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살로니가후서 - 개론
데살로니가후서 개요
▣ 인사/1장 1-2절
1. 고난을 견딤/1장
고난은 우리가 성장하도록 돕는다/1장 3-5절
믿음-사랑-인내
고난은 우리가 받을 영광을 준비시킨다/1장 6-10절
고난은 오늘날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한다/1장 11-12절
2. 주의 날에 대한 교화/2장
배교가 생겨나야 한다/2장 1-3절
성전이 재건되어야 한다/2장 4-5절
막는 자들이 옮겨져야 한다/2장 6-12절
교회가 완성되어야 한다/2장 13-17절
3.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확고히 세워짐 /3장
기도와 인내/3장 1-5절
일하는 것과 먹는 것/3장 6-13절
듣고 말하기/3장 14-15절
▣ 작별 인사/3장 16-18절
▣ 데살로니가전, 후서의 주제별 비교
데살로니가전서 데살로니가후서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공중에 그리스도께서 주님의 교회와 함께
오심(살전 4:13-18) 이 땅에 오심(1:7-10)
현재의 은혜시대 장차 올 주의 날
교회에서의 성령의 사역 사단이 세상에서 일함-“불법의 비
밀“(2:7)
그가 가르친 일에 대하여 그들을 그들이 이미 들은 거짓 교훈들을
상기시킴 교정시킴"
▣ 고난당하는 자들에게 주는 위로-데살로니가후서 1장
이 편지는 데살로니가전서가 쓰인 지 얼마 안 되어 씌어졌으며, 그리스도의 재림과 연관하여 교회에 들어온 거짓 가르침들을 교정하기 위하여 기록되었다. 교회는 혹독한 박해를 통과하고 있었으며, 어떤 신자들은 구약에 약속되어 있는 무서운 환란의 때인 주의 날이 이미 임하였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바울이 쓴 것처럼 꾸며진 편지가 교회에 들어왔거나(2:1-2), 아니면 교회 선지자들 중의 누군가가 성령께서 주신 멧세지인 것처럼 제시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바울은 이 시대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설명하며 이러한 고난을 당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주님 안에 참되게 머물러 있도록 격려하기 위하여 편지를 썼다. 바울은 그들이 받는 고난의 배후에 어떤 목적이 있는지를 세 가지로 지적하고 있다.
1. 고난은 우리를 성장하도록 돕는다(1:3-5)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다“라는 옛 말이 있다. 그리고 역사는 이것이 진실임을 입증한다. 최근에 중국의 어떤 헌신한 그리스도인은 “중국의 고난은 축복을 증대시켰다. 왜냐하면 고난이 교회를 정화시켰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하였다.
이 곳의 그리스도인들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지닌 것으로 명망이 있었지만(살전 1:3), 이러한 어려운 경험은 그들의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성장하게하는 동기가 되고 있었다! 이들은 성장하는 믿음과 풍성한 사랑과 찬란한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
더구나 그들의 간증도 성장해 가고 있었다. 모든 교회들이 그들에 대하여, 그리고 그들이 주님을 위해 굳게 서 있는 데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되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모든 교회들 가운데서 그들을 자랑으로 여길 수가 있었다. 그들의 꾸준한 인내는 다른 신자들에게 격려가 되었다.
이들이 또한 인내에서도 성장하고 있었음에 유의하자(4절). “환란은 인내를 이룬다“고 로마서 5장 3절은 언급한다. 물론 신약에서의 “인내“는 “기다린다“는 뜻만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꾸준히 견딘다는 뜻이다. 인내를 더욱 이루도록 기도하는 그리스도인은 더욱 많은 환란이 있을 것을 기대해야한다. 왜냐하면 환란이란 하나님이 우리를 더욱 인내하도록 만들려고 할 때 사용하시는 도구이기 때문이다.신자에게 고난이 닥칠 때, 고난은 그를 세우기도 하고 깨뜨리기도 한다. 신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 고난을 받아 들이며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진실에 굳게 서 있다면 고난은 그를 성장하도록 동기를 부여할 것이다. 만일 그가 고난에 저항하고 하나님을 향해 불평하며, 불신앙 가운데서 자포자기한다면 고난은 그를 무너뜨릴 것이며 그의 간증을 파괴할 것이다(벧전 4:12-19 참조)."
