리는 자연의 한 과정으로 기록되어 있고, 인간이 이러한 원리를 위반하면 그 결과는 언제나 혼란이다. 고린도교회가 혼란을 일으키며 육신적으로 된 것은 여인들이 남자들보다 우선권을 행사하고 있었던 데에도 부분적인 이유가 있었다 !바울은 이 원리의 두번째 이유를 설명한다. 즉, 사단은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더 쉽게 속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14절/ 고후 11:3 참조)는 것이다. 하와는 사단에게 속아서 죄를 범하였으나, 아담은 눈은 뜨고 죄를 범하였다. 아담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든지 그의 아내와 함께 있는 것을 택하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아담은 죄인으로서 아내와 함께 있을 것을 의도적으로 선택하였다.
이러한 면을 고려할 때 아담은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의 상징이다(고전 15:45).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죄인들을 사랑하셨고 의지적으로 영광을 제쳐두고 우리를 위하여 죄인이 되셨기 때문이다(빌 2:5-8).
15절에 나오는 “해산“이란 말은 창세기 3장 16절의 저주를 가리키는 것 같다. 거룩한 여인은 위험한 해산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뜻이다. 어떤 이들은 이것이 그리스도의 출생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헬라어 원어는 “그 해산을 통하여“라고 되어 있는데 즉, 매우 특별한 아이를 말하고 있다. 그러나, 첫번째 의미가 아마도 가장 좋은 해석일 것이다(5:14)."
▣ 목회자들과 집사들 - 디모데전서 3장
교회가 하나의 유기체로서 그리스도께 연합된 살아 있고 성장하는 몸이지만 또한 하나의 조직이기도 하다. 사실상, 모든 유기체는 조직을 갖추고 있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를 파괴하게 될 것이다! 인간의 몸은 살아 있는 조직체이지만 또한 고도로 조직화된 기계이기도 하여 만일 지교회가 그 임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것이라면 지도권이 형성되어야 하며, 이것은 곧 조직을 의미한다.
1. 신약 목회자(3:1-7)
목사, 장로, 감독이라는 용어들은 같은 직분을 가리킨다(행 20:17/행 20:28/딛1:5/딛 1:7 참조). 장로는 헬라어 프레스부테로스(presbuteros)를 번역한 말이며, 장로회(presbytert)라는 단어도 여기서 파생되었다(4:14). 이 단어는 단순히 나이 많은 성숙한 사람을 뜻한다. 유대인의 장로들은(눅 22:66) 지도적인 성인 남자들이었으며 그들의 성숙을 인정받고 있었다.
초대 교회에서 목회자들은 교제 모임 가운데 성숙한 사람들로부터 선택되어졌다. 감독이란 말은 에피스코포스(episkopos)라는 말에서 왔으며 “감독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현대의 성공회(Episcopal Church)는 이 단어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 그러므로 지교회의 목회자는 영적인 성숙의 면에 있어서는 장로이며, 사역이란 면으로 볼 때는 감독이다. 그리스도께서 지교회가 그 구역을 담당하는 감독의 지배를 받기를 원하셨다는 증거는 없다.
빌립보서 1장 1절은 신약 교회의 구조를 성도들, 목사들, 집사들로 구성되었음을 알려 준다. 신약 교회들에 한 사람 이상의 장로나 목사가 있었던 것은 일반적인 사례였다.
목사의 개인적인 자격(2-3절)-“흠이 없다“는 말은 죄가 없다는 뜻이 아니며 “비난받을 일이 없는“이란 뜻이다. 이 단어를 직역하면 “이해할 수 없는“이란 뜻인데, 이는 그의 생활에서는 사역을 방해하거나 간증을 파괴하는 요소를 원수가 집어낼 수 없다는 뜻이다.
-그 당시는 도덕적으로 이완되어 있어 문제가 생기고 있었기 때문에 목사는 한 아내를 둘 필요가 있었다. 다시 말하면, 목사는 결혼의 표준에서 어긋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울이 일부다처(한 명이 둘 이상의 아내를 갖는 것)를 공격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혼을 공격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끝없는 논쟁이 진행되어 왔다.
-“근엄“하다는 것은 “절제“를 뜻하며 엄격한 판단과 행동을 가리킨다. “건전함“이란 목적의 진지성과 자기 조절력을 시사하는 말이다. “선한 행위“는 “정돈된“이라고 번역되는 것이 마땅하다. 이는 질서정연한 생활과 간증을 암시한다. 그는 참된 신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자기의 집에 맞아들이는 것을 즐거워해야 한다.
