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神學/[世界信仰人]

[빛을 따라간 사람들] 썬다 싱3

好學 2011. 8. 8. 21:38

[빛을 따라간 사람들]  썬다 싱3

 

 

마하리시와의 만남

 

1912년 이른 봄, 두 번째 티벧 전도길에 오른 썬다는 히말라야 산맥 중 카일라스산 동굴 속에서 아주 신비로운 노성자를 만나게 된다. 그는 골짜기를 내려오다가 그만 미끄러져 정신을 잃고 말았다. 정신을 차리고보니 자신이 어느 동굴 안에 있었으며, 그의 앞에 한 노인이 앉아있는 것을 보았다.
소스라치게 놀란 썬다를 그 노인은 깊고 조용한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주님께 기도를 드리십시다.” 기도를 마쳤을 때 비로소 썬다는 그가 그리스도인 마하리시(大聖師)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낡은 양피지로 된 희랍어 성경을 펴서 마태복음 5장의 산상수훈을 읽어주었다. 썬다는 그토록 깊은 산속에 기독교 성사가 있다는 것에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을 느끼며 그의 지난날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고 청했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신상에 대해 말했을 때 썬다는 믿기가 어려웠다.

 “나는 애굽의 알렉산드리아에서 나서 엄격한 이슬람교도 부모 밑에서 자랐소. 그러나 서른이 되도록 모하메드의 종교에서 안식을 얻지 못하였는데, 그때 성 프랜시스 사비에르의 조카 중의 한 사람인 쟈르노스가 알렉산드리아에 들렸다가 나에게 세례를 주시었소. … 그 이후 75세가 될 때까지 나는 세상의 이곳 저곳에서 전도를 하였소. 그리고 이 카일라스산에 거주해온 지는 209년이 되었소.” 썬다는 하루동안 그 노성사와 함께 머무르면서 큰 기쁨과 평화를 느꼈다. 1912년에 이어 1916년과 1917년에도 썬다는 마하리시를 만나 영적으로 큰 유익을 얻었다.


썬다는 마하리시를 만난 감회를 ‘누르아프산’이라는 신문에 이렇게 적고 있다. “나는 지금까지 여러번 히말라야를 넘나들었지만 이런 마하리시를 만난 일이 없다. … 그의 신앙 인품을 어찌 필설로 다 적을 수 있으랴!” 썬다는 그의 인격 안에 넘쳐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보았다. 그래서 그토록 험란한 전도의 여정 중에 참으로 큰 기쁨과 평화를 맛볼 수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한번 썬다에게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을 맛보게 해 주심으로, 험준한 히말라야산맥을 넘나드는 그의 발을 튼튼하게 하셨던 것이다.

 

 40일 금식 (그리스도 할례 경험)

 

썬다는 세례를 받은 후 두가지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성지 팔레스틴을 찾아가서 주님이 세상에 계실 때를 깊이 추억하고 싶은 것이고, 둘째 소원은 주님을 본받아 40일 40야를 금식기도하는 것이었다. 첫째 소원은 여러 가지 일로 중지되고, 둘째 소원은 1913년에 실행하게 되었다. 이 기간 중 썬다는 다시 예수님을 보는 귀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처음 회심할 때 본 모습과는 달리 못박힌 손과 피흐르는 발과 빛나는 얼굴을 하고 계셨다. 또한 육체의 힘이 거의 없어졌을 때 사자와 맹수의 울음소리도 들었는데,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소리였다. 40일이 못되어 그는 쓰러져 있었는데, 대나무를 베러 온 나무꾼이 그를 발견하고 안필드로 보내 생명을 구했다. 이 금식 중의 체험은 그의 생애에 한 시기를 긋는 중대한 경험이다. 이 금식 중의 체험이 그를 어떻게 변화시켰는가에 대해 그 자신은 이렇게 고백한다.


“금식 전에는 나에게 유혹이 있었다. 그것은 내가 피곤한 때 누가 와서 질문을 한다든지 이야기를 하려하면 나는 늘 괴롭게 생각되었다. 또 먹지 못하고 피곤할 때면 ‘하나님께서는 왜 나를 돌보시지 않는가’, ‘돈이 있으면 필요한 것을 살텐데 왜 돈을 가지지 말라고 하셨는가?’ 하는 불평이 마음에 틈타기도 했다. 그러나 금식 이후로는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경륜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또 어떤 때는 ‘집에 가서 결혼하고 행복된 생활을 하며 좋은 신자가 되어 하나님과 교제해도 무방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일어났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금전을 가지고 행복된 생활을 하는 것이 죄가 아니나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 것은 특별한 사명이 때문이요, 신이 나에게 주신 입신체험은 세상의 어떤 가정의 행복보다도 나은 것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나의 참 결혼은 그리스도와 맺었다. 다른 사람에게 있어 결혼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나 이미 그리스도와 결혼한 내가 달리 어찌 결혼할 수 있겠는가!”