2. 고난은 영광을 위한 준비이다(1:6-10)
바울은 고난을 짐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의 축복이요 특권으로 보았다.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은 선물이다(빌 1:29). 바울이 고난을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것“이라고 말한 것은 우리가 공을 세워서 천국에 가기 위한 준비를 스스로 한다는 뜻은 아니다. “합당한“이라는 단어는 공로를 뜻하는 말이 아니라, “알맞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하여 우리 앞에 놓여진 영광에 적합하도록 만드신다.
고난과 영광은 분리될 수없다(마 5:10-12/벧전 4:12-14/ 벧전 5:1). 오늘날 이 세상에서의 우리의 고난은 아직 나타나지 않은 영광을 위한 예비이다(롬 8:18/고후 4:16-18).
고난 중에 있는 이들의 인내는 잃어버린 세상에 대해서는 간증이 되기도 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하나님께서 인간들의 죄를 심판하고 계신 것 같지가 않다. 그래서, “진리는 영원히 단두대에 있고 오류는 영원히 보좌에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가 불신앙으로 행한다면 실망에 빠진 나머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옹호하지 않으신다고 생각하게 된다(시 73편/ 하박국 참조). 그러나, 하나님은 사악한 사람들을 위하여 심판을 준비하고 계시며, 이것을 앎으로써 우리는 확신 가운데 안식할 수 있다.
하나님은 심판으로 “보답하실 것이다.“ 즉, 하나님은 사악한 자들이 그리스도인에 대해 행한 것과 같은 종류의 측정 방법으로 그들을 벌하실 것이다. 바로는 이스라엘의 아기들을 물에 던졌었는데 하나님은 애굽의 군대를 홍해에 던지셨다. 유다는 예수님을 배신하여 나무에 달리시도록 하였는데 그도 밖에 나가 스스로 목매어 죽었다! 또한 사울왕은 검으로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는데 자기의 칼로 죽었다. 사람들은 그 뿌린 것을 거둔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교회와 더불어 지상에서 살게 되실 그 때에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이들이 영원한 지옥에서 고난을 받게 되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즉,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았으며(고의적인 무지, 롬 1:18-32),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회개할 것을 명하신다(행 17:30).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것은 불순종이다. 세상이 그리스도의 갑작스러운 재림과 심판에 예비하여 준비를 갖추지 못할 것임은 물론이며(계 19:11-21),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때에 갑자기 나타나실 것이다. 사건들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공중에 은밀히 임하심.
이 땅에는 주의 날이 시작됨(살전 5:1-).
죄의 사람(적그리스도)이 일어남.
그리스도께서 교회와 함께 홀연히 재림하심.
살아 있는 죄인들을 심판하시고 사단을 1,000년 동안 결박해 두심."
3. 고난은 오늘날도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한다(1:11-12)
그리스도는 그 날에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10절). 그러나, 신자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매일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한다. 바울이 기도하는 짐이 바로 이것이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삶 속에 그의 목적을 성취하시게 될 것과, 그리스도의 이름이 그들을 통하여 영화롭게 되는 것이다. 바울의 사역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였다(행 6:4). 그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진리를 가르치고 이들이 그 말씀대로 살기를 위하여 기도하였다.
신자는 하나님께서 그를 선택하셨고 결코 버리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에 고난가운데서도 확신을 가질 수 있다. 하나님은 시작하신 선한 일을 친히 완성하실 것이다(빌 1:6). 비록 죄악된 세상이 오늘날 싸움에서 이기는 것 같지만 우리는 믿음 가운데서 안식을 얻을 수 있는데, 그들이 내일의 싸움에서 지게 되리라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본 장에 나와 있는 “쌍을 이루는 진리들“ 즉, 믿음과 사랑(3절), 믿음과 인내(4절), 믿음과 능력(11절)에 유의하라.
하나님의 뜻 안에서 시험과 시련을 통과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해야 마땅한가?
그가 받은 구원과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라.
