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神學/[世界信仰人]

성 패트릭

好學 2011. 9. 6. 20:47

패트릭은 아일랜드의 수호성인으로 추앙을 받으며 ‘아일랜드의 사도’로 불린다. 아일랜드는 지금의 영국섬 옆에 붙어있는 섬나라로, 켈트족이 기원전 5세기경에 이 섬으로 건너와 자리를 잡고 나라를 세웠는데, 5세기에 패트릭이 이 이교도 섬나라인 아일랜드에 기독교를 전파함으로써 기독교국가가 되었다.

 

패트릭은 로마제국의 식민지였던 브리튼(영국) 웨일즈의 관리인이자 그 지역 담당 성직자이기도 했던 칼푸르니우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가정은 부유했으며 부모들은 기독교인으로서 어릴적부터 기독교적인 분위기 아래서 자랐다. 패트릭의 인생에서 만난 최초의 시련은 16세 때 부모의 재산을 노리고 쳐들어온 아일랜드 해적들에게 납치되어 아일랜드의 이교도에게 노예로 팔려 6년 동안 노예생활을 해야했던 일일 것이다. 아일랜드의 해안에 위치한 마요라는 곳에서 사람들로부터 고립된 채 산의 비탈진 곳에서 양을 치며 살아야 했다. 이교도의 땅에서 포로로 잡혀 있는 동안 그는 하나님께 매달리게 됩니다.

 

6년후 그는 꿈속에서 아일랜드를 떠날 때가 됐다는 천사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음성에 따라 마요를 벗어나 약 320km 이상을 걸어 주인으로부터 도망쳐 아일랜드 해협을 배로 건너게 된다. 그는 영국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해류에 이끌려 프랑스로 갔다가 22세경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의 고향은 지금의 영국 스코틀랜드로 보인다.

 

 

포로 생활로 인해 공부가 중단되었으나 수도원에 들어가 다시 시작하여 사제가 되었다. 417년 사제로 서품되고, 432년경 성 제르마노에 의해 주교가 되었다. 그런데 패트릭은 어느날 꿈속에서 다시금 두 번째 계시를 받았는데 그 내용은 아일랜드 사람들이 자기들에게로 되돌아와 달라고 그에게 간청하는 소리를 듣게 된다. ‘거룩한 소년이여, 우리는 그대가 집에 와서 우리들 가운데서 다시 걷기를 간청하노라.’

 

패트릭에게 아일랜드는 끔찍했던 포로생활의 땅이었으나 자신의 심령을 두드리는 소명의 목소리를 거부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아일랜드에서의 포로생활은 모든 것이 부정적인 작용만 한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노예생활의 고통을 통해 패트릭은 지금까지 명목상의 모태 신앙으로부터 벗어나 심오한 신앙에 이르게 되었기 때문이다.

 

● 이후 패트릭은 15년 이상 계속된 학업을 마치고 사제서품을 받았으며 프랑스에서 신부로 활동하다 교황의 신임을 받아 아일랜드 감독으로 임명됐다. 결국 패트릭은 아일랜드 사람들을 회심시키는 것이 자기 생애의 사명이라는 신념을 굳히고 아일랜드에 선교사로 파견되어 복음을 전하게 되는데, 수도원을 개설하고 많은 제자를 양성하는 등 열정적인 헌신을 통해 마침내 온 섬을 그리스도교화하는데 성공하였다.

 

패트릭이 아일랜드로 파송되기 전 팔라디우스라는 인물이 교황에 의해 감독으로 임명되어 아일랜드로 파송되었으나 이 팔라디우스 감독의 사역에 대한 기록이나 그의 생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으며 도착한지 오래지 않아 순교한 것으로 보인다. 패트릭은 팔라디우스가 아일랜드에 도착한지 1년 후인 432년 아일랜드에 도착하여 복음을 전하게 된다.

