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神學/[世界信仰人]

죠지 뮬러 4

好學 2011. 8. 15.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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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지 뮬러 4

 

신실하신 하나님을 증명하기 위하여 고아원을 설립하다

 

무료 주간학교를 다니던 콜린이라는 총명한 아이가 강제로 빈민 강제수용소로 가야만 했던 가슴 아픈 소식을 듣고 조지는 의식주를 해결해주면서 하나님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고아원을 설립할 계획을 세웠다. 그당시 영국에는 고아 수용소가 겨우 3개였고 브리스톨에는 없었다. 그는 한달동안 고아원에 대한 생각으로 갈등하였다. 1835년 2월 동인도에 선교사로 갔던 아내의 동생 그롭스씨의 부탁을 받고 통역관으로 독일을 방문하여 선교지원자를 모집하는 일을 도왔는데, 7년만에 만난 쏠럭박사의 따뜻한 대접을 받았으며 프랑케의 고아원을 방문하게 되었다. ‘프랑케 고아원’은 100년 전 신학대학 교수인 프랑케가 세운 고아원인데, 그에게는 유복한 친족도, 아무것도 없었고 가진 것이라고는 하나님께서 실제적인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믿음뿐이었다. 그런데 믿음의 기도대로 2,000명의 어린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고아원이 되었다. 약 10년 전에 그 이야기를 듣고 큰 감동을 받았었는데, 이번에 또 프랑케 고아원을 방문하게 되면서 고아원 설립의 뜻이 확실해졌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희생을 원하셨던 것일까! 집에 돌아온 후 얼마 되지않아 1살된 아들 엘리야가 죽었다. 조지는 그 아이가 그들과 함께 있는 것보다 주님과 함께 있는 것이 훨씬 좋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고서 감사해서 울어 버렸다.
그의 몸도 좋지가 않고 심장이 약해져 주일 설교도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경비와 장소가 마련되어서 와이트 섬에 요양하러 갔다. 그곳에서 기도를 통해 영혼에 큰 힘을 얻고 주님과 깊은 교제를 가졌다. 또한 찬송 ‘나같은 죄인 살리신(405장)’의 작시자 존 뉴톤 생애에 큰 감동을 받고 존 뉴톤처럼 주님과의 교제를 기록하여 책으로 증거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고아원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크레익에게 이야기했지만 그는 조지가 돈이 없기 때문에 반대했다. “프랑케도 돈이 없었네. 그는 그의 고아원을 기도하여 세웠었네.” “그는 백년 전에 살았던 사람이야. 조지, 시대가 다르잖아!” “무슨 소릴 하는거야? 하나님께서 그 능력을 잃으셨단 말인가? 만일 하나님께서 1727년에 프랑케의 기도에 응답하셨다면 하나님께선 또한 1835년에도 그에 대해 응답하셔.” 아무도 그의 믿음을 꺽을 수 없었다.

 

조지가 고아원을 세우려는 목적은 첫째,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그를 의지하는 자를 반드시 도우시는 분임을 증명하여 믿음을 더하기 위함이요, 둘째는 가난한 아이들을 도와 하나님의 방법으로 교육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몇 주간 동안 생각하며 기도했다. “하나님, 제가 일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일천 파운드가 필요합니다. 저는 30명의 어린이들을 위해 충분히 큰 집을 필요로 합니다. 저는 저의 직원들로서 어린이들을 좋아하고 가르치며 다룰줄 알며 그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 줄 아는 그리스도인들이 적어도 3,4명은 필요합니다. 또한 어린이들의 옷과 침구, 식기들이 필요로 합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일을 하실 수 있음을 믿사오며 이 일을 온전히 하나님 손에 맡기옵니다. 아멘.” 이렇게 날마다 기도한 후 자신이 너무 뻔뻔스럽지나 않나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시81:10)는 말씀을 읽고서 너무나 똑똑히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응답에 기뻐서 큰 소리로 웃었다.

 

조지는 기드온 교인들에게 고아원 계획을 광고했다. 성도들은 조지에게 ‘실현불가능하다’ ‘허세다’ ‘너무 이상적이다’고 냉소했다. 반면 10실링의 헌금을 하고, 무보수로 일하겠다고 하는 부인도 있었다. 그러나 아내 메리는 반신반의였다. 다음날 크리스챤 부부에게서 고아원에 무보수로 봉사하겠으며 모든 가구를 기부하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받았고, 또 어떤 사람이 식기들을 주고 갔다. 발표 하루만에 조력자가 3명, 가구와 10실링, 식기류등이 들어옴을 보고 메리는 믿음이 생겼으며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고아원 사업에 좋은 협력자가 되었다. 조지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용사처럼 나갔고 하나님은 그의 유일하고 적극적인 후원자가 되셨다.
다음달 브리스톨의 한 실업가가 50파운드를 헌금했다. 아이들의 옷에 대해 그들이 기도하자 충분한 옷감이 들어왔다. 또 다른 조력자를 위해 기도하자 한 가정부가 지원을 했고, 또 한 상인이 100파운드를 기부했다. 그리하여 윌슨6가에 오래된 주택을 세들었다. 그들이 기도했던 모든 것은 다 응답받았다. 기도를 들으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찬양했다. 조지와 메리는 1달내에 42명의 어린이들의 신청서를 받았고 그의 딸 루디아를 합쳐 43명의 어린이들의 책임자가 되었다. 이리하여 고아원은 1836년 5월 공식적으로 문을 열었다.

