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神學/[世界信仰人]

[빛을 따라간 사람들] 썬다 싱 4

好學 2011. 8. 9. 21:22

[빛을 따라간 사람들]  썬다 싱 4

 

 

주여! 저를 붙들어 주소서.

 

1916년 11월부터 1917년 1월까지 3개월 동안 썬다는 북인도의 소읍들을 찾아다니며 전도했고, 1918년에는 멀리 에베레스트산의 봉우리가 보이는 지역에서부터 캄바종지역, 팅그리지역, 귀이롱, 니아람딩게, 강쯔 일대까지 두달 동안 전도를 했다. 그는 그곳에서 많은 핍박을 받았고, 가는 곳마다 내쫓김을 당했다. 그 때마다 그는 “긍휼이 많으신 주시여, 이 보잘 것 없는 것을 붙들어 주옵소서. 제가 어둠을 이기지 못하여 믿음을 잃을까 두렵사옵나이다”하고 간절히 기도하며 다음 마을을 찾아가곤 했다. 신기하게도 기도만 드리면 주님께서는 그의 상한 마음을 위로하여 주셨고, 무너져 앉은 신심을 되살아나게 하셨다.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그의 겸비를 배우겠다고만 하면 주님은 언제나 산성처럼 확고하게 썬다의 영혼 깊이 거하여서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인도하여 주셨다.

 

남서부 인도로
1918년, 29세가 되던 해부터 썬다는 전 인도의 기독교계에 명성이 높아져 여러 곳에서 초청을 받게 되었다. 집회시마다 청중들은 그의 인격의 진실함과 겸비, 또 회개의 능력을 갖춘 설교로 인하여 눈물의 바다를 이루었다. 어느 때는 수백명, 어느 때는 수천명의 청중이 운집하여 그의 말을 들었다. 가는 곳마다 교회가 부흥되었고 많은 결신자들을 내었다.

 

그러나 썬다는 꽉 짜인 전도일정 가운데서도 기도생활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서 복음전파란 기도가 피어내는 영성의 꽃 이외 다른 아무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자신을 ‘사두’가 아닌 ‘작은 형제’라고 소개하곤 했는데 그의 뇌리에는 늘 이러한 생각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나면서부터 요람이 없어서 마굿간의 구유통에 뉘여지셨고, 돌아가셔서도 묻힐 곳이 없어서 남의 무덤자리에 묻히셨다.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예수님의 낮아짐을 배우는 일이요, 그의 고난에 참여하는 일이다. 천대받는 말석의 군중 속에 계신 예수님. 그 낮은 사회적 희생자들과 함께, 그 낮은 민중들과 함께 혁명을 해나가는 정신적인 왕국. 이 불굴의 해방정신, 영원히 사는 것이 기독교인의 정신이 아닌가!’
남서부 인도를 돌면서 인도문명이 낸 상처, 그 빈민굴들과 하리잔 제도를, 크리스천들부터 돌보아 주고 타파하라고 외치며 썬다는 그의 전도지를 동으로 향하였다.

 

 티벧의 순교자 카타르 싱

 

썬다는 그의 선교지 티벧을 찾아갈 때마다 매번 살아오리라는 기대를 하지 않은채 떠나곤 했다. 이교 포교죄로 자기 한몸 찢겨 죽을지언정 그 피가 티벧 교회의 주춧돌을 놓는데 도움이 될 수만 있다면 어떠한 순교도 기꺼이 받고 싶은 심정이었다. 1912년 봄, 썬다는 또다시 티벧에 들어가 전도를 하였는데 사람들은 그를 심하게 박해하고 출국명령을 내렸다. 그들은 경고하기를 “만약 당신이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카타르 싱과 똑같은 죽음을 면하지 못할 것이오. 그가 불응하기에 우리들은 그를 죽였소”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듣고 썬다는 그 미지의 순교자가 누구인지 궁금했는데 후에 알게 되었다. 그는 파티알라시에 사는 부호 하르남 싱의 아들 카타르 싱이었다.
아버지 하르남은 개종한 아들에게 분개하여 추운 겨울밤에 그를 속옷바람으로 내쫓았다. 그는 굶주림과 추위에 떨면서 숲속에서 지내다가 아는 사람을 찾아가 품팔이를 하여 번 돈으로 터번과 옷을 샀다. 사두복장을 한 그는 세례를 받고 티벧어를 배운 후 티벧에 들어가 전도를 시작했다. 전도를 하던 중 그는 심한 핍박을 받게 되었는데, 출국명령을 내려도 아랑곳하지 않는 그를 주민들은 천으로 꽁꽁 묶어서 교외에다 갖다 버렸다.