-“가르치기를 잘하며“는 “목회자와 교사“를 한 직분으로 보는 에베소서 4장 11절과 짝을 이룬다. 디모데전서와 디모데후서를 다시 읽고 바울이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대하여 얼마나 많이 강조하였는지 알아보자.
-성경에서는 완전한 금주를 명확하게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현대의 문제들은 교회가 어떤 형식으로든 알콜에 대해서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도록 하고 있다. 신약 교회에서는 그렇지 않았지만 목회자가 지나치게 술을 마셔서는 안된다는 사실이 강조되었다.
-“구타한다“는 말은 육체적인 힘을 사용한다는 뜻이다.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약 1:20).
-목회자는 돈에 굶주려서는 안 된다. 양들을 향해 인내해야 하며 다투기를 좋아해서는 안 된다(말다툼장이, 논쟁을 일삼는 것). 목회자는 탐욕에서 자유로워야 하며 그리스도와 교회를 그의 삶에서 첫자리에 두어야 한다.
그의 가족의 자격(4-5절)-목회자는(그의 아내가 아님) 가정의 머리가 되어야 하며 자녀들을 조절하여야 한다. 이 말은 목사의 자녀들은 진짜 어린이들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은 아니며, 주님과 부모들을 존경하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래야 하듯이 성장하여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의 교회의 자격(6-7절)-그는 새로 회심한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 만일 그가 새로운 신자라면 사단은 그를 교만으로 부풀게 하여 죄에 빠지게 할 것이다. 새로운 신자들을 그리스도인의 봉사에 밀어 넣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는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밖에 있는 사람들)에게서조차 좋은 간증을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에 대한 좋지 못한 악평이 교회의 간증을 찢어놓을 것이다. 목회자들이 나쁜 빚을 남기고 약속들을 이행하지 않고 떠난다는 것은 비극이다. 이러한 일은 공동체 내에서 교회의 간증을 손상시킨다."
2. 신약집사(3:8-13)
“이와 같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집사들에 대해서도 똑같이 중요한 기준을 가지고 계심을 시사한다. 왜냐하면 그는 목회자와 함께 교회의 일들을 지도하며 일하기 때문이다. “단정하고“는 “높이 존중을 받는 가운데 자제하다“는 뜻이다.
“일구이언“하는 사람은 나쁜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으로서, 이 사람에게는 이말을 하고 저 사람에게는 저 말을 하는 사람이다. 교회 직원들은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어야 한다. 포도주와 돈의 문제도 3장에서 다루어진다. 교회자금을 개인적인 유익에 잘못 사용하는 일에 대한 암시도 나온다. 이들은 깨끗한 양심과 신앙을 고백한 대로 사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어떤 이들은 11절을 “여자 집사“라고 번역한다. 그러나, 이 단어는 단순히 “아내들“이란 말이다. 초대교회에 남자 집사들과 마찬가지로 여자 집사들이 있었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 이러한 표준들과 집사들의 아내들에게 적용된다.
목회자와 집사들은 둘 다 임직되기 전에, 즉 그들의 은사들을 행사하도록 허락을 받기 전에, 여러 면에서 그 자격이 입증되어야 한다. 집사의 직분은 자리만 채우는 것이 아니라 사용되어져야 한다. 충성된 교회 직원들은 하나님과 인간들 앞에서 좋은 지위(등급)를 얻게 될 것이며,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일을 촉진할 수 있을 것이다."
3. 신약교회(3:14-16)
“참된 교회“ 또는 “보이지 않는 교회“에 대해서 성경 상에 많이 언급되어 있으며, 이 개념으로 볼 때 모든 신자들은 그리스도께 속해 있으며 주님 안에서 모두가 하나이다. 그런데 신약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지교회로서, 이것은 우리가 대단히 많이 들은 바 “신비로운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참된 교회“이다. 신약에서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의 모임에 연합하여 하나님을 위한 일들을 해나가도록 되어 있다. 이 구절에서 바울은 몇 가지 상징들을 들어 지교회의 중요성을 설명한다.
하나님의 집-즉, 이 땅 위에 있는 하나님의 가족이다. 모든 신자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며, 교회는 하나님의 가족이요 집이다(갈 6:10/엡 2:13 참조). 바울은 하나님의 가족 중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를 남자들에게 가르치기 위하여 이 편지를 쓰고 있다. 교회가 하나님의 가족일진대, 이 땅위의 어떤 다른 조직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임이 분명하다.
