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神學/[韓國信仰人]

순교자 김희서 교사 (침례교)

好學 2011. 8. 8. 21:32

 

 

순교자 김희서 교사 (침례교)

 

 

김희서 교사(1878-1918)


김희서는 1873년 충청남도 부여군 양화면 원당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부여에서 양반, 뼈대있는 집안이라 어려서부터 한학을 읽었다. 그러나 그의 부모는 그가 어릴 때 돌아가시고 형님의 집에서 성장하게 되었다. 그의 안에 내재한 문학성이 발휘된 것은 너무도 외로웠기 때문이다. 그런던 그가 예수를 만난 것은 1895년이었다.

 

그는 서당 시절에 두보의 시를 좋아했다. 1895 당시 익산 난포에 내려가 학동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있든 중 서양여자 두사람이 서당에 찾아와 전해준 한문성경을 등잔불 밑에서 펼쳐 읽고 그의 마음에 하나님의 빛이 스며옴을 느껴 그는 밤을 밝혀 창세기를 다 읽었다.여자선교사가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소식을 전할 때는 "무부무군의 사교를 믿으라고 하느냐"고 얼굴엔 노여움이 서리었던 그가 밤새 성경을 읽고 하늘을 향하여 "하나님 당신이 내게 오시는 것입니까? 하고 물었을때 하나님이 그를 찾아온 것이다.

 

노여움을 사고 창세기를 다 읽은 후 "희서야 너는 내것이니라. 교회로 가서 가르침을 받으라"는 음성을 듣고 무작정 걸어서 난곡침례교회 앞에 갔고 불이 밝혀져 있는 대문을 밀치고 들어가 갓을 쓴 외국인이 나와 정중히 맞았고 전날 낮에 서당을 찾았던 여가가 있었고 그들은 희서를 보며 부르던 찬송을 계속했다.그가 신앙을 고백한 것은 1895년 그의 나이 22세 때였다.

 

1908년 그는 부여 칠산교회에 부임해 교역자생활을 시작했으며 1915년 목사 후보인 교사 직분을 받고 함경북도, 간도를 중심하여 만주일대르 선교지로 삼아 순회전도를 했다.

1918년 원산대회에서 시베리아 선교를 명받았는데 조장은 박노기 목사 부조장은 김희서 교사였다. 김교사는 시베리아 선교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오면 목사로서 안수받기로되어 있었다. 조장과 부조장 전영태 총찰과 최응선 감로 넷이서 함께 러시아 선교를 위해 수청 연추지방을 향하여 항해하게 되었다.

 1918년 10월 20일 그들이 탄 선박이 노영 보시엘해 모커우 지점에 이르렀을 때 돌풍을 만나 끝내 파선하므로 네 사람도 파선하는 배와 함께 풍랑에 휩쓸려 순교했다. 김희서의 45세되는 생일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