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時事/[시사 칼럼]

예루살렘 대성전(Temple of Jerusalem) 4

好學 2011. 10. 1. 05:50

                                                           예루살렘 대성전(Temple of Jerusalem) 4

 

 

다윗의 법정

 

바위돔 사원 바로 동쪽 편에는 ‘쇠사슬 사원’(Dome of the Chain)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다윗의 법정’이 있다. 이 사원은 바위 돔 사원을 축소해 놓은 듯 한 구조를 하고 있는데 바위돔 사원을 지은 칼리프 아브드 알 말리크에 의해 지어진 것으로 바위 돔을 짓기 위한 모델이었다는 주장도 있고, 또 바위 돔 사원의 금고 역할을 했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두 건축물간 어떤 특별한 관계는 없다고 한다.

 

 성전 동편에서 바라본 정경. 앞쪽에 있는것이 쇠사슬 돔이고 뒤쪽이 바위돔 사원

 

 

 

다윗 법정...쇠사슬 돔의 돔 내부 모습

 

 

 

 

메카 방향을 알려주는 쇠사슬 돔의 미흐랍 

 

흥미로운 것은 무슬림들의 전승에 의하면 이 자리에 쇠사슬이 드리워져 있었는데 다윗 왕이 재판을 할 때 누가 거짓말을 하면 쇠사슬이 떨어졌다고 한다. 무슬림 전승에 의하면 바로 이곳에서 최후의 날 최후의 심판이 일어날 것이며 죄인들은 남고 정직한 사람들만이 통과할 수 있을 거라고 한다.

십자군 시대인 1099년에는 바로 이곳에서 야고보 성인이 순교를 했다고 하여 야고보 성인에게 봉헌한 경당으로 바꾸기도 했었다. 20개의 대리석 기둥이 지탱하고 있는 이 돔은 성전 산(Temple Mount)의 배꼽이자 지구의 배꼽이라고도 한다.

 

 

알 악사 사원을 등지고 바위돔 사원을 향하여 계단을 올라가면 아치 왼쪽에 야외 설교단(민바르, Minbar)가 있다.

 

 

   

 

민바르 서편에 있는 작은 건물은 ‘요셉의 돔’이며 1911년에 건축되었다. 요셉의 돔 서편에는 1207년에 지어진 이슬람 도서관이다.

요셉의 돔

요셉의돔 옆에 있는 1207년 Ayyubid 기간에 만들어진 문법돔(Grammar Dome)이다.

 

  

성전 서북쪽 가까이에 있는 돔은 무함마드를 하늘로 인도한 가브리엘 천사를 기념해서 1538년에 지은 ‘가브리엘 돔’이다.

  

그 옆에 있는 ‘무함마드의 승천기념 돔’은 1200년에 지어진 것으로 꼭대기 장식이 아름답다. 이 돔은 십자군 시대 예술을 볼 수 있는 좋은 본보기 인데 바위돔 사원이 성당으로 개조되어 사용될 때 세례대로 만들어진 건물이다. 꼭대기 장식과 돌 기둥들의 장식은 십자군 시대의 작품이다.

승천돔 기둥 장식 

승천돔 기둥 장식

승천돔 꼭대기 장식

 

19세기에 지어진 헤브로니테의돔으로 현재는 알악사 사원과 바위돔 사원의 복원 위원회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다.

 

바위돔 사원 성전 북서쪽 모서리에는 16세기 오트만 투르크 시대에 만들어진 알 카드르돔(Dome of Al-Khadr)이 있다. 엘리아의 돔이라고도 한다. 

 

 

엘리야의 돔 옆에 있는 ‘영들의 돔’(Dome of the Spirit)은 무함마드가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 설교를 했다는 전설의 돔이다. 16세기 오트만 투르크 시대에 지어졌다.