진리의 기둥과 터-이것은 건축 용어이다. 바울은 교회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붙들고 있음을 가르치고 있다. 터(땅)란 성채 또는 기반이란 뜻으로, 어떤 역본에는 “기초“라고 번역되어 있다. 지교회가 진리를 보존하고, 전파하고, 실천하는 일에 충성을 다할 때, 하나님의 일은 이 땅에서 번영한다. 반면에, 불충성한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기초를 헐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16절은 아마도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찬송가였을 것이며, 예배 시에 성도들이 이 구절들을 암송하였던 것 같다. 거룩함의 비밀은 이 세상에 거룩함을 가져오기 위한 하나님의 숨겨진 계획이다. 물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위대한 비밀이시며 이 노래는 그리스도를 높이고 있는데, 육신으로 나타난 바되신 그리스도의 출생과, 그의 죽음과 부활(영으로 의로워짐, 롬 1:4/롬 3:4), 그의 지상 사역(천사들 또는 목격자들에게 보이고 전파되셨으며 하늘로 올리우심)에 대한 것이다.
이 구절은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의 요약이며, 그 내용은 그가 시작하신 일을 지교회가 계속해간다는 것이다. 지상의 교회는 지상에 있는 그리스도의 몸이다(고전 12:12 참조-여기서는 우주적인 교회가 아니라 지교회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지금은 그리스도인들이 지교회의 중요성을 믿기 시작하여 그들의 시간과 재능과 십일조로써 이 “진리의 기둥이요 터“를 지원하기 시작할 때이다."
▣ 참된 신자의 행실-디모데전서 4장
본 장에서는 목회자 개인의 영적 생활과 수고를 다룬다. 여기서는 참된 목회자에게 필요한 세 가지 자격을 시사한다.
1. 좋은 목회자-말씀을 전파함(4:1-6)
위험(1-3절)-에베소 교회는 거짓 교리들이 들어온 것에 대하여 이미 경고를 받았었다(행 20:29-30). 성령은 바울의 편지를 통하여 교회에서 배교를 보게 될 것이며, 참된 신앙으로부터 떨어져나가는 일이 있을 것임을 “밝히“ 말씀하신다(살후 2장). 헬라어에서 “떠난다“는 단어는 “배교“라는 말과 동의어이다. 바울은 배교의 원인을 “인간의 지성이 발달해서“가 아니라 사단의 영향력으로 인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세월을 통해 내려오며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의 믿음을 부정하며 성경의 근본적인 교리들을 공격하였는데, 이러한 행동은 현대인들의 지성이 더욱 발달하여서 이제 성경의 교훈에 “속지 않는다“는 데에 근거를 두고 있다. 문제는 머리가 아니라 마음에 있다! 이들은 사단의 마귀적인 힘의 교묘한 영향력 아래 있으며 그들의 주인과 같이 거짓말장이요 살인자들이다.
이 거짓 선생들의 표시는 무엇인가? 한 가지 예를 들면, 이 지도자들은 이렇게 설교하고는 저렇게 행동한다. 이들은 대단한 위선자들이어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의도적인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그들 자신의 양심에 “낙인“을 찍는다 ! 이들은 성경을 읽지만 해석할 때는 그들의 위선적인 거짓말로 설명한다. 이들은 거짓된 경건(금욕주의)을 가르쳐 결혼을 금하고 어떤 음식들을 먹지 못하게 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분명히 로마 카토릭 교회같이 느껴지지만 로마에만 제한된 것은 아니다. 골로새서 2장을 연구해서 육체의 연습이 영적인 생활을 진보시키지는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한 이른바 “그리스도인들“이 있는데, 거룩한 날이나 특별한 의무들을 지키며 결혼 생활보다는 독신 생활이 더욱 신령하다고 가르치는 이들을 조심해야 한다.
답변(4-6절)-“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는 문제를 해결한다. 하나님은 그의 말씀을 통하여 모든 음식이 정하다고 선언하셨으므로(창 1:29-31/창 9:3/막 7:14-23/고전 10:23-26/행 10:1-) 기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인은하나님께 감사하며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 음식을 헌납한다(골 10:31).
목회자는 그의 사람들에게 이러한 일들을 가르치고 “건강한“(건전한) 교리로 그들과 자신에게 영양을 공급해야 한다(1:10 참조). 좋은 목회자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먹일 수 있기 위해서 자신이 먼저 말씀을 먹을 것이다."
