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神學/[韓國信仰人]

순교자 이성태 집사 (장로교)

好學 2011. 8. 22. 20:39

 

 

순교자 이성태 집사 (장로교)

 

 

이상태 집사(1915-1943)


순교자 이상태 집사는 1915년 4월 3일 경북 금천군 구소요면 도암동 198에서 이동하의 4남으로 출생 익산으로 이거함.

일제의 식민통치가 극심하고 기독교 탄압이 고도에 달한 시절을 사셨고 창씨개명과 신사침배가 극심했던 일제 강점 중 하반기에도 신앙을 지켰으며 초등학교에도 친구들이 증언하는대로 신앙이 좋았고 영명미션스쿨 재학시 민족 독립운동에 심취하셨고 유학적 가정교육과 함께 기독교교육을 받으심.

초등학교시절 주일학교 학생으로 부모님과 같이 신앙생활을 시작하셨고 영명학교시절 민족해방운동에 참여하셨고 주일학교 교사로 찬양대원으로 주일예배인도자로 안수집사로 설교자로 열심히 봉사하셨고 철야기도와 수시 교회기도와 밤 산기도에 열심히셨음.

1920년부터 1943년 순교하기까지 익산고현교회에서 안수집사로 교회 각분야에서 교사 찬양대 구역인도자 설교자로 신사참배반대를 강력히 주장하셨고 병자방문 심방기도 간호에도 열심히셨음.

강단에서 설교시 신사찹배는 우상이라고 강조하고 군산노회석상에서 신사참배 가결은 불법이요 우상숭배라고 외친 사실로 경찰에 수배되어 서울로 피신하였으나 민족해방운동과 노방전도중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고문과 옥고를 치루고 깊은 병에 신경으로 가석방되었으나 병석에서 순교하심.

아들 이성수 장로 군산 주암교회 시무 전북장로회 회장 전국장로회연합회 부회장 총회재정부장 순교자기념사업부 면려부 부 총무로 학생지도부 회계. 순교자기념사업부 서기로 봉사하고 있음.

하나님만 의지하고 사시요!라고 부인에게 유언. “신사참배는 우상숭배요 우상숭배하는 나라와 민족은 망합니다“라고 외침. 유품으로는 거의 소실되었으나 사용하시던 성경 교인들 초상화 스켓취북 사진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