 

성전 북쪽 출입구인 화이잘 왕의 문 근처에 있는 파샤의 돔 

 

 

파샤의돔 뒤쪽에 있는 슐레이만 샘

 

 

슐레이만 샘 왼쪽에 있는 솔로몬의 돔 

  

바위 돔 사원으로 들어오는 출입문은 모두 15개가 있는데 성전 북쪽에 3개, 서쪽에 8개 있다. 서쪽에 있는 출입문 중 바위 돔 사원 서쪽에 있는 ‘목화 상인 문’이 아름답다.

 

성전 동쪽으로 유일하게 나 있는 황금문(Golden Gate)은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아가 이 문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오스만 투르크 정부에 의해 봉쇄 되었다.

 

성전 동편에 있는 황금문. 예수님께서 성지주일에 들어 가셨던 문이다. 오스만 투르크인들은 메시아가 다시 황금문으로 들어가면 제국이 멸망한다는 전승을 두려워 한 나머지 이 문을 막아버리고 말았다. 유대인들도 심판의 날이 되면 착한 사람은 남쪽문(자비의 문)을 통해 하늘나라에 들어갈 것이요, 악한 사람들은 북쪽문(후회의 문)을 통해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성전 남쪽에는 이중문과 삼중문 그리고 외문이 있었는데 이중문은 비잔틴 시대 이후 막혔고 삼중문은 솔로몬의 마구간으로 통하는 문이었는데 십자군 시대까지 사용되다가 그 후 막혔다. 이중문과 삼중문은 헤로데 대왕이 만든 것으로 이 둘을 합쳐 훌다문이라고 했다.

 

 

고리문(Chain Gate) 근처에 있는 건물은 1251년에 만들어진 ‘모세의 돔’이다.

 

세정문(Ablution Gate) 근처에 있는 'Kaytbay's 샘'. 1482년 마멜룩크(Mamluk) 시대에 만들어졌다.

 

성전 서편 세정문(Ablution Gate) 근처에 아름다운 샘이 있는데 이것은 1482년 이집트 마멜룩크(Mamluk)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마멜룩크 예술의 정수를 볼 수 있는 샘이다.

 

 

 

 

 

‘무어족의 문’(Morocco Gate) 남쪽에 있는 건물은 북부 아프리카인 무어족을 위한 회교 사원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회교 박물관이라고도 한다. 그 건물 동쪽은 여자들을 위한 회교 사원이다.

 

 

알 악사 사원

예루살렘 대성전 남쪽 부분에 위치한 알 악사(al-Aksa) 사원은 황금 돔인 바위 돔 사원과 비교하여 ‘은색의 돔’(The Silver Dome)이라고도 하는데 꾸란 17장 1절에 나오는 무함마드의 밤 여행에서 이름을 따 ‘가장 먼 사원’을 의미하는 ‘알 악사’에서 유래하였다.

 

무어족 문을 들어서서 바로 왼쪽에 있는 회랑...이 회랑쪽이 통곡의 벽쪽이다.  

무어족 문을 들어서서 바로 왼쪽에 있는 회랑 내부 모습...왼쪽 벽 아래가 통곡의 벽

무어족문을 들어서서 바로 오른쪽에 있는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건물.  

알 악사 사원의 돔...왼쪽으로 보이는 벽면은 알 악사 사원의 서쪽편... 

알 악사 사원의 정문 모습 

 

알 악사 사원의 동편과 정문쪽  

알 악사 사원의 동편

알 악사 사원의 정문 현관 위쪽 

솔로몬의 마구간 쪽...저 멀리 보이는 곳은 올리브 산 정상... 

솔로몬 마구간으로 내겨가는 계단...왼쪽 성벽은 성전 동편이다.