 

패트릭은 기독교에 대하여 적개심을 품은 수많은 아일랜드 원주민 추장 등과 과감하게 만났고, 대개는 기적적인 방법으로 회개시킴으로써 섬 전체에 기독교를 뿌리 깊게 심었다. 패트릭은 아일랜드 원주민들의 고유신앙을 파괴하는 대신 기독교의 가르침과 전통적인 종교의식을 결합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이미 이전의 포로 생활을 통해 아일랜드의 문화와 언어에 익숙해 있었기 덕에 그들의 고유종교에도 큰 거부감이 없었던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어 성 패트릭은 불의 신을 숭상하던 아일랜드인들을 배려해 모닥불을 이용해 부활절을 축하했다. 또 아일랜드인들의 강력한 상징이었던 태양을 기독교의 상징인 십자가와 결합시켜 ‘켈트족(Celtic)의 십자가’라 불리는 새로운 십자가를 만들어냈다. 이 십자가는 아일랜드인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면서 기독교의 상징인 십자가에 대한 존경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이외에 토끼풀 모양(shamrock)의 클로버를 이용해 삼위일체 교리를 설명하기도 했고 기독교에서 터부시하는 뱀들을 아일랜드에서 모두 몰아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하지만 약간의 과장에도 불구하고 성 패트릭이 기독교에 대해 적개심을 품은 수많은 원주민들을 만나 기적적인 방법을 이용해 이들을 회개시키고 아일랜드 전체에 그리스도교를 뿌리 깊게 심었던 인물임은 분명하다.

 

그는 442년과 444년에 로마를 방문하였고 아일랜드에 아르마(Armagh) 대성당을 세워 아일랜드 교회 활동의 본거지로 삼았다. 아일랜드에서 보낸 30년간의 활동에서 그는 학문의 기풍을 진작시키고, 라틴어 공부를 비롯하여 아일랜드를 서방교회와 아주 가깝게 만든 공로자가 되었다. 그후 평생을 그곳에서 성직자로 봉사하며 국민적인 영웅으로 추앙받게 되는데, 지금도 그의 이름을 딴 교회들이 60개 이상이 있으며, 그 중 가장 유명한 곳은 더블린에 있는 성 패트릭 성당(St. Patrick's Cathedral)이다.

   

● 패트릭의 인격은 그의 저술에서 특이하고도 감동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패트릭은 아일랜드 포로 기간 중에 자신의 교육이 중단되었다는 것을 자주 언급하고 있다. 그로 인해 자신의 수사학이 한계성을 띠고 투박하였음을 슬퍼하고 있다. 큰 배움의 부재와 그가 쓴 단순한 라틴어가 패트릭을 늘 괴롭혔다. ‘나의 글이 다른 사람의 글만 못하기 때문에 인간들의 혀의 판단 아래 떨어질까 나는 두려웠다.’ 

 

그러나 패트릭은 자신이 그토록 후회하던 세련된 수사학의 부재 자체가 그의 글을 정직하고 직설적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의 언어가 독자에게 주는 충격은 지대하다. 그 언어는 단순하고 매우 감동적이며 용기와 겸손이 뛰어났던 그의 위인됨을 밝히 보여주고 있다.

 

패트릭은 근본적으로 선교사였다. 그는 자신이 왜 선택되었는지 이해하지 못하였으나 자신을 통해 행하시는 하나님께서 모든 결점을 보완하실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의 개성은 복음 전도적이며 그의 글은 감사와 믿음이 충만하다.

 

 

● 매년 3월 17일을 성 패트릭의 날(St.Patrick"s Day)이라 부르며 아일랜드의 최고의 명절로서 이 날은 아일랜드에 기독교를 처음으로 전파한 선교사 성 패트릭(St.Patrick)의 사망일을 기리는 날입니다. 성 패트릭의 날은 미국, 캐나다 등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있는 곳이면 세계 어디서나 지켜지는 대형 명절이고 이제는 전세계인이 함께 즐기는 축제의 하나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성 패트릭의 날이 되면 사람들은 온통 초록색으로 치장을 하고 고적대와 함께 거리에서 퍼레이드 행사를 펼칩니다. 성 패트릭의 날에는 미국의 거리가 온통 초록색이 되는데 사람들은 초록색 옷을 입고 파티를 하며, 초록색 옷과 모자, 스카프, 신발 등을 걸치고 행진을 하기 때문에 온 거리가 초록색의 물결을 이루게 됩니다.

 

보통 3월 16일부터 18일에 걸쳐 시내 곳곳에서 행사가 펼쳐지게 되며 이민자로 오랫동안 고국을 떠나 있지만 자신들의 전통명절을 그대로 간직하고 다른 민족들과 나누는 풍속이 이제는 모든 사람이 함께 하는 축제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특히 아일랜드는 옛날부터 음악이 발달한 나라여서 음악과 관련된 각종 행사가 열리기도 합니다.

