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神學/[世界信仰人]

죠지 뮬러 3

好學 2011. 8. 15.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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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지 뮬러 3

 

말씀과 생활을 일치시키려는 노력

 

1830년 10월 7일 그는 연상이었지만 밝고 정직한 메리 그롭스와 결혼했는데, 많은 기도후에 결혼하기로 결정했으며 메리는 훌륭한 믿음의 동반자가 되었다. 메리는 시집올 때 화려한 은제품들을 가져왔는데, 이것이 죠지의 마음에 걸렸다. 죠지는 자신들의 화려한 생활이 가난하셨던 주님의 생활과 위배되며, 누가복음 12장 33절에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라’고 하신 말씀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메리는 죠지의 결정에 따랐다.

 

그당시 교회에서는 좌석료를 받는 관습이 있었는데, 가장 비싼 값을 지불하는 사람들에게 교회의 제일 좋은 좌석을 세놓는 비극적인 제도였지만 이 좌석료가 바로 목회자의 사례비가 되기 때문에 폐지되지 않았다. 그러나 죠지는 이 좌석료를 받는 제도가 약2:1-6에 의하면 주님의 마음과는 반대되는 것이며 목회자의 월급과 연관되기 때문에 사람들의 눈치를 보아야 하므로 복음이 방해를 받기 때문에 이 제도를 폐지하기로 했다. 이것은 그들의 생활비를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지하는 불안하지만 대단한 믿음의 결단이었다. 헌금통을 마련하여 목회자의 생활을 돕기 원하는 사람은 무명으로 돕도록 했다.

 

1830년 11월 18일, 가지고 있던 돈이 거의 바닥났다. 아침에 죠지 부부는 기도하면서 주님께 돈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렸는데, 4시간 후에 한 자매가 와서 주님께서 목사님께 돈을 갖다 드리라고 했다며 일주일간 생활하기에 충분한 돈을 주고 갔다. 죠지와 메리는 주님의 신실하심에 기뻐서 어쩔줄을 몰랐다. 차차 시간이 감에 따라 주님은 그들의 믿음을 더욱더 많이 시험하셨다.

 

1831년 1월 6,7,8일 사흘간 죠지는 반복해서 주님께 돈이 필요하다고 간구하였으나 아무 것도 받지 못했다. 이번에는 주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무 소용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내가 믿음에 의해 산다는 것이 너무 도가 지나친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지만 결국 하나님은 신실하심을 증명하셨다. 헌금통을 관리하는 형제들에게 일주일에 한번씩 헌금통을 열어 갖다달라고 하였지만 잊어버리거나, 금액이 너무 적어 차마 가져오지 못하고 3주 내지 5주만에 한번씩 가져오곤 하였다. 난로에 넣을 석탄이 거의 다 떨어졌을 때, 주님께 헌금통을 관리하는 형제의 마음을 움직여서 돈을 가져오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얼마 후 그 형제가 돈을 가져왔고 필요한 것들을 살 수 있었다.

 

3월에 나는 다시 한번 주님의 신실하심을 의심하는 시험에 들었다. 비록 돈에 대해 걱정은 하지 않았지만 기쁨으로 승리할 수 있을 정도로 주님을 완전히 신뢰하지는 못했다. 한 시간 후에 주님께서는 또 다른 방법으로 그분의 신실하신 사랑의 증거를 보여주셨다. 주님께서는 내게 직접적으로든지 간접적으로든지 죠지의 필요에 대해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지 말라고 하셨고 죠지 부부는 절대로 빚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롬13: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는 말씀대로 빚진다는 것은 성경적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빚을 지기보다는 차라리 없는대로 견디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였다. 한 해를 돌아보며 그들은 정기적인 월급을 받았을 때보다도 훨씬 더 풍성하게 채워졌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주님의 뜻대로 행하면 우리는 결코 패자가 될 수 없다. 주님은 당신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이들을 도와주시며 신실하시고 자비로우신 아버지가 되어주신다.

 

전염병과 싸우는 선한 목자들

 

뮐러는 크레익의 도와달라는 편지를 받고 기도 끝에 타인모우스의 사역을 마무리하고 1832년 5월 21일 브리스톨로 이사를 갔다. 에브리스톨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전염병이 퍼져 조지 뮐러와 크레익은 감염의 위기 속에서도 어린이들과 병자들을 심방하며 성경을 읽어주고 기도해 주었다. 9월이 되자 피로에 지친 아내 메리는 조지를 걱정하며 곧 태어날 아이를 위해 조지의 외출을 막았다. 그러나 조지는 혈육간의 애정을 극복하고 아내의 호소를 뿌리쳤다. “난 브리스톨을 돌보겠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도록 나를 부르셨으니까. 하나님은 결코 좋은 일기와 좋은 건강을 약속하지 않으셨어. 하나님은 브리스톨에 가서 일하라고 말씀하셨을 뿐이야. 메리, 당신에게는 미안해.” 병자심방을 마치고 크레익과 돌아오는 길에 현기증으로 인해 난간에 기댄채 기도했다. “오 주여, 당신의 손으로! 여기 당신의 불쌍하고 하잘 것 없는 소인이 있나이다. 만일 오늘 밤에 우리가 콜레라에 걸린다면 우리가 신뢰할 것은 우리의 많은 죄를 위하여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뿐이옵니다. 오, 하나님 우리를 도우소서!”

 

브리스톨은 10월이 되면서 완전히 전염병이 사라졌다. 기드온 교인 중에서 오직 한 사람만이 죽었다. 그들은 삯군처럼 달아나지 않고 죽음을 각오하고 양을 지키는 선한 목자였다. 메리가 걱정했던 아이는 전염병이 기승을 부리던 9월에 건강한 여자아이로 태어났다. 두 젊은 목사는 병으로부터 지켜주신 하나님께 특별 감사예배를 드렸다. 교회는 계속 부흥되어갔다. 1년만에 109명의 새로운 사람이 등록하였고 그들중 65명이 주님을 영접했으며 하나님을 등졌던 많은 이들이 돌아왔다.

 

성경연구원

 

1834년 조지는 국내외에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선교기관인 ‘성경연구원’을 설립하였다. 기성 선교단체들은 대부분 빚을 지고 있었는데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런 빚도지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과 대치되는 것이었다. 또한 일정액의 기부금만 내면 그 사람이 불신자든, 죄된 생활을 하든 상관없이 회원이 되고 투표권을 가질 수 있었으므로 여러 면에서 그들은 양심을 깨끗하게 지키면서 선교사역을 하기 위해 새롭게 기관을 만들었던 것이다.

 

‘성경연구원’의 목적은 성경을 가르치는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무료 주간학교’, ‘주일학교’, ‘성인학교’를 세워 원조하며, 성경을 배포하고, 선교사들을 지원하는 것이다. 그들은 빚을 지거나 사람들의 도움을 요청하면서까지 사업을 확장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도우심만을 구하는 것을 경영의 원칙으로 정했다. ‘성경연구원’의 활동이 시작된지 7개월이 지났을 때 무료주간학교에는 약209명의 아이들, 주일학교에 120명, 성인학교에 40명이 교육을 받게 되었으며, 482권의 성경전서와 520권의 신약성경을 배부하였고, 상당한 금액을 선교사들에게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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