  

이 사원은 한때 유다 왕들의 궁전이 자리했던 곳이었고, 비잔틴 유스티아누스 황제가 지었던 성모 마리아 성당 자리 위에 칼리프 알 왈리프(al Walif)가 709년에 시작하여 715년 완공한 가로 90m, 세로 60m의 수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 사원이다. 이 사원은 746년과 780년 두 번에 걸친 지진으로 파괴되었다가 780년 압바시드 왕조의 칼리프 알 마흐디(al-Mahdi)가 15개의 측랑과 280개의 주랑을 가진 사원으로 재건했다. 1033년 또다시 지진으로 일부 파손된 후 파티미드 왕조의 칼리프 아즈 자히르(az-Zahir)가 재건할 때는 일곱 개의 측랑만 남았다. 현재는 사원 정면의 문이 7개뿐이지만 처음에는 15개였다고 한다. 이 사원을 짓게 한 칼리프는 알 왈리드(al-Walid)로서 알 말리크의 아들이었는데, 그는 이 사원뿐 아니라 메디나에도 중앙 사원을 세우고, 다마스쿠스 및 카이로에도 대형 사원을 건립하는 등 왕년의 헤로데 왕에 버금가는 건축에 대한 열정을 보인 사람이었다. 이 사원은 완공된 뒤에 예루살렘 최대의 무슬림 집회소가 되었다.

 

1099년 십자군이 이곳에 왔을 때 그들은 십자가와 제단을 더하여 바위 돔 사원을 ‘주의 성전’(Templum Domini)으로 바꾸고 알 악사 사원은 ‘솔로몬의 성전’ 이라고 이름으로 바꾸었다. 사원의 일부를 개조해 ‘성전에서의 예수 봉헌’(루가 2,22) 기념 경당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 후 1131년에는 템플기사단에게 넘어갔다. 1187년에 무슬림은 다시 이곳을 되찾았으며 살라딘은 십자군들의 흔적을 없애고 다시 이슬람 사원으로 만들었다.

14세기경에 보수가 있었고, 1938년-1942년에 보수 및 재건되었으나 1969년에 정신 착란증 환자 데니스 마이클로한이라는 호주 출신 청년에 의해 목조로 된 설교단인 민바르와 은색의 둥근 지붕 상당부분이 불에 타 파손되었다.

 

 

엘 악사 사원과 바위 돔 사원의 사이에는 컵을 뜻하는 알 카스(al Kas) 샘이 있다. 이 샘은 무슬림들이 기도하기 위해 사원에 들어가기 전에 손과 발을 씻는 곳이다.

 

사진 아래쪽 둥글게 있는 것이 알 카스 샘 

 

이슬람 사원에 들어가기전 손과 발을 씻는 수도 

 

 

 

 

성전 동남쪽 끝부분은 솔로몬의 마구간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솔로몬 시대에는 이 곳 근처에 마구간이 자리했다(2열왕 11,16; 느헤 3,28)고 하는데 헤로데 대왕이 성전 뜰을 확장할 때 길이 83m 넓이 60m가 되는 넓은 방으로 1.2m의 돌기둥 88개 받치고 있는 아치이며 십자군들이 마구간으로 사용했던 것을 현재는 복원하여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하고 있다.

 

 

사원 일대의 드넓은 공간에는 삼나무와 올리브 나무로 이루어진 자그마한 숲이 몇 개 있어 땀을 흘리고 지친 사람들에게 그늘을 마련해 준다. 사원 내에는 무슬림들이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는 또 다른 나무는 그 잎사귀가 악마의 눈길을 피하게 해준다고 전해오는 키 큰 사시나무다. 일찍이 솔로몬 왕이 처음으로 이 나무를 심어 거룩한 성전을 보호하려 했다고 한다.

 

 

 

 

 

멀리 올리브 산 중턱에 러시아 정교회의 마리아 막달레나 수도원이 보인다. 

 

 

예루살렘을 수복한 십자군은 바위 돔 사원을 교회로 바꾸고 ‘주님의 성전’(Templum Domini)이라고 불렀다. 알 악사 사원은 1104년에 라틴 예루살렘 왕국의 볼드윈 1세(Baldwin I)의 왕궁이 되었다. 바위 돔 사원의 돔 위에 놓인 초승달은 항상 남쪽의 메카 방향을 가리키는데 메카가 아닌 다른 방향을 가리키면 이는 재앙이 일어날 징조라고 무슬림들은 믿는다. 십자군들은 예루살렘을 정복한 후 그 초승달을 십자가로 바꿔 놓았지만 1187년 10월 살라딘이 탈환한 뒤 황금으로 만든 초승달을 원래의 위치에 남쪽 방향으로 다시 달아 놓았다. 그 이후 1855년까지 그리스도인들은 성전 출입이 금지 되었다.