 

믿음의 시련들

 

1836 고아원 문을 연지 얼마되지 않아서 윌슨 6가에 두번째와 세번째 고아원이 세들어서 96명의 고아들이 함께 살게 되었다. 조지는 공중 앞에서 돈에 대해 언급하거나 모금도 거부했으나 고아원은 풍성한 기부금을 받아 식품비, 직원 봉급, 의류와 교과서들을 위한 재정이 넉넉했다. 그러나 고아원을 개관한 지 2년 후 조지는 일기장에 “나는 고아들을 위해 수중에 일푼도 가지고 있지 않다! 하루 이틀 내에 많은 파운드를 필요하게 될 것이다!” 하고 몹시 걱정하며 기록했다. 하나님은 그에게 정금같은 믿음을 주시려고 많은 시련을 주시기 시작하셨다. “하나님, 5파운드가 오늘 필요합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어떻게해서든 능히 제공하시리라 믿습니다.” 얼마 후 실크 드레스 차림의 부인이 고아원을 방문해서 “뮐러 형제, 하나님께서는 이 화려한 보석들을 더 이상 착용하지 말라고 저에게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하나님은 이것들도 떨쳐버리라고 말씀하셨어요.” 하고 지갑에서 돈을 책상위에 5파운드 5,6실링을 꺼내 놓았다. 하나님께선 그가 기도한만큼 정확하게 응답하셨다.

 

그후 2주 동안 돈은 단지 조금씩밖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일기장에 “우리의 시련의 시간은 계속되고 있다. 주께서는 자비롭게 우리의 일용품을 제공하기에 족할만큼 허락해 오셨다. 그러나 주께서는 이제 하루분씩 주고 계시며 때로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만큼 거의 시간제로 주신다.” 조지는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는 것을 입증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을 입증하는 데는 전적으로 인내가 필요했다.

 

헨리 크레익은 그리스도인 친구들에게 도움을 구하며 모금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그러나 조지는 “자네 방법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냐, 난 돈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구하지 않겠네. 난 하나님께 구하겠어.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야.” “이 사람아, 자네한테는 먹여살려야 할 아이들이 백명이나 있어. 자넨 그들에게 아버지와도 같은 거야” “아버지가 없는 자들에게 아버지가 되어 주는 것” 조지는 중얼거렸다. 그것은 그가 좋아하는 성경구절이었다. “누가 아버지가 없는 자에게 아버지가 된단 말인가? 내가 아냐. 아버지가 없는 자에게 아버지가 되는 것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야. 공급은 하나님께서 하셔. 하나님은 언제나 실패하는 일이 없으셔. 난 기도하겠어. 그러면 돈이 들어올거야.” “돈은 들어올걸세. 하지만 들어오던 속도보다 빠르게 나가 버릴걸.” 헨리의 비관하는 말을 들었으나 오직 하나님께만 구하겠다고 한 하나님과의 약속을 저버릴수는 없었다.

 

조지는 돈이 들어오지 않자 많은 어려움을 느끼며 며칠동안 고민했다. ‘직원들을 불러모아 그들에게 고아원 재정의 어려움을 사실대로 말할까? ‘하나님께로부터 곧 응답이 올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문을 닫아야만 하겠습니다’라고 말해야 할까? 어떻게 할까? 그들에게 말하는 것은 사람에게 돈을 구하는 것이 아닐까…?’

 

아름다운 동역자들의 헌신

 

마침내 조지는 무거운 입을 열어 직원들에게 말했다. 그러자 한 여직원이 “비용을 줄이면 사태에 다소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자매님, 우리는 뼈가 나오도록까지 깎아 왔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목사님은 제 급료를 잊고 계신 것 같아요. 저는 미망인 연금으로도 충분해요. 제가 고아원에서 종사하고 있는 한 목사님으로부터 더 이상 급료를 받지 않겠습니다.” 또다른 직원이 “이걸 먼저 받으세요” 하고 많은 파운드를 건네주었다. “저는 받을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자 “저는 현금을 가지고 있으면서 돈을 달라고 하나님께 무릎을 꿇을 수는 없습니다” 작은 요리사도 떨면서 이야기했다. “저로부터 6파운드를 계산에 넣어 두세요. 은행에 저축해 둔 저의 보잘 것 없는 밑천이에요. 그것을 찾아오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는 결국 그의 직원들과 어려움을 함께 나누며 기도했다. 하나님은 조지로 하여금 더욱 겸손하게 하시며 직원들의 믿음 또한 성장시켜 가셨다. 직원들이 헌신한 돈도 며칠을 가지 못했으나 그는 하나님의 또다른 기적을 믿었기 때문에 실망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했다.

