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神學/[世界信仰人]

죠지 뮬러 1

好學 2011. 8. 15.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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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지 뮬러 1

 

방탕한 그를 기도의 용사로 변화시키다

 

죠지뮬러(George Muller, 독일, 1805-1898)는 1805년 9월 27일 독일 크로펜스타트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아버지는 세무원으로 술과 돈을 좋아했고 세상의 원칙에 따라 자녀들을 키웠다. 그가 14세 되었을 때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으나, 그날 아버지는 술에 취해 거리를 비틀거리셨고 죠지는 친구들과 함께 새벽 2시까지 카드놀이를 하느라고 집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어머니의 죽음은 그에게 큰 충격을 주지 못했고 그의 생활은 더욱 방탕해졌다. 16세 때에 값비싼 호텔들을 다니며 아버지의 돈을 허비하고, 옷을 저당잡히며 나중에는 지불할 돈이 없어 도망치다가 주인에게 고발당해 24일간 감옥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후 아버지에게 호되게 꾸지람을 들은 뒤 아버지의 신임을 얻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으나 그의 마음은 여전했다.

 

뮬러의 죄악된 생활은 계속되었으나 전혀 죄의식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신앙고백과 성찬식이 있기 전에는 자기의 부도덕성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기도 하고 가끔은 생활을 바꿔보려고 결심도 해 보았지만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그는 상습적인 도둑이요, 술꾼이었으며, 거짓말쟁이었다. 그런데도 스무살 때 훌륭한 추천서를 받아 할레대학의 학생이 되었고 루터란교회에서 설교할 수 있는 허가도 받았다. 그러나 여전히 하나님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 비참한 생활을 진실로 그만두고 싶었으나 타락한 정욕으로 인해 선한 능력이 없는 그에게는 불가능했다.

 

어느 날 친구들과 술집에 있는데 전에는 착실한 신자였던 베타를 만났다. 그와 친구가 되면 자기의 생활이 변할 것이라는 소망을 가져보았으나 베타도 함께 타락의 길로 빠지므로 소망이 사라졌다. 방학동안에 베타와 다른 두 학생과 함께 부모님들의 허락을 받은 것처럼 편지를 위조하여 여권을 얻어 43일간 스위스 여행을 즐기기도 했는데, 친구들의 돈을 맡은 뮬러는 자기 비용의 1/3을 친구들이 부담하도록 꾸몄다. 그는 죄악된 삶으로 하나님을 대적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기다리고 계셨다.

 

새로운 삶의 시작

 

뮬러는 여러 해 동안 성경을 읽기는 커녕 그가 소유한 300권의 장서에도 성경은 없었다. 예배는 거의 참석하지 않았으며, 복음에 대한 설교를 들은 적도 없었다. 그는 신학생이었지만 교리를 몰랐고 예수님이나 성령의 역사에도 완전 무지했다. 그런 그에게도 하나님의 은혜는 내리기 시작했다.

 

1825년 11월 중순 어느 토요일 오후, 산책을 마치고 헤어지기 전에 베타는 와그너의 집에서 열리는 기도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순간 뮬러는 이제까지 찾아온 보물을 발견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함께 참석하겠다고 했다. 찬송을 부른 후 아프리카 파송 선교사가 될 카이저 형제가 무릎을 꿇고 그 모임을 축복해주십사고 기도했는데, 그는 바로 곁에 위대한 능력으로 서있는 살아계신 하나님께 말하는 것 같이 기도했다. 지금까지 한번도 무릎꿇고 기도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던 뮬러는 그 형제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큰 감동과 충격을 받았다. 뮬러는 나가면서 “자신을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복종시키는 것, 이것이 참된 예배다”고 중얼거리며, 베타에게 “우리가 스위스를 여행하면서 보았던 모든 것과 이전에 느꼈던 모든 즐거움도 오늘 저녁에 비한다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고백했다. 그날 밤 뮬러는 잠들기 전에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하나님! 드디어 제가 오늘 밤 당신의 것이 되었나이다!”