 

초록색의 유래는 다음과 같습니다. 선교사 성 패트릭은 기독교를 처음 소개하면서 세 잎 클로버처럼 생긴 Shamrock이라 불리는 세 잎짜리 토끼풀에 비유해 기독교의 교리를 설명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현재 Shamrock은 아일랜드의 나라꽃이 되었으며 초록색은 아일랜드를 상징하는 색이 되었습니다. 초록색은 Shamrock이라는 풀의 색깔이기도 하며 봄이 왔음을 알리는 색깔이기도 하고 아일랜드 국기의 색깔이기도 합니다. 한편 이 날에는 복음을 전파한 성 패트릭을 기념하면서 그동안 고마웠던 분들에게 책을 선물하는 풍습이 있습니다. 책 안에는 말린 세 잎 클로버 잎을 붙여서 주는 풍습이 있으며 연인에게는 '행운'을 뜻하는 네잎 클로버 잎을 책과 함께 선물하기도 합니다.

 

미국 New York 시의 5번가에 가게 되면 성 패트릭 성당(St.Patrick Cathedral) 이라는 유명한 성당이 있는데 이 곳은 세계에서 몇 번째 안에 드는 웅장하고 멋진 성당으로서 해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인기 있는 관광지입니다. 이 곳은 특히 카톨릭 대주교가 있는 곳으로서 미국 카톨릭 신앙의 중심 역할을 합니다. 최근에 서점에서 많이 팔고 있는 종이로 된 건축모형에서도 성 패트릭 성당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며 New York에 가게 되면 꼭 한 번 들러 볼 만한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성 패트릭의 날에는 이 성당을 중심으로 성대한 퍼레이드가 펼쳐집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성 패트릭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명동성당을 중심으로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이 고적대 등과 함께 성 패트릭의 날 행진을 하기도 합니다.

 

 

※ 한국인과 기질이 비슷한 아일랜드인

 

'이민자의 천국'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미국에는 각기 다른 나라 출신의 민족들이 어우러져 삶을 꾸려나가고 있다. 그 중 청교도의 후예인 앵글로색슨족에 이어 가장 오랜 이민역사를 자랑하는 아일랜드인들은 오래동안 2등 시민으로 온갖 고생을 감수해야 했지만 특유의 생존력과 단결력을 바탕으로 미국 사회의 주류로 자리잡아 왔다. 성 패트릭 축제일은 아일랜드인들의 자부심이자 정체성을 상징하는 명절로 아일랜드인들의 신대륙이민과 함께 미국의 주요명절 중 하나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성 패트릭 축제일’은 단순한 종교 축제 이전에 수천년의 역사 동안 주변강국의 침략 때문에 항상 굶주림으로 고통당해야 했던 유럽 변방의 소국 아일랜드인들의 애환이 담긴 기념일이다. 주변국들의 침략으로 인해 고달프고 힘겨운 삶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올 수 있었던 유일한 의지처는 교회였고 그 교회가 상징하는 기독교가 전래된 것이 성 패트릭 추기경 때문에 그의 사망일을 기념하는 성 패트릭 축제일은 아일랜드인들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날이라 할 수 있다.

 

흔히 한국인들과 가장 기질이 비슷한 서양인들로 아일랜드인을 꼽는데 그 이유로 주변 강국에 시달렸던 민족사와 다혈질인 반면 정이 많다는 점 외에 술마시기를 엄청 즐긴다는 점도 거론되곤 한다. 농담이겠지만 전세계에서 유태인의 두뇌를 따라잡을 민족으로 한국인을 거론하는 것처럼 아일랜드인의 주량에 맞설 수 있는 민족 역시 한국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아무튼 평소 술마시기를 즐기는 아일랜드인들은 이날 특별히 많은 술을 많이 마시는데 전통주인 기네스(Guiness)에 위스키와 베일리즈를 섞은 폭탄주는 물론(전세계에서 폭탄주를 즐겨마시는 민족이 몇개나 될까?) 인공색소를 이용해 녹색빛이 나는 맥주를 즐겨 마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