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神學/[韓國信仰人]

순교자 석박남 전도사 (장로교)

好學 2011. 8. 15. 21:36

 

 

순교자 석박남 전도사 (장로교)

 

 

석박남 전도사(1903-1950?)


석박남은 1903년 5월 9일 함흥시 풍량리 석승필 옹의 차녀로 태어났다

.석승필은 당시 선교차 함흥에 온 카나다 선교사들의 전도로 예수를 믿게 되었다.

그는 교육열이 남달라 아들은 물론 딸들까지 8남매를 모두 신학문을 공부시켰다.

별난사람이라는 비난의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딸들까지 공부를 시켰다.

석박남과 그 언니는 영생여학교 초대 졸업생이 되어 둘다 선생이 되어 민족교육에 이바지 하였다.

석박남은 주간에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야간에는 부녀자들에게 한글을 가르쳤다.

학원에서 교사생활을 하며 전도자 까지 검했다. 동정녀로 살기로 결심하고 복음전도에 열심을 내다가 서울에 와서 정신학교를 마치고 요꼬하마 공립여자신학교를 졸업했다.

 

뛰어난 손재주로 수예품을 만들어 학비를 조달하다보니 춘하추동 한벌의 의복, 운동화 한켤레, 1일 1식으로 검소한 생활을 하였다. 그를 친언니 처럼 따랐던 윤보선 대통령부인 공덕귀여사는 그를 가르켜 "석전도사는 성녀였다"고 증언 한다. 일본 고배중앙신학교 출신 가가와 선생의 영향을 받아 빈민선교를 통해 생활속에서 그리스도를 심어야 한다는 철학을 실천하였다.

 

1934년 카나다 선교부의 선교프로젝트로 사할린 등 로서아지방 노무자들을 위한 선교프로젝트에 10년간 참여했다. 그의 선교사업의 특징은 생활속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기독교로 만드는 것이었다. 사할린 선교사로 7년을 마치고 해방과 더불어 고향으로 돌아와 큰교회의 청빙을 물리치고 미자립교회인 서상리교회를 담임했다. 해방 후 1947년 동생들은 모두 월남하여 소식이 끊겼고 2년 후 6.25발발 후 그는 공산치하에서 박해에도 불구하고 월남을 거부하고 교회를 지키다가 순교하였다.

 

 1978년 경 대통령 영부인 공덕귀여사가 순교소식을 동생 석영근 집사에게 알려주었다. 석영근 집사는 "제 누님은 하나님이 이 시대에 보내신 성녀였습니다. 그의 소유라고는 성경 찬송 몇벌과 그가 배우던 종교서적이 전재산이었습니다. 그는 예수 사랑을 몸소 실천해 보임으로 대 사회적인 기독교의 모습이 어떠해야 되는 가를 보여준 분입니다"라고 증언했다.

 

동정녀로 주님위해 살다가 순교한 석전도사의 동기는

석박순권사, 석영근집사, 석정복권사, 석춘복권사, 석춘근집사, 부산인제대학교수 석동수박사 등이다. 

 

 

 

석동성의 글

석박남 전도사님은 저의 고모님이십니다. 이 글이 올라와 있음을 보고 올리신 분에게 감사드립니다. 올리신 글에 약간의 정정이 필요하여서 이 댓글을 올립니다.

순교한 석전도사의 동기로는 석박순권사, 석영근장로, 석정복권사, 석홍근장로, 석춘복권사, 석명근집사, 석봉근집사로 모두 8남매셨습니다. 석승필장로의 자손중에는 박성엽장로(사위), 이마리다권사(자부), 최순덕권사(자부), 이분녀권사(자부), 석동성장로(친손), 박덕혜장로(외손), 현덕성장로(외손)가 있고 대부분의 후손들이 각자 있는 곳에서 주님의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위에 언급된 석동수집사는 석박남전도사의 동기가 아니고 조카이며 석승필장로님의 친손입니다.

석박남 전도사의 순교사실은 본인(석동성)이 1995년 8월초의 고은아권사님이 진행하시는 "새롭게하소서" 라디오방송에서 정신여고와 뉴져지한인교회가 시작했던 "Korean American Vision 95 프로그램"을 소개하면서 저 자신의 신앙역정을 말씀드리는 중에 언급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조카의 글

저는 석박남 전도사님의 조카입니다. 고모님과 관계되는 일화 몇 가지 알려드립니다.

남동생(석영근장로)이 유학중인 누나를 찾아 일본으로 갔을 때 입니다.

걸인인 여인이 길바닥에서 책을 읽고 있는 것을 보고, 일본은 거지도 책을 읽는 나라라고 내심 감탄하였답니다.

그런데 그 걸인같은 여인이 자신의 누님인 것을 보고 눈물을 흘렸답니다.

또 집안에 혼사가 있어서 예단으로 좋은 한복을 받으면 당장 그대로 교회의 제단에 바치고 하셨답니다.

오직 무명 흰저고리와 검은 치마 한 벌로 지내셨는데, 밤에 일을 마치고 들어오면 그 저고리 동정을 빨아서 손으로

두드려 말려서 달고 다음날 입으셨답니다.

전도를 위하여 삼수갑산의 문둥병에 걸린 환자의 집을 방문하셨는데 눈으로 갇혀 지내는 동안 오직 밀가루 한 봉지로

연명을 하면서 그분들을 훌륭하게 전도하면서 살리셨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