 

하나님을 위해 버리는 생활

 

그날 이후 뮬러는 와그너 집을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성경을 읽곤 했는데, 성경말씀이 너무나 흥미로워서 토요일의 기도회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인생은 새롭게 시작되었다. 우선 나쁜 친구들과의 교제를 끊고 술집에 가는 것과 습관적으로 하던 거짓말도 그만두었다. 그대신 성경을 읽고, 자주 기도했으며, 형제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또한 바른 동기로 교회에 갔다. 비록 친구들이 비웃었지만 공공연히 예수님을 증거하기도 했다. 그의 모습은 점점 신자다워졌다. 그는 파리를 방문하기 위한 경비를 마련하려고 불어 소설을 독일어로 번역했으나 소설의 내용이 세속적이고 또 쾌락을 위해 파리를 방문하려던 불순한 동기가 마음에 걸려 그 원고를 팔지도 않고 태워버렸다. 그는 하나님을 위해 하나씩 악한 것들을 버려갔다.

 

1826년 뮬러는 선교사들의 소식지를 보고 선교사가 되고자 하는 열망으로 뜨거워졌다. 그런 뮬러에게 한가지 고민이 생겼는데, 기도모임에 참석하던 에르머가르데라는 화려하고 매력적인 여자를 사랑하게 되면서 지금까지 누렸던 영적인 기쁨과 평안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기도를 해도 힘이 없었고 허공을 치는 듯 하나님의 응답을 느낄 수 없었다. 뮬러는 괴로워하고 답답해했지만 여전히 그녀를 만나면 의지가 나약해지면서 애정에 빠지게 되었다. 에르머가르데는 너무나 매력적이었지만 초라하고 가난한 선교사의 아내가 되기보다는 안락하고 부한 생활이 보장되어있는 삶을 원했으며, 그의 아버지 또한 같은 마음이었기 때문에 선교사가 되려는 뮬러에게는 그녀가 맞지 않았으나 포기하기 싫었다.

 

그러던 중 폴란드에서 유대인을 상대로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헤르만 볼’이라는 선교사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는 부유한 상인의 아들이었지만 선교사가 되기위해 모든 상속권을 포기하고 선교에 헌신한 사람이었다. “…죠지, 중심을 두가지 일에 두지 말게. 가난과 부귀는 함께 할 수 없네. 설마 내가 너무 많은 것을 포기했다고 생각지 말게. 나는 훨씬 많은 것을 얻고 있으니까 말일세. …내 대신 자네가 바로 그 일을 했으면 하네.” 뮬러는 선교사의 길을 가기로 다시 결심하고 에르머가르데에게 선택하도록 했다. 그녀는 부귀와 안락을 택했고, 뮬러는 그녀를 포기했다. 그순간 6주동안 사라졌던 은혜와 평안이 물밀 듯 밀려왔다. 그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 남녀간의 애정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이다.

 

선교사가 되려는 뮬러에게 또 하나의 장벽이 있었는데 독일 선교단체에 가입하려면 아버지의 허락이 필요했다. 그는 허락을 받기위해 고향을 방문했으나, 아버지는 뮬러가 존경받는 목사가 되면 함께 노후를 편안하게 지내려고 많은 돈을 들여 공부시켰는데, 모든 기대가 무너졌다고 하면서 화를 내시고 더 이상 도와주지 않겠다고 소리질렀다. 우시면서 마음을 바꾸라고 애원하기도 했다. 뮬러는 마음이 너무 아팠지만, 주님은 뮬러에게 혈육의 정을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아버지의 소망을 이루어 드릴 수 없기 때문에 계속 학비의 부담을 드리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되어서 그는 비록 이전보다 더 많은 돈이 필요했지만 아버지에게서는 한 푼도 받지 않기로 결심하였다.

 

첫 번째 기도응답

 

그는 아버지로부터 독립하였다. 이제 이 세상의 그누구에게도 의존해 있지 않은 자유함을 느꼈다. 이제 그는 전우주 안에서 오직 한 인격에 의존해 있었는데, 그분은 바로 하나님이셨다.
그는 처음으로 하나님께 그의 현실적 필요를 진실하게 구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제가 무엇을 해 왔으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정확히 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필요로 하는 것을 아십니다. 저는 방세를 지불하고, 밥을 사먹고, 책을 사고, 다음 학기에 지불할 등록금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저는 그러한 돈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시간에,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방법으로 저의 소원을 이루어 주소서. 저는 기다리겠습니다”

 

잠시 후 노크소리가 들리며 쏠럭박사님이 그에게 가정교사일을 맡기기 위해 방문했다. 몇몇 미국 교수님들이 연구차 할레대학에 오셨는데, 독일어를 모르기 때문에 독일어 선생이 되어달라는 것이었다. 이 일로 뮬러는 등록금을 제외하고도 용돈으로 쓸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돈을 받았다. 하나님은 자기를 의지하는 자를 반드시 돌봐주시는 신실하신 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