이 고백을 통해서 썬다는 이때 성인들이 경험했던 바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경험(롬8:2) 즉 그리스도 할례 경험(골2:11, 신인합일의 경험)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의지와 상관없이 마음을 지배하는 원죄(죄성)로부터 해방되어 온전히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사람이 된 것이다. 이것은 또한 그가 이때부터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합당한 믿음직한 사역자, 그리스도의 인격을 소유하며 그 빛을 발산하는 신실한 종이 되었음을 인증하는 경험이기도 하다.

 

 티베트에 빛을 ....

 

썬다 싱은 스물네 살이 되던 1913년 봄, 티베트으로 또다시 전도여행을 떠났다. 라자르시라는 곳에서 전도를 하고 있었는데 매우 큰 핍박을 받게 되었다. 처음 전도하기 시작할 즈음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그의 설교를 들었는데, 이 소식이 수(首)라마에게 전해지자 썬다는 즉각 체포되어 끌려갔다. 그리고 수라마의 명에 의해 깊게 파진 마른 우물 구덩이에 처넣어지는 형벌을 받게 되었다.
그는 옷을 벗기운채 우물 안으로 처넣어졌다. 오른팔이 부러지면서 떨어진 우물 안에는 이미 먼저 떨어져 죽은 사람들의 시체들과 더러운 뼈다귀들이 뒹굴고 있었고, 돌틈으로는 징그러운 뱀들이 기어다니고 있었다. 밤과 낮이 없는 그 처참한 암흑의 구덩이에서 음식도 물도 공기도 없이 사흘 밤낮을 잠 한숨 자보지도 못한 썬다는 죽음이 가까와 옴을 느꼈다.


썬다는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간절히 기도했다. 정말 죽음을 넘나드는 간절한 기도를…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점점 그의 마음 속에는 큰 기쁨이 흘러들어 왔고, 그토록 소름끼치는 무서운 곳에 있다는 것을 잊을 정도의 큰 평화가 마음 속에 가득차게 되었다. 썬다는 이 때처럼 예수님께서 주신 평화와 희열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예수님의 평화는 그 지옥같은 우물을 천국의 문으로 변화시켰다. 죽은 사람들의 뼈와 시체속에서,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썬다는 더욱 분명하게 예수님께서 살아계신 것을 체험했다. 기쁨에 들떠 있을 때, 우물 뚜껑이 열리더니 “로프를 잡으라”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 로프를 잡고 위로 올라갔다. 밖으로 나온 썬다는 주변을 돌아보았으나 구조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주님께서 기적을 베푸신 것이다. 날이 밝자 썬다는 몸을 씻고 다시 전에 전도하던 시장거리로 나갔다. 그는 또다시 체포되어 추방되었다.
라자르에서 추방된 후에도 썬다는 죽을 각오로 티베트 곳곳에서 전도를 계속했다. 썬다에게 있어 티베트에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결심은 이제 하나의 신념이 되었다.
“살아생전에 이 십자가를 지지 못하면 나는 영원히 이 십자가를 지지 못하고 말리라. 아무리 그 십자가가 무겁더라도 나는 주님 발치에서 묵묵히 그를 따라 골고다로 올라가야 한다. 히말라야의 일각, 이 작은 티베트에만은 주님의 빛을 비춰주어야한다.”

 

 거머리 형벌

 

1914년 6월 7일, 썬다는 히말라야의 동쪽 산령에 있는 네팔의 일람으로 향하고 있었다. 다음 날인 6월 8일, 썬다는 일람부락에 닿아 사람들에게 네팔어 성경을 읽어주고 있었다. 관리들이 와서 몇 번 하지말라고 경고를 했는데 썬다는 계속해서 전도를 하다가 결국 체포되어 칙칙한 지하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들은 썬다의 옷을 전부 벗기고 착고를 채워 꼼짝을 못하게 한 후 그의 앞에다 많은 거머리 떼와 뻘오물을 두고 욕을 하며 나갔다.


얼마 후 거머리 떼는 썬다의 전신으로 기어오르며 피를 빨기 시작했다. 썬다는 두서너 시간 동안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견디다가 온 힘을 다해 찬송과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순간 고통이 멎고 감옥은 천성같이 변하였다. 큰 기쁨 속에서 썬다는 더욱 힘차게 찬송을 불렀다. 그랬더니 이 예상치 못한 광경을 보려고 사람들이 몰려왔다. 썬다는 착고에 채인 채로 그들에게 또다시 전도를 하였다. 관리들은 그토록 큰 고통을 당하면서도 기쁨이 충만하여 찬송하며 전도를 하는 썬다를 보고는 놀라움과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끼며 다음 날 그를 석방시켜 주었다.


썬다는 풀려나서 자신이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고난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하여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렸다. 그리고 휘청거리는 몸으로 100리밖에 떨어져 있는 다르질링까지 하루를 꼬박 걸어갔다. 다르질링에 살고 있던 탈진은 썬다를 만나자 그의 피부가 옥도정기 같이 붉게 변해있고, 전신은 온통 뜯겨 부어올라 있는 것을 보고 매우 놀라고 궁금해 했으나, 썬다는 그 박해사건에 대해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주님의 겸손을 본받고 싶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