2. 경건한 목회자-말씀을 실천함(4:7-12)
“건강한“ 교리가 영적인 건강을 증진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거짓 선생들이 가르치는 어리석고 미련한 신화들은 영적인 질병을 산출할 것이다. 신령한 음식과 신령한 경험은 적절한 결합이다. 디모데가 금욕주의와 육체의 연습을 배워가고 있었다는 암시가 있으며, 바울은 여기서 영적인 훈련과 연습을 육체적인 것보다 더욱 강조하라고 디모데를 가르치고 있다.
만일 모든 그리스도인이 야구 경기에 쏟는 힘과 열정을 영적인 일들에 쏟는다면 교회가 얼마나 더 강해질 것인가!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영적인 연습(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함)은 이 생과 오는 생을 위하여 유익하다 !“(히 4:14 참조).
그리스도인, 특히 목회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해야 하며, 거룩함(하나님을 닮을)으로 알려져야 한다. 이 일은 짐을 지며 고난을 견뎌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10절). 그러나, 그만한 가치가 있다! 젊은 사람들이라도 바울이 12절에서 권고하는 대로 말과 행위와(대화) 사랑과 마음(정열)과 믿음(충성심)과 순전함에 있어 본보기가 될 수 있다."
3. 성장하는 목회자-말씀에서 진보해감(4:13-16)
“너희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영적인 전진)는 말은 바울이 15절에서 세운 목표이다. 성장하는 목회자는 곧 성장하는 교회를 의미한다. 왜냐하면 누구도 자신이 가보지 못한 곳으로 다른 사람들을 인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디모데 또는 신자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생활 중에 어떻게 진보를 나타낼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읽는 일에 착념하라.“ 이것은 집회 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공적으로 읽는 것을 뜻한다. 말씀을 강해하고 적용해야 함은 물론이다. 말씀에 대한 사실들을 안다고 해서 충분한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진리와 교리와 말씀에 대해서 알아야만 은혜 가운데서 성장하게 된다.
영적인 은사들-“모든 그리스도인은 어떤 영적인 은사를 지니고 있다“(롬 12:3-8/고전 12:1-). 그런데 믿음으로 이 은사들을 행사하는 대신 소홀히 하는 때가 너무도 많다. 장로들이 젊은 디모데를 안수하여 바울을 조력하게 하였을 때(딤후 1:6), 하나님은 그의 사역을 준비하도록 몇 가지 영적인 은사들을 주셨다. 그런데 디모데는 이러한 은사들을 소홀히 하고 있었으므로 꺼져가는 불을 뒤적거리듯 저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사용하지 않는 것은 잃어 버리게 된다(히 2:1-3 참조).
헌신-헌신은 오늘날 신자들 사이에서 잊혀진 것이다 ! 여기 해당되는 원어는 “이 일에 참석하다, 이 일 안에 있다“는 뜻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이러한 일들에 자기 자신을 완전히 바치며, 타협하거나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음을 뜻한다. 물론 “묵상“도 이 일의 일부이다. 그러나, 바울의 명령은 훨씬 더 폭넓은 것이다. 영적인 일들에 의욕이 없는 그리스도인은 결코 진보를 이루지 못할 것이다.
시험-“네 자신을 삼가라“는 말이 먼저 나온다. 자신을 검사하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아내라. “반성하지 않은 인생은 살 가치가 없다“고 한 고대 철학자가 말하였다. 오늘날 많은 신자들은 교리는 정확하지만 교리대로 사는 데에 있어서는 정확하지 못하다. 만일 우리가 자신의 영적인 능력을 잃어버린다면 결코 다른 사람들을 구원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이 구절들을 복습해 보면 바울은 디모데가 성경 위에 교회를 세우기를 원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성경을 전파하고, 성경을 가르치고, 성경을 실천하는 것이다. 성경은 교회를 위한 음식일 뿐 아니라 그 자신의 개인적인 음식과 지침이 되어야 했다. 말씀과 기도에 시간을 보내는 목회자는 스스로 성장하게 될 것이며 성장하는 교회를 목회하게 될 것이다.
이제 다음의 질문으로 결론을 내리기로 하자. “교회원이 그의 목회자가 성장하도록 돕는 방법은 어떠한 것인가?“ 가장 좋은 방법 중의 하나는 그의 시간을 보호해줌으로써 연구하고 기도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모든 가능한 핑계들을 만들어서 목회자와 전화를 하거나 연구 시간에 “예고없이 방문하는“ 이 기적인 교회원들이 너무도 많다. 모든 목회자들은 필요할 때 가까이 있어 주기를 원한다. 그러나, 시간을 낭비할 만큼 여유가 있는 신령한 목회지는 아무도 없다.