불평없이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라(양도하라).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도록 지혜를 달라고 간구하라.
주어진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을 전하며 영화롭게 할 기회를 찾으라.
하나님의 목적이 완성될 때까지 인내로 기다리라. 그러면 다시 “높여질“ 것이다.
물론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서 고난이 온 것이라면(오게 되어 있다!) 이것을 하나님의 징계의 손으로 받아 들여야 하며, 하나님께 순복하고관계를 바르게 가지도록 해야 한다.
이 첫번째 장은 오늘날과 같이 시련이 많은 시대에 사는 신자를 위하여 큰 격려가 된다. 세상은 브레이크가 파열된 속도로 지옥을 향해 언덕을 내려가는 자동차와도 같다. 인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거나 간직하려고 하지 않는다. 거룩하지 못한 불신자들이 승진이 되는 반면 충성스러운 그리스도인들은 고난을 당한다.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속한 사람들을 버리신 것같이 보인다. 그러나, 바울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신자는 “안식을 얻을 수 있는데“(7절), 안식이란 “긴장을 푸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일하고 계시며, 어느 날 자기의 백성을 신원하시며 잃어버린 사람들에게는 복수를 하실 것이다."
▣ 죄의 사람-데살로니가후서 2장
바울은 이제 그의 편지의 핵심에 이르고 있으며, 주의 날과 죄의 사람(적그리스도)에 대하여 설명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주의 날이 이미 임하였다는 거짓된 말을 들었으므로 일으켜 세워지는 대신 “흔들리고“ 있었다. 2절에 “이르렀다“는 말은 “이미 임하였다“는 뜻이 된다. 바울은 저주와 심판의 날이 세상에 임하기 전에 생기게 되어 있는 몇 가지 사건들을 설명한다.
1. 배교가 일어나야 한다(2:1-3)
“배교“라는 단어는 “떨어져 나간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떨어져 나간다는 뜻이다. 바울 시대에도 거짓 선생들이 분명히 있었지만 크게 보아서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에 연합되어 있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으며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음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반드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누군가 스스로 교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해도 당신은 그가 무엇을 믿는지 알지 못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불신앙“ 시대에 살고 있다.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지만 그리스도의 신성과 성경의 영감설 등을 부인한다.
이러한 배교, 곧 진리에서 떨어져 나가는 일은 디모데전서 4장과 디모데후서 3장에 약속되어 있는 사실이다. 우리는 지금 배교의 시대에 살고 있으며, 이러한 사실은 주님의 재림이 가깝다는 것을 시사해 주고 있다. 신앙을 고백하는 교회(기독교 세계)는 전에 성도들에게 전달된 믿음으로부터 떨어져 나왔다. 포스딕(Fosdick)과 같은 사람들은 “나사렛 예수를 예배하는 위험에 대하여“라는 식의 설교를 한다. 교수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2. 성전이 다시 재건되어야 한다(2:4-5)
바울은 세계 독재자, “죄의 사람... 멸망의 아들“이 일어난다고 약속하고 있다. 그는 세상의 어떤 제도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제도의 우두머리가 될 한 사람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그는 그리스도에서 슬픔의 사람인 것과는 대조적으로 “죄의 사람“이다. 그는 멸망의 아들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아들이시며, 그는 거짓말장이이나 그리스도는 진리이시다.
우리는 이 사람을 보통 적그리스도라고 부르는데, 이 말은 “그리스도에 대항하여“ 그리고 “그리스도를 대신하여“라는 뜻이다. 이러한 세계 통치자는 마귀로 말미암아 힘을 공급받으며 유럽을 하나의 큰 연방으로 묶을 것이다(다니엘의 신상에서 열 개의 발가락, 단 2장). 요한계시록 17장에 의하면, 적그리스도는 권력을 얻어 흥왕할 때에 로마 카토릭 교회와 협력할 것이며, 그런 다음 로마의 제도를 파괴할 것이다.
그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다.
교회가 휴거될 것이다.
적그리스도가 평화로운 방법으로 흥왕하기 시작한다.
그가 유럽을 연합시킬 것이며 이스라엘을 러시아와 애굽으로부터 보호하기로 7년 계약을 맺는다.
