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神學/[韓國信仰人]

순교자 안덕윤 목사 (장로교)

好學 2011. 8. 16. 20:47

 

 

순교자 안덕윤 목사 (장로교)

 

안덕윤 목사(1897-1950)


안덕윤은 1897년 11월 22일 전남 광양군 진상면 원당리에서 태어났다.

성경학교 신학교 시절에 광양의 농촌교회, 평양의 여러교회 전도사로 시무

1939년 평양신학교를 34회로 졸업하고 1940년에 목사안수를 받으면서 광양중앙교회 담임으로 시무하였다.

말씀의 능력과 신유의 은사가 있어 부흥사협회에 가입하고 부흥사로 파송받았다.

1943년 목포지방에서 부흥회 하던중 "천황은 신이 아니다, 2-3년내에 일본이 망하고 조선도 해방을 맞는다"고 한 설교가 일경의 귀에 들어가 2년 6개월 옥살이 하던중 해방을 맞았다.

안목사의 예견은 정확했던 것이다. 출옥한 안목사는 고성읍교회 죽산교회를 거쳐 6.25 한해 전에 대창교회로 옮겨 시무하다가 6.25를 맞은 것이다. 아내가 피하기를 권했지만 "살면 충성이요 죽으면 순교자의 면류관을 받는 것인데 무엇을 염려합니까."? 하며 담대하게 교회를 지켰다.

물밀듯이 밀어닦친 공산군은 대창교회를 접수해 인민군 임시본부로 사용했고 교회 사택도 쓸만한 물건은 모조리 가지고 갔다.

1950년 9.28 수복으로 서울을 탈환하는 등 전세가 180도 바뀌었는데도 김제는 여전히 인민군이 동리를 장악하고 철통같은 수비를 하고 있었다.

이때 남포에서는 동리 청년들이 성급하게도 라디오 방송을 듣고 태극기를 만들어 흔들며 농악대를 앞세우고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다가 졸지에 40여명의 청년들이 인민군에 의해 체포당해 교회당에 감금되었다. 이때 안목사도 배후조정 가능자라고 하여 함께 연행돼 함께 교회 당에 감금되었다가 40명 청년들과 함께 총살당하고 인민군들은 퇴각하고 말았다.

1950년 9.28수복시에 농악대를 앞세우고 "대한민국만세"를 부르는 청년들의 배후조정 가능자라고 하여 함께 연행하여 교회당에 감금당했다가 인민군이 퇴각하면서 40여명의 청년들과 함께 안목사를 끌고 가다가 총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