또다른 방법은 그를 위하여 매일 기도하는 것이다. 스펄젼은 그가 설교하고 있을 동안에 그를 위해 기도하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세번째 제안은 그가 설교할 때 주목하여 듣는 것이다. 듣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설교하는 일은 얼마나 축복인가! 교회원들이 성경 말씀에서 나온 멧세지를 따르려고 하지 않으며 생활에 적용하려 들지 않을 때 목회자는 얼마나 낙심되겠는가?
마지막으로, 교회원은 교회의 일을 일으켜 세우는 데 필요로 하는 수단(재정)을 공급해야만 한다. 이것은 주님의 날에 주님의 집에 십일조와 헌금을 가져오는 충성된 청지기 직분을 뜻한다. 교회에 빚이 있거나, 보잘것 없는 재정지출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들을 해 낼 수 없는 경건한 목회자들이 많다. 십일조를 바칠 때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내는 일을 돕는 것이다."
▣ 참신자의 사역-디모데전서 5장
이 마지막 두 장은 최소한 일곱 종류의 사람들에게 사역하는 문제를 다룬다(개요 참조).
1. 나이 많은 성도들에 대하여(5:1-2)
디모데는 젊은이로서 교회 내의 나이 많은 신자들에게 “주인 행세를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만 하였다. 목회자는 나이 많은 성도들을 책망하지 말고 권면하며 격려해야 한다. 바울은 “너의 부모를 대하듯 하라“고 충고한다. 디도서 2장 1-4절에서 바울은 이것을 명령하고 있다.
교회는 나이 많은 신자들의 필요와 문제들을 인식하고 이에 대처하는 데 도움을 주어야 한다. 이들은 교회에 중요한 사람들이다. 교회의 젊은이들은 나이 많은 이들을 필요로 하고 있으나, 다만 그 필요를 충분히 깨닫고 있지 못할 뿐이다(벧전 5:1-7)."
2. 과부들에 대하여(5:3-16)
사도행전 6장과 3장 36-43절, 야고보서 1장 27절을 읽어 보라. 초대교회는 가난한 과부들을 돌보고 있었다. 3절의 “경대하라“는 단어는 “가격을 확정하는 것“이란 뜻인데, 이는 “사례금“과 같은 뜻으로 “강사에게 그 봉사로 인해서 지불되는 값“을 말한다. 디모데는 존경할 가치가 없는 과부들에게 돈을 지불하여 교회 자금을 오용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했다.
오늘날도 그렇지만 그 시대에도 종교라는 가면 아래 종교적인 사람들을 희생물로 삼아 돈벌이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 건달들은 온유한 마음을 가진 성도들이 “예수를 위하여“ 그들에게 손을 펼 것을 알고서 언제나 지교회를 찾는다.
그러나, 4절에 먼저 가족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하는 것을 주목하자! 자녀들과 손자들은 그들의 부모와 조부모를 공양해야(보답해야)하며, 교회가 그들에게 자선을 베풀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자기의 가족을 돌보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불신자보다 더 나쁘다 !(8절)
목회자와 집사들이 자선을 베풀 때에 각 경우들을 심사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또한 이 때문에 교회 단체의 개개 회원들이 자선을 베풀기 전에 먼저목회자와 상담해야 하는 것이다. 인심 좋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말씀대신 그들의 기분을 따름으로써 신실한 십일조 납부자들이 낸 하나님의 돈의 상당량이 낭비되어 왔다.
바울은 과부들을 등록시키라고 요청한다(“數에 들게 하다“, 9절 /5절, 9-10절에 유의). 누가복음 2장 36-37절을 보고 이러한 종류의 여인에 대한 본보기를 찾아보자. 먼저 이들은 참 과부로서 이 땅에서는 지원이나 돌봄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어야 한다(교회에서 지원을 받은 이 과부들은 도르가처럼 다방면에서 교회를 섬기고 있는 것 같다). 60세 이상이어야 하고, 이혼이나 또는 재혼을 하지 않은 여인이어야 했으며, 좋은 간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10절).