 

주말이 되자 빈약한 헌금마저 바닥이 나버렸다. 직원들은 모두 뭔가 한 아름씩 안고 말없이 빠르게 나갔다. 그날 밤 한 청년 직원이 대표로 조지에게 봉투를 건내면서 “…모두 고아들을 위한 헌금이에요” 하는 것이었다. 조지는 어리둥절하여 “이것은 어디서 들어 온 거죠? 여러분 모두 한 푼도 없으시잖아요?” “그것은 목사님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에요. 그러니 고아원은 문을 닫지 않아도 됩니다.” 조지는 일어서서 “난 이 돈이 어디서 나왔는지 알아야만 되겠어요.” “…우리는 필요없는 물건들을 좀 갖고 있었습니다.” “물건들이라뇨?” “저희들 방엔 은제품, 그림, 대단찮은 가구들이 좀 있었죠.” “그것들을 팔았단 말입니까?” “우리도 기도에 대한 응답을 한번쯤 받아보고 싶어서였죠.” 그들은 영원한 것을 소유하고 싶어서 자신들의 소유를 판 것이다.

하나님의 유우머를 배우다

 

자기의 소유를 팔아 헌신한 직원들의 헌금도 며칠이 못되어 모두 바닥이 나버렸다. 그래서 아슬아슬한 순간들을 지내게 되었는데, 조지는 자기로서는 더 이상 고아원을 관리해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돈이 될만한 기구들은 모두 다 팔았고, 직원 중엔 아무도 은행에 한푼 예금해 둔 사람이 없었다. 그들의 유일한 재정원은 하나님 뿐이었다.

 

특히 어려웠던 5일이 지나자 한 여성이 멋진 가방을 들고 고아원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옆집에서 5-6일 동안 요양을 했는데, 고아원에 들어오고 싶었지만 모두들 엄숙하고, 바쁘게 움직이며, 무언가 한아름씩 들고 나가는 것이 피크닉이라도 떠나는 줄 알았으므로 이제 왔다고 말하면서 조지에게 2주간의 대금을 지불할 수 있는 많은 금액을 내놓았다.

 

1838년 부터 1843년 까지 5년간 아슬아슬하게 하루 하루를 인내하면서 지냈다.

 

11월 그의 지갑이 다시금 가죽만 남게 되자 직원들과 함께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자신들의 사정을 말씀드렸다. 기도를 마친 후 조지는 “하나님께서 도우실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며 그들이 기도하고 있는 동안 온 편지 한 통을 열었다. 그 속에는 최소한 1주일간의 비용을 충당하기에 족한 10파운드가 들어 있었다!

 

재정난을 겪던 어느 날 한 과부가 찾아왔지만 그녀는 유산으로 받은 5백 파운드를 어디에다 투자해야될지 망설였다. 조지는 그날부터 기도하기 시작했다. 조지가 기도하는 동안 그 과부는 친구들에게서 ‘광신자 조지에게 투자해서는 안된다’ ‘좀 더 돈을 벌 수 있는 건전한 곳에 투자해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를 들었으나 브리스톨 고아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한 달이 지나갔다. 조지는 계속해서 기도했다.

 “오, 주여 한달이 되었나이다! 저는 24일간을 신실하게 기도했나이다. 당신의 뜻을 그녀의 생활에 나타내 주옵소서. 그녀의 소명을 깨닫게 하소서. 저는 돈의 필요에 대해 사람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겠나이다.” 드디어 그 과부는 조지를 방문했다.

 “주께서 저에게 제 돈을 내어 주라고 말씀하셨어요. 주님은 제 유산을 고아들이 갖기 원하셔요” 그러나 조지는 자신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가 아닌 그녀의 순수한 헌신이기를 바랬으므로 ‘2주 동안 기다렸다가 그때도 계속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그녀의 소명으로 확신한다면 그때 5백 파운드를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그 돈이면 1년 이상 세 고아원의 생활비가 될 수 있는 큰 돈이었다. 고아원은 그 돈을 절실히 필요했다. 마침내 그녀의 유산은 다음 해 3월에 들어왔다.

“진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서 우리를 가난케 하시는 자비로우신 우리 아버지.” 기적적인 기도의 응답은 몇 번이고 일어났다. 조지는 이러한 일들로 인해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과 유우머를 배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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