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神學/[世界信仰人]

그리스도의교회 초기 인물 자료 - 인습타파자로써(As Iconoclast)캠벨 4

好學 2011. 7. 16. 17:16

 

 

인습타파자로써(As Iconoclast)

 

1820년대 초, 많은 침례교회들과 협의회들이 알렉산더 캠벨을 받아드리고 있을 무렵, 알렉산더는 "개혁"에 관한 자기 생각을 더 널리 유포하기 위해서 월간지를 발행할 생각을 하였다. 따라서 {크리스천 뱁티스트}(The Christian Baptist)지가 1823년부터 1830년 사이에 발행되었고, 알렉산더는 이 월간지에 단순한 믿음에로 돌아가 그리스도에게 순종할 것을 권하는 적극적인 메시지를 담아 그리스도를 따르는 성도의 일치와 교회의 정화와 왕국의 승리를 가능케 하였다.

불행히도, 이것은 추정된 교회의 권력찬탈과 비성경적 실행들의 제거를 요구하였다. "수세기에 걸쳐 축적된 전통들"(accretions of the centuries)을 제거해야할 필요는 만약 새롭게 세워야 할 기초가 있다면 피해 갈 수 없었다. 그래서 알렉산더 캠벨은 인습타파자가 되었다. 그는 열정으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였고, 그의 열정은 일부 자신의 지지자들에게조차 괴로움을 끼쳤고, 자기 자신의 더 성숙한 판단조차 찬성하지 않았던 범위에까지 그를 끌고 갔다.

"사도들의 가르침과 예배전통에로의 회복"(Restoration of the ancient of order of things)은 궁극적 목적(ideal)이 되었고, 엄격하게 적용되었다. 초대교회에 없었던 조직이기 때문에 선교단체들이 있어서는 안되었다. 목사들은 사례비를 받지 말아야 하고 설교는 자원해서 해야 한다. 성경을 공급하는 단체들도 존재해야 할지 의심스러웠다. 성경의 권위가 인가하지 아니한 것을 교회가 실행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간에 멈춰야 한다. 후에 그가 교회들의 책임 있는 지도자가 되어, 그들 사이의 협력을 도모할 때에 그는 이들 문제들 가운데 몇 가지를 전과는 다른 각도에서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