11-16절에서 바울은 젊은 과부들을 다루며 그들을 명부에 등록하지 말라고 디모데에게 경고한다. 그 한가지 이유는 젊은 과부들이 그리스도와 교회를 섬기겠다고 충성을 맹세하였지만(12절에 나오는 “처음 믿음“이란 “처음 서약“이다) 남편을 찾기 시작한다. 11절에 나오는 “시집가고자 한다“는 말은 “결혼을 하게 될 것이다“란 뜻으로 이러한 소원은 그들의 삶에 타오르는 열정이 된다. 더구나 영적으로 식어지게 되면 다른 사람들을 섬기기를 그만두고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할 것이다(13절).
이렇게 되면 그리스도의 이름에 수치를 가져올 것이며 교회의 간증을 손상시킬 것이다. 젊은 과부들은 결혼하여 거룩한 가정을 이루고 집에 거하며 사단에게 고발할 기회를 주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 바울의 명령이다. 16절은 이 문제를 요약하고 있다. 친척들이 그 가난한 식구들을 돌보게 하고 교회가 짐(책임)을 지지 않도록 한다."
3. 교회 지도자들에 대하여(5:17-25)
디모데는 자신의 직원 몇몇 사람들로 말미암아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 분명하였다. 문제 중 하나는 디모데가 그들 중 몇몇을 너무 빨리 선택하여 기름을 부었다는 것이며(22절), 또다른 요인은 그들 몇몇에 대해 잘못 판단하고(24-25절) 다소 성급한 결정을 내렸다는 점이다. 목회자의 마음이 바르다 해도 실수한다. 그렇게 되면 직원들 역시 실수한다 !
에베소에서 바울을 대신하여 디모데는 그 지역에 있는 여러 장로들의 일을 감독하고 있었다(22절). 이 사람들은 교회에서 봉급을 지불하고 있었으며 하나님의 명령도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은 말씀으로 살아가라는 것이었다(고전 9:1-14). 자기의 일을 하는 데에 충성스러운 장로들은 이중으로 보수를 받는 것이 마땅하다(명예와 돈, 3절 참조).
물론 이러한 이중적인 보수가 질서를 벗어난 것은 아닐 것이다! 바울은 신명기 25장 4절과 누가복음 10장 7절에서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것을 인용하여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의 종들에게 돈을 지불해야 하는 원리를 지지한다.
그러나, 문제를 일으킨 교회 지도자들은 어떠한가? 무엇보다도 먼저 사실을 알아야 한다. 모든 교회가 디모데전서 5장 19절을 실천한다면 싸움과 분열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 모든 송사는 최소한 두 사람의 목격자의 지지가 있어야 한다. 정직하게 문제를 심사해야 하며 편견이 나타나서는 안 된다(21절). 사실의 반만 듣고 다른 신자들을 심판하거나 결론을 끄집어내게 되기란 얼마나 쉬운 일인가 !
송사 내용이 사실로 드러난 경우, 또는 증언들과 사실들을 죄가 있음을 지적할 때 그 위반한 직원은 공개적으로 다루어져야만 한다. 여기서 제안하고 있는 것은 위반자가 그의 죄들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만일 그 직원의 죄를 아는 사람이 두 사람 이상이면 다른 사람들도 이 일을 알고 있다고 확신해도 좋다. 공적인 죄는 공적인 고백과 배상을 필요로 한다.
만일 모든 교회에서 죄의 사례들이 이러한 방식으로 처리된다면 교회의 젊은 사람들은 문제를 일으키기 앞서 두 번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교회 직원이 된다는 것은 단지 회원들보다 더욱 책임이 중한 지위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23절은 대단한 관심을 일으켜 왔다. 양조업자들이 이 구절을 알콜 사용을 조장하는 데에 이용하며, 많은 육신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세속적인 성품을 지지하기 위해 이 구절로 도망쳐 가곤 하였다. 먼저 바울은 디모데에게 자기의 몸을 돌보라고 강권하고 있다. 상상력을 총동원하여도 현대의 맥주나 위스키 또는 알콜 음료를 마심으로써 우리의 몸이 더 좋아진다고 믿을 수는 없다!
음주가들은 대개 몸집은 큰데도 가장 약하고, 가장 병에 잘 걸리는 몸을 가지고 있다. 바울이 처방한 포도주는 디모데의 위장에 도움을 줄 것이다. 이것은 약이지 사회적인 음료가 아니다(어떤 이들은 디모데가 교회 직원들과 문제가 생겨서 이 때문에 그에게 궤양이 생겼다고 제안하기도 한다!)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시도록 그리스도인들이 방법을 취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위하여 기도하였으며, 또한 그의 필요를 위하여 실천적인 치료법을 제시하였다. 아마도 디모데는 육체의 훈련과 금욕주의 등을 가르친 거짓 선생들에게 동요되고 있었으며, 이것이 디모데의 건강에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건강한 교리는 그리스도인을 영적으로 건강하게 할 뿐만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건강하게 할 수 있다!
