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神學/[世界信仰人]

죠지 뮬러 6

好學 2011. 8. 15.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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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지 뮬러 6

 

한계를 모르시는 하나님

 

신축 고아원에는 300명의 고아들과 총 335명이 생활하고 있으며, 조지가 하는 일의 분량도 많다. 그런데도 조지는 불쌍한 고아를 돌보는 일에 더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하였는데 10일간 계속 그 문제로 기도하며 1850년 12월에 고아들의 수를 3배로 늘이고 700명을 더 수용할 수 있는 고아원을 세울 것을 결심하였다. 몇몇 사람들에게 그의 계획들을 털어놓자 그들은 그가 미쳤다고 했다. 헨리 크레익도 마찬가지였다.

 

“자네가 1천명의 고아들을 떠맡으려고 한다면 자넨 자네의 한계를 넘어서는 처사가 될 걸세…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고 말씀하셨어. 자네의 계획은 영적인 자만이야!”

“하나님으로서는 어떠한 것에 대해서도 가능하셔.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을 생각해 보라구. 그리고 온갖 역경을 통해 하나님은 내 믿음을 확대해 오셨어.”
“그러나 조지, 사람의 힘에는 육신적으로도 한계가 있는 거야.”
“헨리, 나는 16년 동안 단독으로 고아원을 관리했고, 한 명의 조수를 두지 않고도 52주마다 혼자서 3천 통의 편지를 쓰고 있어. 나 조지 뮐러는 주의 이름에 더욱 영광을 돌리기 위해 계속할 걸세. 사람들이 언제든지 모든 것에 대해서 주를 앙망하고 칭송하며 신뢰하고 의지하도록 말이야. 그것이 내 목적일세. 애쉴리 타운에 1천 고아들을 수용하기까지 중단하지 않을 걸세.”

 

조지는 주님의 뜻을 알기 위해 또다시 특별 기도시간을 가졌으며, 계속 추진해야 한다는데는 조금도 의심이 들지 않았다. 조지는 고아원 사업을 확장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 해명한 반대 이유들과 찬성하는 8가지 이유들을 종합해 보면서 이 사역을 확장하는 것이 그분의 뜻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조지는 여지껏 받았던 기부금 중 가장 많은 액수인 3천 파운드의 돈을 기부받음으로써 주님께서 이 일을 기뻐하신다는 증거로 받아들였으며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길 때 훨씬 많은 액수의 돈이 들어오리라고 기대했다. 극복해야 할 어려움이 크면 클수록 기도와 믿음으로 얼마나 많은 것들이 성취될 수 있는가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아직 상당한 인내가 필요한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으며 건축 헌금은 그의 인내를 시험하듯 졸졸 새어들어왔다. “내가 참을성 있게 인내하자 기도에 대해 응답을 받았다.” 이것이 1850년 5월부터 1851년까지 그의 고백이었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8천 파운드를 기부했다. 이제 돈은 좀 대규모로, 또 소규모로 꾸준히 들어왔으며 조지와 메리와 리디아는 계속하여 기도했다.
조지는 1855년 3월, 4년 반만에 건축에 충분한 기부금을 받았다. 새 고아원 옆에다 큰 고아원을 지으려고 했는데, 그 땅을 살 수가 없어서 반대편에 나누어 2개를 지음으로써 고아원이 3개가 되었다. 결국 참을성 있게 인내하므로 기도에 대한 응답을 받았다. 가을까지 기초가 닦아졌으며, 벽돌공들, 목수들과 인부들이 브리스톨에서 매일 아침 기차를 타고 와 12시간동안 벽돌을 쌓고 대들보를 맞추었다. 해머소리, 망치소리와 인부들의 합세하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리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서 바로 자기 눈 앞에서 일하고 계시다는 일종의 환희를 느끼게 되었다. 조지는 유리창값이 너무 비싸서 계약서에 서명하기를 지체하고 있었는데, 고아원 모든 창문에 필요한 유리를 무료로 제공하겠다는 편지를 받게 됨으로써 그의 기쁨은 더욱 커졌다. “하나님은 한계란 것을 모르십니다. 그리고 조지 뮐러는 오직 그의 채널일 뿐입니다.” 라고 외치고 싶었다.

 

1856년 2월 그의 처분에 맡겨진 3천 파운드와 건축기금으로 1천 7백 파운드를 받았다. 다음달에는 4천 파운드와 건축기금으로 3천 파운드를 받았다. 하나님은 이제 거액으로 조지에게 돈을 주셨다. 두 번째 고아원은 조지가 기도를 시작한 지 7년 후에야 완성되었다. 그 건물들은 최초의 벽돌로부터 마지막 개스 버너에 이르기까지 3만 5천 파운드의 비용이 들었고, 3만 5천 335파운드가 기부되었다. 하나님께서 조지 자신이 설정했던 한계를 넘어 335파운드를 더 주셨던 것이다. 그뿐 아니라 조지는 누구한테 1실링도 구하지 않고, 오직 기도로써 주님께 구했던 것이다. 할렐루야!

