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神學/[韓國信仰人]

순교자 박만익 장로 (장로교)

好學 2011. 8. 9. 21:20

 

 

순교자 박만익 장로 (장로교)

 

 

박만익 장로(1906-1949)


1906년 8월 7일 경북 영덕군 삼사동에서 박해문장로의 장남으로 출생했으며 3대에 걸쳐 믿는 가정에서 부친의 엄격한 청교도 신앙을 본받아 어릴 때부너 신앙심이 돈독하였다.

일본 동경에 유학하여 전기전문학교를 졸업하고 후배양성을 위해 동명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활동하면서 삽시교회에 출석하며 신앙생활을 철저히 하였다.

최연매 권사와 결혼하여 자녀를 신앙으로 양육하였고 지역사회와 교회를 위하여 충성 봉사하시든 중 1942년 장로가 되었으며 항상 스데반과 같이 순교하는 것이 소원이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활동하다가 영덕 경찰서에 투옥 중 1945년 8월 15일 석방되어 여전히 교회와 지역사회를 위하여 봉사하였다.

해방 후 좌우익의 혼란기에 국민회의 회장으로 공산주의자들의 표적이 되든중 6.25가 발발되자 공비들의 피습을 받아 우익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신문보도에 친지들과 목회자들까지 피난을 가라고 권고하였으나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교회를 버리고 도망가겠느냐"면서 스스로 순교자의 각오를 하고. 당시 교회가 열악하여 목회자를 모시지 못하는 때라 고 박만익 장로가 설교도 하시면서 교회를 지키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49년 2월 18일 집에서 공비의 기습을 받아 창과 칼에 찔려 당시 중학생으로 주일학교 반주도 하든 아들 재은과 함께 무침히 살해되어 순교하여 하늘나라로 가셨다.

장남을 살려두면 후에 원수를 갚는다고 하여 어린 학생을 무참히 살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현재 두 분은 독립운동과 순교의 공을 인정받아 서울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그의 직계 자손들은 현재 44명이며 고 박만익장로의 순교정신을 이어받아 장로 박재화, 안수집사 박성화, 권사 박선호, 집사 이필우 등 각 소속교회에서 봉사하고 있으며

자손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의사가 4명 대학교수 2명 강사, 교사, 공무원, 장교, 회사원으로 각각 자기 맡은 자리에 교회와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