교회 직원과 지도자들은 목회자가 짐을 지는 것을 돕기 때문에 중요하다. 그러나, 목회지는 언제나 양떼의 목자가 되어야 한다. 교회 직원이 할 수있는 최선의 길은 목회자로 하여금 그의 신령한 은사들과 직책들을 장애나 마음의 흐트러짐 없이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그러할 때 교회는 성장할 것이다!
▣ 디모데와 다른 이들에게 주는 조언 - 디모데전서 6장
본 마지막 장은 교회의 사역을 교제 모임의 여러 다른 그룹들에게, 특히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에게 계속 설명한다.
1. 노예들에게(6:1-2)
노예 제도는 고대 생활에 있어서 하나의 활력소였다. 로마 인구의 25%가 노예들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많은 노예들이 그리스도를 발견하였으나, 그들의 주인들은 불신자들이어서 그리스도인 노예들이 불순종하거나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를 주장하는 경향이 있었던 듯하다. 바울은 그들이 구원받지 못한 주인들에게 좋은 간증이 되어 주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존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높이는 법을 배우게 하라고 강권한다.
믿는 주인을 둔 노예들은 그들에게서 이점을 누리려는 유혹을 받게 될 것인데, 바울은 이 일을 금하고 있다(엡 6:5-/골 3:22-).
2.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에게(6:3-5)
현대의 어떤 설교자들은 “교리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말라. 중요한 것은 영적인 단합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바울은 여기서 이 거짓말을 논박하고 있다. 교회 안에 불화가 있을 때는 언제나 누군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짓 교리를 가르치는 사람들과 바울의 교훈들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주목하였다가 처리를 해야 했다.
사도는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을 자세히 표현한다. 이들은 교만하며 교회에서 “중요한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이들은 무지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더구나 이들은 병들어 있다. “좋아한다“(doting)는 말은 사실상 “병이 날 병적으로“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건강한(건전한) 교리를 거절하여 영적으로 병이 든 것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먹이는 대신 헛된 변론과 언쟁만으로 먹였으며, 이 모든 일은 투기와 분쟁과 지속적인 소란으로 몰고 갔을 뿐 거룩함으로 인도하지는 못하였다. 이 사람들은 “진리를 빼앗겼으며“(진리가 없으며), 이들의 유일한 관심은 개인의 유익에 있었다. 자신의 목표를 촉진하는 데에 종교를 사용할 수 있다면 그만인 것이다.디도서 3장 10절은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단자“, 파벌과 분열을 일으키는 사람을 뜻함)에게 교회는 두 번의 경고를 준 다음 회원으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명령한 것에 유의하자. 교적을 옮겼던 문제의 사람들이 다시 돌아와 시시때때로 더 많은 문제들을 야기시킨다면 두번째로 위반을 한 후에는 교회원으로 받아 들여서는 안 된다."
3. 부자들에게(6:6-19)
5절에 나오는 “이익“이라는 개념은 바울로 하여금 그리스도인과 재물에 대해 토론하도록 인도해 간다. 이익을 얻기 위하여 거룩함을 사용하여서는 결코 만족을 얻지 못할 것이지만, 거룩한 생활은 만족한 생활이며 개인에게 있어서 큰소득인 것이 분명하다. 바른 가치관을 가진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른다,
9절과 10절은 오해하기 쉽다! 절에서 바울은 부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 곧 모든 관심을 재물에 고정시키는 사람들을 경고하고 있다. 이러한 부류의 사람은 유혹과 함정에 빠지게 되어 있으며, 결국은 파멸 속으로 가라앉고 만다. 롯이 풍성한 소돔의 평지에 눈을 고정시켰을 때 모든 것들을 잃었던 것을 생각해보라 ! 또는 하만이 명예와 재물에 마음을 고정시켰을 때 그러했던 것을 생각해보라 !
사람이 만족을 얻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실상, 매우 적다. 음식과 의복과 거룩한 생활이다. 그리스도께서 가난하셨지만 많은 사람들은 부하게 하셨음을 생각해 보라(고후 8:9).