3년 반 후에 그는 언약을 깨뜨리고 이스라엘을 침략할 것이다.
그는 로마와 유대의 모든 종교를 폐지하고 자신을 예배하도록 할 것이다(계 13장).
7년 환란 시대의 종말에(주의 날) 그리스도는 지상에 돌아오실 것이며, 적그리스도와 그의 제도를 파괴할 것이다.
구약과 신약은 모두 유대인들이 팔레스틴으로 돌아와 유대인의 성전을 재건한다고 예언한다. 적그리스도가 성전에 좌정하는 것이 곧 다니엘 11장 31절과 마태복음 24장 15절에서 말하는 “멸망의 가증한 것“이 될 것이다."
3. 막는 자가 옮겨질 것이다(2:6-12)
사단이 불법의 사역을 하는 일은 이미 세상에서 진행되고 있어 사단의 지옥같은 활동들이 매일 증가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사단의 프로그램을 연기시키며 적그리스도가 일어나는 것을 늦추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세상에 “저지하는 자“를 두고 계신데, 이분이 교회에 계신 성령님이라고 우리는 알고 있다. 하나님에게는 표시해 둔 “때와 시기“가 있으며(살전 5:1), 사단조차도 하나님의 프로그램을 변경시킬 수 없다.
방해를 하는 사람(7절의 막는 자)은 성령님이시며,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교회가 들림받을 때까지 사단의 활동들을 방해하실 것이다. 물론 성령님은 여전히 이 땅에서 일하실 것인데, 휴거가 있는 후에도 사람들이 믿어 구원을 받게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몸(교회)을 통하여 하시는 방해의 사역은 끝날 것이며, 이로 말미암아 사단은 그 불법의 잔을 끝까지 채우도록 자유롭게 진행해 나갈 것이다.사단은 적그리스도를 통하여 기적적인 능력으로 일할 것인데(9-10절) 이는 마치 애굽의 술객들이 모세의 기적들을 흉내내었던 것과 같다. 그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흉내낼 것이며(행 2:22 참조) 세상이 그를 영접하여 예배하도록 만들어 놓을 것이다. 인간들은 진리보다도 거짓말을 믿으려 한다! 물론 휴거 후에 구원을 받은 신자들은 속지 않을 것이다. 현혹당하여 지옥으로 가게 될 사람들은 잃어버린 바된 사람들이다.
이들은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을 숭배하고 섬기는 거짓말을 믿을 것이다(롬 1:25). 이 시대 동안에 복음을 듣고도 복음을 거절한 사람들은 휴거의 사건이 발생한 후에는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고 믿는 교사들이 더러 있다. 본 구절들은 이러한 주장을 받아 들이도록 인도해 가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4. 교회가 완성되어야 한다(2:13-17)
주의 날은 이방 나라들과 유대인들에게 적용되는 것이지 교회에는 아니다. 이 날은 저주의 날인데, 교회는 하나님의 이러한 저주를 보지 않게 될 것이다(살전 1:10/살전 5:9). 환란의 목적은 이방인을 벌주는 것이며 불신앙가운데 자기의 땅으로 돌아와 적그리스도를 따르는 유대 민족을 정화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무대로부터 데려가시기까지 적그리스도는 흥성하지 못할 것이며 권력을 행사하지도 못할 것이다.
교회와 적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은 참으로 대조적이다! 우리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선택되었고 그들은 마귀를 선택하였다. 우리는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으며 이들은 거짓말을 믿었기 때문에 저주를 받았다. 우리는 복음의 기쁜 소식을 믿었으며 그들은 마귀의 거짓 약속들을 믿었다. 우리는 영광을 향해 선택되었고 그들은 지옥으로 가도록 운명지워져 있다.
바울은 본 구절들을 놀랍게 생활에 적용시키고 있다. 굳게 서라! 세상의 격동, 정치적인 대 변동, 또는 종교적인 변절 등으로 말미암아 동요되지 말라. 이 모든 일들은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 일들이며 하나님은 여전히 보좌에 계시다. 시대의 종말이 가까이 다가옴에 따라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며 그를 섬기기가 점점 더 어려워져 가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들라! 마귀의 거짓말들, 곧 이단의 교훈이나, 자유주의 설교자들의 사탕발린 약속들, 또는 로마 카토릭의 주장들에 귀를 기울이지 말라.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라! 우리는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 안에 영원한 격려와 좋은 소망을 소유하고 있다.
