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神學/[韓國信仰人]

순교자 도복일 목사 (감리교)

好學 2011. 8. 8. 21:34

 

순교자 도복일 목사 (감리교)

 

도복일 목사(1914-1950)


도복일은 1914년 경북 경산에서 도봉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일직이 영남지방에서 선교한 남장로교 선교사들의 전도를 받아들여 예수를 믿었던 초기 신자였다.

도복일은 모태신앙으로 민족주의자 아버지 도봉희가 3.1운동 참여로 혹독한 고문을 받고 풀려났다. 도복일은 가족들을 이끌고 만주땅 용정으로 이주함으로 용정학교와 서전의숙을 나왔고

1935년 해림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감리교 만주연회가 경영하는 만주신학원을 졸업하고 만주 조선기독교연맹 만주교구에서 목사로 안수를 받고 만주영안교회 부임한후 1개월만에 해방이 되어 1년간 공산치하에서 목회하다가 가족과 함께 귀국했다.

 

1946년 8월 총리원으로부터 당진교회 파송되어 1949년까지 3년동안 당진교회를 비롯 지역 여러교회를 크게 부흥시키고 1950년 삽교로 옮기고 몇달이 못되어 6.25사변이 터지는 비운을 겪게 되어 부여지역으로 피난했다가 9월 초 "여보 살고 죽는 것은 하나님의 장중에 달렸으니 비겁하게 살지말고 차라리 의롭게 죽읍시다"라는 도복일 목사의 간곡한 말에 사모도 눈시울이 굵어졌고 "당신의 뜻이 정 그렇다면 좋을대로 하시지요 저는 당신이 하자시는대로 하겟습니다."

 

교인들의 권고로 부여로 피란갔던 도복일 목사는 조바심이 나서 죽음을 불사하는 결단을 하고 가족을 이끌고 목회지 삽교교회로 다시 돌아와 교회를 돌보며 남은 교인들을 살피며 위로했다.

 

1950년 9월 21일 유엔군의 활약으로 후퇴하는 공산군은 남쪽 지도자들을 나포해 가면서 도목사도 체포해 삽교천 뚝방으로 끌고가 총살한 것이다. 그의 나이 36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