10절은 돈이 모든 악의 뿌리라거나 아니면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니며, 여러 가지 근원들 중의 하나라는 말이다. 돈 자체는 중립적이다. 다만 돈이 사용되는 방법, 그리고 그 배후에 깔려 있는 마음과 동기가 돈의 성격을 결정한다. 잃어버린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데에 돈을 사용함으로써 영원을 위하여 투자할 수 있는가 하면 돈이 그의 신이 됨으로써 그를 지옥에 보낼 수도 있다.
십계명의 하나 하나는 모두 돈으로 말미암아 깨어질 수도 있다. 돈을 위하여 사람들은 하나님을 부정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고, 훔치며 거짓말하고 살인하고 간음하며 온갖 일을 행한다. 가장 나쁜 것은 물질적인 것들에 대한 요구가 사람들을 믿음에서 떠나 방황하게(실수하게)하여 결국은 파선으로 인도해 간다는 것이다 ! 이들은 쾌락을 찾지만 고통과 슬픔을 발견하게 된다 !
다음으로 바울은 디모데에게 경고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 지도자들도 거짓된 가치와 물질적인 소득에 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여바울을 버렸고(딤후 4:10) 유다는 은 30냥에 그리스도를 팔았다. 바울이 이 젊은 목회자에게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에 주목하자 ! 얼마나 격려가 되었을까 ?
다음의 세 가지 권면들에 유의하자. 도망하라. 따라가라, 싸우라 ! 교만과 탐욕과 거짓 교훈들에서는 달아나야 한다. 때로는 그리스도인 군사들이 할 수있는 가장 멋진 일이 달아나는 일일 때가 있다. 디모데후서 2장 22절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젊은이의 육욕에서 도망하라“고 명령한다. 이것은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하였을 때 취했던 행동이다.
그러나, 도망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며, 우리는 또한 따라가야 하고 싸워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쓰고 있다. “우리는 왕중의 왕을 섬기고 있다. 그가 오실 때 당신의 선한 행위를 보시고 당신을 높이실 것이다.“
17-19절은 부자들에 대한 긍정적인 교훈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들의 부를 사용하라고 말씀하신다. 바울이 그들을 “이 세상에서 부유한 자“라고 부르는 것에 유의하자. 이 세상에서 부유하면서도 하나님께는 부유하지 못할 수도 있다(눅 12:13-21 참조). 첫째로, 이 사람들은 겸손해야만 하며 그들의 부(富)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청지기로서 받아 들일 수 있어야 한다. 이들은 언제나 그 부(富)를 주신 분에게서 눈을 떼지 말고 있어야 하며, 자신의 재능을 믿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생활의 축복들을 누리기를 원하신다. “누린다, 즐긴다“는 단어가 성경에 있다 !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모든 것들을 즐기며“ 모든 일들이 우리에게 “풍부하게“ 주어진다 ! 그러나, 이러한 부(富)는 다만 즐거움만을 위하여 주신 것은 아니며 고용된 것이기도 하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리고 영혼들을 구원하는 데에 사용되게 하기 위함이다.
부(富)는 나누어져야 하며(의사소통이 되다), 영원한 일들에 투자되어야 하고, 다가오는 때를 위한 좋은 기초를 놓는 데에 사용되어야 한다. “하늘의 보물“은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6장에서 설명하신 방법이다."
4. “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6:20-21)
20절에 나오는 “지식“은 “과학“을 뜻한다. 하지만 바울에게 있어서 그것은 거짓된 지식을 가리킨다. 바울이 영지주의자들을 말하고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골로새서에 대한 본서의 설명 참조). 이들은 오늘날의 어떤 철학자들처럼 우주에 대하여 “온전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에베소에 있는 이 거짓 선생들은 그들의 수준높게 들리는 이론들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의문들을 가지고 젊은 디모데를 교란시키고 있었다. 따라서 바울은 이러한 “망령되고 허탄한 말“에 개입하지 말라고 디모데를 경고한다! 이 세상의 지혜는 하나님께는 어리석은 일이다(골 1-2장 참조).디모데의 책임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하여 그에게 맡기신 것을 수호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복음의 멧세지, 곧 진리의 예탁을 바울에게 맡기셨는데(1:11), 바울은 차례로 이것을 디모데에게 맡겼다(1:18-19). 디모데는 이것을 수호하며(6:20)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야 하는 것이다(딤후 2:2). 이것은 오늘날 교회의 임무이기도 하다. 우리도 이 예탁받은 것을 수호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이것을 전하게 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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