우리는 일을 계속해야만 한다. “모든 선한 말과 행위“는 이 어두운 시대에 있어 따라야 할 좋은 강령이다. 말씀을 계속해서 전파하며 그리스도를 위하여 일하기를 계속하라.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것은 몸된 교회를세우고 있는 것이며, 몸이 완성되면 영광 중에 들려 올라갈 것이다!
베드로가 “하나님의 날 보기를 간절히 사모하라(또는 서둘러라)“고 말한 의미가 바로 이것이다(벧후 3:11-12). 교회가 세상에 있는 동안은 사단의 사악한 계획이 지체되고 있으나 교회가 일단 사라지면 사단은 온전히 통치하며 이스라엘을 파괴하고 인류를 타락케 할 것이다.
이 날들은 크고 도전이 되는 날일 것이다. 디모데후서 3-4장을 읽고 이 시대에 있어 신자의 책임들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 실제적인 충고-데살로니가후서 3장
그리스도의 재림은 검토하여 연구하기 위한 교리가 아니라, 우리의 생활을 사로잡고 보다 나은 그리스도인들이 되게 하는 진리이다. 주님의 재림에 대하여 아는 것만으로나, 또는 그것을 믿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일상생활에서 그것을 실천해야만 한다.
불행하게도 데살로니가에 있는 신자들 중에는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교리를 남용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 마지막 장에서 바울은 그들의 길을 바꾸도록 권고하고 있다. 여기 나오는 세 가지 위대한 권면을 살펴보자.
1. 기도와 인내(3:1-5)
신자는 기도 중에 참으로 굉장한 능력을 가진다! 사단이 이 세상에서 일한다고는 하나 우리는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의 응답을 볼 수 있다! 바울은 말씀의 사역을 잘 감당해 나가도록 그들이 기도해 줄 것을 부탁한다. 사단의 거짓말에 대항하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대항하는 것이다. 말씀은 살아있으며(히 4:12) 따라서 바울은 말씀이 “세상 전체에 두루 퍼지는 것“을 간절히 보고 싶어했다.
오늘날에는 말씀이 소홀히 되고 있으나, 바울은 말씀이 영광스럽게 되기를 열망한다. 말씀은 데살로니가 신자들 사이에서 자유로이 순환하고 있었으며 영광을 받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말씀을 받았고 믿었기 때문이다(살전 2:13/살후 2:13).
바울은 그들이 사악한 사람들에게서 구원을 받을 수 있게 해주실 것을 위해서 기도한다. 사단은 우리가 복음을 가지고 가는 곳은 어디다 따라 다니며 비이성적이고(심술궂은) 악한 사람들을 일으켜 우리를 반대하게 한다(행 18:1-12). 이 불신자들은 스스로 말씀을 반대하며 말씀을 주는 사람들조차 반대한다! 우리는 인간들을 신뢰할 수는 없지만 우리의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할 수는 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다“는 말은 인내하는 그리스도인의 암호이며 표어이다.
신자는 기도할 때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인내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향한 우리의 사랑이 성장해 감에 따라 이러한 인내를 우리에게 주실 수 있으시다. 주인을 기다리며 인내하지 못했던 청지기는 그의 마음에 문제를 일으켰다(마 24:42-51). 바울은 주님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라고 말한다(딤후 4:8). 사랑이 있는 곳에 인내와 소망이 있다."
2. 일하는 것과 먹는 것(3:6-13)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교훈을 잘못 적용시켰던 신자들이 더러 있었다. 이들은 만일 주께서 곧 오실 것이라면 그들의 직업을 포기하고 그가 오실 것을 기다려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오랜 세월을 내려오며 극단적인 무리들은 이와 똑같은 실수를 범했으며, 세상을 떠나 산으로 가서 주님께서 돌아오시기를 기다렸다. 하나님의 말씀의 명확한 교훈에 항거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는 이 게으른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참된 신자들이 떠남으로써 이 위반자들이 부끄러움을 느껴 그들의 길을 교정할 수 있게 하라고 권면한다(6, 14절). 이들은 그들을 형제로 다루어야 하며 원수들로 대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들의 죄를 묵인해 주어서는 안 된다.
