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敎育 1/원고[청소년교육]

제자분석(3)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 야고보"(누가복음 9:51 ~9: 56,)

好學 2011. 7. 31. 21:20

제자분석(3)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 야고보"(누가복음 9:51 ~9: 56,)

 

 

 

예수님의 제자는 4명씩 3개의 그룹으로 grouping되어 있음. 1그룹은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이었으며 2그룹은 빌립과 바돌로메,도마와 마태였음. 그리고 3그룹은 야고보, 유다, 다데오, 시몬과 유다였음. 오늘은 첫번째 그룹 세번째 제자인 야고보를 보기로 함.

             
                                          불같은 성격이었던 야고보


야고보는 성격이 무척 급한 사람이었음. 그의 행동의 動因은 분노였음. 그의 별명을 우뢰의 아들(보아누게)이라고 하는 것이 말해 주듯이 그는 불 같은 사나이였음.

오늘 본문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예루살렘은 가던 도중 사마리아 지방을 통과하려 할 때 지역감정 때문에 그지방 사람이 받아주려 하지 않자 생긴 사건이었음. 54절에서 야고보는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좇아 내려 저희를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다”라고 주장하고 있음. 그는 복수심에 불타고 사람, 분노의 사람이었음.

또한 그는 요한복음 18장 15절에서 단서를 제공하고 있듯이 대제사장의 집에 들어갈 정도로 부잣집 아들이었음. 엘리트 의식을 갖기에 충분한 조건 갖추었음.  그러나 예수님은 “불을 내려 죽여버립시다”말하는 야고보를 향해 55절 기록과 같이 그들을 꾸짖으시며 분노심으로 일하지 말라 하셨음.

분노는 힘이 있으며 그래서 분노는 일을 함. 대표적인 예가 혁명임.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사랑으로 일해야 함. 오늘은 야고보를 통해 예수믿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보고자 함.


                                    구조의 변화냐? 사람의 변화냐?


많은 사람들은 교회의 개혁이 필요하다 말함. 개혁은 변화를 수반하며 교회의 개혁은 교회구조나 제도의 개혁이 아니라 예배자들의 개혁이 필요함. 그러나 예수님 당시 분파들은 구조를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했음.  바리새인들은 전통구조를 지키자고 한 반면 엣세나파는 현구조 부정하였음. 열심당은 이에 더 나아가 체제의 전복을 주장하였음.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에 초점을 두었음.

80년대 대학가과 이 사회의 논쟁의 핵심은 구조의 변화냐 사람의 변화냐였음. 이와 관련하여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라는 책이 구조의 변화를 주창하며 구조변화론자를 비롯한 당대 사람에게 큰 영향력 끼쳤음. 이는 구조악 속에서 개인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무기력할 수 밖에 없으며 이 사회와 구조는 변화되지 않으므로 변화를 위해 구조를 깨라고 주창하였음.

이에 반해 로버트 콜맨이 쓴 “복음전도의 마스트플랜”이라는 책이 제자훈련 주장의 효시가 되었음. 이책은 예수님의 사역은 열두명의 제자양성에서 출발되며 예수님의 방법은 사람의 변화를 통해서 이루어졌다고 쓰고 있음.


                          하나님이 가르치시는 변화의 방법 : 사람의 변화


이같이 하나님의 방법은 사람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복음임. 그리고 사람변화의 출발은 나 자신의 변화부터임. 제일 쉬은 것은 나자신의 변화이며 나만 결심하면 됨.

성경의 논리는 나 자신의 변화를 통해 나와 같은 방법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인 반면 혁명의 논리는 너 때문이며 그러므로 너가 변해야 한다는 것임.

어떤 내용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느냐 여부의 판단의 기준은 ①사람을 움직이는 동인이 분노냐 사랑이냐 여부 ②접근방향이 구조변화냐 사람변화냐 ③변화의 출발이 나부터냐 너부터냐임.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은 사람을 변화시켜야 하는데 나부터 변화해야 한다는 것임.

예수님이 십자가 지기전 제자들끼리 누가 크냐 논쟁이 벌어졌음. 자신이 높아지는 방법은 상대를 낮추거나 남이 나를 높여주는 것임. 세상의 방법은 타인을 공격하거나 자기 PR의 방법을 씀. 그러나 나자신이 수준높은 인생이 되면 모든 것이 가치있는 것이 됨.

예수님은 누가 크냐며 논쟁하는 제자들에게 발을 씻겨 주신 후 섬기는 자가 더 크다고 말씀하셨음. 요한복음 13장 13절에서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말씀하시며 섬기는 자가 큰 자임을 가르치고 있음.

우리는 위로부터 능력주십시오 그래서 좋은 대학 들어가게 하시고 출세하게 해 주십시오 라고 기도하지만 잘 안됨. 이러한 우리에게 예수님은 가장 쉬운 것 가르쳐 주마 하시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고 있음. 발씻겨 주라 그것이 큰 자가 되는 비결이라고 말하심.

우리는 변화를 위해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여야 함. 새벽기도,식당봉사,주차관리,이것이 개혁의 출발임. 섬길 때 다 사라지며 예수님 인격 닮을 수 있게 됨. 분노는 교만이며 우리는 누가복음 17장 17절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다 했나이다”라고 말하는 이등병 같은 신앙(시키는대로 감사하며 행함)되어야 함.

교회 분열의 동인은 분노가지고 일할 때임. 그러나 성도는 분노가 아닌, 사람 가지고 일해야 함. 물리학에서 "전자기 유도현상"이라는 것이 있음. 이는 고압의 전압과 평행하게 가면 그 고압전류가 다른쪽으로 통하게 된다는 원리이며 변압기의 원리임.

 야고보는 분노와 교만의 사람이었지만 주님과 동행하다 예수님의 사랑, 예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그 사랑과 능력의 전이를 받게 되었음. 그래서 자신의 변화를 추구하며 사랑의 사도로서 첫번째 순교자가 되었음.

우리도 사랑을 느끼고 그 사랑 잡을 때 사랑 전달될 수 있음.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 마음 알 수 있음. 기도중에 하나님이 물밀듯이 내 인생을 장악하는 것을 느낄 수 있음.그래서 충성하게 됨.


                                            변화된 야고보


하나님이라는 고압선 옆에 뛰다보면 우리도 그 사랑과 능력 전이될 수 있음. 이것이 동행의 원리임.  야고보가 그런 인생, 예수님의 삶을 그 인생에 받아들였음. 사도행전 12장 1절에 보여주는 바와 같이 자기 주장, 분노하던 사람이 예수님 만나 변화되었음. 구조변화 주장하던 사람이 사람이 변화하여 자신이 먼저 죽음.

콘스탄틴 대제 이후 로마국가 동전 중 한면에는 소가 끄는 쟁기를 잡고 있는 사람의 모습, 다른 한면에는 재단을 향해 뛰어가는 사람의 모습이 새겨진 동전 이 있었다 함. 쟁기잡고 충성스런 종으로 살아가다 갑작스레 주님이 부르실 때 주님을 위해 순교의 제단에 바쳐진 야고보를 상징하는 동전이었다 함. 

분노를 사랑으로, 구조변화 대신 사람변화를,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의 변화를 몸소 보인 사람이 야고보였음. 이 같은 야고보와 같은 진정한 개혁을 위한 종이 되기를 기원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