그런데 이틀 후 카타르 싱은 또다시 사람들의 눈 앞에 나타났다. 화가 난 라마승은 그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다. 그때 카타르 싱은 말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나는 이곳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피를 흘리고 죽을지라도 당신들을 진리 안으로 이끌 것입니다. 십자가 주의 사랑이 나로 하여금 그렇게 하기를 원합니다.” 사람들은 카타르 싱을 소가죽으로 꽁꽁 싸서는 뙤약볕에 몇날이고 내버려두었다. 소가죽이 마르면서 수축하여 카타르 싱을 압사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카타르 싱은 사흘이 지나도록 죽기는 커녕 계속 그들을 위해 기도와 찬송을 드리고 있었다. 나흘째가 되자 그는 성경을 갖다 달라고 하여 마지막으로 이렇게 적었다. “주님이시여, 주님께서 주신 몸이오매 주님의 것이나이다. 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어느날 썬다는 파티알라역 앞에서 이 이야기를 하면서 전도를 하고 있었다. 그때 청중 속에 서있던 점잖은 어른 한분이 갑자기 비통하게 울음을 터트리는 것이었다. 그는 바로 카타르 싱의 아버지였던 것이다. 그는 몇 년동안이나 아들의 생사를 모르고 있다가 아들의 장렬한 순교를 듣자 눈물이 흘리면서 썬다의 옷자락과 성경을 꼭 잡고는 말했다. “내 아들이 그렇게 독실한 그리스도인인줄을 몰랐소. 내가 잘못했소.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는데 … 나도 예수님을 믿겠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어 많은 열매를 맺은 것이다(요12:24).

 

 살려고 하는 자는 죽을 것이다

 

썬다는 만 서른살이 되는 1919년 7월 초에 또다시 열번째로 티벧에 들어갔다. 이 여행에서 썬다는 하루 평균 사십리 정도를 걸으면서 구월말까지 마흔 여덟곳을 전도했다. 그해 티벧에는 큰 눈이 내렸고, 9월 말께가 되자 길이 얼고 산천은 눈속에 싸여서 전도하기에 여간 어려운 형편이 아니었다.


어느날 썬다는 랑케트쪽으로 가는 중에 티벧인 한 사람과 동행하게 되었다. 그들은 앞을 분간 할 수 없는 눈보라와 발이 푹푹 빠지는 눈길을 함께 걷고 있었다. 사력을 다해 걷고 있는 중이었는데, 길에서 약 십미터나 떨어진 가파른 비탈쪽에 웅크리고 있는 동사체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썬다는 동행에게 “얼어 죽어가고 있는 그 사람을 구조하여 업고 가자”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는 “그러다가는 우리도 얼어죽소. 나는 살아야겠소” 하면서 매정하게 혼자 가버리는 것이었다.


썬다는 비탈을 조심스럽게 더듬어 내려가서 아직 살아 있긴 했으나 넘어져 다친데다 거의 얼어 죽은 목숨 같은 그를 끌어 올려 업었다. 업었다가 안았다가 넘어졌다 일어섰다 하면서 가까스로 고갯마루에 거의 다다랐을 때 썬다의 시야에 또 하나의 동사체가 나타났다. 그는 바로 몇시간 전 자기만 살겠다고 먼저 가버린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는 이미 꽁꽁 얼어 죽어 있었다. 썬다와 등에 업힌 사람은 서로 밀착한 열기로 인하여 체온이 내려가지 않아 살았는데, 혼자만 목숨을 건지겠다고 앞서가던 동행자는 혼자만의 체온으로 버틸 수가 없어 결국 목숨을 잃고 말았던 것이다. 이 장면을 목격한 썬다는 문득 다음의 성경말씀이 머리에 떠올랐다.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눅17:33).


생사의 갈림길에서 선한 사마리아인같이 죽어가는 이웃을 외면하지 않고, 죽음을 각오하고 이웃을 구한 썬다에게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베풀어주신 것이다. 썬다는 또 다시 목숨을 구원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면서 의식을 되찾은 동행과 함께 랑게트로 향했다.

 

 아버지의 회심

 

1919년 10월 10일, 썬다는 저녁 늦은 시간에 고향 람푸르의 집으로 돌아왔다. 전과는 달리 아버지는 그를 박대하지 않았다. 15년전 회심의 그 순간을 기억하면서 썬다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기도를 드렸다. “생명을 다시 주신 주님이시여, 주님 외에 누구를 찾으리이까? 늘 나무 밑이 나의 잠자리가 되고, 바위밑이 나의 기도실이 되게만 하옵소서…”


지나간 세월을 되돌아보면서 주님의 사랑에 감격하고, 또 자신의 불충에 통회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썬다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고개를 숙이고 목이 매인채 띄엄띄엄 말했다. “아들아, 못난 애비를 용서해다오. 그동안 너에게 못할 짓을 내가 너무 많이 했구나. 나도 이제 예수님을 믿고 싶다만 그분이 내 죄를 용서해 주실는지…” 썬다는 형언할 수 없는 기쁨으로 아버지의 손을 꼭잡고 말했다. “아버지, 함께 주님께 기도를 드리시지요.” 기도를 마치자 아버지는 기쁨이 충만하여 자신의 눈을 뜨게 해준 아들에게 세례를 받고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썬다는 “아버지, 그 일은 딴 분이 하실 일입니다. 저는 오직 주님의 평화와 사랑을 증거하는 소명만을 받았을 뿐입니다”하고 겸손히 거절했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 때문에 아버지와 가족 그리고 안정된 미래를 기꺼이 포기하고, 오직 성경 한권만을 손에 쥔채 15년동안 맨발로 온 세상을 두루다닌 썬다! 어둠속에서 방황하다 지옥으로 떨어져가는 수많은 영혼들에게 주님의 복음을 전해주려고 엄청난 고생을 감수한 썬다! 이러한 썬다이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너무나 사랑하셨고 또한 그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해 주신 것이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14:2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