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敎育 1/원고[청소년교육]

제자분석(6) "정직한 사람 나다나엘"(요한복음 1 : 45 ~ 51)

好學 2011. 8. 1. 21:02

제자분석(6) "정직한 사람 나다나엘"(요한복음 1 : 45 ~ 51)

 

 

 

오늘은 예수님의 제자 중 2번째 그룹인 빌립, 바돌로메 도마, 마태 중 지난 주 빌립에 이어  나다나엘에 대해 보기로 함. 두번째 그룹은 머리가 좋은 사람이었으며 생각이 많은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음.

나다나엘은 빌립과 절친한 친구였으며 성경에 항상 같이 등장함. 47절에서 예수님은 나다나엘을 진실한 사람이라고 말하였음. 영적 신앙에 있어 진실하였으며 참이스라엘인이었고 간사함이 없는 맑고 투명한 사람이었음.

20세기 최고의 복음주의자라고 하는 죤 스토트 목사는 “Calling Christian Leaders”라는 책에서 고린도전서 1~4장을 분석하였음. 진정한 교회, 진정한 성도의 리더십은 “섬김의 리더십”, “종의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이라고 하면서 교회의 이중성을 꼬집었음.

즉, 교회가 주장하는 것과 교회가 세상에 보여주는 것은 너무나 다르다고 말하였음. 고린도전서 1장에서 성도를 거룩한 자라 하면서도 시기와 질투와 교만과 음란으로 가득한 모습 보여주고 있음. 성도라 하면서 성도답지 않은 모습, 거룩하다 하면서 거룩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음.

우리도 이와 다를 바 없음. 우리 성도는 “이미(already)와 그러나(yet)”의 중간의 긴장 속에 있는 존재임. “이미”(already) 우리는 예수 믿고 완전히 구원 받았음. “그러나”(not yet) 그리스도의 성화된 모습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음.

이미(already)만 강조하면 구원후 어떤 죄를 지어도 무방하다고 보게 되며, 그러나(not yet)만 강조하게 되면 교회와 목사와 성도의 비리만 폭로하게 되는 우를 범할 수 있음.

진실은 100% 완전한 존재란 뜻이 아님.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음.
진실은 ①다 된 것이 아니라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 ②내 자신이 부족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 ③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임.

나다나엘은 46절에서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라고 말하였음. 여기서 그는 선입견과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음. 우리도 이와 다를 바 없음. 나다나엘은 타인의 소리와 평가에 따라다니는 존재임. 그런데도 예수님은 그를 진실하다 말하셨음. 그에게 열린 마음이 있었기 때문임. 열린 마음이 있었기에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었음.

48절 “나다나엘이 가로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이어서 49절에서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라고 화답하고 있음.

지금까지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는 사실 앞에서 진실해졌고 변화를 받아들였음. 그리고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했음.

그럼 진실한 사람이 강한 이유를 보기로 함.


Ⅰ.진실해야 치유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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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해진 결과 그의 편견도 치유되었음. 예수님은 마가복음 2장 7절에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원을 부르러 온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라고 말씀하셨음.

이같이 우리도 죄인의 모습, 병자의 모습으로 나아가야 치유됨. 내 자신이 변화되지 않으면 성장이 없음. 사실 앞에 직면하지 않으면 낭패를 봄. 문제 있을 때 정직하고 투명해야 치유가 있음. 

94년 LA흑인 폭동 후 피해 받은 우리 교민은 주정부로부터 별로 보상을 못받았다 함.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해 소득을 속여 작게 신고한 결과 보상도 이에 상응해 적게 받았다고 함. 진실하면 치유와 회복이 있음. 진실이 없으면 10년 20년 믿어도 그대로임. 그러나 진실되면 1년, 5년 시간이 지나면서 그만큼 성장할 수 있음.

찬송가 349장 가사 중 “나 주의 도움 받고자 주 예수님께 빕니다 ~~~~~~ 내모습 이대로 주받으옵소서”라고 노래하고 있음. 우리도 이 찬송가 가사 “내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라는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갈 때 치유와 회복이 있음.


Ⅱ.열린 하늘을 체험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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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절 “나다나엘이 가로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라는 말씀은 예수님이 나다나엘의 평소의 모습, 명상, 고민, 생각을 다 아셨음을 말해주고 있음.

시편 139편 1절에서도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라고 노래하고 있음. 하나님은 우리의 앉고 서는 것, 그리고 모든 생각하는 것을 다 아심. 그래서 진실된 종은 하나님께서 붙드시고 인도하심. 진실된 사람은 권모술수를 가진 세상 사람에게는 못이길 수 있음. 그러나 진실된 백성의 강점은 하나님이 어느 순간 하늘 문을 여시고 우리에게 도움과 능력을 부어주심.

50절,51절에서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또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라고 말씀하셨음. 열린 하늘 가운데 도울자를 보내주심.

고린도후서 4장 8절에서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라고 말씀하고 있음.우리가 우겨쌈을 당해도 싸이지 않는 것은 열린 하늘을 통해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임.  히스기야가 13만 5천명의 앗수르군에게 공격을 당하자 하나님께 기도하였을 때 하나님꼐서는 하늘문을 여시고 이들을 하루아침에 물리치게 만드셨음.

또한 예수님이 세례를 받았을 때도 하늘문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처럼 내려왔으며,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는 순간 하늘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위로의 목소리가 들려왔음.

진실 외에는 하늘이 열리지 않음. 진실됨이 열린 하늘을 통해 증명되는 종이 되기를 기원함.


Ⅲ.진정한 신앙의 동지가 생기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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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과 바돌로메는 마태복음 10장 3절, 마가복음 3장 18절, 누가복음 6장 14절 등 성경 곳곳에서 항상 함께 나옴. 이같이 진실되면 자신과 같은 진실된 좋은 우정의 친구를 만나게 됨. 사람이 따르지 않는가? 진실되지 않기 때문임. 진실됨과 고난이 주는 축복은 친구를 얻는 것임.

여호수아와 갈렙은 진실됨과 고난 가운데서 서로 친구가 되었음. 다윗과 요나단도 사울왕이라는 고난을 겪으면서 서로 친구가 되었음. 지금까지 신앙생활 해 오면서 믿음의 동역자가 있는가? 만일 없다면 인생 헛살았다 할 수 있음. 같이 기뻐할 때 기뻐해주고 슬퍼할 때 슬퍼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함.

술친구,세상놀음의 친구가 아니라 새벽기도의 친구, 선교의 친구가 있어야 함. 진실됨 모습 있으면 이러한 축복이 주어짐. 2003년에는 여호수아와 갈렙, 다윗과 요나단같은 “새벽기도 친구, 선교의 친구, 헌신의 친구 주십시오”라는 기도를 하기 바람.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고 변화시켜 주실 것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