                                           

사원은 마흐무드 2세(Mahmud II)가 통치하던 1817년에 대대적인 보수를 하였고, 그 후 영국이 위임 통치하던 1927년 7월 11일 바위 돔 사원은 지진으로 다시 심하게 훼손 되었다.

1955년 아랍 정부와 터키 정부의 기금을 받아 요르단 정부에 의해 보수 작업을 하였다. 그리고 1960년에는 이태리에서 만든 내구성이 좋은 알루미늄과 청동 합금으로 돔을 복원 하여 1964년에 마쳤다. 1998년에는 요르단의 후세인 왕이 런던에 있는 자신의 집을 팔아서 8.2 백만 달러를 기부하였고, 80kg의 금을 들여 황금 돔으로 복원하였다.

 

예루살렘 구시가지가 요르단에 의해 통치되고 있을 때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구시가지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지만 1967년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한 후 이스라엘의 통제 하에 있다.

 

2000년 이스라엘 극우 리쿠드당 당수였던 샤론(Ariel Sharon)은 총선이 있기 직전 전격적으로 알 아크사 사원을 방문함으로써 제2차 인티파다(Intifada, 이스라엘의 지역 점유 및 정책에 반대하여 가자지역과 웨스트뱅크 지역에서 일어난 반 이스라엘 주의)가 일어나 수천 명이 죽는 유혈 참사의 빌미가 되었다.

 

인티파다 후 이슬람 신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성전 경내 출입은 금지되다가 2006년에 다시 개방되었지만 바위 돔 사원과 알 아크사 사원 안에는 출입할 수 없게 되었다. 성전 경내는 금요일과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 오전 7:30-11:30 그리고 오후 1:30-2:30(여름), 겨울에는 오전 7:30-10:30 그리고 오후 1:30-2:30까지 개방된다. 일반인들은 통곡의 벽 옆에 있는 ‘무어족의 문’(Morocco Gate)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는데 유대인의 기도책이나 성경의 반입은 금지된다. 나갈 때는 아무 문이나 관계없다. 특별히 유대인들은 유대인 랍비에 의해서 대사제만이 들어갈 수 있는 지성소의 자리를 혹시라도 밟을 수 있는 위험성 때문에 대성전 안의 출입은 엄격히 금지되고 있다.

 

 

예루살렘 성전은 갈릴래아에서부터 시작된 예수님의 마지막 여정이었다. 예루살렘은 어린 소년 예수가 12살 때 파스카 축제를 지내러 부모님과 함께 올라갔다가 율법 학자들과 토론한 곳이며,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기적을 행하셨으며 마지막 날이 다가오자 성대한 입성을 하시고 장사꾼과 환전상들을 쫓아내고 정화 하셨던 바로 그곳이었다.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하시며 눈물을 흘리셨던 바로 그곳!

 

황금빛의 바위 돔 사원을 뒤로 하고 올리브산 중턱에 있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심을 기념 하는 기념 성당을 바라보면 마치 눈물 가득한 예수님의 눈망울을 보는 것 같이 느껴진다.

 

올리브산 중턱에 있는 '도미누스 플레빗'.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하시며 눈물을 흘리심을 기념하는 성당

  

 

주님께서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심을 기념하는 '도미누스 플레빗' 성당의 제대 뒤편으로 바라보이는 바위돔 사원의 황금돔. 십자가 왼편에는 이슬람의 바위돔 사원이 그리고 십자가 오른쪽에는 예수님 무덤 성당의 돔이 보인다.

올리브 동산 정상에 있는 주님의 기도 성당 종탑 

 

올리브 동산에 있는 러시아 정교회 마리아 막달레나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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