 

다시 450명의 고아들을 수용할 수 있는 가장 큰 세 번째 고아원을 지으려고 하니 7천 파운드의 선물이 들어왔고 한 달 후엔 1천 7백 파운드의 선물이 들어왔으며 새 건물의 390개의 창문을 위해 또 유리가 기증되었다. 1859년 7월부터 시작되어 2년 후에 거의 완공되었고, 4만6천 파운드가 건축기금으로 들어왔음을 알았다. 그들이 기도했던 것보다 1만 1천 파운드가 더 많은 것이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직도 당신은 한계를 두지 않고 계심에 대하여!” 이것이 그의 기쁜 외침이었다. 1862년 3월에 완공되었다. 6개월로부터 9세까지의, 부모가 없고 집 없는 1천명 이상의 소년, 소녀들이 이제 하루에 세차례의 식사와 입을 옷과 그들이 일찍이 받았던 기독교 교육에 대해서 조지 뮐러를 의지하고 있었다. 직원들 역시 많아졌다. 조지는 이제 신중한 청년 ‘짐 라이트’를 조수로 두었으며 그를 믿고 대화를 나누었다.

 

2천명의 고아들과 조지의 말년

 

그러나 조지는 3개의 고아원도 부족하게 느꼈다. 빈민굴에는 버림당하고 가난에 찌든 어린아이들이 아직도 많기 때문이었다. 그는 두 개의 고아원을 더 세우고 고아들의 수를 배로 늘려 2천명의 고아들을 수용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땅을 사기 위해서 소유주와 브리스톨 수도 관리소와 싸워야만 했다. 소개업자는 절망적으로 말했으나 조지는 이미 숱한 기적들을 체험하였기 때문에 어떤 일에도 절망하지 않았고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수도관리소와도 해결이 잘 되었다. 소유주는 7천을 원했으나 조지는 5천 가까이 내렸다. “내 당신에게 헐값을 매기고 있오.” “당신이 아니요. 헐값을 매기시는 분은 하나님이셔요. 자, 서류에 서명합시다.”

 

1866년 5월 7일 삽질이 다시 시작되었다. 이제 애쉴리 타운 전역은 어린이들의 마을이 될 것이다. 조지는 짐 라이트와 함께 그곳에 서서 뜨거운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그의 아내 메리는 심한 기침을 하면서도 공사장에 와서 돕는 것을 쉬지 않았다. 넷째와 다섯째 건물을 세우는 데는 4년이 걸려 1870년 1월 6일에 모두 완공되었다. 이제 부모 없는 2천 5십 명의 어린이들이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교육을 받을 것이다. 성령님께서는 어린이들 속에서 역사하셨고 많은 아이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기쁨에 참여하였다.
드디어 건축이 끝이 났다. 그 건물들은 그가 죽은 후에도 반세기 이상 서 있을 것이며 그것들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또한 고아원들의 벽돌 하나하나가 기도로 응답받았던 것임을 배우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조지를 가리켜 독립자, 반역아, 심지어 광신자라고까지 불렀다. 그러나 많은 이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길잡이가 될 것이다.

 

그의 신실한 동역자 메리 뮐러는 한 달 후에 죽었다. 조지는 홀로 그의 딸 리디아와 고아들과 남았다. 그는 비록 65세였지만 아직 그의 인생은 끝나지 않았다. 1년 반 후 그의 딸 리디아와 조수 짐 라이트는 결혼하였고, 조지는 오랫동안 기드온 교회당에서 알아온 40대 초반기의 수산나 그레이스 샌저와 재혼하여 71세부터 함께 유럽, 아시아와 아메리카로 연속적인 선교 여행을 떠났다. 그는 2십만 마일을 여행하였고 42개국에서 설교했는데, 그 일을 88세가 되기까지 계속하였으며, 93세에 애쉴리 타운에서 죽었다. 죽기 전 날까지 그는 여전히 고아원을 질서있게 관리했다. 조지가 죽자 짐 라이트와 리디아가 고아원을 맡았으며 그들 역시 지금은 이 세상에 없지만 브리스톨에서 그 후손들의 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조지 뮐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한 참 종으로서, 성경말씀을 그대로 믿고 실천한 순종의 사람이었으며, 또한 사람의 생각이나 관습을 초월하여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창조적인 믿음을 가진 기도의 사람이었다. 조지의 93년의 생애는 끝이 났으나 그의 믿음을 통하여 역사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지금 우리에게 전해져 높임을 받고 있으며, 그를 의지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증거가 되고 있을 뿐 아니라 후세에도 계속 빛날 것이다. 

김연심 전도사    [그리스도복음신문 1999.8-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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