바울은 자신이 보여 주었던 모범과 전에 가르쳤던 내용을 지적한다. 그들과 함께 있을 때 바울은 손수 일해서 자신과 조력자들의 필요를 충당하였다(살전 2:9-12/행 20:33-35). 바울은 그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충성스럽게 일하며 자신의 필요를 돌보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일하지 않는다면 그는 먹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바울이 따랐던 원리였다. 물론 교회는 진정으로 필요한 것들이 있는 사람들을 돌보았다(행 6장/ 딤전 5장). 그러나, 일할 능력이 있으면서도 일하지 않는 사람들을 도울 책임이 교회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
일하기를 거절하는 사람들은 참견을 잘 하는 사람이 된다. 이들은 자기의 수중에 있는 시간으로 다른 사람의 일에 개입하여 간섭하거나 방해한다. 비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것이 굉장히 나쁜 간증이 된다(골 4:5 참조).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진리는 더욱 열심히 일하도록 추진하는 것이며, 그의 말씀에 순종하도록 믿음을 가지게 한다.
신실하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이 그들대로의 방식으로 사는 것을 볼 때 충성된 그리스도인들이 용기를 잃고 실망하는 때가 가끔 있다. 바울은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라고 말하는 이들을 격려한다. “선한 일을 하다가 근심하지 말라. 포기하지 말라 !“ 예수님께서 오실 때 충성된 자로 발견되어야 하겠다."
3. 듣는 것과 행하는 것(3:14-18)
하나님의 말씀은 듣고 순종해야 하는 것이다. 바울이 말해아만 했던 진리를 순종하지 않고 거절하는 사람은 신자들에게서 주목을 끌게 되고 이에 따른 취급을받게 될 것이다. 이것은 공식적인 교회의 권징(고전 5장)은 아니지만 교회의 개개 회원들로 말미암은 개별적인 교정의 행위이다. 게으름을 격려해서는 안 된다. 만일 각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면 우리는 훨씬 좋은 교회가 될 것이다!
데살로니가 교회를 탁월하게 만든 일들 중의 하나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태도였다. 이들은 말씀을 듣고 받아 들였으며 믿었고(살전 1:5-6/살전 2:13), 다른 사람들과 나누었다. 그러나, 주일이 거듭됨에 따라 어떤 신자들은 말씀에 대해 마음을 굳히게 되었으며 듣기는 들어도 순종하지 않았다. 불신앙과 불신앙에 대한 증거가 그들의 생활 방식에서 드러났으며, 그들의 생활은 교회의 불명예가 되었다. 우리는 말씀을 듣는 사람, 그리고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약 1:22-27).
바울은 끝맺는 축복 기도에서 평강과, 은혜를 빈다. 이 신자들에게 평강이 얼마나 필요하였겠는가? 이들은 혹독한 박해를 통과하고 있었으며, 어떤 회원들은 이미 죽었고 어떤 이들은 무질서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만일 그리스도께 순복하고 그의 약속을 믿으며 그의 재림을 바란다면 마음의 평강을 가질 수가 있다.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기대처럼 시험받은 신자에게 격려가 되는 것은 더이상 없다!
이러한 평강은 주님의 임재로부터 온다. “주께서 너희 모두와 함께 계시기를!“ 하나님의 평강을 우리에게 주시는 분은 평강의 하나님이시다(빌 4:4-9).
바울은 개인적인 서명과 은혜의 축사를 첨부한다. 바울은 이같은 방식으로 그의 모든 편지들을 끝맺고 있는데, 이것은 이 편지가 바울에게서 온 진짜 편지임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사단은 모조품과 위조 문서들을 가지고 있으므로, 바울은 이 편지의 확실함과 그 권위를 수호하고 있는 것이다(고전 16:21/갈 6:11/골 4:18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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